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식 4-3-3의 원조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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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식 4-3-3의 원조는 누구인가?

토르난테 2023. 4. 1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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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현대 축구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포메이션을 물어본다면 십중팔구 4-2-3-1 시스템과 4-3-3 시스템을 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 두 포메이션을 보편적으로 쓰인다.

특히 4-3-3 시스템은 아약스-바르셀로나의 토털 풋볼을 상징하는 포메이션으로 잘 알려졌으며 2000년대에 처음 유행한 4-2-3-1 시스템에 비해 더 오랜기간 유행하고 있는 포지션이다.

보통은 이 시스템의 원류를 리누스 미헬스로 알고 있다. 하지만 리누스 미헬스는초년에는 4-2-4 시스템의 신봉자였으나 라이벌 클럽 페예노르트의 감독 에른스트 하펠이 쓰는 4-3-3 시스템을 도둑질했다는 조롱을 듣기도 한다. 실제로도 에른스트 하펠이 덴 하그와 페예노르트에서 먼저 사용했다.

 

 



그럼 4-3-3 시스템의 원조는 도대체 누굴까?


1. 칼 라판의 베로우 시스템

 

1930년대 유럽 대륙에서 2-3-5 시스템이 유행하던 시절, 칼 라판은 아마추어팀 세르베트를 이끌고 있었다. 당연히 프로 선수들에 비해 아마추어 선수들의 개인 기량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칼 라판은 우수한 전략 전술을 고안하면 보통 수준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모인 팀이 수준급의 선수들이 모인 팀을 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세르베트는 상술했듯이 세미프로들로 구성된 팀이었기에 이런 방식의 정면 대결에서는 승산이 없었다. 라판은 이에 새로운 발상을 한다. "선 수비 후 역습 축구"

라판은 2-3-5 대형에서 세 명의 하프백 중 좌우 윙하프를 풀백이 있는 후방에 가깝게 내렸으며 조금 더 원활한 역습을 위해 전방에 있는 인사이드 포워드를 미드필더 지역으로 내리면서 오늘날의 4-1-2-3과 유사한 형태의 시스템을 갖췄다. 이 시스템은 빗장이라는 뜻의 베로우(Verrou) 시스템이라 불렀다.


1931년 플레잉 코치로 처음 세르베트에 부임한 이래 1935년까지 다섯 시즌을 머물면서 1932-33 시즌과 1933-34 시즌에 스위스 리그 우승을 하는 기적을 이루어냈으며 1935-36 시즌을 앞두고 그라스호퍼 클럽으로 떠나서 다섯 번의 스위스 리그 우승을 이루었고 1948-49 시즌에 세르베트로 돌아와 1948-49 시즌 스위스 컵 우승과 1949-50 시즌 스위스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칼 라판이 이끌었던 1938 월드컵 스위스 대표팀

 

 

클럽에서의 실적을 바탕으로 1937년부터 1963년까지 스위스 국가대표팀 감독을 겸직하게 된다. 중도에 사임했던 기간들이 있긴 하지만 그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총 12년간 재임했고 약체라 불리던 스위스 대표팀을 이끌고 1938 이탈리아 월드컵과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을 이뤄냈다.

라판의 이 대형은 다소 원시적이지만 현대적인 4-3-3의 밑그림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2. 셀레상만의 독특한 4-2-4 시스템

 

 

헝가리 국적의 벨라 구트만 감독이 브라질에 머문 동안 만들어낸 4-2-4 시스템은 오늘날 4-4-2 시스템 및 4-2-3-1 시스템의 아버지로 통함은 물론 스위칭 플레이에 대항해 대신방어 시스템 대신 지역방어 시스템을 채택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상 파울루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뤄냈다.

이때 브라질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비센치 페올라는 이 4-2-4 시스템을 받아들였는데 단순히 받아들임에 그치지 않고 4-2-4 시스템의 레프트윙에 인사이드 레프트와 아웃사이드 레프트를 모두 플레이할 줄 아는 마리우 자갈루를 중용했는데 실제로 자갈루는 중원으로 내려와 플레이하는데 익숙해 브라질의 원활한 볼 소유를 도왔다. 자갈루가 이동하면서 빈자리는 레프트백 니우통 산투스의 오버래핑으로 메웠으며 원래 레프트 하프 출신이었던 센터백 베우리니는 대단한 커버력으로 니우통 산투스가 공격할 수 있게 수비라인을 잘 커버했다.

 

 

1958 월드컵 페올라가 이끌던 브라질 대표탐



이런 복잡한 스위칭 플레이는 난이도가 높았고 조금만 실수해도 무너지는 단점이 있었는데 이를 지휘하는 인사이드 포워드 출신의 중앙 미드필더 디디는 팀의 실질적인 리더로서 선수들의 위치와 간격을 잘 조정하며 브라질 대표팀의 두뇌 역할을 맡았다. 심지어 경기 중 자주 조는 버릇이 있었던 페올라 감독이 조는 것을 눈치채면 자신이 직접 감독 역할도 겸했던 훌륭한 리더였다.

브라질 대표팀은 왼쪽 라인과 훌륭한 두뇌 디디, 그리고 천재적인 골 감각과 축구 지능을 겸비한 펠레 덕분에 4-2-4 대형에서 필요하다면 4-3-3 대형이나 WM 대형으로도 바뀔 수 있었다. 페올라가 잘 짜여진 4-3-3과 같은 4-2-4라 말했던 이런 변화무쌍한 대형을 가진 축구를 유럽 팀들은 막을 수 없었고 브라질 대표팀은 이 전술을 바탕으로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 그리고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줄리메 컵을 영구소장했다.

 


3. 4-3-3 대형으로 네덜란드 무대를 강타한 에른스트 하펠

 

오스트리아 대표팀의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명장 하펠은 선수시절 압박 축구의 선두주자였던 소련과 자주 경기를 하며 압박축구를 실감했는데 지도자로 전환한 이후 네덜란드 무대에서 활약하며 4-2-4 시스템보다 조금 더 압박에 용이한 4-3-3 시스템을 개발했다.

 

 

하펠이 이끌던 1969-70 시즌 페예노르트 대형



실제로 이 4-3-3 시스템으로 ADO 덴하흐의 약진을 이끌며 컵대회 우승을 이뤄냈고 페예노르트에서는 1969-70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과 1970-71 시즌 에레데비시 우승을 이뤄냈는데 이때 네덜란드 무대는 하펠이 고안한 4-3-3 시스템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아약스의 리누스 미헬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대 아약스식 토털풋볼을 계승한 팀들이 메인 플랜으로 애용했던 4-3-3 시스템은 페예노르트의 하펠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결론

 

현대의 다양한 4-3-3은 과거에 있던 다양한 축구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확실하다. 암스테르담-카탈루냐-맨체스터에서 이어지는 펩과 크루이프의 축구를 가장 잘 구현한 4-3-3 시스템은 브라질의 스위칭 플레이와 하펠의 압박 대형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와 상반되는 주제 무리뉴 1기 시절 첼시에서 보여준 4-3-3 시스템은 칼 라판이 보여준 베로우 시스템의 현대화 버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닮았다.

항상 말하지만 현대의 축구전술을 완벽하개 이해하려면 역시 변천과정을 잘 섭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변화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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