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35편 바르셀로나 DNA의 토대가 된 축구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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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35편 바르셀로나 DNA의 토대가 된 축구왕조

토르난테 2023. 10. 3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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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1996

『드림팀 1기』 FC 바르셀로나

(The Dream Team I)

점유의 재해석으로 현대 축구의 기틀을 다진 축구왕조


성적

라리가: 4회 우승 (1990-91, 1991-92, 1992-93, 1993-94)

코파 델 레이: 1회 우승 (1989-90)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4회 우승 (1991, 1992, 1994, 1996)

유러피언 컵 /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 (1991-92)

UEFA 컵 위너스컵: 1회 우승 (1988-89)

UEFA 슈퍼컵: 1회 우승 (1992)

 


소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라리가 독주체제가 굳혀졌으며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에 실패했을 때에도 바스크 구단들이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발렌시아와 같은 구단들에게 우승컵을 여러 번 내주며 엘레니오 에레라 체제 이후의 바르셀로나는 오랫동안 좋지 못한 시기를 겪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반전되었다. 선수로서 과거 바르셀로나에서 라리가 우승을 이뤄낸 요한 크루이프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비록 첫 시즌에는 기반이 약해서 부진한 성적을 냈지만 바스크 구단의 에이스들을 다수 영입했으며 네덜란드에서는 리베로 로날드 쿠만을, 세리에 A에서는 미카엘 라우드롭을, 불가리아에서는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를 영입하면서 바르셀로나는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고 1988-89 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을 시작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0-91 시즌에는 라리가 6연패를 노리는 레알 마드리드의 연속 우승 행진을 끊고 바르셀로나가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1-92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첫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라리가에서도 4연패를 이룩했다. 특히 후방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부여받은 펩 과르디올라가 펩 체제의 빌드업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는데 3-3-1-3과 4-1-2-3을 번갈아 쓰는 과정에서도 쿠만-과르디올라-라우드루프의 척추 라인의 강력함과 펄스 나인 라우드루프와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의 스위칭 플레이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호마리우를 영입한 뒤 펄스 나인 역할을 맡았던 라우드루프의 입지가 줄어들었고 이에 라우드루프가 자유계약으로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면서 바르셀로나의 연속 우승 행진을 끊어버렸으며 호마리우를 영입한 보람도 없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철학의 라이벌 AC 밀란에게 4-0으로 대패했으며 호마리우와 스토이치코프도 팀과의 불화로 떠나면서 드림팀 1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주요 감독

 


요한 크루이프

선수 시절에 이미 토털 풋볼을 구사한 미헬스의 페르소나로 활약해 토털 풋볼에 능했으며 점유와 압박으로 이뤄진 토털 풋볼을 훌륭하게 계승했으며 우수한 볼 포제션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점유를 보여주며 현대 바르셀로나가 추구하는 축구를 처음으로 제시했으며 이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 유소년 정책을 재정비해 라 마시아를 출범해서 선수들이 어린 시절부터 구단 철학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판을 깔았다.

거기다가 성적도 확실해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았는데 크루이프의 드림팀 1기는 현대의 바르셀로나보다 구단 내외로 제약되는 룰이 많았음에도 라리가 4연패와 1988-89 시즌 컵 위너스 컵 우승, 그리고 1991-92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끌며 총 11개의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비록 1993-94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파비오 카펠로에게 4-0으로 패한 이후 하락세가 뚜렸하게 와서 커리어를 길게 가져가진 못했어도 상술한 그의 업적이 그를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부를 수 있는 이유다.

 


ACE Card

 

 

이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출생년도: 1966년 2월 8일
포지션: 포워드, 라이트윙, 레프트윙,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불가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화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뛰어난 왼발 슈팅력은 물론 우수한 공간 활용 능력을 통해 수많은 득점 찬스를 만드는데 능했던 공격수였다.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며 크루이프 체제의 드림팀 1기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라 리가 4연패를 포함해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1-92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을, 1996-97 시즌에는 컵 위너스 컵과 코파 델 레이 더블 우승을 이루며 구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던 시절의 스토이치코프는 크루이프의 드림팀 멤버 중에서도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는데 1992년에는 피파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를 했으며 1994년에는 피파 올해의 선수 2위는 물론 1994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이름: 미카엘 라우드루프
출생년도: 1964년 6월 15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레프트윙, 포워드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1kg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공격형 미드필더가 갖춰야 하는 모든 덕목을 갖추었으며 특히 상대 수비의 예측을 비웃는 창의적인 킬패스로 찬스를 만들고 팬텀 드리블을 구사해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리며 팬텀 드리블을 유행시켰다.

바르셀로나에서는 크루이프의 드림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라 리가 4연패와 코파 델 레이 1회 우승, 그리고 1991-92 시즌 마지막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루는 데 큰 공을 새웠지만 크루이프와의 갈등으로 인해 결국 자유계약으로 팀을 떠나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해 지탄을 받기도 했다.

라우드루프는 바르셀로나에서 1991-92 시즌 돈 발롱 어워드 라 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을 받았으며 발롱도르 10등 안에 두 번이나 들었다.

 

 

이름: 로날드 쿠만
출생년도: 1963년 3월 21일
포지션: 센터백, 리베로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2kg

골 넣는 수비수로 다수의 시즌 동안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던 리베로로 기본적인 수비 능력부터 우수한 빌드업 능력과 강력한 킥력을 활용한 득점력과 찬스 메이킹에 능한 공격형 수비수였다.

크루이프의 드림팀의 수비라인 리더로 활약하며 라리가 4연패와 마지막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그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연장전에 삼프도리아를 상대로 기가 막힌 프리킥을 직접 득점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쿠만은 여섯 시즌 모두 두 자릿수 득점을 넘겼으며 1992년에는 발롱도르 8위에 올랐고 1993-94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름: 펩 과르디올라
출생년도: 1971년 1월 18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0kg

 

부스케츠 이전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요한 크루이프에게 우리 할머니보다도 느리다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스피드가 느렸고 몸싸움에도 약했지만 굉장히 높은 축구 지능과 우수한 전술안을 바탕으로 경기 흐름을 파악하는데 능해 상대의 패스를 차단하는데 능했으며 창의적인 패스로 많은 득점 찬스를 만들었다.

FC 바르셀로나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보내며 요한 크루이프 체제의 피보테로 활약하며 라 리가 4연패를 포함해 총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1-92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과 1996-97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돈 발롱 선정 라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으며 1994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유효표를 받아 24위에 올랐다.

이후 바르셀로나를 떠나 이탈리아와 카타르, 멕시코 등지에서 선수생활을 하다가 바르셀로나 B팀 감독으로 복귀한 뒤 1군팀 감독으로 승격하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불후의 명장으로 거듭났다.

 


베스트 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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