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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의 명장들/명장열전 6

스위칭 플레이의 선조, 깨어있는 잉글랜드인 지미 호건

스위칭 플레이 오늘날에는 왼쪽에 배치된 선수가 오른쪽에서 공격하고 중앙에 있는 선수와 측면에 있는 선수가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수비진을 공략하는 플레이를 자주 볼 수 있다.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도 메시가 중앙에 있지만 페드로 로드리게스나 다비드 비야와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상대 수비를 공략했으며 펩 과르디올라 체제의 바이에른 뮌헨도 최전방에 위치한 레반도프스키가 수비를 유인하는 동안 토마스 뮐러나 아르연 로번이 1선으로 침투해 득점하는 패턴을 자주 보여줬다. 이는 상대 수비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요구하기에 조금 더 효과적인 공격 루트다. 그래서 오늘날의 많은 팀들은 이런 방식을 채용한다. 지금은 이런 복잡한 공격전략이 당연시되는 시대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효율적인 전술이 유행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

프라이부르크의 명장이자 아버지, 슈트라이히의 이야기

명장이란 무엇일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명장은 누가 떠오르는가? 오랜 시간 롱런하며 무수히 많은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 올린 알렉스 퍼거슨이나 주제 무리뉴를 떠올리거나 전술 트렌드를 바꾸며 축구의 새 시대를 연 리누스 미헬스나 아리고 사키, 펩 과르디올라를 떠올릴 수 있다. 아니면 상대적으로 빈약한 지원 속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낸 노팅엄의 브라이언 클러프나 오토 레하겔을 생각할 수도 있으며 리그 우승도 어려운 상황에서 중도 부임해 트레블을 이룬 한지 플리크도 그렇게 불린다. 그렇다. 그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장에 반열에 오른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나긴 축구사에 자신의 이름을 기록한 명장들이다. 하지만 저런 위대한 업적을 이루진 못해도 누군가에겐 명장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한 축구 과학자가 축구 역사에 끼친 영향력은 무엇일까?

축구와 과학 현대 축구에서는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팀을 운영하는 것이 당연한 팀 운영 방식이다. 데이터에 기반을 둔 상대 팀 분석과 선수들의 체력 관리를 위한 식단과 훈련 프로그램 개발 같은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며 선수들의 몸상태를 최상으로 만드려고 노력한다. 오늘날에는 당연한 업무지만 1970년대만 해도 축구 클럽은 이러한 업무들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 감독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감독의 이름은 소련 태생의 발레리 로바노프스키이며 '축구는 개인이 아닌 팀원 간의 유대에 기인한다.'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를 실현시키는 방식으로 단순히 1대 1 경합에서 승리하는 방식이 아닌 팀 단위의 전방위적인 압박을 생각했다. 하지만 팀원들이 전방위적인 압박을 하려면 우월한 체력은 필수였으며 이 체력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주리의 아버지 비토리오 포초

혁신 (革新) 혁신이란 무엇인가? 묵은 조직이나 제도ㆍ풍습ㆍ방식 등을 바꾸어 새롭게 하는 일이다. 축구팀을 운영하면서도 이런 혁신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클럽 팀은 물론이고 국가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신과 함께 성공을 했던 선수단을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쇤, 메노티, 베아르초트, 리피, 델 보스케, 뢰브 다 이런 면에서 큰 실패를 했다. 그러면 월드컵을 연속으로 우승한 감독은 없을까? 정답은 아니다. 단 한 명이 있다. 그리고 이 감독의 특징으로는 핵심 멤버 두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아홉 명을 모두 세대교체해서 월드컵 2연패에 성공한 감독이라는 점이다. 감독으로서 월드컵 2연패에 성공한 유일한 남자, 바로 이탈리아의 감독 비토리아 포초이다. 메토도 1929년 이탈리아의..

가는 길마다 성공을 거둔 푸스발 카이저의 도전 정신

카이저의 새로운 도전 역대 최고의 수비수라고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축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프란츠 베켄바우어라고 말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하프백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약관의 나이에 유럽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바비 찰튼과 월드컵에서 자웅을 겨루었다. 이후 리베로로 전업한 이후에는 세계 최고의 선수를 두고 요한 크루이프와 라이벌리를 형성했으며 결국 분데스리가와 챔피언스리그, 유로와 월드컵을 모두 우승하고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은퇴했다. 베켄바우어가 현역에서 완전히 물러난 1983년에는 서독 대표팀은 데어발 체제에서 유럽 챔피언과 월드컵 준우승을 이뤘다. 하지만 유프 데어발과 서독 국가대표팀의 동행은 유로 84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밀려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면서 끝이 났다..

축구 역사상 가장 브라질리언스러웠던 감독 이야기

이상주의자 모두가 현실에 순응했다면 사회의 발전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자신의 이상이 현실과 다르면 이를 거스르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그들은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나간다. 축구계에도 이런 이상주의자들이 있다. 요한 크루이프, 마르셀로 비엘사, 아르센 벵거가 대표적인 예다. "지저분한 경기나 부당한 골을 얻어 이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패배를 택할 것이다." 이 말을 남긴 브라질의 명장 텔레 산타나 역시 80년대와 90년대를 대표하는 축구계의 이상주의자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세간의 평가는 황금의 사중주를 데리고도 월드컵 2차 리그에서 탈락한 감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이런 부진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감독이다. 오늘은 브라질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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