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적 역대 최고의 축구감독 Top 20

축구계의 명장들/유럽 축구계의 명장들

독일 국적 역대 최고의 축구감독 Top 20

토르난테 2023. 5. 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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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 순위 기준일은 2023년 5월 7일 기준입니다.
* 독일 국적을 가진 감독들 간의 순위입니다.
* 클럽과 대표팀 모두를 반영한 순위입니다. 다만 연령별 대표팀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적게 반영했습니다.


20위 파울 오스발트

 

 


출생년도: 1905년 2월 4일
주 소속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아인트라흐트의 축구 교사'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세 차례에 걸쳐 프랑크푸르트의 지휘봉을 잡아 뛰어난 지도력과 우수한 전술적 역량을 보여줬다.

원래 체육 교사를 지망했지만 1928년에 독일 대표팀 감독 오토 네어츠의 조언에 따라 프랑크푸르트의 감독으로 부임해 베지르크스리가 마인헤센 4연패, 남부 독일 챔피언십 2회 우승, 1931-32 시즌 독일 챔피언십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35년에 재부임해 1937-38 시즌 가울리가 쥐드베스트 1회 우승을 이뤄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키커스 오펜바흐를 거쳐 1958년에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1958-59 시즌 오베리가 주트와 독일 챔피언십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듬해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고 1963-64 시즌에는 초대 분데스리가에서 프랑크푸르트를 우승 경쟁 레이스에 올렸지만 두 차례의 심장마비로 인해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고 건강을 돌보기 위해 시즌 후반에 감독직을 사임했다.

 

19위 크리스토프 다움

 



출생년도: 1953년 10월 24일
주 소속팀: 바이어 레버쿠젠

'악마의 재능'

1990년대에 분데스리가에서 명성을 날렸던 감독으로 중위권의 클럽을 맡아 우승 트로피를 노릴 수 있는 강팀으로 성장시키는 부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명장이다.

1986-87 시즌을 앞두고 FC 쾰른의 감독으로 부임해 첫 지도자 생활을 했던 다움은 팀을 분데스리가 2회 연속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슈투트가르트에서는 1991-92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튀르키예의 베식타스를 거쳐 레버쿠젠에 입단해 약체라 불리던 팀을 상위권으로 올려놓으며 분데스리가 3회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한창 전성기를 달리며 독일 대표팀 감독 부임을 목전에 둔 2000년에 코카인 투약으로 인해 1년간 징역형을 선고받으며 대표팀 부임 기회는 물거품이 되었고 그 뒤에는 페네르바체에서 튀르키예 슈퍼리그 2연패를 이뤄내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고 이후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18위 율리안 나겔스만

 

 


출생년도: 1987년 7월 23일
주 소속팀: RB 라이프치히

'감독계의 슈퍼노바'

2010년대 하반기와 2020년대 초반에 독일 무대를 강타했던 젊은 감독으로 파격적인 공격형 3-5-2 시스템으로 명성을 떨치며 독일 무대에서 3백 시스템의 유행을 주도하기도 했으며 WM의 현대식 부활이라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으며 2016-17 시즌에는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분데스리가 올해의 감독 및 독일 올해의 축구감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29세의 절은 나이에 호펜하임 감독으로 부임한 나겔스만은 구단주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방향성을 잃고 중위권을 전전하던 호펜하임을 두 시즌 연속으로 분데스리가 4위에 올리며 UEFA 챔피언스리그의 맛을 보여줬다. 이후 신흥 강호 라이프치히의 지휘봉을 잡은 뒤에도 2019-20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를 앞두고 주포 티모 베르너가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했으며 2020-21 시즌에는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에서 준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젊은 나이에도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자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직해 지휘봉을 잡은 나겔스만은 2021-22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며 2022-23 시즌에도 오랫동안 바이에른의 주포로 활약한 레반도프스키가 팀을 떠났고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인 마누엘 노이어가 후반기를 앞두고 시즌 아웃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스리그 전승 및 분데스리가 1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레버쿠젠전에서도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으며 A매치 휴식기 중 스키 여행을 떠나며 긴급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며 경질되기도 했다. 트레블에 제동이 걸렸다는 명목하에 나겔스만을 경질한 바이에른은 나겔스만 경질 이후 DFB포칼과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탈락했으며 분데스리가에서도 도르트문트와 치열한 사투를 계속하고 있다.

비록 바이에른에서는 경질이라는 쓰라린 경험을 겪었지만 아직 미래가 창창한 감독이다.

 

17위 한스 슈미트

 

 


출생년도: 1893년 12월 23일
주 소속팀: FC 샬케 04

'로열 블루스의 시대를 이끈 선지자'

1930년대 샬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감독으로 프리츠 슈체판, 오토 티불스키, 에른스트 쿠조라, 루돌프 겔레슈 등 명 플레이메이커들의 재능을 극대화한 짧고 빠른 패스 위주의 점유율 전술인 일명 '크라이젤'을 바탕으로 독일 무대에서 수많은 우승을 이뤄냈다.

한스 슈미트는 샬케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지역리그인 가우리가 베스트팔렌 5연패와 독일 챔피언십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36-37 시즌에는 지역리그, 전국리그, 그리고 DFB포칼을 모두 우승하며 독일 최초로 도메스틱 트레블을 이뤄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VfR 만하임의 독일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냈으며 뉘른베르크에서는 오베리가 주트 우승을 이뤄냈고 도르트문트에서도 알프레드 3인방의 잠재력을 만개하며 1950년대 후반 도르트문트의 성공시대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다.

 

16위 토마스 샤프

 

 


출생년도: 1961년 4월 30일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미스터 베르더 브레멘'

 

유소년 선수 시절부터 감독 시절까지 브레멘에서만 42년의 시간을 보낸 브레멘의 남자로 중원에서의 탄탄한 플레이를 기반으로 한 화끈한 공격 축구를 거뒀음에도 항상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며 호평받았다.

은퇴 이후에 베르더 브레멘 2군 팀의 감독을 맡았다가 1998-99 시즌 말엽에 강등 위기에 놓인 팀을 맡아 잔류시켰음은 물론 DFB포칼 결승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잡아내며 우승을 이뤄내며 정식 감독으로 발탁되었으며 1999-2000 시즌에는 프랑스의 명문 클럽 올랭피크 리옹을 상대로 1차전에 3:0으로 패배했으나 2차전에서 4-0 완승을 거두며 베저강의 기적이라는 희대의 역전극을 이끌기도 했다.

이후 리빌딩을 단행해 자신의 팀을 만든 샤프는 2003-04 시즌에 바이에른 뮌헨을 꺾고 분데스리가와 DFB에서 모두 우승을 이뤄내며 독일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2005-06 시즌에는 미로슬라프 클로제, 클라스니치의 K-K라인으로 불렸던 공격진을 바탕으로 화끈한 축구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2008-09 시즌에는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15위 펠릭스 마가트

 



출생년도: 1953년 7월 26일
주 소속팀: VfL 볼프스부르크

'독재자'

화려했던 선수 시절을 이어 감독으로도 분데스리가에 큰 족적을 남긴 명장으로 빅 스쿼드를 선호했으며 자신이 직접 매니저로서 팀 운영의 주체가 됨을 넘어 감독직과 단장직을 겸임하며 팀 운영을 전반적으로 주무르는 방식을 선호했다.

초년에는 부진한 성과를 냈지만 2001-02 시즌에 슈투트가르트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유소년 체제를 정비했음은 물론 재능 있는 젊은 선수들을 대거 영입해 만개하며  알렉산드르 흘렙, 티모 힐데브란트, 케빈 쿠라니, 그리고 바이에른에서 임대한 필립 람을 성장시키며 마가트 유치원으로 명성을 날렸고 결국  2002/03 시즌 리그 준우승을 이뤄냈고 이때의 성과를 바탕으로 암흑기의 수렁에 빠진 바이에른 뮌헨의 부임하며 2년 연속으로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더블 우승을 이뤄내며 트로피를 모았으나 2006-07 시즌에 부진하며 시즌 도중에 경질당했다.

이후 볼프스부르크의 감독 겸 단장으로 부임해 2008-09 시즌에 바이에른을 제치고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며 2009-10 시즌에는 샬케에서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냈으나 세부 전술의 극대화가 중요해진 축구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며 몰락했다.

 

14위 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

 

 


출생년도: 1965년 6월 11일
주 소속팀: SC 프라이부르크

 

'프라이부르크의 퍼거슨'

한때 1부 리그에 머물렀지만 2부 리그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온 중소규모의 구단 프라이부르크의 약진을 주도하며 프라이부르크의 퍼거슨이라 불렸으며 다양한 기조의 전술에 모두 능통해 보유한 선수단에게 맞는 최적화된 전술과 뛰어난 임기응변 능력을 바탕으로 지원 대비 최적의 성적을 내는데 능하며 선수들을 보는 눈이 좋아 슈트라이히가 잘 쓰던 선수들을 다른 감독들이 쓰면 잘 쓰지 못하는 현상도 많았다.

지도자 생활을 모두 프라이부르크에서 보낸 슈트라이히는 U-19팀 감독과 수석코치를 거쳐 2011-12 시즌에 로빈 두트에 이어 감독직에 올라 팀의 잔류를 이뤄내며 2011-12 시즌 분데스리가 올해의 감독에 올랐으며 2012-13 시즌에는 강등권에 가깝다는 평가를 뒤집고 분데스리가 5위로 올려 유로파리그 진출을 이뤄내며 트레블을 이뤄낸 하인케스와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낸 클롭을 제치고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감독에 올랐다.

2014-15 시즌에 잠시 강등되었지만 2015-16 시즌에 2.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승격한 이래 꾸준히 기대 이상의 성적을 보여주며 2021-22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6위와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내며 VDV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감독과 독일 올해의 감독을 수상했으며 2022-23 시즌에도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두고 우니온 베를린, RB 라이프치히와 함께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이다.

 

13위 한지 플리크

 

 


출생년도: 1965년 2월 24일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미라클 바이에른'

FC 바이에른 뮌헨에 머물렀던 단 2년 동안은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였던 명장으로 라인을 높게 올리며 상대를 압박한 뒤 빠르게 공격을 전개하는 스타일의 축구를 보였으며 특히 센터백의 발밑과 패싱력을 매우 중요시 여겼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1-0으로 리드하는 상황에서도 경기 종료 시점까지 라인을 내리지 않고 추가득점을 노렸을 정도로 자신의 신념이 강했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뢰브의 수석코치로 2014 월드컵 우승에 공헌했으며 그가 단장으로 영전하자 뢰브의 디 만샤프트는 경기력이 많이 떨어졌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리고 호펜하임 단장직을 거쳐 바이에른 뮌헨의 수석 코치직을 역임했다가 코바치가 리가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자 그 자리를 물려받자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2019-20 시즌 바이에른의 트레블과 2020년 6관왕을 이뤄냈으며 이 시점에서 바이에른에서의 패배 횟수보다 트로피가 더 많았을 정도로 높은 고점을 보였다.

보드진과의 갈등으로 인해 2020-21 시즌이 끝나고 바이에른 뮌헨을 떠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플릭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전술의 틀은 잘 짰으나 용병술에서의 실패로 인해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기에 유로 2024에서 명예 회복을 노리고 있다.

 

12위 유프 데어발

 

 


출생년도: 1927년 4월 10일
주 소속팀: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3백 시스템의 아버지'

이탈리아의 조나 미스타 시스템을 간결하게 개량한 3-5-2 시스템을 바탕으로 1980년대 축구의 흐름을 선도한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특히 특히 함부르크의 공격 루트인 윙백 칼츠의 크로스와 스트라이커 흐루베쉬의 헤딩을 좋아했으며 리베로 슈틸리케를 최후방 수비수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전진시켜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위치에서 슈스터, 한지 뮐러와 볼을 순환하는 데 큰 역할을 맡게 했다.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의 부진을 책임지고 사퇴한 헬무트 쇤의 뒤를 이어 서독 대표팀의 감독직을 맡았던 데어발은 노장들을 내쳤으며 그동안 소외되었던 라리가 소속 선수들을 적극 등용하며 세대교체에 성공하며 유로 1980 우승과 1982 스페인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유로 1984에서는 비록 8강 조별리그애서 탈락했지만 자신이 주축으로 쓰던 선수 중 기량이 전성기에서 떨어진 브라이트너, 슈틸리케, 흐루베쉬, 칼츠를 정리하고 그 자리를 마테우스, 푈러, 베어톨트, 브레메와 같은 젊은 선수들을 발탁해 대체하며 다시 한번 세대교체에 성공하며 후임 감독 베켄바우어에게 세대교체의 부담을 줄여줬다. 이후 터키의 갈라타사라이에 부임해 터키 축구의 발전을 도왔으며 피테르 테림을 후계자로 키웠는데 그 테림이 감독으로서 터키 축구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11위 토마스 투헬

 

 

 

출생년도: 1973년 8월 29일
주 소속팀: 첼시 FC

'광기의 승부사'

2010년대와 2020년대에 걸쳐 이름을 날린 감독으로 보드진과의 잦은 불화로 한 팀에 오래 머물진 못했지만 UEFA A 라이선스 이론 시험에서 최초로 만점을 받았을 정도로 이론에 강했음은 물론 천재적인 전술안과 뛰어난 임기응변을 바탕으로 꾸준하게 좋은 성과를 낸 명장이다.

아우크스부르크의 유스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가 도르트문트로 떠난 위르겐 클롭의 뒤를 이은 욘 아르네센 감독이 시즌 초반에 사퇴하자 대신 마인츠의 지휘봉을 잡은 투헬은 사키가 항상 주장했던 수적 우위와 공간의 활용을 다양한 포메이션으로 구사하며 2010-11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게다가 얕은 선수층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10가지가 넘는 포메이션으로 상대의 허를 완벽하게 찔렀으며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는데 비록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지도력을 인정받아 2015-16 시즌 VDV 분데스리가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었으며 2016-17 시즌에는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다.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리그앙 2연패를 이뤄냈으며 특히 2019-20 시즌 도메스틱 트레블은 물론 구단 역사상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첼시에서는 2020-2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펩 과르디올라의 맨체스터 시티를 꺾고 우승했으며 UEFA 슈퍼컵과 클럽 월드컵도 제패했으나 그를 적극 후원하던 구단주 로만이 러우전쟁의 여파로 구단을 팔았으 새 구단주 보엘리와 구단에 대한 견해 차이로 사임했다.

 

 

10위 요하임 뢰브

 

 


출생년도: 1960년 2월 3일
주 소속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통일 독일의 첫 월드 챔피언'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디 만샤프트의 전성시대를 이끈 감독으로 클럽 축구에서 유행하는 전술을 그때그때 이식하며 좋은 성적을 냈지만 말년에는 이러한 부분이 사라지며 부진하기도 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매직 트라이앵글이라 불렸던 발라코프-보비치-에우베르의 공격 조합을 구성하며 1996-97 시즌 DFB포칼 우승과 1997-98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터키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2004년에는 클린스만의 휘하에서 독일 대표팀 수석코치 역할을 수행했는데 실질적인 전술을 모두 짜며 조국의 4강행의 기여했다.

이후 클린스만으로부터 대표팀 감독을 물려받은 뒤 독일 대표팀에 현대적인 4백 시스템을 완벽하게 적용하며 유로 2008 준우승, 2010 남아공 월드컵 3위 및 유로 2012 4강을 이뤄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포르투갈을 4-0, 프랑스를 1-0, 브라질을 7-1, 아르헨티나를 1-0으로 제압하며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로 2016에서는 8강 이탈리아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이탈리아를 탈락시키며 이탈리아 징크스를 끊어냈고 2017년에는 젊은 선수들로 컨페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나 2018 러시아 월드컵부터는 과거의 명성에 기댄 선수 선방과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전술로 일관하며 추락했다.

 

 

9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년도: 1945년 9월 11일
주 소속팀: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카이저'

1980년대 하반기의 서독 대표팀의 약진을 이끈 명장으로 지도자 라이선스도 없이 선수시절의 명성을 바탕으로 감독으로 부임했음에도 선수시절부터 장점으로 꼽혔던 전술안을 잘 활용했는데 특히 전력상 우위의 상황에서 굳히는 부분에서 장기를 드러냈으며 카이저라 불렸을 정도로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스타플레이어들을 아우르며 원 팀으로 만들었다.

전임자 데어발이 유로 1984에서 탈락한 뒤에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자 급하게 감독으로 부임한 베켄바우어는 데어발 시절부터 이어진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결승에 올랐으며 유로 1988에서도 비록 네덜란드에게 석패하며 4강에서 탈락했지만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줬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다들 수비적인 축구로 일관할 때 화려한 공격 축구로 UAE, 유고슬라비아, 네덜란드, 체코슬로바티아, 잉글랜드를 연파하며 결승에 갔으며 결승전에서는 과거 스승 헬무트 쇤이 크루이프를 봉쇄하기 위해 포그츠를 맨 마킹을 붙였던 것을 착안해 부흐발트를 마라도나 지우개로 붙이는 등 뛰어난 수싸움 능력을 보여줬다.

조국 독일의 통일 선물로 월드컵을 바친 베켄바우어는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올림피크 마르세유의 리그앙 우승을 이끌었으며 1994년에는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감독 대행 도중에 분데스리가 우승과 UEFA컵 우승을 추가시켰다.

 

 

8위 제프 헤어베어거

 



출생년도: 1897년 3월 28일
주 소속팀: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브레슬라우와 베른의 사령관'

28년간 디 만샤프트의 감독을 맡았던 명장으로 유럽 대륙에 2-3-5 시스템이 유행하던 시절에 잉글랜드 최강의 팀 아스날이 활용한 WM 시스템과 독일 최고의 클럽 샬케가 활용했던 짧은 패스워크 위주의 전술인 일명 크라이셀을 도입해 독일 축구의 큰 발전을 이룩했다.

대표팀 감독직에 처음 부임했던 1937년에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술 운용을 보여주며 브레슬라우에서 덴마크를 8-0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제압했던 경기를 포함해 안슐루스 이전까지 독일 대표팀의 11경기 연속 무패를 이끌며 팀을 완성시켰으나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선수들을 대표팀에 중용할 것을 강요하자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스쿼드에 포함했고 이 때문에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1차전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으로 분단한 뒤에도 서독 축구의 재건을 이끌며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당대 최강의 팀 헝가리를 상대로 베른의 기적이라 불리던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도 4강에 올랐으며 이런 업적들은 훗날 서독이 유럽을 대표하는 축구 강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7위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출생년도: 1919년 12월 5일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독일 축구 지도자들의 교과서'

분데스리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김독 중 하나로 강력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축구로 리가에서 성공적인 역사를 써냈다.

쾰른에서 지도자를 시작해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감독으로 부임해 팀을 레기오날레리가 우승을 이끌며 분데스리가로 승격시켰으며 이후에는 분데스리가 3회 우승과 포칼 1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열며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으나 크루이프와의 갈등으로 실패하고 쾰른으로 돌아와 1977-78 시즌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더블을 이뤄냈다.

그가 작고한 뒤 독일의 축구지도자 지망생을 위한 트레이닝 센터인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아카데미는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으며 그곳에서 위르겐 클롭, 한지 플릭, 토마스 투헬, 율리안 나겔스만 등 수많은 독일 국적의 명장들을 양성했다.

 

6위 우도 라텍

 



출생년도: 1935년 1월 16일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바바리안의 지휘관'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토털 풋볼과 헬무트 쇤이 고안한 공격형 리베로 전술을 모두 받아들이며 1970년대 바이에른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6회 우승과 DFB포칼 3회 우승 그리고 1973-74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경질된 이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는 분데스리가 2연패와 1978-79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전성기에 방점을 찍었고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뒤에는 1981-82 시즌 컵 위너스컵을 우승하며 세계에서 최초로 3대 유럽 대항전을 석권한 감독이 되었다.

오트마어 히츠펠트, 유프 하인케스, 한지 플릭 등 바이에른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뤄낸 감독은 많았지만 적어도 바이에른에서는 우도 라텍을 최고로 평가하는 올드팬들도 많다.

 

5위 위르겐 클롭

 



출생년도: 1967년 6월 16일
주 소속팀: 리버풀 FC

'축구계의 로빈 후드'

사키이즘을 공격적으로 재해석해 상대 공격에 대항하는 압박이라는 뜻의 게겐프레싱 전술을 유행시킨 전술가로 선수들에게 공을 뺏기는 즉시 그 자리에서 바로 상대를 다시 압박해 공을 탈환하는 플레이를 주문해 4면 압박을 통해 볼 소유권을 찾고 빠르게 역습을 가하는 플레이를 즐겼다.

자신이 착안한 게겐프레싱을 바탕으로 마인츠를 분데스리가 잔류권 클럽으로 성장시켰으며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이끌고 분데스리가 2연패와 2011-12 시즌 더블 우승을 이끌었으며 2012-13 시즌에는 무리뉴의 레알 마드리드를 조별 리그와 준결승전에서 모두 제압하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하는 활약을 보여줬으며 최악의 부진으로 중위권이 딱이라고 놀림받던 리버풀을 맡아 펩의 맨체스터 시티의 대항마로 성장시키며 2018-19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해 3번이나 결승전에 진출했으며 2019-20 시즌에는 리버풀의 첫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2021-22 시즌에는 쿼트레블에 도전할 발판을 마련해 실제로 FA컵과 리그컵을 더블 우승했으며 리그에서도 최종전까지 우승 경쟁을 했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도 진출했다.

클롭은 개인적으로도 독일 올해의 감독상을 3회 수상했으며 피파 올해의 감독상을 2회 수상했고 2019년에는 IFFHS 선정 최우수 감독에 올랐고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에 2회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는 중이지만 2022-23 시즌에는 7년 차 징크스를 겪으며 고전하고 있다.

 

4위 오토 레하겔

 



출생년도: 1938년 8월 9일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오토 레하클레스'

승리를 위해서는 극단적인 수비축구도 마다하지 않았던 독일의 명장으로 분데스리가 최다 전적, 최다 승, 최다 무승부, 최다 패배의 기록을 모두 석권한 감독으로 유명하며 대인 수비 전술인 카테나치오 시스템의 신봉자로 전방에서부터 철저한 압박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수비진들이 대인 수비를 이룰 때 미드필더들이 그 자리를 채워주는 방식의 수비 시스템으로 이름을 날렸다.

초년에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게 12-0으로 패하며 토르하겔이라 놀림을 당하기도 했으나 베르더 브레멘에서 15년간 머물며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각각 2회 우승과 1991-92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내며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후에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건너갔으나 회장 울리 회네스와의 갈등으로 사임했으며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는 1996-97 시즌 2부 리그 우승에 이어 1997-98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끄는 경이로운 활약을 보여줬다.

이후 그리스 대표팀에서 10년간 재임하며 카테나치오식 대인수비와 현대식 지역방어가 결부된 수비 시스템으로 유로 2004 우승이라는 기적을 이뤄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본선에 진출하는 활약을 보여주며 2004년 IFFHS 선정 세계 최고의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정되었으며 그리스 현지에서는 오토 레하겔과 헤라클레스를 결합해 오토 레하클레스라 불리며 명성을 누렸다.

 

3위 유프 하인케스

 

 


출생년도: 1945년 5월 9일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질풍의 오스람 사령관'

21세기 분데스리가를 빛낸 최고의 사령탑으로 198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후반까지 꾸준히 성적을 내며 롱런했으며 로타어 마테우스, 훌렌 게레로, 라울 곤잘레스, 아르투로 비달, 다비드 알라바 등 유망주를 스타 선수로 육성하는 부분에서도 일가견이 있었다.

분데스리가와 라리가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특히 바이에른 뮌헨에는 소방수로 중도 부임 이외에도 네 번이나 부임했으며 바이에른에서 분데스리가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2012-13 시즌에는 축구 종목 역사상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하며 트레블을 이뤄냈으며 특히 2010년대 초반 최고의 팀이라 불린 메시와 챠비의 바르셀로나와의 맞대결에서 홈과 원정 도합 7-0으로 대파해버리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2013년 피파 올해의 감독상과 IFFHS 선정 세계 최고의 클럽 감독상과 유러피언 올해의 감독상과 독일 올해의 감독상,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감독상을 싹쓸이했다.

라리가에서도 족적을 남겼는데 빌바오에서는 향후 10년간 팀의 동향이 될 유망주를 여럿 발굴했으며 중소구단이라 평가받는 테네리페에서는 UEFA컵 4강에 진출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리가에서는 부진했지만 32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2위 헬무트 쇤

 



출생년도: 1915년 9월 15일
주 소속팀: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람바참바와 카테나치오의 두 얼굴'

1960년대 하반기와 1970년대 서독 축구계가 세계 축구계를 쥐락펴락하게 만든 일등 공신으로 일명 독일식 리베로 시스템이라 불렸던 리베로에게 플레이메이킹의 일부를 담당시키며 공격적으로 기용해 베켄바우어의 역량을 극으로 끌어올린 감독으로 유명했고 이는 2000년대 초반까지 독일 축구의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았다.

헬무트 쇤은 디 만샤프트에 14년간 머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준우승과 1970 멕시코 월드컵 3위라는 성적을 시작으로 1972 UEFA 유로에서는 마치 브라질과 같이 공격적인 패스 플레이를 앞세운 일명 람바참바 풋볼로 예선에서 잉글랜드를, 본선에서는 벨기에와 소련을 압도적으로 무너트리고 우승하며 세계 축구계를 경악시켰다.

그리고 자국에서 열리는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자신들보다 기술적으로 훌륭한 팀들이 많이 참전하자 이탈리아식 카테나치오를 연상시키는 플레이로 상대 공격진을 옥죄며 승리를 차지하는 서로 다른 두 축구로 정점에 올라 메이저대회를 연속으로 제패했고 1976년에도 UEFA 유로 결승에 진출했으나 승부차기에서 아쉽게 패했지만 서독 축구가 유럽 축구의 대표로 자리 잡는데 큰 공을 세웠다.

 

1위 오트마어 히츠펠트

 



출생년도: 1949년 1월 12일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상장군'

독일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으며 화려함은 다소 부족하지만 굉장히 견고한 독일식 카테나치오 전술에 매우 능통하며 3-5-2 시스템을 신봉했으며 이 전술로 다소 지루하다는 비판을 받았어도 항상 우승 트로피를 들어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에서 모두 구단의 황금기를 이뤄냈는데 전자의 클럽에서는 분데스리가 2연패와 1996-97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후자의 클럽에서는 분데스리가 5회 우승과 DFB포칼 3회 우승, 그리고 1998-99 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과 1999-2000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에 이어 2000-0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어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시대에 뒤처졌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그럼에도 스위스 대표팀에서 안정적인 성과를 냈으며 전성기 시절에는 IFFHS 선정 세계 치고의 클럽 감독과 유러피언 올해의 감독에 2회 선정되었으며 2001년에는 UEFA 올해의 감독상을 받아내며 당대 최고의 감독으로 명성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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