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9편- 독일 최초의 전국 대회 더블 크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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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9편- 독일 최초의 전국 대회 더블 크라운

토르난테 2023. 8. 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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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1944

 

『크레이젤 로얄 블루스』 FC 샬케 04
(Kreisel Royal Blus)

 

마이스터샬레와 포칼을 동시에 석권한 최초의 독일 왕조

 


성적

가울리가 베스트팔렌: 11회 우승 (1933-34, 1934-35, 1935-36, 1936-37, 1937-38, 1938-39, 1939-40, 1940-41, 1941-42, 1942-43, 1943-44)

독일 챔피언십: 6회 우승 (1933-34, 1934-35, 1936-37, 1938-39, 1939-40, 1941-42)

DFB포칼: 1회 우승 (1936-37)

 


소개

1930년대 초반 독일 축구는 다른 유럽 대륙에 비해 특출나지 않았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식 빠른 패스 플레이를 도입한 샬케를 시작으로 독일 축구계는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하는 등 눈부신 발전을 이뤄내며 경쟁력을 갖췄다.

특히 독일의 여러 지역리그에서는 베스트팔렌 지역리그에서 FC 샬케 04가 가장 먼저 스코틀랜드식 빠른 패스 플레이인 크레이젤 풋볼을 통해 다른 팀들과는 차원이 다른 팀 플레이를 바탕으로 독주 체제를 굳히며 지역리그 11연패, 독일 챔피언십 6회 우승을 이뤄냈다.

이 원동력에는 팀의 볼 순환의 핵심으로 평가받는 다재다능의 슈체판, 공격의 사령관 쿠조라, 수비라인의 사령관 티불스키를 포함한 대부분의 선수가 어린 시절부터 같은 동네에서 볼을 차던 사이였으며 타고난 축구 센스가 뛰어났기에 가능했다. 이 크레이젤 풋볼을 앞세운 샬케는 결국 1937년 포칼까지 우승하며 국내대회 전관왕에 올랐다.

샬케의 발전을 이룬 '크레이젤 풋볼의 아버지' 한스 슈미트가 떠난 뒤에도 이 기조는 계속되었으나 나치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후임감독 오토 파이스트가 소련군에 생포되면서 샬케의 영향력은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슈체판과 쿠조라가 노쇠화하자 독일의 패권을 카이저슬라우테른, 슈투트가르트 등 다른 클럽에게 내줬다.


주요 감독

 


한스 슈미트

선수로서는 1920년대 뉘른베르크의 전성기를 이끈 아웃사이드 레프트였던 이력이 있으며 감독으로 부임한 뒤에는 스코틀랜드와 다뉴브 학파가 지향했던 짧고 빠른 패스로 볼을 점유하는 플레이인 크레이젤 풋볼의 시대를 이끌었다.

그가 샬케에 머문 5년 동안 1936-37 시즌 도메스틱 트레블을 포함해 가울리가 베스트팔렌 5연패, 독일 챔피언십 3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후임 감독 오토 파이스트의 시대에도 한스 슈미트의 기조인 크레이젤 풋볼을 유지하며 황금기를 누렸다.


ACE Card

 

 

이름: 프리츠 슈체판
출생년도: 1907년 9월 2일
포지션: 라이트 하프, 레프트 하프, 인사이드 포워드, 센터 하프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6kg


2차 세계 대전 이전 독일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인사이드 포워드로 오늘날의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 있었지만 오늘날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활동 범위와 플레이메이커의 경기 지배력을 겸비한 시대를 앞질러간 훌륭한 미드필더였으며 그가 있었기에 1930년대 샬케를 대표하는 짧고 빠른 패스 위주의 점유율 전술인 크레이젤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었다.

1930년대 샬케가 독일에서 가장 강력했던 클럽이던 시절의 핵심 선수였으며 가울리가 베스트팔렌 11회 우승과 6번의 독일 챔피언쉽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36-37 시즌에는 독일 챔피언쉽과 DFB-포칼을 동시에 우승하며 샬케를 독일 최초의 도메스틱 트레블을 이뤄냈다.

 

 

이름: 에른스트 쿠조라
출생년도: 1905년 10월 16일
포지션: 인사이드 포워드, 센터 포워드, 아웃사이드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5kg

로얄 블루스에게 중원에 스체판이 있다면 공격에는 쿠조라가 있었다. 정교한 드리블과 정확하면서도 강력한 슈팅력을 모두 갖췄으며 공격진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였으며 레비어 더비가 독일 내에서 치열해진 이유로는 나치가 쿠조라가 도르트문트로 이적할 수 있다는 루머를 퍼트려서였다는 설도 있었을 정도였다.

1930년대 샬케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공격진의 핵심이자 주장으로 가울리가 베스트팔렌 11회 우승과 6번의 독일 챔피언쉽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36-37 시즌에는 독일 챔피언쉽과 DFB-포칼을 동시에 우승하며 샬케를 독일 최초의 도메스틱 트레블을 이뤄냈다.

 

 

이름: 오토 티불스키
출생년도: 1912년 12월 15일
포지션: 센터 하프
신체조건: 키 172cm

1930년대 로얄 블루스의 전성기를 이끈 독일 무대 최고의 센터하프 중 한 명으로 발군의 전술안과 드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신속정확한 판단력과 안정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수비라인과 공격라인을 원활하게 연결하며 크라이젤이라 불린 짧고 빠른 패스 위주의 점유율 축구를 구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선수다.

잠시 헤르타로 떠났던 1941-42 시즌을 제외하고는 샬케에서만 커리어를 보낸 티불스키는 가울리가 베스트팔렌 10회 우승과 독일 챔피언십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36-37 시즌에는 독일 챔피언쉽과 DFB-포칼을 동시에 우승하며 샬케를 독일 최초의 도메스틱 트레블을 이뤄냈다.


베스트 일레븐

 


이전 회차: 8편 이탈리아 구단 최초의 중유럽 챔피언

다음 회차: 10편 라 마키나라 불린 아르헨티나의 축구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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