50개의 축구왕조 중 최고의 왕조 탑 10

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50개의 축구왕조 중 최고의 왕조 탑 10

토르난테 2023. 12. 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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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말

 

축구사의 50개의 왕조를 간단하게 리뷰했다.

 

보너스판으로 한번 50개의 왕조 중 상위 10개의 왕조를 뽑아봤다.

 

선정 기준일은 2023년 12월 6일이다.

 

그림을 누르면 해당 게시글로 이동한다.

 


10위

 


2009~2022

『분데스리가 10연패』 바이에른 뮌헨

리그 10연패, 두 번의 트레블, 그리고 6관왕을 이뤄낸 독일의 절대강자

 


비록 리그 내 전력 편차는 컸지만 분데스리가 10연패 및 두 번의 트레블을 이뤄낸 '레바뮌' 시대의 바이에른 뮌헨을 역대 최고의 축구왕조 10위로 선정했다.

자국리그에서는 5대 리그 사상 최초로 10회 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달성했고 전술사적으로도 사키이즘의 공격적인 진화였던 게겐프레싱을 처음 선보인 사람은 도르트문트의 클롭이지만 그를 세계 축구의 대세로 올린 것은 하인케스 시절의 바이에른 뮌헨이기도 했다.

특히 두 번의 트레블 과정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2012-13 시즌에는 2경기 합 7-0으로 대승을 거두었고 코로나로 인해 중립지에서 단판으로 치른 2019-20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는 8-2로 대승을 거두며 바르셀로나의 천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9위

 


1962~1967

『라 그란데 인테르』 인테르 밀란

 

남미의 산투스와 페냐롤에 대한 유럽의 대답



카테나치오의 원류가 된 축구왕조, 라 그란데 인테르는 카테나치오류 전술의 중시조로 불리며 최초로 수비축구 왕조를 세운 에레라 시대의 인테르 밀란을 역대 최고의 축구왕조 9위로 선정했다.

처음에는 스페인식 공격축구에 매몰되어 경질위기에 몰렸던 에라라지만 로코의 카테나치오를 자신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뒤 공격형 레프트백과 토르난테, 즉 수비형 윙어라는 비대칭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유럽 축구 전술사의 일대 혁명을 일으키며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뤄냈음은 물론 남미에게 내줬던 세계 챔피언의 자리를 탈환하기도 했다.

비록 전성기가 짧았다는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1964-65 시즌에는 세리에 A와 유러피언 컵을 제패했음은 물론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결승전에서 유벤투스를 몰아붙였지만 골키퍼 사르티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아쉽게 최초의 트레블 클럽 등극을 놓치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최초로 트레블을 노렸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던 팀이었다.


8위

 


2010~2022

『다섯 개의 빅이어』 레알 마드리드

 

토너먼트 마스터라 불렸던 챔피언스리그 최고의 근본 클럽

 


라리가에서는 안정적으로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는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갈락티코 2기 시대의 레알 마드리드를 역대 최고의 축구왕조 8위로 선정했다.

무리뉴 체제에서는 챔피언스리그에서 큰 성과를 이뤄내진 못했지만 2013-14 시즌 안첼로티 체제에서 통산 10번째 우승, 즉 라데시마를 달성했고 지단 체제에서는 챔피언스리그 3연패, 그리고 다시 돌아온 안첼로티 체제에서는 통산 14회 우승을 이뤄내며 챔피언스리그의 독재자로 군림했고 그 과정에서 바이에른 뮌헨, 유벤투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파리 생제르맹 등 다른 시대의 지배자들을 모조리 격파했다.

라리가에서는 전성기가 지난 바르셀로나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도 고전했던 시절도 있지만 적어도 그들보다 타 리그의 강자들을 상대하는 역량은 확실히 뛰어났다. 그 과정에서 디 마리아의 하프윙 기용이나 이스코 시프트 등 감독이었던 안첼로티와 지단의 임기응변도 대단했다.


7위

 


1965~1976

『황금기』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와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뤄낸 독일의 강자

 


리베로 베켄바우어를 탄생시켰으며 서독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분데스리가 3연패와 유러피언 컵 3연패를 동시에 이뤄내는 등 다양한 대회에서 성과도 훌륭했던 베켄바우어 시대의 바이에른 뮌헨을 역대 최고의 축구왕조 7위로 선정했다.

분데스리가로 승격하자마자 리가 3위 및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고 다음 시즌에는 UEFA 컵 위너스컵을 우승했으며 전성기에 들어선 1970년대에는 분데스리가 3연패와 유러피언 컵 3연패라는 대업을 이뤄냈고 그 과정 속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리즈 유나이티드, 생테티엔의 유러피언 컵 첫 우승을 좌절시켰다.

전술적으로도 베켄바우어를 활용한 공격형 리베로의 유행을 이끈 바이에른 뮌헨은 비록 말년에는 분데스리가에서 묀헨글라트바흐에게 밀려났지만 바이에른의 공격형 리베로 시스템은 유럽을 넘어 남미 축구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6위

 


1958~1968

『펠레와 아이들』 산투스

 

브라질을 대표하는 축구왕조

 

 

펠레가 이끌었으며 지옥 같은 친선경기 일정 속에서도 1960년대 초중반 브라질 무대에서 유일하게 독주체제를 구축한 펠레의 산타스치쿠 시절 산투스를 역대 최고의 축구왕조 6위로 선정했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던 펠레를 포함해 브라질 대표팀 소속 다수의 선수를 앞세워 상파울루 주립 무대는 물론 브라질 전국리그에서도 5연패라는 대업을 세웠고 페냐롤이 주도하는 남미 축구의 질서를 일시적으로 산투스에게 가져오기도 했다.

전술적으로도 브라질 대표팀이 선보였던 4-2-4 시스템의 유행에 크게 기여했음은 물론 펠레의 존재 덕에 타 클럽보다 훨씬 많은 친선경기를 소화했음에도 공식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5위

 


1958~1969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관왕』 페냐롤

1960년대 최고의 프로축구 클럽



산투스, 인테르 밀란, 벤피카, 셀틱 등 1960년대를 수놓은 왕조는 많지만 그중 가장 꾸준하면서도 높은 정점을 기록했던 인터콘티넨탈컵 왕중왕의 페냐롤을 역대 최고의 축구왕조 5위로 선정했다.

알베르토 스펜세르, 후안 호야, 엘리아스 피게로아와 같은 황금 용병들과 페드로 로차, 네스토르 곤칼베스, 윌리엄 마르티에스, 호세 사시아 등 우루과이 대표팀의 에이스들이 조화를 이뤘던 페냐롤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무려 세 번이나 우승했으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3번 출전해 2번, 레알 마드리드와 벤피카를 잡고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펠레의 산투스에게도 가장 난적은 페냐롤이었을 정도로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초반에는 WM 시스템으로 패권을 장악했지만 벨라 구트만이 감독으로 잡은 뒤 빠르게 4-2-4 포메이션 전환에 성공했고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리베로 시스템도 부분적으로 받아들였고 세대교체의 진통도 겪지 않고 원활한 세대교체를 한 차례 이뤄내기도 했다. 유연한 변화를 앞세워 시대를 제패했다.


4위

 


1965~1973

『토털 풋볼』 아약스 FC

축구의 근대화를 이끈 네덜란드의 명문

 


현대축구의 바이블, 토털 풋볼의 원류라 불렸고 원조 카테나치오와 4-2-4 시스템의 몰락을 가져오고 중원의 힘싸움을 중요한 시대로 축구를 바꾼 크루이프 시대의 아약스를 역대 최고의 축구왕조 4위로 선정했다.

축구계에서는 변병으로 치부되던 네덜란드 축구계를 단숨에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올렸고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이뤄내기도 했으며 그 과정에서 1971-72 시즌 트레블을 이뤄내며 유럽 축구 역사상 두 번째로 트레블을 이뤄냈다.

비록 크루이프가 떠나자 급속도로 무너지긴 했지만 적어도 크루이프가 있던 기간에는 아약스를 이길 팀은 없었다. 카테나치오의 선두주자였던 인테르와 유벤투스를 격파했고 강호 바이에른 뮌헨도 대파하는 등 현대 축구의 바이블 역할은 물론 시대의 지배자로서도 확실했기 때문이다.


3위

 


1953~1964

『저승사자 군단』 레알 마드리드

 

유럽 클럽 대항전 역사상 최고의 클럽



초대 챔피언스리그 5연패, 디 스테파노, 푸스카스, 산타마리아, 코파, 지지 등 해외 스타들을 쓸어 담아 강력한 스쿼드를 구축한 갈락티코의 프로토 타입이자 레알 마드리드=스타군단이라는 공식을 처음 세운 저승사자 군단 시대의 레알 마드리드를 역대 최고의 축구왕조 3위로 선정했다.

디 스테파노 영입 이전의 레알 마드리드는 암흑기를 겪으며 발렌시아, 빌바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의 강세 속에 큰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나 디 스테파노가 온 이후로 라리가에서 패권을 장악했음은 물론 전무후무한 유러피언 컵 5연패를 이뤄냈다. 이때를 기반으로 레알 마드리는 세계 최고의 명문 클럽으로 발돋움한다.

저승사자 군단 초창기의 감독 호세 비야롱아는 매직 마자르의 신봉자였는데 그랬기에 고도의 스위칭 플레이를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적용했다. 그 여파로 1959-60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는 프랑크푸르트를 상대로 7-3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2위

 


1987~1996

『밀란 제너레이션 1기』 AC 밀란

 

압박의 재해석으로 현대 축구의 기틀을 다진 축구왕조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20년 동안 헤게모니를 주도할 사키이즘을 처음으로 선보였고 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가리지 않고 강한 모습을 보였던 밀란제너레이션 1기 시대의 AC 밀란을 역대 최고의 축구왕조 2위로 선정했다.

유벤투스의 강세에 밀려 오랜 기간 암흑기를 겪었던 AC 밀란이지만 언론 재벌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인수한 뒤 파르마에서 명성을 날렸던 사키를 감독으로 영입했으며 반 바스텐, 굴리트, 레이카르트, 사비체비치, 드사이 등 스타 용병들과 아주리 대표팀 선수들을 다소 영입해 이탈리아와 유럽 무대를 평정했고 카펠로 체제에서도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를 4-0으로 대파하며 향후 20년의 헤게모니를 건 대결에서도 대승했다.

토털풋볼을 압박 위주로 해석한 사키이즘은 한층 체계적인 압박을 구성하는데 도운을 줬으며 카펠로 시대에는 로테이션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며 체력적으로 우위에 있는 상태에서 시즌을 운영하는 패러다임을 제시하기도 했다. 성과도 대단했지만 후세에 남긴 게 참 많은 왕조였다.

 


1위

 


2008~2016

『유럽 최초의 6관왕』 FC 바르셀로나

 

축구 역사상 최강의 클럽팀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인 펩 과르디올라, 펠레와 함께 축구사 최강최고의 선수인 리오넬 메시를 모두 보유했던. 상대팀에게 도무지 볼을 빼앗길 거 같지 않았던 팀 과르디올라-엔리케 시대의 바르셀로나를 축구사 최고의 왕조로 선정했다.

챠비, 이니에스타, 부스케츠의 중원이 상대보다 볼을 덜 점유한다는 상상을 할 수 없었으며 역습에 성공해도 푸욜 아비달 피케와 같은 훌륭한 수비력을 가진 수비수가 막아냈고 특히 아우베스와 메시가 머물던 오른쪽 라인은 매우 강력하 2009년 6관왕 및 2011년 챔피언스리그와 라리가 더블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펩이 떠난 이후에는 잠시 길을 잃었지만 엔리케 체제에서는 네이마르 메시 수아레스의 MSN 라인을 앞세워 상대 팀을 모두 압도하고 트레블을 이뤄냈다.

펩 과르디올라의 등장 이후로 20년간 헤게모니를 주도한 사키이즘은 크루이프즘에게 패권을 내줬으며 공격 축구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며 더 많은 득점을 노렸다. 트레블만 두 번을 하면서 엄청난 트로피를 남겼음은 물론 전술사적으로도 후세에 남긴 게 많은 왕조다.

 


아쉽게 떨어진 왕조

 

1929~1938 『황금시대』 아스날

 

1975~1986 『붉은 제국』 리버풀 FC

 

1976~1986 『UEFA 플라크 소유자』 유벤투스 FC

 

1988~1996 『드림팀 1기』 FC 바르셀로나

 

1990~1997 『텔레 산타나 시대』 상 파울루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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