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17편- 초창기 챔피언스리그 5연패에 빛나는 저승사자 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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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17편- 초창기 챔피언스리그 5연패에 빛나는 저승사자 군단

토르난테 2023. 8. 23.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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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1964

『저승사자 군단』 레알 마드리드

(La Reaper Cuerpo)

유럽 클럽 대항전 역사상 최고의 클럽

 


성적

라리가: 8회 우승 (1953–54, 1954–55, 1956–57, 1957–58, 1960–61, 1961–62, 1962–63, 1963–64, 1964-65)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1회 우승 (1961-62)

유러피언 컵: 5회 우승 (1955–56, 1956–57, 1957–58, 1958–59, 1959–60)

라틴 컵: 2회 우승 (1955, 1957)

인테콘티넨탈컵: 1회 우승 (1960)

 


소개

1940년대 암흑기를 겪었던 레알 마드리드는 1950년대 초반에도 라이벌 바르셀로나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약진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쿠발라를 영입한 바르셀로나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마저 영입을 타진하며 라리가을 완벽하게 제패하려고 했다.

그러나 리버 플레이트와 미요나리요스 사이에 복잡한 거래에 묶여있는 디 스테파노의 영입은 순탄하지 않았고 바르셀로나가 난항을 겪는 틈에 레알 마드리드가 디 스테파노 영입에 성공했고 이는 디 스테파노가 합휴한 1953-54 시즌에 바로 레알 마드리드가 라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즉각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1954-55 시즌에는 라리가와 라틴컵 더블 크라운을 달성하며 스페인과 서유럽의 최강자 자리에 올랐는데 특히 라틴컵 결승전에서는 레이몽 코파를 앞세운 스타드 드 랭스와 격돌했는데 2-0으로 완승을 거두기도 했다. 1955-56 시즌에는 라리가 3연패에 실패했지만 초대 유러피언 컵 우승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세웠고 이듬해에는 라리가 우승은 물론 유러피언 컵과 라틴컵 우승을 이뤄내며 3관왕을 이뤄냈다.

1958년 푸스카스까지 합류하며 전력을 보강한 레알 마드리드는 비록 엘레니오 에레라를 감독으로 임명한 바르셀로나에게 2년 연속으로 라리가의 패권을 내줬는데 그 기간에도 계속 유러피언 컵에서는 강세를 보였는데 특히 1959-60 시즌에는 프랑크푸르트를 상대로는 결승전에서 푸스카스의 4골과 디 스테파노의 3골로 7-3 대승을 이끌며 5연패의 마침표를 찍었다.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페냐롤을 상대로 우루과이 원정에서는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마드리드에서는 전반 10분 동안 세 골을 넣는 괴력을 선보이며 합산 5-1 대승을 거두며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1960년대에는 벤피카와 밀라노의 두 팀의 강세에 밀려났지만 라리가에서 맹위를 떨치며 디 스테파노가 에스파뇰로 떠날때까지 리그 4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으며 Yeye 마드리드 시대의 주춧돌을 닦았다.


주요 감독

 


호세 비야롱아

스페인 출신의 감독이지만 다뉴브 학파가 보여준 스위칭 플레이의 신봉자로 다뉴브 학파의 완성버전인 매직 마자르를 벤치마킹해 레알 마드리드를 키워냈던 비야롱아는 특히 1956-57 시즌에는 시대를 앞서나간 로테이션까지 활용하며 공격진의 체력을 아끼는 대단한 지략을 선보이며 라리가와 유러피언 컵, 그리고 라틴컵을 모두 제패하며 3관왕을 이뤄냈다.


ACE Card

 

 

이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출생년도: 1926년 7월 4일
포지션: 인사이드 포워드 포함 모든 포지션 소화 가능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80kg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축구 역사상 가장 다재다능한 선수로 60년대를 수놓은 명장 에레라의 말을 빌리면 "디 스테파노는 최고의 공격수이자 최고의 미드필더이며 훌륭한 수비수였다."라는 표현을 받았을 정도로 대단한 선수였다.

구단의 암흑기를 종식시키고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끈 디 스테파노는 라리가 8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5연패를 포함해 총 17회의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발롱도르 2회 수상, 피치치 트로피 5회 수상 및 유러피언 컵 득점왕 2회 수상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이뤄냈다.

 

 

이름: 페렌츠 푸스카스
출생년도: 1927년 4월 1일
포지션: 인사이드 레프트, 센터 포워드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2kg

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오른발과 헤딩을 하지 못했음에도 오직 왼발로만 축구계를 평정했으며 뚱뚱한 체구와는 다르게 빠른 스피드를 보유했으며 우수한 볼 컨트롤과 테크닉, 그리고 공격을 주도하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특히 드래그 백을 실전에서 처음 상대한 선수로 유명했다.

헝가리에서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영위했으나 헝가리 정부에게 실망해 스페인에 망명하면서 매직 마자르 시대를 끝내고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해 저승사자 군단의 화룡점정을 찍었는데 특히 1959-60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만 4골을 기록했으며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남미의 왕 페냐롤을 이긴 2차전에서 5분 만에 선제골을 넣으며 5-1 대승에 크게 공헌했다. 푸스카스 개인도 전성기가 지난 나이에 이적했음에도 라리가 득점왕 4회 수상, 유러피언 컵 득점왕 2회 수상이라는 대업적을 세웠다.

 

 

이름: 호세 산타마리아
출생년도: 1929년 7월 31일
포지션: 센터백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1950년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유명했으며 벽이라고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대인 수비 능력과 헤딩 클리어링을 자랑했으며 특히 머리로 멀리 쳐낸 공이 전방의 동료에게 오차 없이 떨어지는 묘기를 보였다.

우루과이 대표팀과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이미 남미를 평정하게 유럽 무대에 도전했으며 레얼 마드리드의 저승사자 군단에서 수비진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라리가 6회 우승 및 유러피언 컵 4회 우승을 이뤄냈고 산타마리아 개인도 1957-58 시즌 마르카 수비수 최고 평점을 받았다.


베스트 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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