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 카테고리의 글 목록 (15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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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 172

열강의 거룩한 계보 2편 센터 백

중앙 수비수는 필드 플레이어 중에는 최후방에 위치하며 수비에 집중합니다. 훌륭한 대인방어로 이름을 날린 스토퍼들도 있으며 수비 라인을 지휘하며 경기를 지배하는 자유인 리베로도 이 포지션입니다. 그럼 훌륭한 중앙 수비수의 거룩한 계보를 보유한 열 개의 축구 열강들을 볼까요? *국가 내에서 배열 순서는 랭킹 순위가 아닌 나이 순서대로 배열했습니다. *설명은 편의상 반말로 대체합니다. 벤피카의 도살자 제르마누, 벤피카의 무패 우승의 주역이며 포르투갈의 베켄바우어라고 불리는 코엘류부터 한참 지난 90년대 이후에 세리에에서 활약한 쿠투, 첼시의 전설적인 수비수 카르발료, 유로 우승 주역이자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주역 페페가 포진해있다. 장군 페르푸모, 황제라 불리며 두 번의 월드컵을 우승한 파사렐라,..

국사무쌍의 품격을 보여줄 레지스타를 알아본 안첼로티의 안목

국사무쌍 (國士無雙) 국사무쌍이란 무엇인가?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은 둘도 없다는 뜻으로, 매우 뛰어난 인재를 이르는 말이다. 이 국사무쌍의 고사는 초한지에서 유래되었는데 유방 세력의 재상 소하가 한신을 천거할 때 그를 국사무쌍이라 표현하며 유래된 고사이다. 한신은 초한쟁패기 시절의 최고의 명장이었지만 처음에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으며 한신 본인의 품행도 그다지 단정하지 못해 어디서 추천도 받지 못했다. 운이 좋게도 유력 군벌인 항량의 부하로 들어가고 항량의 뒤를 이은 항우의 휘하에 있었지만 항우는 그를 무시하고 중요하게 쓰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나라의 군대에 투항했으나 처음에는 유방도 그를 중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몇 번 대화를 해본 소하가 추천하자 그를 중용했으며 결국 한신은 그 기대에..

열강의 거룩한 계보 1편 골키퍼

골키퍼는 축구에서 유일하게 손을 쓸 수 있는 플레이어로 상대의 득점을 직접 막는 포지션입니다. 그래서 슛 스토퍼라고도 하죠 골키퍼의 선방으로 경기를 뒤집은 경기가 의외로 많은 만큼 이 포지션도 골을 넣는 공격수 못지않게 중요한 포지션입니다. 그럼 훌륭한 슛 스토퍼의 거룩한 계보를 보유한 열 개의 축구열강들을 볼까요? *국가 내에서 배열 순서는 랭킹 순위가 아닌 나이 순서대로 배열했습니다. *설명은 편의상 반말로 대체합니다. 현대 축구가 정립되기 전에 활약했던 골키퍼가 많다. 특히 그로시치 줄러는 스위퍼 키퍼의 지평을 연 선수였다. 초기 축구의 강호답게 초기 축구의 선수가 꽤 있다. 마주르키에비치는 펠레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선수 중 하나였다. 토털 풋볼의 나라다 보니 대체적으로 빌드업에 강점을 보이는 ..

1984년의 프랑스의 플라티니는 어떤 존재였을까?

용장과 명장의 차이 용장과 명장의 차이란 무엇인가? 용장은 개인과 일신의 용맹함으로 전투를 이끌어 나가는 경우가 많고 명장은 훌륭한 통솔력과 영민한 지략을 바탕으로 군대를 지휘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용장은 개인의 용맹이 뛰어나 항상 개인 퍼포먼스에서는 훌륭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대국적으로 보면 자신의 퍼포먼스는 과시하지만 전장에서는 패하는 경우가 많은 경우다. 대표적으로 삼국지의 여포가 있다. 여포 자체의 퍼포먼스는 훌륭하지만 여포는 흑산적과 약소 세력일 당시에 유비를 격파한 것을 제외하고는 큰 전쟁에서 이긴 경우가 없었다. 자기 자신은 비장으로 칭송받았을지언정 전쟁에서는 항상 졌으며 결국 조조와 유비 연합군에 의해 목이 달아난다. 명장은 자신의 퍼포먼스보다는 자신이 이끄는 군대의 실리를 중요하게..

SSC 나폴리의 산타 루치아가 꾸는 꿈

산타 루치아 나폴리의 민요 산타 루치아를 아는가? 해안에서 황혼의 바다로 배를 저어 가는 광경을 노래한 곡으로 한국에서도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 나오기도 했어서 일부 독자분들은 친숙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산타 루치아는 무슨 뜻일까? 산타는 성녀라는 뜻이며 루치아라는 여성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문당해 스스로 눈을 뽑았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으며 유럽 전역에 기독교 문화가 자리 잡고 나서는 나폴리의 수호성인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산타 루치아는 나폴리 지역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 나폴리 지역을 연고로 하는 SSC 나폴리에도 수많은 수호성인이 있었다. 가난한 구단인 나폴리를 위해 무급으로 뛰었던 파라과이 출신의 아틸리오 살루스트로, 전성기의 대부분을 나폴리에 헌신했던 안토니오 줄리아노와 주세페 부르스콜..

발롱도르 후보에 들어간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

1965년 프란츠 베켄바우어- 17위 1966년 프란츠 베켄바우어- 3위 1967년 프란츠 베켄바우어- 4위 게르트 뮐러- 7위 1968년 프란츠 베켄바우어- 4위 게르트 뮐러- 20위 1969년 게르트 뮐러- 3위 프란츠 베켄바우어- 7위 1970년 게르트 뮐러- 1위 프란츠 베켄바우어- 4위 1971년 프란츠 베켄바우어- 5위 게르트 뮐러- 6위 1972년 프란츠 베켄바우어- 1위 게르트 뮐러- 2위 파울 브라이트너- 18위 1973년 게르트 뮐러- 3위 프란츠 베켄바우어- 4위 울리 회네스- 11위 1974년 프란츠 베켄바우어- 2위 파울 브라이트너- 4위 게르트 뮐러- 7위 울리 회네스- 19위 1975년 프란츠 베켄바우어- 2위 제프 마이어- 5위 게르트 뮐러- 17위 1976년 프란츠 베켄바우..

마라도나가 나폴리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것

나폴리의 세 가지 보물 호사가들은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나폴리라는 도시에는 세 가지 보물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첫째는 세계적인 미향으로 꼽히는 항구가 있으며, 둘째는 유럽 대륙의 유일한 활화산인 베수비오 화산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세계적인 축구영웅이자 나폴리의 신으로 불렸던 사나이 디에고 마라도나가 있다. 다른 두 가지는 수 백, 수 천년 동안 존재했다면 디에고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7년 만을 머물렀다. 마라도나가 머문 7년동안 어떤 일이 있었기에 축구선수인 마라도나가 천혜의 자연환경과 맞먹는 보물이 되었을까? 마라도나가 나폴리에게 준 선물 이탈리아 세리에 A의 패권은 항상 북부 이탈리아가 쥐고 있었다. 유벤투스, 인터 밀란, AC 밀란, 볼로냐, 토리노, 제노아 등 자신의 시대를 가졌던 팀들..

구인광고로 축구 감독을 뽑았던 이탈리아의 한 클럽

구인광고로 축구 감독을 뽑는다고? 성인인 독자분들은 잡코리아, 인크루트, 알바몬, 알바천국 같은 구인구직 사이트를 알 것이다. 직장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저런 사이트에 들어가서 구인광고를 보고 연락해서 지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 축구 감독은 저런 방식으로 공개채용하지 않고 능력 있는 감독을 구단에서 미리 선임해 직접 영입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1920년 이탈리아의 축구 클럽 볼로냐 FC의 구단주 체사레 메디카는 당시 축구 전술에 대한 문화가 발전한 오스트리아의 빈이라는 도시에 볼로냐의 감독 직을 맡을 사람을 구하는 구인 광고를 낸다. 그리고 한 안경을 쓴 사나이가 볼로냐의 감독직에 지원하여 합격한다. 그는 전직 축구 선수였으며 부상으로 축구를 그만둔 뒤에는 법학 학사를 따..

유벤투스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구단이 된 이유

국민 구단 보통 유럽의 축구 구단들은 지역 주민들이 만든 클럽이며 이런 지역 주민들의 서포팅으로 구단을 유지하거나 발전시키며 지역을 대표해 다른 지역의 팀들을 꺾으며 같은 지역의 다른 팀들과 라이벌리를 구성하며 더비 매치를 벌여 지역 내에서의 구단의 영향력을 높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넘어 한 나라를 대표하며 전국에 팬덤을 지닌 전국 규모의 구단들도 있다.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네덜란드의 아약스가 유명하다. 그럼 이탈리아의 전국구 규모의 구단은 어디일까? 유벤투스와 인터 밀란, AC 밀란이 생각 날 것이다. 하지만 인터 밀란이나 AC 밀란은 해외 팬들이 상대적으로 많고 이탈리아 내에서 가장 지지받는 구단은 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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