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축구'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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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축구 12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공격수 Top 11~20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기준일은 2025년 2월 8일입니다. 20위 에드문트 코넨  생년월일: 1914년 11월 10일 A매치 기록: 28경기 27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슈투트가르트 키커스 1930년대 독일 무대에서 활약한 센터포워드로 2009년에 발간된 잡지 11 Freunde에서는 코넨을 그레이 하운드처럼 유연하고 가치 있는 선수이며, 빠르고 강력했다고 평가했으며 골 결정력이 대단히 우수했다.자르브뤼켄과 슈투트가르트 키커스에서 활약한 코넨은 슈투..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21~30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기준일은 2025년 2월 2일입니다. 30위 라이너 게예 생년월일: 1949년 11월 22일 A매치 기록: 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카이저슬라우테른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분데스리가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2선 자원으로 지칠 줄 모르는 스테미너와 빠른 발을 바탕으로 화려하진 않지만 실속 있는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제치며 공간을 창출했으며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직접 득점을 노리는 부분과 효율적인 컷인 패스를 바탕..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0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준일은 2025년 1월 14일입니다.10위 볼프강 베버 생년월일: 1944년 6월 26일 A매치 기록: 53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FC 쾰른 분데스리가 초창기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엄청난 완력과 정력적이며 열정적인 대인 수비를 보여주며 황소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견고한 수비력 외에도 안정적인 패싱력과 볼 키핑도 겸비해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도 곧잘 해냈다. 선수 생활을 쾰른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이자 구단 역..

독일 축구의 참맛 1. 스위퍼 키퍼의 계보도

서론 국내 팬들에게는 해외 마케팅의 정점인 프리미어리그와 유럽 축구 전통의 스타군단인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 비해 분데스리가를 위시한 독일 축구의 인기는 없다. 심지어는 독일 축구사 최악의 암흑기를 겪고 있기에 과거의 업적까지 과소평가받는 경우가 강하다. 그래서인지 가장 꾸준하게 강력했던 독일 축구가 여러 방면에서 원조가 되며 트렌드를 이끌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모른다고 사실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현대식 백 스리 시스템도 원조는 독일 대표팀 감독 유프 데어발이었다. 독일 축구는 축구사 발전 과정에서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오늘은 독일 축구사가 스위퍼 키퍼에 끼친 영향을 설명하려고 한다. 1. 하인리히 슈툴파우트 생년월일: 1896년 1월 11일 A매치 기록: ..

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26편 분데스리가 3연패를 이뤄낸 당나귀 군단

1969~1979 『망아지 일레븐』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Die Fohlen-El) 바이에른이 유럽을 호령할때 독일 무대를 제패한 축구왕조 성적 분데스리가: 5회 우승 (1969–70, 1970–71, 1974–75, 1975–76, 1976–77) DFB포칼: 1회 우승 (1972-73) 유러피언 컵: 1회 준우승 (1976-77) UEFA 컵: 2회 우승 (1974–75, 1978–79) 소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역시 라이벌 바이에른과 마찬가지로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에 좋은 성적을 기록하지 못해 분데스리가 창립 멤버로 활약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하네스 바이스바일러의 지휘 아래 1964-65 시즌에 귄터 네처, 베르티 포그츠, 유프 하인케스 등 어린 선수들을 발굴해 분데스리가로 승격해 몇 년을 ..

독일 국적 역대 최고의 축구감독 Top 20

주의사항 *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순위 기준일은 2023년 5월 7일 기준입니다.* 독일 국적을 가진 감독들 간의 순위입니다.* 클럽과 대표팀 모두를 반영한 순위입니다. 다만 연령별 대표팀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적게 반영했습니다.20위 파울 오스발트  출생년도: 1905년 2월 4일 주 소속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아인트라흐트의 축구 교사'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세 차례에 걸쳐 프랑크푸르트의 지휘봉을 잡아 뛰어난 지도력과 우수한 전술적 역량을 보여줬다. 원래 체육 교사를 지망했지만 1928년에 독일 대표팀 감독 오토 네어츠의 조언에 따라 ..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20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2년 9월 6일 기준입니다. *동독 대표팀에서만 활약한 선수들은 제외했습니다. 20위 롤프 뤼스만 생년월일: 1950년 10월 13일 A매치 기록: 20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5cm 주 소속팀: FC 샬케 04 키커 랑리스테: IK: 4회 / K: 14회 / B: 5회 슈바르첸벡과 함께 1970년대 분데스리가 최고의 스토퍼로 평가받았던 선..

독일 축구 마니아가 제안하는 디 만샤프트의 새로운 전략안

1. 치망순역지 (齒亡唇亦支) 치망수역지란 성어가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뜻으로 요긴한 것이 없어지면 다른 것이 그 기능을 대신하게 된다는 뜻이다. 인생은 물론이고 축구에서도 이 성어는 적용된다. 클럽팀은 주축 선수가 이적하면 비슷한 유형의 다른 선수를 영입하거나 비슷한 유형의 선수를 구하지 못하면 팀의 전술을 바꾸며 새롭게 팀을 꾸려나간다. 하지만 국가대표팀은 그럴 수가 없다. 해당 국적의 선수는 웬만해서는 부를 수 있지만 오직 해당 국적의 선수만 활용할 수 있기에 해당 국적에 필요한 유형의 자원이 없으면 전술을 대폭 바꿔나갈 수밖에 없다. 현재 독일 국가대표팀의 상황도 이와 같다. 과거에는 우베 젤러, 게르트 뮐러, 호어스트 흐루베쉬, 루디 푈러, 위르겐 클린스만, 올리버 비어호프, 미로..

총관이 뽑는 분데스리가 17라운드 올스타

17 라운드 분데스리가 경기 결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0 베르더 브레멘 바이어 레버쿠젠 2-1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헤르타 BSC 0-3 호펜하임 마인츠 0-2 볼프스부르크 샬케 04 1-2 쾰른 아르마니아 빌레필트 3-0 슈투트가르트 아우크스부르크 0-1 바이에른 뮌헨 프라이부르크 2-2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RB 라이프치히 1-0 우니온 베를린 감독: 우베 노이하우스 승격팀이자 약체인 빌레필트를 이끌고 이번 시즌 선전하던 또 다른 승격팀인 슈투트가르트를 3-0으로 대파하는 이변을 뽐냈다. 골키퍼: 스테판 오르테가 빌레필트는 3-0 대승을 거두었지만 슈투트가르트에게 생각보다 고전했다. 하지만 오르테가가 결정적인 골 찬스를 세 번 모두 막아내며 무실점과 대승을 모두 잡을 수 있었다. 센터 백: ..

미운 오리 새끼였던 톨리소, 바이에른의 백조가 될 전환점을 찾다.

괄목상대 (刮目相對) 괄목상대는 깜짝 놀라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는 뜻으로 안 본 사이에 부쩍 재주가 늘었음을 의미하는 사자성어이다. 유래는 삼국시대의 오나라의 여몽과 노숙의 일화에서 유래된 것인데 여몽은 원래 글을 모르고 무식하여 오나라의 대도독 노숙은 그를 무시했다. 여몽의 재능을 눈여겨 본 오나라의 군주 손권의 명령으로 여몽은 틈틈이 공부를 했으며 그를 무시하던 상관 노숙과의 이야기할 때 여러 번 노숙을 감탄시키자 노숙이 감탄하자 여몽이 학자는 헤어져 3일이 지나면, 눈을 비빈 후에 다시 만나야 합니다. 사람은 삼 일을 만나지 않으면 똑똑히 눈을 크게 뜨고 상대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뜯어볼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했고 노숙은 이에 감탄하여 훗날 자신이 죽음이 다가오자 자신의 후계자로 여몽을 천거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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