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21편- 카테나치오의 극한을 보여줬던 위대한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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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21편- 카테나치오의 극한을 보여줬던 위대한 팀

토르난테 2023. 9. 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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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1967

『라 그란데 인테르』 인테르 밀란

(La Grande Inter)

남미의 산투스와 페냐롤에 대한 유럽의 대답

 


성적

세리에 A: 3회 우승 (1962–63, 1964–65, 1965–66)

유러피언 컵: 2회 우승 (1963-64, 1964-65)

인터콘티넨탈컵: 2회 우승 (1963-64, 1964-65)

 


소개

1960년대 초반의 이탈리아 축구계는 보니페르티, 시보리, 존 찰스를 앞세운 유벤투스와 카테나치오를 받아들인 네레오 로코의 AC 밀란이 주도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보드진 및 선수단과의 불화로 경질된 명장 엘레니오 에레라에게 지휘봉을 맡겼음에도 인테르는 시보리한테만 6골을 실점하며 9-1로 패하며 암흑기를 보냈다.

안젤로 모라티 구단주는 세 번째 시즌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면 경질하겠다고 선언했고 에레라도 스페인식 공격 축구가 이탈리아에서는 통하지 않음을 깨달았으며 결국 카테나치오를 활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의 카테나치오는 네레오 로코의 카테나치오보다 한층 더 진화했다.

공격적인 레프트백 지아친토 파케티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리베로를 두는 포 백 시스템은 그대로 본받았지만 그는 레프트 백 파케티를 단지 측면을 수비하는 역할로 두지 않고 적극적인 공격 가담을 주문하며 왼쪽 측면 공격에 힘을 실어 레프트윙 코르소를 중원이나 전방으로 침투시켰다. 그에 대한 반대로 브라질에서 영입한 젊은 라이트윙 자이르 다 코스타는 윙어지만 뛰어난 지구력과 활동량을 가지고 있었으며 에레라는 이 선수를 단지 윙어가 아닌 '토르난테'라는 귀환자 역할을 맡아서 수비형 윙어 역할을 재창조시킨다. 그리고 자이르 코스타가 수비를 지원하면 라이트백 부르니치가 중앙으로 이동하며 오늘날의 스리 백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빈자리는 오른쪽 공격형 미드필더인 산드로 마촐라는 우측면과 최전방에 필요한 위치로 이동해 공격을 이끌었다.

 

1964-65 시즌 인테르의 전술판


기본적으로 4명의 수비수를 두는 인터 밀란이자만 상대가 인터 밀란의 공격력을 과소평가하면 그 즉시 숨겨왔던 강력한 공격력을 보여주며 파케티와 자이르 다 코스타가 모두 공격에 가담하며 최대 6명이 공격에 참가하기도 했던 공격적인 카테나치오를 구성한 인테르는 항상 방심하지 않고 내부적으로는 강도 높은 훈련과 강력한 기강을 잡아 팀의 결속력을 다졌으며 상대에 대한 전력 분석도 확실히 했던 에레라는 공격과 수비의 강도를 굉장히 잘 조절했다. 그렇게 스쿠테토를 세 번이나 들었으며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도 WM의 선두주자 레알 마드리드와 4-2-4의 선두주자 벤피카를 모두 무찌르고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뤄냈으며 남미 챔피언과의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산투스를 꺾고 온 인디펜디엔테를 두 번 모두 승리하며 인테르의 첫 왕조를 세웠다.

 


주요 감독

 


엘레니오 에레라

친코 코파스 시대 말기의 바르셀로나를 이끌며 레알 마드리드와 대적했던 엘레니오 에레라가 인테르의 지휘봉을 잡자 카테나치오를 받아들였다.

인테르에서는 초년에는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했지만 자신만의 카테나치오를 완성시키고 나서는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회 우승과 1회 준우승,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2회 우승을 이뤄내며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를 열었다.

승리를 위해서는 선수를 혹사시키기도 했으며 상대 감독에게 사기를 치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아 논란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우승을 원하는 구단은 가장 먼저 에레라를 떠올렸다.

참고 항목

 

 

카테나치오의 왕이라 불리는 사나이가 후세에 남긴 것들은 무엇일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란 책을 읽게 되면 모방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책에서는 우리가 만드는 예술은 모방을 거쳐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써 놓았다. 그렇다고

dongneazesoccer.tistory.com


ACE Card

 

 

이름: 지아친토 파케티
출생년도: 1942년 7월 18일
포지션: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5kg


유럽 축구사 최초로 전략적인 오버래핑을 시도하며 카테나치오의 매서운 역습을 상징하는 선수였던 파케티는 빠른 스피드와 탄탄한 기본기를 활용해 공격에 적극 가담하며 상대 수비진을 교란했으며 강력한 피지컬을 앞세운 대인 수비에도 능했다.

선수생활을 오직 인테르에서만 보냈으며 세리에 A 4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1회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과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뤄내며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를 이뤄낸 핵심 공신이다. 파케티 개인도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5위 안에 두 번 들었는데 특히 1965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오르며 포디움에 들었다.

 

 

 

이름: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
출생년도: 1935년 5월 2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1kg

1960년대 상반기 유럽 무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어난 훌륭한 볼 컨트롤과 우수한 패싱력과 효율적인 공간 활용, 그리고 탁월한 전술안을 바탕으로 팀의 공격을 지휘해 일명 건축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바르셀로나 시절부터 엘레니오 에레라의 페르소나로 바르셀로나 시절보다 한칸 내려가 플레이하면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하며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루며 그란데 인테르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수아레스 개인도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64년 발롱로드 2위와 1965년 발롱도르 3위에 올랐다.

 

 

이름: 산드로 마촐라
출생년도: 1942년 11월 8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아버지 발렌티노 마촐라와 라이벌 지안니 리베라와 함께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손꼽히며 훌륭한 슈팅 스킬과 창의적인 패싱력, 탄탄한 볼 컨트롤과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의 필수적인 덕목은 물론 기동력도 탁월했으며 측면과 중앙을 오가는 왕성한 활동량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선수 생활을 오직 네라주리 군단에서만 보낸 산드로 마촐라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루며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를 열었다. 마촐라 개인도 1963-6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올랐고  1964-65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으며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다.


베스트 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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