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세리에 A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20

리그의 전설들/이탈리아 세리에 A

이탈리아 세리에 A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20

토르난테 2023. 10. 16. 14:41
728x90
728x90

*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 대상자는 이탈리아 세리에 A 에서 100경기 이상 출전한 윙어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 기록일은 2023년 10월 16일 기준입니다.
* 있을 것 같은데 없는 선수들은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처진 공격수 항목에 있습니다.
* 공격형 미드필더는 특히 경기의 영향력을 많이 봤습니다. 그게 비슷하다면 롱런한쪽이 당연하게 유리합니다.

 


20위 다니엘 베르토니

 

 

생년월일: 1955년 3월 14일
세리에 A 기록: 170경기 42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3kg
세리에 A 주 소속팀: 170경기 42골

 

1970년대 하반기와 198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측면 공격수로 우수한 잔발 테크닉 능력과 기민한 드리블 능력을 겸비했으며 공격형 미드필더와 스위칭 플레이를 통해 상대 수비에 빈틈을 냈으며 라이벌 오우세만처럼 양발 능력이 뛰어나 적재적소에서 슈팅과 크로스를 올렸다.

인디펜디엔테에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연패를 이뤄냈던 베르토니는 세리에 A에서도 피오렌티나에서는 대표팀 동료 파사레야와 함께 활약하며 1981-82 시즌 세리에 A 준우승을 이뤄냈고 나폴리에서는 마라도나와 2년간 함께 했고 우디네세에서 말년을 보내다 은퇴했다.

선수 개인의 어빌리티는 이 순위에 있기 아쉬울 정도로 뛰어났지만 그의 전성기는 남미 무대에서 활약하던 시절이라는 부분이 아쉽다.

 

 

19위 피에리노 프라티

 

 

생년월일: 1946년 12월 13일
세리에 A 기록: 233경기 100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8kg
세리에 A 주 소속팀: AC 밀란

 

1960년대 하반기 AC 밀란의 공격을 이끌었던 공격수로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소화했으며 빠른 스피드와 골문 앞으로 침투해 날리는 벼락같은 오른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플레이를 보고 팬들은 그를 두고 마치 중세 유럽 시절에 유행했던 흑사병처럼 단숨에 상대를 제압한다고 하여 흑사병 피에리노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낸 프라티는 로쏘네리 군단에서 활약하는 동안 1967-68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UEFA 컵 위너스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프라티 개인도 득점왕에 올랐고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68-69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는 크루이프의 아약스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우승에 크게 기여했고 그 해에 투표한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를 기록했다.

 

 

18위 아마데오 비아바티

 

 

생년월일: 1915년 4월 4일
세리에 A 기록: 228경기 58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4kg
세리에 A 주 소속팀: 볼로냐 FC

 

제2차 세계대전 직전과 직후에 활약했던 윙어로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기술을 겸비했으며 평발이었음에도 훌륭한 드리블로 상대를 제압했으며 특히 스텝 오버를 기가 막히게 구사하기로 이름이 높았으며 본 포지션인 아웃사이드 라이트는 물론 인사이드 포워드도 소화할 수 있었으며 득점력도 준수했다.

1930년대 하반기 볼로냐의 전성시대를 이뤄내며 세리에 A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37년에는 파리 만국박람회 국제대회 우승을 이뤄내며 명성을 날렸으며 기량이 떨어진 뒤에도 여러 팀을 돌아다니며 불혹이 넘은 1956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17위 안젤로 디 리비오

 


생년월일: 1966년 7월 26일
세리에 A 기록: 294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세리에 A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세리에 7공주라 불리던 시절에 활약했던 다재다능한 윙어로 마치 한혈마와 같은 스테미너를 가져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측면에서 헌신적인 공수 가담이 눈에 띄며 날카로운 크로스로 찬스를 만드는 부분은 물론 집요한 맨 마킹으로 상대 공격수를 견제했으며 공을 빼앗기면 바로 재압박에 들어갔으며 다양한 상황에 유려하게 대처하는 우수한 전술안과 뛰어난 양발 사용 능력을 겸비해 좌우 윙어는 물론 측면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 그리고 메짤라의 위치에서도 본 포지션 못지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30대 초반에야 전성기가 온 대기만성형 선수로 초년에는 세리에 C의 여러 팀들과 세리에 B의 파도바에서 활약했으나 1993-94 시즌 유벤투스로 입성한 이후 비안코네리 군단의 세리에 A 3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3회 진출과 1995-96 시즌 우승을 이뤄내는데도 큰 공을 세웠으며 1996년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남미 챔피언 리버 플레이트를 격파하는데 공을 세웠다.

피오렌티나로 이적했으며 피오렌티나에서도 2000-0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구단이 파산하고 하부리그에서 재창단했을 때에도 하부 리그에서 활약해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올려놓고 불혹의 나이로 은퇴했다. 피오렌티나 팬들에게는 의리의 화신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안젤로 디 리비오는 2016년에 피오렌티나의 팬들이 선정한 구단 공식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6위 지노 콜라우시

 


생년월일: 1914년 3월 4일
세리에 A 기록: 313경기 58골
신체조건: 키 163cm / 몸무게 66kg
세리에 A 주 소속팀: US 트리에스티나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 초반에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공격 자원으로 키는 작았지만 다부진 체격을 보유했으며 빠른 스피드도 갖춰 이 조건을 활용해 페널티박스로 빠르게 침투해 왼발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했으며 주 포지션인 아웃사이드 레프트는 물론 센터 포워드도 소화할 수 있었다.

중위권 구단인 트리에스티나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나 소속팀 전력의 한계로 인해 우승은 이뤄내지 못했으나 개인의 활약은 대단해 아주리에 자주 소집되었던 콜라우시는 1941-42 시즌에는 유벤투스 소속으로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공헌했다.

 

15위 이스트반 니어스

 


생년월일: 1924년 5월 25일
세리에 A 기록: 236경기 153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전성기를 누렸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100m를 11초 안에 질주했을 정도로 준족이었으며 강력하면서도 예리하게 들어가는 양발슈팅과 정확한 크로스를 바탕으로 측면에서 공격을 풀어갔으며 중앙으로 침투한 뒤 헤더로 마무리하는 능력에도 장기를 보여 때때로 센터 포워드 및 인사이드 포워드로도 활약했을 정도로 다재다능했다.

헝가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으나 공산 정권에 반대해 해외로 도피해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의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1948-49 시즌에는 군나르 노르달을 제치고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세리에 A 2연패를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AS 로마에서는 기지아와 함께 양 날개 듀오로 활약하기도 했다.

 

 

14위 알시데스 기지아

 

 

생년월일: 1926년 12월 22일
세리에 A 기록: 204경기 19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2kg
세리에 A 주 소속팀: AS 로마

 

대표팀에 한정해서는 짧지만 굵은 활약을 선보인 선수로 당대 남미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빠른 스피드와 상대 수비수를 완벽하게 속여 넘기는 교묘한 발재간을 겸비한 높은 수준의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허문 뒤 날카로운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내는 부분은 물론 골 결정력도 뛰어나 중요한 순간에는 직접 해결하는 클러치 능력도 보여줬다.

우루과이 리그에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을 폭행해 중징계를 받자 유럽 무대에 도전하기 위해 AS 로마로 이적했으며 로마의 암흑기여서 많은 우승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그의 스타성으로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결국 1960-61 시즌에는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을 이뤄냈다. 훗날 기지아는 AS 로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기지아의 개인 어빌리티는 이 순위에 머물기에는 너무나도 뛰어났지만 역시 전성기를 우루과이 무대에서 보낸 탓에 이 순위에 랭크되었다.

 

13위 안젤로 도멘기니

 


생년월일: 1941년 8월 25일
세리에 A 기록: 349경기 93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6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60년대와 7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윙어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측면에서 시작해 중앙으로 침투한 뒤 강력한 양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컷인 플레이에 능했으며 프리킥에도 능해 프리킥 전담 키커로도 명성을 날렸다.

아탈란타에서 데뷔해 1962-63 시즌 아탈란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끌고 본인도 득점왕에 올라 스타덤에 올랐으며 이후 인테르로 이적한 뒤에는 자이르 다 코스타, 마리오 코르소의 백업 역할을 맡아 세리에 A 2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1회 우승을 이뤄냈다.

칼리아리에서는1969-70 시즌에 루이지 리바와 함께 칼리아리의 공격을 이끌며 구단 역사상 유일무이한 세리에 A 우승에 공헌했다.

 

 

12위 자이르 다 코스타

 


생년월일: 1940년 7월 9일
세리에 A 기록: 221경기 55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7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토르난테'

 

유럽 축구 최초의 수비형 윙어로 평가받는 선수로 인테르에서 활약하던 시절에 에레라 감독의 지시로 측면 공격수임에도 번번이 수비에 가담하며 팀의 공수 밸런스를 안정시켜 귀환자라는 뜻의 토르난테라 불렀으며 공격적인 재능도 빼어나 브라질 윙어 답게 드리블 돌파에 능했으며 날카로운 오른발 킥으로 여러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엘레니오 에레라가 이끄는 그란데 인테르 시절에 토르난테로 활약하며 세리에 A 4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회 우승,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브라질로 돌아와서는 산투스에서 활약하며 1973년 캄파오네투 파울리스타 우승에 기여했다.

 

11위 즈비그니에프 보니엑

 

 

생년월일: 1956년 3월 3일
세리에 A 기록: 156경기 31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아름다운 밤'

 

1980년대 동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뛰어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돌파해 벼락같은 양발 슈팅력을 보여줬으며 축구 지능과 기본기가 모두 뛰어나 다양한 포지션을 뛸 수 있었으며 특히 저녁 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여 아름다운 밤이라 불렸다.

1982 스페인 월드컵 이후 유벤투스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린 보니엑은 1982-83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983-84 시즌 세리에 A와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4-85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며 1985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6위에 올랐고 AS 로마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보니엑의 개인 어빌리티는 이 순위에 머물기에는 너무나도 뛰어났지만 누적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였으며 전성기의 시작점은 폴란드 시절이라 이 순위에 랭크되었다.

 

 

10위 칼 아게 프라에스트

 


생년월일: 1922년 2월 26일
세리에 A 기록: 240경기 50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9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40년대 하반기와 195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북유럽 특유의 파워풀한 플레이를 보여줬으며 특히 대포알 같은 왼발 슈팅으로 이름을 날렸다.

프라에스트는 칼 아게 한센, 욘 한센과 함께 데니쉬 트리오라 불렸으며 스웨덴과 밀란의 그레노리 트리오의 대항마로 활약하며 유벤투스에서 활약했으며 그레놀리 삼총사와 치열한 라이벌리를 구축했으며 유벤투스의 세리에 A 2회 우승을 이끌어냈다.

 

 

9위 로베르토 도나도니

 

 

생년월일: 1963년 9월 9일
세리에 A 기록: 339경기 21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8kg
세리에 A 주 소속팀: AC 밀란

'밀란제너레이션의 명품바퀴'

 

1990년대 초반 유럽 정상급 오른쪽 날개로 특유의 왕성한 활동량에서 나오는 넓은 활동반경을 겸비해 최전방에서 공격을 이끌면서도 어느샌가 최후방으로 내려와 수비에 가담하는 플레이에 능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써서 양 측면 윙어를 모두 볼 수 있었으며 높은 축구 지능과 경기 영향력을 앞세워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도 볼 수 있었다.

아리고 사키와 파비오 카펠로 시절의 AC 밀란의 황금기인 밀란 제너레이션 1기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세리에 A 5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과 2회 준우승을 이뤄내고 북미의 메트로스타스로 이적해 북미 리그 올스타 팀에 두 번 들었다가 다시 AC 밀란으로 돌아와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8위 레나르트 스코그룬트

 

 

생년월일: 1929년 12월 24일
세리에 A 기록: 325경기 70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흔들리는 옥수숫대'

 

1950년대 인테르의 슈퍼 스타로 스피드와 기본기를 겸비한 당대 최고의 왼발 드리블 돌파의 스페셜리스트로 금발을 한 선수가 엄청난 스피드로 경기장을 뛰어다는다고 흔들리는 옥수숫대라 불렸다.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후 인테르로 이적해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그레노리 삼총사를 앞세운 밀란과 데니쉬 삼총사를 앞세운 유벤투스를 밀어내고 네라주리 군단의 세리에 A 2연패를 이뤄냈다. 개인의 실력은 출중했지만 알콜 중독으로 인해 기복이 심했다.

 

 

7위 마리오 코르소

 


생년월일: 1941년 8월 25일
세리에 A 기록: 436경기 78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5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뱀 인간'

 

1960년대 이탈리아 최고의 윙어로 적은 활동량에도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파케티의 오버래핑을 도왔으며 정확하면서도 강력한 왼발 킥력과 비단뱀처럼 부드러운 드리블 실력을 갖춰 팬들로부터 '뱀 인간', '신의 왼발'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인테르 밀란에서 보냈으며 1960년대 중반,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인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를 이끌며 지아친토 파케티와 함께 왼쪽에서 콤비 플레이를 보여주며 세리에 A 4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과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뤄내는데 크게 공헌해 구단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코르소 개인도 1964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7위에 올랐으며 1965년에는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6위 프랑코 카우시오

 

 

생년월일: 1949년 2월 1일
세리에 A 기록: 458경기 66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남작'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 윙 중 한 명으로 오른쪽 측면을 가르는 기습적인 질주에 이은 우수한 오른발 크로스로 팀 공격을 지원했으며 화려한 움직임과 깨끗한 사생활을 겸해 남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트라파토니 시절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카우시오는 세리에 A 6회 우승과 1976-77 시즌 UEFA컵 우승과 1977-7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내며 1976년에는 스포르트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2위에 올랐고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유벤투스를 떠나 이적한 우디네세에서도 나름 우수한 활약을 선보였다.

 

5위 지암피에로 보니페르티

 


생년월일: 1928년 7월 4일
세리에 A 기록: 443경기 178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6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Mr. 비안코네리'

 

1950년대 이탈리아 축구의 아이콘으로 폭발적인 슈팅력에서 나오는 우수한 득점력과 전광석화와 같은 드리블로 수비진을 벗겨내는 플레이에 능해 아웃사이드 라이트와 센터 포워드, 그리고 인사이드 포워드에서 모두 좋은 기량을 발휘했다.

선수 커리어를 전부 유벤투스에서만 보낸 비안코네리의 판타지스타이며 구단의 세리에 A 6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에 기여했으며 말년에는 오마르 시보리, 존 찰스와 함께 트리오 마지코를 구성해 활약했다.

1947-48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을 차지한 보니페르티는 유벤투스에서 역대 최다 출전 9위와 역대 최다 득점 2위를 기록하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은퇴한 뒤 유벤투스의 회장으로 부임하고 나서는 트라파토니 시대의 황금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등 구단 역사상 최고의 인물로도 추앙받는다.

 

4위 브루노 콘티

 


생년월일: 1955년 3월 13일
세리에 A 기록: 304경기 37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5kg
세리에 A 주 소속팀: AS 로마


'로마 시장'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 윙으로 평가받으며 빠른 스피드와 교묘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교란했으며 뛰어난 양발 능력을 바탕으로 날렵한 크로스로 공격수를 지원했으며 적극적인 수비 가담 능력을 통해 수비형 윙어인 토르난테 역할도 수행 가능했다.

제노아 임대 시절을 제외하면 잘로로시 군단에서만 커리어를 이어나갔는데 1982-83 시즌에 40년 만에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5회 우승을 이뤄냈고 1983-84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AS 로마 통산 출장 7위에 랭크된 콘티는 1982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에 랭크되었으며 1984년에는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올랐다. 그리고 상술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에 AS 로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위 라이문도 오르시

 


생년월일: 1901년 12월 2일
세리에 A 기록: 177경기 76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8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트로피를 부르는 사나이'

 

1920년대와 30년대 당시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빠른 스피드와 교묘한 드리블을 겸비해 상대 수비수를 속이며 크로스를 올려 공격수를 지원하는 능력과 왼발 슈팅으로 직접 마무리하는 능력 모두 훌륭했으며 중요한 경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아르헨티나의 인디펜디엔테에서 남미 무대를 평정했으며 이후 유벤투스로 건너와 공격진 핵심 선수로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내며 구단의 첫 전성시대를 열었다. 머문 기간은 짧았지만 이탈리아 축구사에 차지하는 임팩트가 대단했다.

 

2위 쿠르트 함린

 


생년월일: 1934년 11월 19일
세리에 A 기록: 400경기 190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세리에 A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스웨덴의 불사조'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후반까지 유럽 축구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새라고 불렸을 정도로 민첩한 몸놀림과 양발을 가리지 않는 강력한 대포알 슈팅을 활용한 득점에도 능했다.

유벤투스, 파도바에서 활약하다가 1958 스웨덴 월드컵을 결승에 올린 활약을 인정받아 줄리뉴의 대체자로 영입된 함린은 비록 피오렌티나에서 리그 우승을 하진 못했지만 두 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960-61 시즌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 그리고 1966년의 미트로파 컵 우승에 공헌했으며 특히 특히 컵 위너스 컵 우승 당시에는 대회 득점왕에 올랐고 AC 밀란에서는 백업 멤버로 세리에 A 및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다.

피오렌티나 통산 최다 득점 및 통산 출전 4위에 랭크된 함린은 상술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피오렌티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16년에 피오렌티나의 팬들이 선정한 구단 공식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위 파벨 네드베드

 


생년월일: 1972년 8월 30일
세리에 A 기록: 352경기 73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세개의 심장'

 

2000년대 상반기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강력한 체력으로 공수 양면에 걸쳐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경기장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창의적이진 않았지만 정확한 패스를 통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우수한 킥력도 겸비했으며 "나는 하루 12시간을 연습했다, 두 다리 모두 우월하다고 느낄 때 희열을 느꼈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양발을 잘 썼던 만능 미드필더 자원이었다.

체코 무대를 떠나 세리에 A로 입성해 라치오의 황금기를 이끌었는데 1997-9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시작으로 1998-99 시즌에는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럽 대항전에서 우승했으며 여름에는 UEFA 슈퍼컵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승리했고 1999-2000 시즌에는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를 모두 제패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네드베드 개인도  2000-01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라치오가 재정난으로 몰락하자 유벤투스로 이적했으며 유벤투스에서는 세리에 A 2연패를 이뤄냈으며 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뤄냈고 팀이 칼치오폴리라는 승부조작 스캔들의 수렁에 빠져 강등을 당했음에도 팀에 충성심을 보이며 잔류해 팀을 다시 세리에 A로 올려놓는 활약을 펼쳐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네드베드 개인도 2002-03 시즌에는 구에린 도르는 물론 세리에 A의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과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을 동시에 수상했으며 UEFA 클럽 올해의 미드필더를 수상하며 2003년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선정 인원 외 추가할 수 있는 명단

 

 

로메오 멘티

 

 

생년월일: 1919년 9월 5일
세리에 A 기록: 177경기 76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7kg
세리에 A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40년대 세리에 A 정상급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이름을 날렸으며 체구는 작았지만 민첩한 드리블로 자신보다 더 큰 상대 수비수를 따돌렸으며 우수한 킥력을 바탕으로 오른쪽 측면에서 크로스를 날리며 득점 찬스를 만들었으며 팀의 세트피스를 전담했다.

오솔라와 함께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측면 공격을 이끌었으며 중간에 몇 차례 임대를 다녀오긴 했지만 1942-43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세리에 A의 더블 우승을 포함해 세리에 A 4회 우승을 이뤄내며 신화를 쓰던 중에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프랑코 오솔라

 

 

생년월일: 1921년 8월 23일,
세리에 A 기록: 176경기 86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86kg
세리에 A 주 소속팀: 토리노 FC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이름을 날렸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민첩한 몸놀림과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따돌리며 중앙으로 침투해 날카로운 왼발 슈팅으로 상대 골문을 노리는 플레이에 능했다.

토리노 구단 통산 득점 10위에 랭크된 오솔라는 멘티와 함께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측면 공격을 이끌며 엘 토로의 1942-43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 우승을 포함해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내며 위대한 업적을 쌓았으나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클라우디오 살라

 


생년월일: 1947년 9월 8일
세리에 A 기록: 321경기 27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세리에 A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7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했던 윙어로 빠른 드리블 돌파와 민첩한 몸놀림으로 상대 수비를 뚫어낸 뒤 양발 모두를 사용한 적절하고 날카로운 크로스와 슈팅을 자랑해 팬들로부터 골의 시인이라 불렸다.

몬차와 나폴리를 거쳐 토리노에 입단한 살라는 풀리치, 그라지아니와 함께 공격 편대를 구성해 활약하며 1970년대 그라나타의 약진을 이끌며 1970-7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고 1975-76 시즌에는 엘 토로의 27년 만에 스쿠테토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다. 이듬해에도 세리에 A 준우승을 이끔과 동시에 구에린 도르를 재차 수상했다.

상술한 활약을 펼친 살라는 은퇴한 뒤인 2016년에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파울로 풀리치

 


생년월일: 1950년 4월 27일
세리에 A 기록: 399경기 142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세리에 A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7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했던 다재다능한 윙포워드로 양발 모두를 사용해 날카로운 슈팅을 날렸으며 키가 큰 편이 아니었음에도 높은 점프력을 바탕으로 한 헤더로 득점에 능했기에 이탈리아의 축구 저널리스트계의 대부 지아니 브레라는 그에게 풀리치클론, 즉 싸이클론 풀리치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AC 레냐노에서 프로 데뷔를 이뤄냈고 1967-68 시즌에 토리노로 이적해 토리노 U-19 팀의 캄피오나토 프리마베라 2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우며 주목받았던 풀리치는 살라, 그라지아니와 함께 공격 편대를 구성해 활약하며 1970년대 그라나타의 약진을 이끌고 1970-7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5-76 시즌에는 엘 토로의 27년 만에 스쿠테토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그 과정에서 리그 21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올랐다.

토리노 FC 통산 출전 2위와 통산 최다 득점자에 랭크되었으며 세리에 A 득점왕을 3회 수상한 풀리치는 상술한 활약을 펼친 살라는 은퇴한 이후, 2014년에 구단 최초로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네 명의 선수 중 하나였다.

 

 

알베리고 에바니

 

 

생년월일: 1963년 1월 1일
세리에 A 기록: 353경기 16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3kg
세리에 A 주 소속팀: AC 밀란

아리고 사키 체제의 밀란을 대표했던 레프트윙으로 본래 레프트백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파올로 말디니의 등장으로 윙어로 올라가 활약했는데 스피드가 빠른 편이 아니었고 드리블 기술도 좋지 않았지만 왕성한 활동량으로 공수 양면에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우수한 위치 선정과 높은 축구 지능, 그리고 뛰어난 왼발 킥력을 바탕으로 날리는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는데 윙어임에도 화려하진 않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다재다능으로 팀의 살림꾼으로 활약함에도 중요한 경기에서 클러치 능력까지 겸비한 부분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나 레알 마드리드의 루카스 바스케스와 유사한 선수라 생각하면 편하다.

AC 밀란의 유스 출신인 에바니는 그가 어린 선수였던 시절, 밀란은 토토네로 스캔들이라는 승부 조작 스캔들에 휘말려 세리에 B로 강등되었는데 그래서 에바니는 세리에 B에서 밀란 1군 팀 데뷔를 했고 이후 승격했으나 다시 강등당하며 세리에 B로 내려갔을 때 주전 레프트백으로 활약했고 이후에는 윙어로 포지션을 바꾼 뒤 아리고 사키 체제에서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89년 인터콘티넨탈컵 대회에서는 콜롬비아의 아틀레티코 나시오날을 상대로 연장 종료 직전에 결승골을 득점하며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며 밀란에서 단맛과 쓴맛 모두 봤으며 팀에서 밀려나 삼프도리아로 떠났을 때에도 1993-94 시즌에 개인 통산 첫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디에고 푸세르

 


생년월일: 1968년 11월 11일
세리에 A 기록: 405경기 65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세리에 A 주 소속팀: SS 라치오

 

1990년대 이탈리아 축구를 풍미한 멀티 플레이어로 오른쪽 측면 전체와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도 볼 수 있었던 다재다능한 선수로 발이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높은 수준의 지구력을 바탕으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줬으며 뛰어난 신체 능력과 정교한 오른발 킥을 활용한 롱패스를 활용해 자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AC 밀란의 유스였으나 AC 밀란의 치열한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라치오에 입단했으며 비안코세레스티 군단에서 초년에는 오른쪽 측면에서 활약하다가 제만 체제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팀의 1997-98 시즌 UEFA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파르마로 이적한 뒤에도 1998-99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2001-02 시즌에는 라치오의 지역 라이벌 AS 로마로 이적해 2001-02 시즌 세리에 A 준우승과 2002-03 시즌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을 경험했다.

 

 

지안루이지 렌티니

 


생년월일: 1969년 3월 27일
세리에 A 기록: 207경기 27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82kg
세리에 A 주 소속팀: 토리노 FC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나이였던 선수로 민첩한 몸놀림에서 나오는 매혹적인 드리블과 한 박자 빠른 양발 크로스로 이름을 날렸기에 명장 카펠로는 그를 두고 "거대한 재능이다. 빠르고 강하며 신체적으로도 훌륭하다."라고 호평했다.

렌티니는 토리노의 유스 출신으로 토리노에서 데뷔해 1989-90 시즌 팀의 세리에 B 우승을 이뤄내며 팀을 승격시켰지만 1991-92 시즌 UEFA컵 준우승과 세리에 A 3위를 이끌며 중위권으로 떨어진 토리노를 다시 상위권으로 올려놓았으며 AC 밀란은 1992년 당시 역대 최고 이적료인 13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투자해 영입했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으며 AC 밀란에서 세리에 A 3회 우승과 1993-9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는 동안 그가 기여한 부분은 매우 적었으며 이후에는 재능을 만개하지 못하고 아탈란타를 거쳐 다시 토리노로 갔으나 팀은 강등당했고 이후 하부리그를 전전하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마우로 카모라네시

 


생년월일: 1976년 10월 4일
세리에 A 기록: 242경기 30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세리에 A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2000년대 세리에 A에서 이름을 날린 측면 자원으로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의 이중국적이었으며 우수한 발기술과 교묘한 드리블 돌파와 한 박자 빠른 오른발 크로스로 골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했으며 왕성한 활동량도 겸비해 중앙 미드필더와 윙어 사이의 포지션인 메짤라의 자리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선수 시절 초년에는 남미와 북중미 무대에서 활약하다가 2000-01 시즌 엘라스 베로나에서 세리에 A 무대에 데뷔했으며 2002-03 시즌 유벤투스에 입성해 그 해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두 번의 우승이 칼치오 폴리로 취소당하고 그에 대한 처벌로 강등을 당했으나 팀에 충성심을 보이며 잔류해 2006-07 시즌 세리에 B 우승을 이뤄냈고 2007-08 시즌에는 팀원들 대부분이 부진한 와중에 홀로 분전하며 팀을 3위에 올려놓는 활약을 펼쳐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다.

 

 

로렌조 인시네

 


생년월일: 1991년 6월 4일
세리에 A 기록: 337경기 96골
신체조건: 키 163cm / 몸무게 59kg
세리에 A 주 소속팀: SSC 나폴리

 

2010년대 이탈리아 최고의 측면 공격수로 163cm의 작은 키를 지녔지만 빠른 스피드와 강력한 킥력은 물론 감각적인 패싱력을 통해 골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했다.

나폴리 통산 출전 4위와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인시녜는 나폴리의 로컬 보이였으며 여러 팀으로 임대를 다녀왔다가 페르테노페이로 다시 돌아와 세리에 A 준우승 3회와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개인적으로도 2013-14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도메니코 베라르디

 

 

생년월일: 1994년 8월 1일
세리에 A 기록: 303경기 118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2kg
세리에 A 주 소속팀: US 사수올로

 

201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호령한 왼발잡이 라이트윙으로 기본적으로 중앙으로 침투해 득점을 노리는 컷인 플레이를 즐기는 선수였지만 2016-17 시즌 장기부상 이후에는 연계에도 장점을 보였다.

세리에 A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사수올로를 중상위권으로 올리며 구단의 위상을 크게 올린 베라르디는 무려 네 시즌 연속으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음은 물론 2014-15 시즌과 2021-22 시즌에는 도움왕에 올랐다. 특히 2015-16 시즌에는 사수올로를 6위에 올리는 이변을 내기도 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