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26편 분데스리가 3연패를 이뤄낸 당나귀 군단

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26편 분데스리가 3연패를 이뤄낸 당나귀 군단

토르난테 2023. 9. 2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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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1979

『망아지 일레븐』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Die Fohlen-El)

바이에른이 유럽을 호령할때 독일 무대를 제패한 축구왕조

 


성적

분데스리가: 5회 우승 (1969–70, 1970–71, 1974–75, 1975–76, 1976–77)

DFB포칼: 1회 우승 (1972-73)

유러피언 컵: 1회 준우승 (1976-77)

UEFA 컵: 2회 우승 (1974–75, 1978–79)

 


소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역시 라이벌 바이에른과 마찬가지로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에 좋은 성적을 기록하지 못해 분데스리가 창립 멤버로 활약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하네스 바이스바일러의 지휘 아래 1964-65 시즌에 귄터 네처, 베르티 포그츠, 유프 하인케스 등 어린 선수들을 발굴해 분데스리가로 승격해 몇 년을 보낸 뒤 1969-70 시즌에 공수 양면에서 탄탄한 밸런스를 보여주며 바이에른 뮌헨을 승점 4점 차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고 1970-71 시즌에는 하노버로 떠났던 하인케스마저 복귀해 전력이 강화되었고 바이에른을 재차 꺾고 우승하며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최초로 2연패에 성공했다.

라텍 감독 체제에서 바이에른이 강세를 보이던 시절에도 1972-73 시즌 DFB포칼 우승 및 UEFA컵 준우승, 1973-74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냈고 1974-75 시즌에는 부진에 빠진 바이에른 뮌헨을 따돌리고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UEFA컵에서도 리옹, 레알 사라고사, 오스트라바, 쾰른, 트벤테를 연파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헤네스 바이스바일러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바르셀로나로 떠난 뒤, 바이에른의 분데스리가 3연패를 이뤄냈던 라텍 감독 체제로 전환하고 두 번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추가하며 분데스리가 3연패를 이뤄냈음은 물론 1976-77 시즌에는 오스트리아 빈, 토리노, 클뤼프 브뤼허, 디나모 키이우를 모두 꺾고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리버풀에게 아쉽게 막혔다. 그래도 1978-79 시즌에는 벤피카, 맨체스터 시티, 뒤스부르크,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모두 꺾고 UEFA컵에서 재차 우승했다.

이 시게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는 아약스의 토탈 풋볼과 하펠의 4-3-3 포메이션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포그츠, 클링크헤머 등을 활용한 대인 카테나치오식 대인수비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했다.


주요 감독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분데스리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김독 중 하나로 강력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축구로 리가에서 성공적인 역사를 써냈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감독을 맡던 시절 전성기를 누린 바이스바일러는 팀을 레기오날레리가 우승을 이끌며 분데스리가로 승격시켰으며 이후에는 분데스리가 3회 우승과 포칼 1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열었다.

이후 바이에른에서 경질당한 라텍이 그의 후계자로 부임하며 분데스리가 3연패를 완성시켰다. 그러나 1977-78 시즌 쾰른의 지휘봉을 잡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분데스리가 4연패를 저지한 사람이 아이러니하게도 바이스바일러였다.

 


ACE Card

 

 

이름: 베르티 포그츠
출생년도: 1946년 12월 30일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7kg


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통하며 특히 크루이프마저 완전히 지워버린 발군의 대인 마킹 실력은 당대는 물론 역대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며 팬들로부터 마치 사냥개와 같다고 'Der Terrier'라고 불렸다. 

포그츠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커리어의 전부를 보내며 분데스리가 5회 우승과 UEFA컵 2회 우승, 그리고 1976-77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뤘던 중심에는 모두 그가 있었으며 1972-73 시즌에는 포칼을 우승하기도 했다.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인 포그츠는 독일 올해의 선수에 2회 선정되었고 측면 수비수로는 한번 받기도 어렵다는 키커 랑리스테 월드클래스 등급을 무려 11번이나 받았음은 물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0위 안에 4회 선정되었고 1975년 투표에서는 4위에 오르며 라이트백 포지션에서는 발롱도르 역대 최고의 순위를 기록했다.

 

 

 

이름: 유프 하인케스
출생년도: 1945년 5월 9일
포지션: 레프트윙, 라이트윙, 스트라이커, 포워드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현세대의 축구 팬들한테는 불후의 명장으로 더 유명하지만 현역 시절에는 스트라이커와 레프트윙 두 포지션에서 모두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던 공격수였으며 당대 유럽에서 가장 빠르다고 평가받았던 엄청난 순간 스피드와 뛰어난 공간지각 능력을 활용해 상대 수비라인 뒤로 침투해 날카로운 양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전천후 공격수였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출신이나 분데스리가 출전을 원해 하노버로 이적했다가 다시 돌아온 케이스로 다시 돌아온 데어 포헬렌에서 분데스리가 3연패를 포함해 분데스리가 4회 우승과 1972-73 DFB포칼 우승, 1974-75 UEFA컵 우승, 그리고 1976-77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분데스리가 득점왕은 물론 3대 유럽 대항전에서 모두 득점왕에 오른 이력이 있다.

 

 

이름: 귄터 네처
출생년도: 1944년 9월 14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9kg

볼프강 오베라트와 함께 1960년대 하반기와 197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독일 최고의 테너로 역사상 최고의 패스 마스터 중 하나로 손에 꼽혔을 정도로 패스를 잘해서 패스의 단위를 센티미터 단위로 조절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로 패싱력이 우수해 "센티미터 패서", "컴퓨터 패서"라 불렸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분데스리가 2연패를 이끌었지만 감독 헤네스 바이스바일러와의 불화로 팀을 떠나게 되는데 데어 포헬렌에서 마지막 경기인 1972-73 포칼에서는 부상을 핑계로 경기에 출장하지 않으려 했으나 정규시간이 지나 연장전에 돌입하자 이제 출전하겠다며 교체 출전하며 결승골을 넣고 팀에게 마지막까지 트로피를 주고 떠났다.


베스트 일레븐

 


이전 회차: 25편 절대강자 페냐롤의 시대를 끌어내린 우루과이의 왕조

다음 회차: 27편 컵의 제왕이라 불렸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의 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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