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WM, 나겔스만은 실패했고 펩은 성공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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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WM, 나겔스만은 실패했고 펩은 성공한 이유

토르난테 2023. 4. 1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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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2022-2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불리며 UEFA 클럽랭킹 1위를 두고 경쟁하는 맨체스터 시티와 바이에른 뮌헨이 만났다.

바이에른의 감독 토마스 투헬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바이에른의 선수단으로는 가장 무난한 4-2-3-1 시스템을 들고 나왔으며 펩은 3-2-2-3, 즉 WM 시스템을 들고 나왔다.

 

펩은 이 경기 이전에도 이미 바이에른과 비슷한 색채의 축구를 구사하는 리버풀을 상대로도 WM 포메이션을 선보였고 4-1 대승을 거뒀다. 물론 리버풀전에서는 점유율에서도 압도했으며 홀란을 선발로 기용하지 않았다는 차이는 있지만 결국 라인의 높이와 공격 전술의 차이가 있었을 뿐 수비 대형 자체는 유사했다.

결과는 맨체스터 시티의 3-0 완승이었다. 바이에른 뮌헨은 펩 과르디올라가 이전처럼 라인을 높여 공격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펩은 점유율을 내줬지만 효율적이며 간결한 플레이로 바이에른을 무력화시켰다. 특히 이번 시즌 바이에른 뮌헨의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두줄 수비 공략 부재를 완벽하게 간파하고 탄탄한 수비벽을 쌓았다.

 

 

 

 

이 경기의 패배 여파로 마네와 사네의 주먹다짐이 보도되며 보드진이 큰 비판을 받느라 잠시 잊었을 수도 있지만 저 대형은 바이에른에게 참 익숙한 대형이다. 최근에 경질되었던 바이에른의 전 감독 율리안 나겔스만이 저번 시즌에 보여줬다가 큰 비판을 받았던 전술이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면 여러분들은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이 시스템이 펩의 맨체스터 시티는 성공했지만 나겔스만의 바이에른은 실패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그 답을 해볼 생각이다.


2-3-5 시스템과 WM 시스템, 그리고 포백 시스템

 

우선 이 전술을 설명하려면 고전 축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WM에 대해 설명하려면 WM 시스템이 어떤 시스템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프로축구의 태동기부터 1920년대까지는 WM 2-3-5 시스템이 유행했다. 다섯 명의 공격수, 하프백이라 불리는 1차 저지선 역할을 하는 세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그리고 풀백이라 불리는 최후방 수비를 담당하는 두 명의 수비수를 포진시키는 시스템으로 구성된다.

 

 

1924 올림픽 우승팀 우루과이 대표팀의 2-3-5 시스템



이 시스템이 유행한 이유는 당시 오프사이드 규정 때문이다. 당시에는 패스를 받는 공격수는 언제나 상대 골대와 사이에 상대 골키퍼를 포함해 수비수 3명이 위치하도록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비수 1명은 골키퍼와 함께 골대 주위에 위치하고 나머지 수비수 1명이 그보다 앞선 위치에 있으면 2명의 수비수 사이로 공격수가 패스를 받으러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러나 1925년에 오프사이드 규정이 바뀌었는데 지금과 같은 골키퍼 포함 두 명으로 바뀌었다. 과거와 같은 전술로는 실점해서 팀이 패할 수밖에 없었고 양 측면의 하프백은 인사이드 포워드를 견제해야 했으며 아웃사이드 포워드들은 풀백을 견제해야 했다. 센터 하프는 팀의 빌드업을 맡는 동시에 센터 포워드를 막아야 했는데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하느라 다른 수비수들과는 다르게 수비에 집중할 수 없었으며 센터 포워드들에겐 득점 찬스가 많이 나왔다. 그렇다고 풀백으로 센터 포워드를 견제하자니 아웃사이드 포워드들의 중앙 침투를 허용하게 되기에 사용하기 어려운 전술이었다.

그런 문제 때문에 센터 포워드를 효율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잉글랜드에서는 허버트 채프먼이 센터 하프를 양 풀백 사이로 내리며 WM의 대형을 구축했다. 잉글랜드 축구계에서는 이때 내린 센터 하프를 오늘날의 센터백의 원류로 보고 센터 하프가 내려가며 좌우로 벌려진 풀백을 측면 수비수의 원류로 본다.

 

 

훗날 세계 축구계의 정석 자리를 차지한 WM 시스템



WM 시스템은 30년대 초반에 전 세계에 유행하며 축구계의 정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고전적인 WM을 따르기 거부한 중유럽 축구계가 내세우는 스위칭 플레이에 몰락한다. WM은 기본적으로 수비 진영을 공격 진영에 맞춘 대인 방어 시스템인데 상대 포워드들이 서로 위치를 바꿔서 공략하니 상대 공격수를 따라가다가 수비 대형에 균열이 생기고 이때 생긴 빈틈을 상대가 상대가 노려서 득점한다. 대표적인 경기가 1953년과 1954년에 걸쳐서 열린 잉글랜드와 헝가리의 경기, 일명 세기의 매치였다. 헝가리의 스위칭 플레이는 잉글랜드가 내세우는 WM 시스템의 대인 수비 체제를 마음껏 비웃으며 1차전 웸블리에서는 6-3 대승을, 2차전 부다페스트에서는 7-1 대승을 거뒀다.

 

 

3-1.스위칭 플레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잉글랜드



이에 축구계의 선구자들은 대인방어 만능주의에서 점점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상대가 누가 오더라도 자신의 지역을 잘 막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 지역방어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헝가리 출신의 명장 벨라 구트만은 과거 헝가리 대표팀의 레프트 하프 요제프 자카리아스가 수비 진영으로 내려가며 일시적으로 네 명의 수비진이 수비하는 그림을 생각했다. 그리고 하프백 중 한 명을 아예 수비라인으로 내리며 포백 시스템을 앞세웠다. 구트만은 상 파울루의 감독을 맡아 포백 시스템을 정립하며 소속팀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이를 본 브라질 대표팀의 감독 비센치 페올라는 레프트 하프였던 일데랄두 베우리니를 수비라인으로 내리고 인사이드 포워드였던 지지를 중앙 미드필더로 내리며 포백 시스템의 원류인 4-2-4 시스템을 재창했고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이는 신예였던 펠레의 기용과 함께 브라질 축구계가 세계 축구의 헤게모니를 주도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1957 코파 아메리카 시절에 보여준 브라질의 WM과 1958 스웨덴 월드컵 시절에 보여준 브라질의 4-2-4 시스템




펩 과르디올라

 

WM을 이야기했으니 이제 펩 과르디올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다.

 

 



펩 과르디올라는 크루이프의 적통격의 지도자로 2008-09 시즌에 바르셀로나 1군 팀 감독으로 부임한 이래 수비 축구의 유행을 부수고 공격 축구의 유행을 선도한 선구자였다. 요한 크루이프의 크루이프즘을 계승, 발전시키며 높은 라인에서의 짧고 빠른 패스로 점유율을 가져가며 상대의 공격할 틈을 주지 않으며 주도권을 가져가는 축구를 펼쳐 세계 축구계를 뒤흔들었고 결국 2009년 한 해 동안 전설적인 6관왕을 이뤄냈다.

 

그가 현대 축구에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한데 그가 지도자로 등장하기 직전인 2000년대만 하더라도 센터백과 골키퍼는 고전적인 역할이 가장 중요했으며 발밑과 패싱력에 대한 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밀렸다. 그리고 지금처럼 전반전부터 수비라인을 하프라인까지 끌어올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상대적으로 득점하긴 어려웠고 수비하기는 편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펩의 바르셀로나가 성공가도를 달린 뒤로는 축구계가 많이 달라졌다. 수비라인은 높아졌다. 그렇기에 센터백은 고전적인 역할은 물론 우수한 발밑과 정밀도 높은 패싱력을 갖춰 궁극적으로 볼을 상대에게 넘기지 않아야 높은 레벨에서 경쟁력이 있었다. 수바라인의 높이와 센터백이 영향을 받으니 골키퍼도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수비라인이 높아지자 골키퍼는 이전보다 더 넓은 커버범위를 커버해야 했으며 정확한 킥을 통해 아군의 볼소유를 도우며 과거 축구에서 리베로가 했던 역할을 부여받았고 세간에서는 이를 두고 스위퍼 키퍼라고 했다. 이 유행 역시 펩 과르디올라가 주도했다.

 

 

상: 2006 독일 월드컵 부폰의 히트맵 / 하: 2014 브라질 월드컵 노이어의 히트맵



정발 윙어에서 역발 윙어로 바뀌는 과도기에 데뷔한 펩은 확실한 골잡이였던 에투를 내치고 컴프리트 포워드였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영입했으나 메시의 펄스 나인이 가능성을 보자 즐라탄마저 밀어내고 중앙과 측면에서의 스위칭 플레이에 강점을 보인 다비드 비야를 영입하며 크루이프마저 포기했던 펄스나인을 구사했고 이에 따라 정발 윙어 대신 역발 윙어를 택하는 클럽들이 늘어났다. 심지어는 펩의 축구에 반대되는 축구를 한다는 무리뉴조차도 고전적인 스트라이커 이과인 대신 연계형 공격수 벤제마를 중용해 측면 공격수 호날두의 화력을 극대화하며 펩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2010-11 시즌 펩의 FC 바르셀로나, 펩의 이상향을 가장 잘 보여준 시즌이다.



펩 과르디올라가 다른 철학자 스타일의 감독들과 다른 점은 자신의 전술에 잡하먹히지 않고 항상 진화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펩의 영향으로 정발 윙어가 자취를 감췄으나 펩은 이를 버리지 않고 플랜 B로 사용하는 기민함을 보였는데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직을 맡았던 시절에 기존에 펩이 보여준 축구가 파훼당할 기미가 보이자 더글라스 코스타와 코망을 정발 윙어로 배치해 레반도프스키의 머리를 노리는 플레이를 활용하기도 했으며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사네와 스털링, 그리고 포든을 정발 윙어로 기용하며 재미를 보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이 끝낸 정발 윙어 기용을 자신이 다시 가공해서 쓰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도 계속 진화하는 펩 답게 이번에는 70년 전에 유행했던  WM 시스템을 들고 나왔다. 이번시즌 펩은 워커와 칸셀루의 부진으로 인해 (결국 칸셀루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임대 이적하기에 이른다.) 기존에 센터백 자원이었던 아칸지와 아케를 풀백으로 기용하는 실험을 했는데 이 실험이 성공하자 기존에 센터백이었던 스톤스를 과감하게 3선으로 올리고 아칸지와 아케를 좌우 풀백으로 활용하며 WM 시스템을 선보였다. 이 WM 시스템은 실로 대단했는데 리버풀을 상대로는 홀란과 베르나르두 실바 대신 알바레스와 마레즈를 선발하고도 예전 헝가리를 연상시키는 압도적인 스위칭 플레이를 보이며 68%의 점유율을 가져가며 단 한 개의 유효슈팅만 내줬을 정도로 압도하며 4-1 대승을 거두었다. 센터백으로 인식되던 스톤스는 이 경기에서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022-23 시즌 프리미어리그 vs 리버풀전 4-1 승리



2022-2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는 리버풀 시전보다 수비라인을 낮게 내렸다. 공격진에도 변화를 줬는데 센터 포워드에는 스위칭 플레이에 능한 알바레스보다는 확실하게 골을 노리는데 더 집중하는 홀란을 기용했고 아웃사이드 라이트에는 수비가담이 약한 마레즈보다는 훨씬 풍부한 활동량을 가져가는 베르나르두 실바를 기용했다. 펩의 노림수는 적절했다. 원래 펩이 라인을 올리면 역습을 하려고 준비했던 투헬의 수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바이에른의 센터백들은 홀란을 의식하며 움츠렸고 베르나르두 실바는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바이에른의 왼쪽 공격 첨병인 알폰소 데이비스를 무력화시켰다. 특히 리버풀전에서는 8번처럼 움직였던 스톤스는 바이에른 전에서는 적극적으로 수비라인 커버에 가담하며 두줄 수비 불록을 쌓아 바이에른의 공격진을 무력화시켰으며 이에 상대의 실수와 이를 놓치지 않고 3-0 대승을 거두었다. 홀란 역시 미끼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며 그릴리시와 실바, 귄도안의 침투를 돕기도 했다.

 

 

2022-2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vs 바이에른전 3-0 승리



펩은 스톤스의 기용을 통해 팀의 두 번째 센터백의 원류가 WM 시스템의 하프백 중 한 명이 내려갔으며 그 이유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최고 수준의 무대에서 뛰는 현대 축구의 센터백들은 평균적으로 그 시대의 하프백들보다 볼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으며 스톤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펩은 이를 스톤스에게 적용했다. 펩은 과거의 하프백들보다 다재다능한 스톤스를 매개로 축구 역사에서의 네 번째 수비수의 역할을 역재생했다. 그렇기에 리버풀전에서는 전진형 하프백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적극적으로 올라가 볼 소유에 도움을 줬으며 바이에른을 상대로는 적극적으로 내려가 수비 블록 형성에 도움을 주며 과거 매직 마자르 체제의 자카리아스나 1958 월드컵 브라질의 일데랄두 베우리니처럼 네 번째 수비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스톤스는 팀 컨셉에 따라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펩의 WM 시스템의 성공을 도왔다.

 

그리고 귄도안에게는 인사이드 포워드 포지션에서 중앙 미드필더 역할을 부여하며 3선과 2선의 볼 순환을 돕는 역할로 기용한 부분에서는 마치 1937년 독일 대표팀의 약진에서의 프리츠 스체판의 활용법과 1958 브라질 월드컵의 지지 활용법이 생각났다. 전방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하는 공격적인 인사이드 포워드 케빈 더 브라위너와 하프백의 사이를 적절하게 이어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아이디어의 창시자 나겔스만은 실패했던 이유

 

사실 이 시스템은 2021-22 시즌, 알폰소 데이비스가 부상당하며 전분 레프트백의 부재 상황에서 율리안 나겔스만이 먼저 꺼내든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나겔스만의 WM은 어딘가 부실했다. 오늘날의 8번 미드필더보다는 센터백에 더 가까운 역할인 하프백에 공격형 미드필더인 무시알라나 공격형 미드필더 출신의 3선 미드필더 레온 고레츠카를 기용했다. 이들은 나름대로 중원에서 볼 경합에 능한 선수들이지만 센터백 자리까지 내려가서 수비라인 커버를 하는 부분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자연스레 키미히는 포백 보호와 후방 플레이메이킹을 모두 도맡아야 했다. 이런 상황은 키미히가 과부하가 걸리기  딱 좋았다. 차라리 무시알라와 고레츠카는 사네와 뮐러가 기용되었던 인사이드 포워드 라인에 기용되어 3선과 2선의 볼 순환을 돕는 용도로 사용했어야 했다. 그들은 펩이 귄도안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기용되어야 했으나 나겔스만은 8번 성향과 10번 성향이 짙은 그들을 펩이 스톤스를 기용하는 방식으로 기용했는데 맞지 않았던 옷을 입었으니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나겔스만이 먼저 선보였던 WM 시스템



알폰소 데이비스가 없는 상황에서 나겔스만은 WM의 양쪽 풀백에 뤼카, 파바르를 기용한 것은 좋았다. 그러나 센터하프에는 그 당시 그나마 안정적이었던 쥘레를 기용하고 다소 수비적인 부분에서 불안하지만 우수한 발밑과 볼 소유를 겸비한 우파메카노를 키미히의 파트너로 기용하는 게 나았다. 네 번째 수비수이자 두 번째 센터백이 하프백에서 왔음을 알았다면 말이다. 하프백을 단순하게 미드필더로 해석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는 말이다. 대다수의 하프백은 오늘날의 미드필더보다는 1차 저지선의 수비수에 더 가까웠지만 나겔스만은 이를 간과한 것 같았다.

1년 전 나겔스만의 아이디어는 나름대로 좋았지만 디테일적인 부분에서 아쉬웠다. 물론 확증편향일 수 있지만 적어도 그 두 사람의 WM 시스템에서의 선수기용을 본 결과 펩은 축구 역사의 발전 과정을 꿰고 있다는 게 보이고 반대로 나겔스만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취약한 부분이 보인다.

온고지신을 하려면 첫째는 과거 시대에서의 해당 현상에 대한 변화과정을 잘 이해해야 하며 두 번째로는 그것을 현대에 잘 대입해야 한다. 현대의 센터백들이 그 당시의 하프백보다 평균적으로 우수한 발밑을 가진 시대를 잘 이용한 펩, 그렇지 못한 나겔스만에서 현대식 WM의 주인의 자리는 펩이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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