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11편- 비극으로 막을 내린 위대했던 축구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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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11편- 비극으로 막을 내린 위대했던 축구왕조

토르난테 2023. 8. 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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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1949

 

『그란데 토리노』
(Il Grande Torino)

 

파죽지세로 5회 연속 스쿠테토를 들었으나 신의 질투로 막을 내린 축구왕조

 


성적

세리에 A: 5회 우승 (1942-43, 1945-46, 1946-47, 1947-48, 1948-49)

코파 이탈리아: 1회 우승 (1942-43)

 


소개

1940년대 유럽 클럽축구 최강의 팀으로 이름을 날린 이탈리아의 축구왕조로 2-3-5 메토도에서 벗어나 WM 시스테마 시스템을 도입해 이탈리아 무대에 전술적 진보를 이뤄낸 클럽으로 유명했다.

새로 회장에 오른 페루치오 노보는 이탈리아의 패권을 쥐기 위해 수많은 선수들을 영입했는데 특히 화룡점정은 1942-43 시즌을 앞두고는 유벤투스 입단이 유력했던 발렌티노 마촐라를 거금을 들여 하이재킹에 성공하며 팀을 완성했다. 주세페 메아차 이후 이탈리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를 손에 넣은 토리노는 볼로냐의 시대를 끝내고 1942-43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이탈리아 본토가 전란에 휘말리자 이탈리아는 공식 리그를 중단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 다시 재개된 세리에 A에서 토리노는 이전에 우승한 것을 포함해 파죽지세로 4개의 스쿠테토를 더 추가하며 유럽 무대에도 이름을 날렸다. 특히 1945-46 시즌과 1946-47 시즌에는 리그 우승에 더해 토리노에서 득점왕이 나왔는데 가베토와 마촐라가 각각 득점왕에 올랐다. 그들의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자연스럽게 이탈리아 대표팀도 대부분 토리노 선수들이 주전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신들이 그들을 질투해서였을까 1949년 5월 4일에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에서 돌아오는 길에  악천후로 인해 시야가 매우 불량했고 그 때문에 기장 피에르루이지 메로니 중령은 눈으로 보고 비행할 수 있도록 기체를 하강시킬 수밖에 없었는데 오후 5시, 이렇게 하강하는 동안 수페르가 언덕 위의 성당을 발견하지 못했고 성당의 뒤쪽 벽에 그대로 충돌해 버리며 비행기에 탑승했던 토리노 선수단과 스태프 및 항공 기술자들과 기자, 경기 중개인까지 탑승객 31명이 전원 사망했으며 이로 인해 주전 전원 및 중요한 백업 선수들을 모두 잃어버린 토리노는 전성기를 허무하게 끝낼 수밖에 없었음은 물론 이는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며 1950년대 내내 암흑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전력이 약화된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수비전략을 기조로 전술을 짜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결국 카테나치오 시스템으로 재정비 한 뒤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주요 감독

 


루이지 페레로

1940년대 이탈리아 및 유럽 축구계 최고의 클럽 엘 그란데 토리노의 시대를 열었던 명장으로 1939-40 시즌 토리노에서 은퇴한 뒤 바리와 페스카라에서 능력을 증명하며 토리노의 지휘봉을 잡았다.

2-3-5 시스템이 유행하던 중유럽에 아스날식 WM 시스템을 모방한 시스테마 풋볼을 도입한 선구자 중 한 명으로 뛰어난 전술 운용과 임기응변은 물론 선수단 관리에도 능숙했던 위대한 코치이자 매니저였던 페레로는 토리노에서 세리에 A 2회 우승을 이뤄냈다.

그는 모종의 이유로 1947년에 엘 토로의 감독직을 내려놓고 피오렌티나로 떠났는데 이로 인해 1949년에 벌어진 수페르가의 참사를 피했다.


ACE Card

 

 

이름: 발렌티노 마촐라
출생년도: 1919년 1월 26일
포지션: 인사이드 포워드, 센터 포워드, 하프백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5kg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선수로 우수한 시야와 탄탄한 기본기를 앞세워 경기를 조립하고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하는 역할을 우수하게 수행했기에 팀 동료 마리오 리가몬티로부터 "마촐라는 팀의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남은 우리 10명에 의해 이루어진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1940년대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전성시대를 이끈 마촐라는 엘 토로의 세리에 A 5연패와 1942-43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마촐라 개인도 1942-43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과 1946-47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을 수상하며 당대 유럽 축구계 최고의 선수로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름: 구글리에모 가베토
출생년도: 1916년 2월 24일
포지션: 센터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0kg

194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평정한 최고의 센터 포워드로 우수한 공간 지각력과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상대 수비수의 예측을 불허하는 공간 침투 이후 우수한 슈팅 스킬로 마무리를 이뤄냈는데 뛰어난 유연성으로 예술적인 바이시클 킥과 발리 슈팅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유벤투스에서 토리노로 이적해 활약한 가베토는 대단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내는 대업적을 세우며 엘 그란데 토리노의 시대를 여는데 공헌했다.

 

 

이름: 마리오 리가몬티
출생년도: 1922년 12월 17일
포지션: 센터 하프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5kg

1940년대 유럽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정상급 센터하프로 숨 쉴 틈을 주지 않는 타이트한 맨 마킹과 저돌적인 태클로 상대를 제압했으며 제공권 경합에도 강점을 보였다.

1940년대를 풍미하며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수비라인의 리더로 활약한 리가몬티는 세리에 A 4연패를 이뤄내며 명성을 날렸다.


베스트 일레븐


이전 회차: 10편 라 마키나라 불린 아르헨티나의 축구왕조

다음 회차: 12편 최초의 공식 남아메리카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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