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나가 나폴리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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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나가 나폴리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것

토르난테 2020. 7. 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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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의 세 가지 보물

 

호사가들은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나폴리라는 도시에는 세 가지 보물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첫째는 세계적인 미향으로 꼽히는 항구가 있으며, 둘째는 유럽 대륙의 유일한 활화산인 베수비오 화산이 있다.

 

나폴리 미항과 베수비오 화산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세계적인 축구영웅이자 나폴리의 신으로 불렸던 사나이 디에고 마라도나가 있다.

다른 두 가지는 수 백, 수 천년 동안 존재했다면 디에고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7년 만을 머물렀다.

마라도나가 머문 7년동안 어떤 일이 있었기에 축구선수인 마라도나가 천혜의 자연환경과 맞먹는 보물이 되었을까?

 

마라도나가 나폴리에게 준 선물

 

이탈리아 세리에 A의 패권은 항상 북부 이탈리아가 쥐고 있었다. 유벤투스, 인터 밀란, AC 밀란, 볼로냐, 토리노, 제노아 등 자신의 시대를 가졌던 팀들은 대부분 북부 이탈리아에 연고를 둔 클럽들이었다.

칼리아리가 남부 이탈리아 구단 최초로 기적적인 우승을 하긴 했지만 단기적인 현상이었으며 결국 재정 문제로 북부 팀에게 다시 밀려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이탈리아 축구의 질서는 부유한 북부 이탈리아 클럽들이 주도했으며 가끔 중부 이탈리아의 로마 연고의 클럽들이 존재감을 드러낼 뿐이었다.

남부 구단들은 항상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서 들러리였다. 마라도나가 나폴리에 오기 전까지는 항상 그랬다.

나폴리의 구단주 코라도 페라리노는 마라도나를 영입하기 위해 800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사용했는데 이는 당시 세계 이적료 최고 기록이자 나폴리의 전 재산을 다 쓴 도박이었다.

 

나폴리의 신이라 불리던 사나이 디에고 마라도나

 

하지만 나폴리의 신 마라도나는 이러한 구단의 기대에 부응했음을 넘어서 아예 신화를 창조했다. 마라도나는 훌륭한 리더쉽으로 필드에서 선수들을 지휘했으며 때로는 화려한 기술로 상대 수비진을 초토화시키고 득점했다. 이런 마라도나의 활약에 나폴리는 두 번의 리그 우승을 했으며 특히 1986-87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도 제패하며 도메스틱 더블에 성공했다. 그리고 1988-89 시즌에는 UEFA컵에서 슈투트가르트를 제치고 우승하며 이탈리아 남부 연고지 구단에서는 최초로 유럽 대항전에서 우승했다.

 

UEFA컵을 우승한 마라도나와 구단주 페라리노

 

그리고 마라도나 영입은 마케팅적으로도 성공적이었다. 마라도나의 이적료를 쓰며 구단이 빈털털이가 됐지만 마라도나로 인해 마라도나의 이적료만큼의 수입을 단 일주일 만에 벌었다. 그리고 이 때 나폴리의 시민이 아니더라도 남부 이탈리아 출신의 사람들은 남부를 대표하는 구단인 나폴리의 팬이 된 경우가 많았다. 결국 나폴리는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게 되고 이들은 모두 나폴리의 재정에 도움이 되는데 나폴리의 시즌권 가격은 수직 상승했음에도 항상 매진되었으며 이로 인해 나폴리의 재정 상태는 매우 호전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번 돈으로 훌륭한 선수들을 영입하는 선순환이 이어지며 이탈리아의 강호로 자리 잡았다.

결국 마라도나의 영입은 성적과 마케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에 성공했으며 나폴리의 귀중한 보배로 자리잡는다.

 

마라도나와 아이들

 

마라도나 체제에서 감독을 맡았던 오타비오 비앙키와 알베르토 비곤은 모두 1986년의 아르헨티나와 비슷하게 마라도나가 지휘하고 조율하며 다른 선수들은 철저하게 헌신하는 팀을 만들었다.

포메이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인 마라도나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4-3-1-2 시스템을 사용했지만 수비라인이 오늘날의 백 포 시스템과는 조금 달랐다.

 

1986-87 시즌 도메스틱 더블 시절의 나폴리와 1989-90 시즌 스쿠테토 시절의 나폴리

 


1986-87 시즌에는 카테나치오 시스템식 백 포 시스템을 모방해서 리베로 레니카를 포함해 세 명의 스토퍼를 두면서 일명 포터 백을 구사했으며 이들이 측면으로 향하면 메짤라인 바니나 데 나폴리가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비 가담을 하는 동시에 측면 공격에도 가담하며 공수 양면에서 부지런한 활동량으로 마라도나를 보좌했다. 로마노는 후방에서 1차적으로 빌드업을 했으며 이를 받은 마라도나가 공격을 지휘했다.

1989-90 시즌에는 겉모습은 카테나치오 시스템식 백 포 시스템과 유사하지만 비곤 감독이 프란치니에게 적극적인 측면 공격 가담을 주문하면서 조나 미스타와 유사한 모습도 보여줬다. 그리고 이 빈 공간은 역시 데 나폴리와 크리파가 왕성한 활동량으로 커버했으며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의 알레망은 3년 전에 뛰었던 로마노와 비슷한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브라질 국가대표팀 주전 공격수 카레카가 영입되면서 마라도나, 카르네발레와 합을 맞추며 파괴력을 보이며 34경기 57 득점으로 카테나치오나 전방 압박이 판치던 세리에 A에서 최다 득점을 기록했는데 특히 마라도나는 리그에서만 16골을 득점하며 세리에 A 득점 3위를 이룩했다.

 

지오르다노, 카레카 ,마라도나는 마법이라 불리던 마지카 라인을 구성했다. 하지만 1987-88 시즌에만 제대로 가동된 라인이다.

 

포메이션은 다르지만 1986년 월드컵의 아르헨티나와 마찬가지고 마라도나에게 중원과 공격의 전권을 위임하며 다른 선수들은 마라도나가 완벽한 플레이를 펼치게 하기 위해 헌신적인 플레이를 하는 방식을 썼으며 이 전략은 성공했으며 나폴리는 구단의 단 두 개뿐인 스쿠테토와 유일한 유럽 대항전 트로피를 이 시절에 들었다. 그것도 사키와 오렌지 삼총사가 이끄는 AC 밀란, 트라파토니와 게르만 삼총사가 이끄는 인테르, 전통의 강호 유벤투스, 신흥 강호이자 코파 이탈리아의 강자 삼프도리아와 같은 북부의 팀들을 모두 제치고 얻어낸 성과여서 남부 이탈리아에서 마라도나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마라도나가 나폴리에게 남긴 것

 

하지만 이렇게 전성기를 구가하던 마라도나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만나는데 문제는 이탈리아와 경기하는 경기장이 나폴리의 홈구장인 산 파울로였다.

이에 마라도나는 나폴리의 팬들에게 "나폴리 시민들은 이탈리아가 아니라 나와 아르헨티나를 응원하라!" 라고 발언했다. 여기서 나폴리 시민들은 "마라도나 우리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탈리아 사람입니다."라고 화답했다. 다만 이탈리아를 상대한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는 야유를 받지는 않았고 결국 아르헨티나의 승부차기 승리로 끝났다.

 

1990 월드컵 아르헨티나vs이탈리아의 마라도나

 


하지만 이 발언에 대해 마라도나는 이탈리아 내에서 지역갈등을 조장한 괘씸죄로 언론의 지탄을 받았으며 세무당국과 사법당국도 그를 공격했고 결국 마라도나는 매춘과 마약복용 혐의로 벌금 5백만 리라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이탈리아에서는 15개월 출장정지 징계를 받아 쓸쓸히 나폴리를 떠난다.

마라도나는 떠나고 나폴리도 부진했지만 마라도나때 나폴리의 팬이 된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나폴리를 지지했으며 2010년대에 들어서 다시 부활하며 남부 이탈리아를 대표해 북부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와 우승 경쟁을 벌였지만 항상 패했다.

하지만 나폴리 팬들은 마라도나가 선물한 두 번의 우승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며 함식이 결국 실패했던 스쿠테토를 새로운 마라도나가 다시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나폴리를 응원하고 있다.

북부에 비해 가난하고 무시당하며 지역갈등으로 소외당한 남부의 축구 팬들에게 마라도나는 최고의 보물이 아니었을까?

 

 

박수용의 토르난테-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 관리자
박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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