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세리에 A 올스타

리그의 전설들/이탈리아 세리에 A

1950년대 세리에 A 올스타

토르난테 2024. 9. 1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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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1950-51 시즌부터 1959-60 시즌까지의 활약으로 베스트 일레븐 선정.

세리에 A 소속으로 활약한 국제 클럽 대항전 역시 가산점으로 포함해서 계산.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이름: 로렌초 부폰
출생년도: 1929년 12월 19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AC 밀란

 

2000년대 최고의 잔루이지 부폰의 친척이자 1950년대 하반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골키퍼로 기복이 있고 날아오는 크로스를 잘 처리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골라인 근방에서는 신들린 선방을 보여주며 팬들로부터 훌륭한 로렌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AC 밀란에서 최전성기를 누린 로렌초 부폰은 군나르 노르달, 닐스 리드홀름 등과 함께 AC 밀란에서 세리에 A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라틴컵에서도 각각 릴과 아틀레틱 빌바오를 꺾고 두 번의 우승을 차지하면서 훗날 AC 밀란이 유럽 축구를 대표하는 명문 중 하나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한 공을 인정받아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예를 누린다.

 

 

센터 하프

 

 

이름: 오메로 토뇬
출생년도: 1924년 3월 3일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0kg
주 소속팀: AC 밀란

 

그레노리 트리오 시절의 AC 밀란의 수비를 이끈 센터하프로 체구는 다소 작았지만 강한 몸싸움과 결단력, 그리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수비라인의 핵으로 활약했는데 도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탄탄한 발놀림이 있었기 때문에 하프백 라인에서 공격을 전개하는 데에도 재능이 있었음은 물론 기술적으로 세련되었기에 수비수임에도 퇴장을 당한 적이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AC 밀란에서 데뷔한 토뇬은 체사레 말디니가 두각을 나타내기 이전에 AC 밀란의 전성기를 이끌었는데 세리에 A 2회 우승 및 3회 준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첫 전성기를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라틴컵 2회 우승을 이뤄냈다. 첫 전성기의 수비라인 핵으로 활약한 전공을 인정받아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라이트 풀백

 

 

이름: 아르디코 마그니니
출생년도: 1928년 10월 21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1950년대 피오렌티나의 약진을 이끈 수비수로 WM 시스템의 라이트 풀백 포지션에서 활약했으며 강인한 정신력과 뛰어난 운동 능력에서 나오는 우수한 점프력과 기동력을 바탕으로 지상과 공중에서 상대 공격수와 경합에서 우위를 점했고 특히 상술한 능력들을 활용해 골라인에서의 아크로바틱한 클리어링을 보여주며 상대의 골과 다름없는 찬스를 무산시키며 명성을 떨쳤다.

1950년에 피오렌티나에 합류한 마그니니는 베르나르디니 감독이 이끌던 1955-56 시즌에는 비올라의 첫 리그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이듬해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했고 그 뒤에도 4년 연속 세리에 A 준우승을 기록하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선수 은퇴 이후에도 만 90세까지 장수한 마그니니는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2013년 피오렌티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레프트 풀백

 

 

이름: 세르지오 체르바토
출생년도: 1929년 10월 22일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1950년대 WM 시스템의 정상급 레프트백 중 하나로 수비수임에도 간헐적으로 공격에 가담했으며 뛰어난 킥력을 바탕으로 세트피스를 도맡아 처리했다.

1950년대 피오렌티나의 약진을 이끈 수비수로 베르나르디니 감독이 이끌던 1955-56 시즌에는 팀의 첫 리그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이듬해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했고 그 뒤에도 4년 연속 준우승을 기록했다.

 

피오렌티나 구단 통산 출전 8위에 랭크된 체르바토는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2015년 피오렌티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16년에 피오렌티나의 팬들이 선정한 구단 공식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라이트 하프

 

 

이름: 닐스 리드홀름
출생년도: 1922년 10월 8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AC 밀란

 

195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창의적이면서도 우수한 축구 지능과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을 겸비했으며 정교한 패싱력과 넓은 시야를 지녔으며 2년간 패스미스를 하지 않다가 2년 만에 패스미스를 하자 관중들이 박수를 쳤다는 일화도 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군나르 노르달, 군나르 그렌과 함께 조국의 금메달에 공헌해 몸값을 높인 뒤에 아마추어 무대인 스웨덴 무대를 떠나 프로 무대인 이탈리아의 AC 밀란에 합류한 리드홀름은 AC 밀란에서 활약하던 시절에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라틴 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7-58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AC 밀란의 전성기를 이끈 영웅으로 올라섰다.

AC 밀란 명예의 전당과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 그리고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된 리드홀름은 개인적으로도 많은 영광을 누렸는데 1958년에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를 차지했음은 물론 본 포지션이 아닌 라이트 하프 자리에서도 1958-59 시즌 코리에레 델로 스포르트의 세리에 A 랭킹에서 라이트 하프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레프트 하프

 

 

이름: 에른스트 오크비르크
출생년도: 1926년 3월 7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UC 삼프도리아

1950년대 최고의 하프백 중 한 명으로 드넓은 시야와 양발을 모두 사용하는 정교한 롱패스를 활용한 우수한 볼 배급 능력, 그리고 원활한 수비력과 탄탄한 기본기를 겸비했으며 축구 지능이 높아 인사이드 포워드나 풀백으로도 뛸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꾸준하고 일관적인 경기력을 유지했는데 얼마나 꾸준했는지 한 영국 언론사는 그를 두고 시계태엽이라 부르기도 했다.

아우스트리아 빈에서 오스트리아 최고의 선수의 반열에 올랐던 오크비르크는 1956년 이탈리아 무대에 중견팀이었던 삼프도리아로 입단해 새로운 도전을 펼친 오크비르크는 비록 우승 트로피를 들지는 못했지만 개인은 뛰어난 활약을 펼쳐 1956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7위에 랭크되었으며 1960-61 시즌에는 그 당시 삼프도리아의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이었던 세리에 A 4위에 올리는데 공헌했다.

 

 

인사이드 라이트

 

 

이름: 군나르 그렌
출생년도: 1920년 10월 31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세계 정상급 수준을 유지하며 롱런한 인사이드 포워드로 영리한 공간 활용 능력과 동료 활용 능력은 물론 우수한 판단력으로 최적의 위치로 패스를 찔러줬으며 득점력도 훌륭했으며 특히 높은 축구 지능으로 유명해 교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군나르 노르달, 닐스 리드홀름과 함께 조국의 금메달에 공헌해 몸값을 높인 뒤에 아마추어 무대인 스웨덴 무대를 떠나 프로 무대인 이탈리아의 AC 밀란에 합류한 그렌은 그레노리 트리오의 두뇌 역할을 맡아 1950-51 시즌 세리에 A 우승 및 라틴컵 우승을 이뤄냈고 1951-52 시즌에는 임시 감독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인사이드 레프트

 

 

이름: 후안 스키아피노
출생년도: 1925년 7월 28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AC 밀란

 

우루과이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 명이자 1950년대 최고의 인사이드 포워드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우수한 테크닉과 넓은 시야, 창의적이면서 정확한 패싱력을 보유했으며 임기응변에 능해 불리한 경기를 여러 번 뒤집었다.

1954 스위스 월드컵 이후에는 유럽 무대에 도전하며 AC 밀란에 입단해 군나르 그렌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웠는데 AC 밀란에서 노르달, 리드홀름과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며 세리에 A 3회 우승과 1956년 라틴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7-58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스키아피노의 최전성기 시즌 중 하나였던 1954-55 시즌, 그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음에도 심판에게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다른 심판의 증언에 따르면 코랄로 심판은 스키아피노 앞에서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네 놈은 모든 이탈리아 심판들을 매수했냐"라고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심판은 5일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던 일화도 있다.

 

 

아웃사이드 라이트

 

 

이름: 지안피에로 보니페르티
출생년도: 1928년 7월 4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50년대 이탈리아 축구의 아이콘으로 폭발적인 슈팅력에서 나오는 우수한 득점력과 전광석화와 같은 드리블로 수비진을 벗겨내는 플레이에 능해 아웃사이드 라이트와 센터 포워드, 그리고 인사이드 포워드에서 모두 좋은 기량을 발휘했다.

클럽 커리어를 전부 유벤투스에서만 보내며 구단 통산 출전 9위 및 구단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비안코네리의 판타지스타 보니페르티는 세리에 A 6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에 기여했으며 말년에는 오마르 시보리, 존 찰스와 함께 트리오 마지코를 구성해 활약했다.

 

 

센터 포워드

 

 

이름: 군나르 노르달

출생년도: 1921년 10월 19일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90kg
소속팀: AC 밀란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 최고의 중앙 공격수로 평가받았던 인물로 188cm에 90kg에 달하는 엄청난 피지컬에서 나오는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벼락같은 슈팅력으로 상대 골키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1948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직후,  AC 밀란에서 활약하며 세리에 A 2회 우승과 라틴 컵 2회 우승을 이뤄내며 AC 밀란이 유벤투스, 인테르, 토리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문으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AC 밀란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이자 세리에 A 외국인 최다 득점자이자 세리에 A 최다 해트트릭 기록을 보유한 군나르 노르달은 세리에 A 득점왕인 카포칸노이에레 5회 수상을 이뤄냈고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아웃사이드 레프트

 

 

이름: 레나르트 스코그룬트
출생년도: 1929년 12월 24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50년대 인테르의 슈퍼 스타로 스피드와 기본기를 겸비한 당대 최고의 왼발 드리블 돌파의 스페셜리스트로 금발을 한 선수가 엄청난 스피드로 경기장을 뛰어다는다고 흔들리는 옥수숫대라 불렸다.

자국의 함마르뷔 IF에서 데뷔해 AIK 포트볼의 알스베스칸 우승을 이뤄내 주목받았던 스코그룬트는 프로선수가 되기를 원했기에 인테르로 이적해 활약했는데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그레노리 삼총사를 앞세운 밀란과 데니쉬 삼총사를 앞세운 유벤투스를 밀어내고 네라주리 군단의 세리에 A 2연패를 이뤄내며 개인의 전성기를 누렸다.

 

 

감독

 

 

이름: 주세페 비아니

출생년도: 1909년 9월 13일

주 소속팀: 볼로냐 FC, AC 밀란

 

1950년대 이탈리아 무대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스위스에서 유행한 베로우 시스템의 핵심인 리베로를 이탈리아 축구계의 처음 도입해 WM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1-3-3-3 포메이션을 창안해 훗날 네레오 로코와 엘레니오 에레라의 카테나치오에도 큰 영향을 줬다.

당시에는 많은 4명의 수비숫자를 바탕으로 극단적인 수비 축구로 유명했던 비아니는 1951-52 시즌에는 AS 로마의 세리에 B 우승을 이끌며 세리에 A로 복귀시켰고 볼로냐에서도 견고한 수비력으로 악명을 떨쳤으며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세리에 A 2회 우승 및 1957-58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사후인 2018년에는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은 덤이다.

 

 

베스트 일레븐 라인업

 

 


서브 자원들 포함 25인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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