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세리에 A 올스타

리그의 전설들/이탈리아 세리에 A

1930년대 세리에 A 올스타

토르난테 2024. 9. 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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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출범 시즌인 1928-29 시즌부터 1939-40 시즌까지의 활약으로 베스트 일레븐 선정.

세리에 A 소속으로 활약한 국제 클럽 대항전 역시 가산점으로 포함해서 계산.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이름: 지안피에로 콤비
출생년도: 1902년 11월 20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유벤투스와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엄청난 유연성과 놀라운 반사신경을 자랑해 팬들에게 고무인간이라 불렸던 1920년대 후반 및 1930년대 상반기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군림했다.

세리에 A 출범 이전 지역리그 시절부터 유벤투스에 헌신한 원 클럽맨인 콤비는 대표팀에서도 호흡을 맞춘 칼리가리스와 로제타의 풀백 라인과 함께 명성을 떨치며 1925-26 시즌 북부 리그 우승과 세리에 A 4연패를 비안코네리에게 선물했는데 이때의 성공으로 유벤투스는 세계 최초로 지역 단위를 넘어 전국구 구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933-34 시즌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은퇴한 콤비는 대표팀 동료이자 라이벌 클럽의 에이스 주세페 메아차로부터 "내가 기억하는 콤비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쉽게 골을 막아냈고, 이것은 게임에서 완벽한 위치를 선점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라고 호평받았다.

 

 

라이트 풀백

 

 

이름: 비르지니오 로세터
출생년도: 1902년 2월 25일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20년대 하반기와 1930년대 상반기 정상급 수비수로 이름을 날리던 선수로 헌신적이며 왕성한 활동량을 활용해 경기장 전역에서 공격수들을 막아냈으며 우수한 수비 스킬과 경기를 읽는 전술안을 활용한 예측 수비에 능했으며 패스도 정확해 볼을 허무하게 잃지 않았다.

오늘날의 오른쪽 센터백에 가까운 라이트 풀백으로 주로 활약했으며 레프트 풀백 칼리가스리와 수비라인을 구성하여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낸 로세타는 파트너 칼리가리스와 함께 유벤투스가 전국구 구단의 인기를 얻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다.

 

 

레프트 풀백

 

 

이름: 움베르토 칼리가리스
출생년도: 1901년 7월 26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20년대 하반기와 1930년대 상반기 정상급 수비수로 이름을 날리던 선수로 강한 태클을 날리며 집요한 수비 능력을 지녔으며 우수한 공중볼 능력과 훌륭한 볼 테크닉 능력은 물론 양발을 모두 잘 써 수비라인에 있는 포지션은 모두 소화할 수 있었던 선수였다.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 비토리오 포초로부터 검투사로 칭해진 칼리가리스는 오늘날의 왼쪽 센터백에 가까운 레프트 풀백으로 주로 활약하며 라이트 풀백 비르지니오 로제타와 수비라인을 구성해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냈는데 칼리가리스와 오르시, 그리고 몬티의 합류로 이탈리아 무대 독재자로 군림한 유벤투스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국민구단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센터 하프

 

 

이름: 루이스 몬티
출생년도: 1901년 5월 15일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을 뜻하는 '오리운디'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팀원들로부터 두 개의 날개란 뜻의 도블레 안초라 불렸으며 잔혹한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무너트리는 거친 플레이를 앞세워 상대팀에게는 도살자라 불렸는데 당대 언론으로부터 "게임의 엔진. 몬티는 무섭도록 단단한 수비와 롱패스로 공격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선수이다. 메아차와 페라리의 공격 라인업이 되는 것보다는 그를 보좌한다."라고 불렸으며 대표팀 감독 포초로부터 "아웃사이드 플레이어를 어떻게 보좌하는지, 다이렉트 패스는 어떻게 하는지 등 열린 시야를 가지고 있다."라고 불렸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산 로렌초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이탈리아로 귀화한 뒤에는 유벤투스에서 활약한 몬티는 유벤투스의 황금기 도중에 합류했는데 선배 비가토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워내며 세리에 A 4연패를 이끌었으며 1937-38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를 우승하며 소속팀 유벤투스를 이탈리아의 국민구단으로 올리게 하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이때 유벤투스 멤버 다수와 함께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황금기를 이끌었고 몬티는 진델라, 네예들리와 같은 중유럽 최고의 공격수들을 삼켜버리며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평가받게 했다.

당대에는 압도적인 최고였으며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평가받는데 이러한 배경에는 그의 엄청난 자기 관리 능력이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이탈리아로 선박으로 오는 기간에 살이 찌자 혹독한 수준으로 다이어트를 하며 폼을 빠르게 찾았을 정도로 프로의식이 대단했다.

 

 

라이트 하프

 

 

이름: 미켈레 안드레올로
출생년도: 1912년 9월 6일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FC 볼로냐

 

1930년대 세계 최고의 하프백 중 한 명으로 견고한 수비력은 물론 양질의 패싱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드넓은 시야로 3선에서 플레이메이킹을 보여주며 후방 플레이메이커의 시조 격의 선수가 되었으며 우수한 기본기와 공격적인 재능으로 인사이드 포워드도 소화할 수 있었다.

우루과이 태생으로 원래는 우루과이의 명문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활약하다가 이탈리아로 건너와 볼로냐의 주축으로 전성기를 이끌며 로쏘블루의 세리에 A 4회 우승을 이뤄내며 이탈리아의 패권을 장악해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레프트 하프

 


출생년도: 1904년 9월 13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3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한 하프백으로 2-3-5 포메이션의 레프트 윙하프로 주로 활약했는데 이탈리아의 작가 카를로 모리온도는 그를 두고 "길고 다소 단정치 못하지만 머리에 하얀 손수건을 쓰고 헤딩슛에서는 무적이었다. 이례적인 한 쌍의 다리로 그를 거대한 공간을 보증할 수 있었고 의지와 기술로 신체적인 구조의 약점을 커버했다."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용수철같은 점프력을 활용한 제공권 경합 능력과 헤더로 이름이 높아 "가공할만한 수비수로 꼭 머리에 공을 붙이고 다니는 느낌이었다."라고 평가를 받았다.

이탈리아 언론계 대부인 카를로 펠리페 치에사로부터 "유벤투스의 5연패와 포초의 황금기에서의 키맨 중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은 베르톨리니는 유벤투스에서 활약한 7년 동안 루이스 몬티와 함께 수비라인의 주축으로 활약해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냈는데 팀동료 펠리체 보렐로부터 강력한 투지를 인정받아 "잉글랜드인들이 그를 참 좋아라한다. 강하고 단호하며 관대하기도 한 잉글랜드 방식의 축구 선수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인사이드 라이트

 


이름: 주세페 메아차
출생년도: 1910년 8월 23일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로 추앙받는 선수로 뛰어난 드리블 능력과 창의적이며 정확한 패스에서 나오는 찬스 메이킹, 그리고 직접 슈팅하거나 헤딩을 활용한 득점력도 우수했다.

인테르 밀란에서 전성기의 대부분을 보낸 주세페 메아차는 어린 나이에 데뷔해 처음에는 선배들의 무시를 당했지만 압도적인 실력으로 선배들을 승복시켰는데 세리에 A 3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메아차 개인도 리그와 미트로파컵, 코파 이탈리아를 포함해 무려 일곱 번이나 득점왕에 올랐다.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은 주세페 메아차는 인테르 밀란의 홈구장의 이름을 주세페 메아차 스타디움으로 명명했고 이탈리아 및 인테르 밀란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되었다.

 

 

인사이드 레프트

 

 

이름: 지오반니 페라리
출생년도: 1907년 12월 6일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인테르 밀란

1930년대 이탈리아 축구를 빛낸 인사이드 포워드로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중앙과 측면을 오가 메짤라라는 단어의 시조조가 되며 득점 찬스를 만드는 창조적인 패싱력과 직접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하는 능력까지 겸비했다.

아주리에서 메아차와 함께 인사이드 포워드 듀오를 형성해 2회의 월드컵을 우승한 페라리는 유벤투스 시절에는 레나토 체사리니와 함께 2선에서 팀의 공격라인을 지휘해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대표팀 단짝 주세페 메아차를 따라 인테르로 이적한 이후에도 세리에 A 2회 우승을 추가로 이뤄냈다.

 

 

아웃사이드 라이트

 

 

이름: 피에트로 파시나티
출생년도: 1910년 7월 21일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트리에스티나

 

1930년대 세리에 A에서 가장 꾸준했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준수한 스피드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포문을 여는 부분에 능했으며 축구 지능 역시 뛰어나 자신이 주로 활약하는 아웃사이드 라이트와 아웃사이드 레프트 이외에도 인사이드 포워드와 센터 하프, 그리고 좌우 윙하프와 풀백까지 볼 수 있었던 만능 자원이다.

중소팀 트리에스티나에서 330경기에 출전해 32골을 득점한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던 파시타니는 비록 리그 우승을 이뤄내지는 못햇지만 구아이타처럼 단기간 활약하고 떠난게 아닌 장기간 롱런하면서 이탈리아 대표팀에 소집되어 월드컵 우승을 경헌하는 등의 영광을 누렸다.

 

 

센터 포워드

 

 

이름: 실비오 피올라

생년월일: 1913년 9월 29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유럽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강력한 힘과 빠른 스피드, 냉정한 침착성과 뛰어난 골 결정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특히 유연성에 능해 바이시클 킥 같은 당시의 장비로는 실전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플레이를 종종 보여줬다.

세리에 A 역대 최다 득점자 타이틀을 가지고 있음에도 세리에 A 우승과는 인연은 없었던 피올라는 그래도 1937년에는 세리에와 당대 최고 권위의 대륙 대회인 미트로파 컵에서는 동시에 우승을 도전했지만 리그에서는 볼로냐에 밀렸고 미트로파 컵 결승전에서는 사로시 죄르지가 이끄는 페렌츠바로시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래도 라치오 개인 통산 득점 2위에 올랐으며 세리에 A 득점왕을 2회 수상했다.

 

 

아웃사이드 레프트

 

 

이름: 라이문도 오르시
출생년도: 1901년 12월 2일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20년대와 30년대 당시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빠른 스피드와 교묘한 드리블을 겸비해 상대 수비수를 속이며 크로스를 올려 공격수를 지원하는 능력과 왼발 슈팅으로 직접 마무리하는 능력 모두 훌륭했으며 중요한 경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아르헨티나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유벤투스에 입단해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내며 구단의 첫 전성시대를 열며 유벤투스가 이탈리아의 국민구단으로 자리잡게 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특히 1930-31 시즌의 활약은 너무나도 대단해 다수의 축구 역사 블로거들은 가상 발롱도르에서 1931년에는 라이문도 오르시를 발롱도르 위너로 보는 경우가 많다.

 

 

감독

 

 

이름: 카를로 카르카노

출생년도: 1891년 2월 26일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30년대 최고의 감독 카르카노는 1930년 유벤투스의 지휘봉을 잡았는데 인사이드 포워드를 기존에 1.5선에서 2선으로 내리며 3선 하프백과의 원활한 볼 순환을 이뤄내며 점유율을 높여가는 축구를 구사하며 이탈리아 혈통의 남미인, 즉 오리운디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며 세리에 A 4연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1934-35 시즌이 진행되던 1934년 12월에 카를로 카르카노는 개인적인 이유로 해고당했다. 해고 사유는 그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돌았기 떄문이었는데 그가 동성애자가 확실하지 않았음에도 그를 경질한 이유는 안 그래도 파시스트 기호를 달지 않았던 유벤투스를 좋게 보지 않았던 무솔리니 정권이 유벤투스를 견제하는 좋은 명분이 되었음은 물론 동성애 자체도 당대 사회상에서도 용납되지 않았기에 정부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경질했다는 소문이 있다.

어쨌든 당대 유벤투스의 황금기를 위한 질서를 세운 카르카노는 당대의 복잡한 사회상에 억울하게 희생되며 세리에 A 5연패의 마침표를 안타깝게 찍지 못한 비운의 지도자기도 했다. 유벤투스도 카르카노를 잃은 뒤에는 리그의 패권에서 멀어지는 비극을 겪었다.

 

 

베스트 일레븐 라인업

 

 


서브 자원들 포함 25인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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