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34편 카테나치오의 종언을 선고한 사키의 로쏘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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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34편 카테나치오의 종언을 선고한 사키의 로쏘네리

토르난테 2023. 10. 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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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1996

『밀란 제너레이션 1기』 AC 밀란

(Milan Generation I)

압박의 재해석으로 현대 축구의 기틀을 다진 축구왕조


성적

세리에 A: 5회 우승 (1987-88, 1991-92, 1992-93, 1993-94, 1995-96)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4회 우승 (1988, 1992, 1993, 1994)

유러피언 컵 / UEFA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 (1988-89, 1989-90, 1993-94)

UEFA 슈퍼컵: 3회 우승 (1989, 1990, 1994)

인터콘티넨탈컵: 2회 우승 (1989, 1990)

 


소개

1960년대 초반, AC 밀란은 카테나치오를 바탕으로 라이벌 인테르와 함께 유럽 무대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1970년대와 80년대를 걸쳐 토토네로 스캔들에 휘말리며 강등을 당하면서 몰락했다.

이런 밀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언론재벌이자 훗날 이탈리아의 총리가 되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다. 베를루스코니는 AC 밀란의 부활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는데 첫번째로 하부리그에 위치한 파르마에서 돌풍을 일으킨 명장 아리고 사키를 영입했다.

사키의 철학에 매료된 베를루스코니는 그의 철학이 자리잡을 수 있게 마르코 반 바스텐, 뤼트 굴리트를 영입했고 이를 바탕으로 사키는 마라도나의 나폴리와 국민구단 유벤투스를 꺾고 1987-88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1988-89 시즌을 앞두고 프랑크 레이카르트도 영입하며 오렌지 삼총사를 완성시켰으며 수비라인에는 암흑기를 지탱한 바레시, 타소티에 더불어 유럽에서 알아주는 유망주였던 파올로 말디니와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를 배치했다.

사키의 지역압박전술은 1선 공격수들부터 4선 수비수들까지 상대방의 공격 전개를 방치하지 않고 계속해서 강하게 압박하는 축구였다. 특히 뼛속까지 토털맨이라 불렸던 뤼트 굴리트는 최전방에서 반바스텐, 도나도니와도 함께 압박하다가 2선, 3선, 그리고 최후방까지 내려가 압박에 참여하기도 했다.

사키의 밀란은 세계 축구의 조류를 완전히 바꿔놓은 지역압박전술을 바탕으로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뤄내는 성과를 보였다. 사키가 지역압박전술을 위해 마련한 4-4-2 시스템은 훗날 콤펙트 사커, 또는 사키이즘이라 불렸다.

사키가 유로 지역예선 탈락으로 위기를 겪은 아주리 군단을 구하러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으로 떠난 뒤에도 그와 사적으로는 앙숙이지만 그의 축구를 부분적으로 계승한 파비오 카펠로에 의해 왕조는 유지되었다.

그럼에도 카펠로는 이를 백업 선수들을 튼튼히 하는 방식으로 메웠다. 데얀 사비체비치, 지안루이지 렌티니, 마르셀 드사이, 즈보니미르 보반 등 양질의 선수들을 백업으로 영입하며 세리에 A 3연패 및 1993-9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특히 1993-94 시즌에는 공격진에 부진에도 리그에서 34경기 19승 12무 3패, 36득점 15실점이라는 짠물수비로 우승을 차지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아라우, 쾨벤하운을 꺾고 8강 조별리그에 진출하였으며 조별리그 B조에서 포르투, 베르더 브레멘, 안더레흐트를 상대로 6경기 2승 4무 무패, 6득점 2실점을 기록하며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는 AS 모나코를 3-0으로 대파하였으며 결승에서는 크라위프의 드림 팀 바르셀로나를 4-0으로 크게 부수며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이 결승전은 세간에서 희대의 명승부로 불렸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세계 최고의 왕조로 불렸던 밀란은 리피 체제의 유벤투스에게 리그에서 패권을 내주며 주춤하기 시작했고 바레시가 은퇴하면서 짧은 암흑기를 겪기도 한다.

 


주요 감독

 


아리고 사키

밀란에는 겨우 다섯 시즌 머물렀지만 그는 밀란에서 축구 역사를 바꾸는 일명 사키이즘이라는 신개념 압박 축구로 팀을 지배했다. 이는 미헬스의 토털 풋볼을 더욱 효율적으로 완성하게 된다. 

단순히 전술사에서만 큰 영향을 준 것이 아닌 성적도 좋았는데 비록 세리에 A를 단 한 번 밖에 우승하지 못했지만 유러피언 컵 2연패에 성공하며 팀을 유럽 최고의 팀으로 성장시켰다. 

베롤루스코니의 최고의 업적이 아마추어 선수 출신임에도 사키의 전술적인 역량을 알아보고 그를 영입한 게 신의 한 수이자 구단 역사를 바꾸는 한 수가 되었다.

 

 

 

파비오 카펠로

선수 시절부터 기하학자라 불렸을 정도로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선수로 강력한 카리스마와 엄격한 규율로 팀을 장악했으며 사키이즘을 기본 바탕으로 삼았지만 사키에 비해 다소 수비적으로 운용했으며 경직되었다는 평가와는 다르게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자율성을 많이 부여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아주리로 떠난 사키의 대체자로 AC 밀란에 부임해 반 바스텐의 부상으로 공격 상황에서 부진하자 극단적인 수비 전술로 13실점만 거두고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3-94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는 그의 수비축구를 비판한 바르셀로나의 요한 크루이프를 상대로 역으로 공격 축구를 구사하며 선제골을 넣은 뒤 수비축구로 바르샤를 흔들며 역습을 가해 4-0으로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카펠로는 AC 밀란에서 이뤄낸 세리에 A 3연패를 포함해 4회 우승과 1993-94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사키의 유산을 바탕으로 확실한 고점을 세웠다.

 


ACE Card

 

 

이름: 프랑코 바레시
출생년도: 1960년 5월 8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0kg


로쏘네리와 아주리의 위대한 캡틴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수비수 중 한 명으로 뛰어난 수비라인 통솔 능력과 빠른 스피드, 정확한 롱패스, 몸을 사리지 않는 태클을 모두 겸비한 완벽한 수비수였다.

AC 밀란에서 암흑기 시절에도 팀을 떠나지 않고 의리를 지킨 바레시는 사키 체제에서 빛을 보며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바레시 개인도 수비수임에도 1989-90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옹즈 드 옹즈 3회 연속 선정은 물론이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일곱 번 선정되어 1989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를 차지해 발롱도르 포디움에 들었음은 물론 그가 은퇴하자 그의 등번호 6번은 영구결번으로 남았다.

 

 

 

이름: 파올로 말디니
출생년도: 1968년 6월 26일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5kg

로쏘네리와 아주리의 위대한 캡틴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세밀한 볼 컨트롤, 우수한 피지컬 능력과 교묘한 대인 수비를 모두 겸비한 완벽한 풀백이자 센터백이었다.

사키와 카펠로 체제에서만 세리에 A 5회 우승 및 UEFA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을 이뤄낸 말디니는 1994년에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스토이치코프와 호마리우를 완벽하게 지워버리며 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선수와 피파 올해의 선수 2위를 차지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3위에 올랐다.

 

 

이름: 마르코 반 바스텐
출생년도: 1964년 10월 31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0kg

위트레흐트의 백조라 불리던 198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유연한 발리슛과 타점 높은 헤더에서 나오는 득점력은 물론이고 뛰어난 볼 컨트롤 능력에서 나오는 퍼스트 터치는 가히 일품이었으며 팀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에도 능했던 스트라이커의 교과서라 불렸던 선수다.

국가대표팀 동료 레이카르트, 굴리트와 함께 오렌지 삼총사를 구성해 활약하며 사키 체제의 AC 밀란의 황금기를 이끌며 세리에 A와 UEFA 챔피언스리그를 각각 세 번씩 우승해 클럽 축구 사상 최강의 팀 중 하나로 평가받는 팀을 만들어냈다.

밀란에 머무는 동안 반 바 스텐은 발롱도르를 세 번이나 수상했으며 1988-89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올랐고 1989-90 시즌과 1991-92 시즌에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으며 1992년에는 상술했던 발롱도르는 물론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석권했다.

 

 

이름: 루드 굴리트
출생년도: 1962년 9월 1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함 모든 포지션 가능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8kg

 

오렌지 삼총사의 일원이자 피파 시리즈 최고의 선수로 꼽혔지만 실제로도 짧은 기간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손꼽히던 시절이 있었으며 압도적인 피지컬과 100m를 10초대에 주파하는 빠른 스피드는 물론 우수한 테크닉과 축구 지능이 모두 뛰어나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볼 수 있었다.

국가대표팀 동료 레이카르트, 반 바스텐과 함께 오렌지 삼총사를 구성해 활약하며 사키 체제의 AC 밀란의 황금기를 이끌며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뤄내며 클럽 축구 사상 최강의 팀 중 하나로 평가받는 팀을 만들어냈다.

이 만능맨은 로쏘네리의 유니폼을 입는 동안 여러 영예를 누렸는데 옹즈 드 옹즈 3회 선정은 물론 1987년에는 발롱도르와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를 수상했으며 1988년에는 발롱도르 2위를 수상했고 1989년에는 다시 한번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를 수상했다.

 

 

이름: 프랑크 레이카르트
출생년도: 1962년 9월 30일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센터백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5kg

 

허리케인이라 불렸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꼽히는 선수로 견고한 수비력과 정교한 패싱력, 왕성한 활동량을 모두 겸한 우수한 자원이었으며 리더십 또한 겸비했다.

국가대표팀 동료 굴리트, 반 바스텐과 함께 오렌지 삼총사를 구성해 활약하며 사키 체제의 AC 밀란의 황금기를 이끌며 세리에 A 2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뤄내며 클럽 축구 사상 최강의 팀 중 하나로 평가받는 팀을 만들어냈다.

굴리트는 로쏘네리의 유니폼을 입는 동안 옹즈 드 옹즈 4회 선정, 1991-92 시즌 세리에 A 최우수 외국인 선수와 세리에 A 올해의 선수를 석권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상당히 불리한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에도 불구하고 발롱도르 투표에서 1988년과 1990년, 두 번이나 3위에 올랐다.


베스트 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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