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0

국가의 영웅들/독일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0

토르난테 2025. 1. 1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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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준일은 2025년 1월 14일입니다.


10위 볼프강 베버

 



생년월일: 1944년 6월 26일
A매치 기록: 53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FC 쾰른

분데스리가 초창기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엄청난 완력과 정력적이며 열정적인 대인 수비를 보여주며 황소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견고한 수비력 외에도 안정적인 패싱력과 볼 키핑도 겸비해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도 곧잘 해냈다.

선수 생활을 쾰른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이자 구단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는 볼프강 베버는 쾰른에서 분데스리가 2회 우승과 3회 준우승, 그리고 1976-77 시즌 DFB포칼 3회 우승을 이뤄냈고 베버 개인도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4회 선정 및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3회 선정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볼프강 베버는 특히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빌리 슐츠와 합을 맞춰 조국의 결승 진출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 결승전에서도 후반 종료 직전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승부를 연장까지 끌고 가는 활약을 보여줬다.

 

9위 한스 위르겐 되르너

 


생년월일: 1951년 1월 25일
A매치 기록: 96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디나모 드레스덴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유럽 정상급 리베로로 활약했던 선수로 탄탄한 수비력은 물론 전방으로 단숨에 연결해 찬스를 만드는 날카로운 롱패스와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리는 전진드리블이 마치 베켄바우어와 유사하다며 언론으로부터 '동쪽의 베켄바우어'라고 불렸다.

클럽 커리어를 디나모 드레스덴에서 모두 보낸 원 클럽맨이자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던 되르너는 DDR 오버리가 5회 우승 및 FDGB포칼 5회 우승을 이뤄내며 드레스덴을 동독 최고의 명문 반열에 올렸고 되르너 개인도 동독 올해의 축구선수에 3회 선정되며 대표팀 선배 위르겐 크로이. 만프레트 카이저와 함께 동독 축구의 아이콘으로 이름을 날렸다.

동독 대표팀에서도 1976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을 이뤄낸 일등공신인 되르너는 수비수였음에도 4골을 득점하며 대회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다.

 

8위 기도 부흐발트

 


생년월일: 1961년 1월 24일
A매치 기록: 76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VfB 슈투트가르트

1980년대 하반기~9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스토퍼로 강력판 집념과 거대한 피지컬을 활용한 대인수비로 이름을 날렸는데 그의 대인 수비에 천하의 디에고 마라도나조차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정도로 견고했으며 막강한 피지컬을 활용한 몸싸움과 우수한 제공권 경합 능력에서 나오는 헤딩 클리어링은 물론 발밑과 패싱력도 우수해 수비형 미드필더나 리베로도 소화할 수 있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부흐발트는 입단한 첫 시즌인 1983-84 시즌에는 푀르스터 형제, 샤퍼와 함께 막강한 수비라인을 구축해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며 푀르스터가 마르세유로 떠난 이후에는 주장직을 맡아 1988-89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91-92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다. 부흐발트 개인도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된 부흐발트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1989-90 시즌 월드클래스 등급 및 12회의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받았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대인 수비력을 바탕으로 중용된 부흐발트는 UEFA 유로 1984에서는 첫 경기 포르투갈전에만 출전했고 UEFA 유로 1988에서도 조별 리그 2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상대의 에이스를 봉쇄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특히 결승전에서 마라도나를 완벽하게 봉쇄하며 디 만샤프트의 월드컵 우승에 공을 세워 키커 랑리스테 월드클래스 등급과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에 선정되는 등 전성기를 누렸으며 UEFA 유로 1992에서는 리베로로 활약하며 조국의 준우승을 이뤄냈다.

 

7위 제롬 보아텡

 


생년월일: 1988년 9월 3일
A매치 기록: 76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2010년대 바이에른 뮌헨의 수비라인 중핵으로 활약했던 센터백으로 빠른 주력과 강력한 피지컬을 이용한 수비 능력과 웬만한 레지스타들을 능가하는 롱 패스 전개 능력을 이용한 빌드업 능력을 모두 겸비한 현대형 수비수였는데 소속팀과 대표팀 동료였던 토마스 뮐러는 이런 그를 두고 카이저라고 부르며 칭찬했을 정도로 우수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3회 선정된 보아텡은 바이에른의 수비라인을 이끌고 분데스리가 9연패와 포칼 5회 우승을 이끌었고 2012-13 시즌과 2019-20 시즌에는 주전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까지 우승하며 트레블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제롬 보아텡 개인도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2016년에는 UE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전성기를 이끈 보아텡은 초년에는 측면 수비수로 출전하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팀이 3위에 오르는데 공헌했고 센터백으로 활약하던 시절에는 UEFA 유로 2012 4강,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과 유로 2016 4강을 이끌었다. 특히 UEFA 유로 2016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이 활약을 바탕으로 2016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6위 마츠 후멜스

 


생년월일: 1988년 12월 16일
A매치 기록: 78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94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0년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압도적인 피지컬을 활용한 대인 수비 능력과 넓은 시야와 정교한 패스 능력을 활용한 빌드업 능력은 물론 기습적인 드리블로 공격에 가담해 득점 찬스에 기여하는 부분 모두 겸비한 현대형 수비수이다.

바이에른 뮌헨 유스팀에서 데뷔했으나 중용받지 못하자 클롭 체제의 도르트문트에서 수비라인의 리더로 분데스리가 2연패와 2012-1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공헌했다. 그러나 UCL 우승을 위해 바이에른으로 다시 돌아가 분데스리가 3연패를 기록했다가 니코 코바치와의 전술적인 의견 충돌로 인해 다시 도르트문트로 돌아간 뒤에는 2020-21 시즌 DFB포칼 우승 및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2회,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6회에 선정된 후멜스는 개인으로도 여러 영예를 누렸는데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6회 선정, 키커 올해의 팀 8회 선정 및 VDV 11에 10회 선정되며 오랫동안 분데스리가 최강의 수비수로 군림했으며 유럽 무대에서는 ESM 올해의 팀 2회 선정 및 2016-16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시즌의 스쿼드와 2023-2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의 스쿼드에 선정되었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수비라인의 중핵이었던 후멜스는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며 자신의 위용을 뽐냈는데 특히 8강전에서 프랑스의 수비수 바란을 힘으로 완전히 압도하며 튕겨낸 모습은 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했음은 물론 팬 투표로 선정하는 드림팀과 통계로 선정하는 캐스트롤 인덱스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었으며 UEFA 유로 2016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5위 빌리 슐츠

 


생년월일: 1938년 10월 4일
A매치 기록: 6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서독 최초의 리베로로 후대의 베켄바우어나 잠머와는 달리 공격적인 부분보다는 수비적인 부분에서 더 돋보였던 선수로 냉철하면서도 재빠른 판단력을 바탕으로 완벽한 커버플레이와 센스 있는 수비력을 보여줬다.

샬케에서 데뷔해 정상급 센터 하프로 활약했는데 이미 이 시절부터 분데스리가 최고의 센터하프로 군림했고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에는 함부르크로 이적해 활약했는데 비록 우승 트로피를 들진 못했지만 1966-67 DFB 포칼 준우승과 1967-68 UEFA 컵 위너스 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컵 위너스 컵에서의 퍼포머스를 인정받아 1968년에는 발롱도르 12위에 올랐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6회와 인터내셔널 클래스 11회에 선정되었다.

1960년대 독일 대표팀 수비라인의 리더였던 슐츠는 세 번의 월드컵에 출전했는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빌리 슐츠 개인은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사람들로부터 월드컵 빌리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3위에 오르는데 공을 세웠다.

 

4위 칼하인츠 푀르스터

 


생년월일: 1958년 7월 25일
A매치 기록: 81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VfB 슈투트가르트

1980년대 독일을 넘어 세계 최고의 스토퍼로 명성을 떨쳤던 수비수로 천사의 얼굴을 한 철의 정강이로 불릴 정도로 반칙을 자제하면서도 깔끔한 수비로 상대 공격수를 완벽하게 무력화시키며 수비력에 대해서는 명성이 높았는데 특히 맨 마팅 부분에서는 1980년대 활약한 그 어떤 수비수보다도 뛰어났다.

슈투트가르트에서 구단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았던 칼하인츠 푀르스터는 1983-84 시즌에는 권터 샤퍼, 기도 부흐발트, 베른트 푀르스터와 함께 구성한 막강한 수비라인의 리더이자 팀의 주장으로 활약하며 바이에른 뮌헨을 제치고 1983-84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본인의 슈바벤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1985-86 시즌에는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리고 말년에는 마르세유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며 리그앙 2연패를 이뤄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스토퍼 부문 1위 12회 선정 및 월드클래스 등급 3회,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3회에 선정된 푀르스터는 1982년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고 옹즈 몽디알에서 선정한 올해의 유럽 베스트 일레븐 투표에서 스토퍼 부문에서 여섯 번 선정되었으며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올해의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던 1980년대 세계 최고의 스토퍼였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각각 두 번의 월드컵과 유로에서 팀의 핵심으로 맹활약한 칼하인츠 푀르스터는 UEFA 유로 1980 우승을 이뤄냈고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심지어는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 1984년 UEFA 유로에서도 개인 활약은 뛰어나 팀 오브 더 토너먼트에 선정되었다.

 

3위 위르겐 콜러

 



생년월일: 1965년 9월 5일
A매치 기록: 105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토퍼로 당대를 넘어 역대 최고급의 대인 마킹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압도적인 피지컬과 교묘한 심리전을 겸비하며 공격수들을 괴롭혔으며 본인이 인터뷰에서 직접 "나를 곤혹케 한 공격수는 내 경력을 통틀어 없었다."라고 밝혔고 실제로도 대표팀과 세리에 A에서 반 바스텐과 라이벌리를 구축했으며 실제로도 반 바스텐이 가장 상대하기 어렵다고 밝힌 수비수 중 하나였다.

발트호프 만하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콜러는 아우겐탈러와 함께 팀의 수비의 중핵으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3연패를 이뤄냈고 유벤투스에서도 1992-93 시즌 UEFA컵 우승 및 1994-95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을 이뤄냈다. 그러나 팀의 감독 리피는 새로 영입한 치로 페라라를 선호했기에 도르트문트로 되돌아간 콜러는 분데스리가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6-97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에 크게 공헌하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11위에 올랐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6회 선정 및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5회에 선정된 위르겐 콜러 개인도 키커 올해의 수비수에 5회 선정되었고 19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세 세대에 걸쳐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총 6회 선정되었다. 그리고 1997년에는 상술한 UCL 우승에 큰 공을 세우며 발롱도르 11위와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쾰른 시절부터 디 만샤프트에 뽑혔던 콜러는 칼하인츠 푀르스터의 후계자로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UEFA 유로 1988을 시작으로 월드컵과 유로에 각각 3회 선발되었는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상대 공격수를 지워내며 조국의 통일 선물로 월드컵 우승을 선물했고 UEFA 유로 1992에서는 부흐발트와 함께 수비라인을 이끌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UEFA 유로 1996에서는 주전으로 활약에 예정되었으나 대회 도중 부상당해 낙마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팀의 침몰을 막지 못하고 아쉬운 은퇴를 했다.

 

 

2위 마티아스 잠머

 



생년월일: 1967년 9월 5일
A매치 기록: 74경기 14골 (동독시절 포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전성기는 짧지만 그 고점은 가히 베켄바우어 다음가는 수비수이자 마지막 리베로라 불리는 사나이로 초년에는 중앙 미드필더 및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다가 1990년대 중반에 리베로로 포지션을 변경해 대성했는데 한혈마를 연상시키는 지구력과 세련된 패싱력과 태클, 드넓은 시야를 겸비했음은 물론 피가 터지고 머리에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팀의 수비라인을 지휘하는 정신적, 기술적, 신체적으로 모두 우수한 선수였지만 그의 진짜 특별한 부분은 스리백 시스템에서 오프사이드 트랩은 불가능하다는 세간의 편견을 깨며 스리백 시스템에서도 오프사이드 트랩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축구 지능과 수비 조율 능력이었다.

동독 시절에는 디나모 드레스덴에서 데뷔해 활약하던 잠머는 DDR 오베리가 2회 우승 및 1989-90 시즌에는 FDGB포칼까지 석권하며 더블을 이뤄냈고 통일 독일 이후에는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해 1990-91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끈 잠머는 인테르에서는 적응에 실패하며 부진했지만 도르트문트로 돌아온 뒤에는 히츠펠트의 조언을 수용해 리베로로 포지션을 변경한 뒤에 전성기를 누리며 분데스리가와 DFL슈퍼컵 2연패를 이뤄냈으며 1996-97 시즌에는 유벤투스를 꺾고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동독 대표팀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다 통일 이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거쳐 리베로로 활약했던 잠머는 리베로로 활약한 UEFA 유로 1996에서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녹슨 전차군단이라 조롱받았던 독일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MVP를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으나 이후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큰 부상을 당해 은퇴하면서 독일 축구는 한동안 암흑기를 겪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사 월드클래스 등급에 4회 선정된 잠머는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1995년 독일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 9위에 올랐고 1996년에는 디 만샤프트의 앙리 들로네를 드는데 크게 기여해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초신성 호나우두를 간신히 따돌리고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그리고 1997년에도 도르트문트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기여하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에 올랐다.

 

1위 프란츠 베켄바우어

 


생년월일: 1945년 9월 11일
A매치 기록: 103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부정할 수 없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수비 라인에서의 자유인을 넘어 전 경기장을 자유롭게 누비는 독일식 리베로의 시조로 서독 대표팀의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그리고 당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바비 찰튼을 지워냈을 정도로 대인 마킹에도 능했다.

독일 내에서도 평범한 클럽이었던 바이에른 뮌헨이 독일 최고의 클럽으로 올라서는데 큰 공을 세운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팀의 첫 승격부터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에서 각각 4회 우승을 달성했고 유럽 대항전에서도 컵 위너스컵 우승을 시작으로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이뤄냈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12회 선정되었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무려 27회의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다.

베켄바우어의 맹활약은 디 만샤프트에서도 이어졌는데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던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야신을 상대로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하거나 바비 찰튼을 완벽하게 봉쇄하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월드컵 신인상에 올랐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준결승전에서 만난 이탈리아를 상대로 쇄골이 다치는 부상을 입으면서도 풀타임으로 경기를 마치며 철인의 풍모를 보여줬다.

1970년대에 들어서 리베로로 출전한 UEFA 유로 1972에서는 람바참바라 불리던 독일 역사상 최고의 대표팀을 이끌고 독일식 리베로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해 유로 우승을 이뤄내며 트레블을 이룬 크루이프를 밀어내고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팀의 우승에 크게 공헌했으나 크루이프에 밀려 월드컵 실버볼을 받았고 UEFA 유로 1976에서는 팀의 결승행을 이끌었는데 회네스가 승부차기에서 실축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대단한 퍼포먼스로 복수의 언론으로부터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음은 물론 발롱도르를 재차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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