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공격수 Top 10

국가의 영웅들/독일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공격수 Top 10

토르난테 2025. 2. 9.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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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준일은 2025년 2월 9일입니다.

 


10위 막스 모를로크

 


생년월일: 1925년 5월 11일
A매치 기록: 26경기 21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FC 뉘른베르크

1950년대 독일 무대 최고의 스타로 명성을 날렸던 인사이드 라이트로 우수한 볼 간수 능력과 드리블 돌파로 수비진을 교란하는데 능했으며 강력한 슈팅으로 직접 득점에도 능했다.

선수 생활 전부를 뉘른베르크에서 보내며 944경기에 출전해 588골을 득점하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모를로크는 남부 오베리가 6회 우승과 독일 챔피언십 2회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1961년에는 독일 챔피언십 우승을 이끈 활약을 인정받아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1991년에는 뉘른베르크의 홈구장 이름을 막스 모를로크 스타디온으로 이름을 바꿨을 정도로 팬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모를로크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1954 스위스 월드컵 서독 대표팀의 주전 멤버로 프리츠 발터와 함께 2선을 구성해 베른의 기적이라 불리는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9위 클라우스 알로프스

 


생년월일: 1956년 12월 5일
A매치 기록: 56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FC 쾰른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롱런한 다재다능한 공격 자원으로 우수한 드리블과 경이로운 슈팅 스킬을 앞세워 활약했으며 본 포지션인 처진 공격수는 물론이고 양 측면과 최전방도 효과적으로 소화할 수 있었던 다재다능한 자원이다.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낸 클라우스 알로프스는 동생인 토마스 알로프스와 함께 공격을 이끌며 DFB포칼 2연패 및 1978-79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고 FC 쾰른에서는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누리며 1982-83 시즌 DFB포칼 우승 및 1985-86 시즌 UEFA컵 준우승 및 득점왕을 이뤄냈다.

그리고 마르세유에서는 리그앙 우승을 이뤄냈고 말년에는 레하겔 체제의 베르더 브레멘에서 노익장을 과시했는데 1990-91 시즌 DFB 포칼 우승, 1991-92 시즌 UEFA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92-93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알로프스 개인도 분데스리가 득점왕 2회 수상 및 키커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는데 특히 키커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서는 각자 다른 3개의 클럽에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1회 선정된 알로프스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루메니게, 흐루베쉬, 푈러 등과 함께 공격진을 이뤄 활약했는데 UEFA 유로 1980 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팀의 결승행에 공헌하며 프랑스 풋볼이 선정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8위 미로슬라프 클로제

 


생년월일: 1978년 6월 9일
A매치 기록: 137경기 71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2000년대와 2010년대 디 만샤프트를 대표했던 스트라이커로 우수한 점핑력을 활용한 뛰어난 헤더로 많은 골을 득점했으며 깔끔한 원터치 패스를 활용해 동료 공격수와의 유려한 연계 능력으로 분데스리가에서 도움왕만 두 번을 올려놨을 정도로 기회 창출에도 능했던 완성형 공격수였다.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데뷔해 베르더 브레멘에서 전성기를 보낸 클로제는 이 시기에는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에서 우승하지 못했지만 2005-06 시즌에는 득점왕, 도움왕, 분데스리가 MVP를 석권했고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2회 선정 및 분데스리가 도움왕 2회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루카 토니, 프랑크 리베리와 함께 공격을 이끌며 두 번의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으나 이후 노쇠화와 부진으로 고메스와의 경쟁에서 밀려난 클로제는 라치오로 이적해 권토중래를 노리며 부활했는데 2012-13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은 물론 볼로냐를 상대로 한 경기 다섯 골을 넣는 기염을 토했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A매치 통산 최다 득점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클로제는 2002 한일 월드컵 때 무려 5골을 넣으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2006 독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각각 5골과 4골을 넣으며 팀이 3위에 오르는데 공헌했고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전에서는 자신과 타이를 이루던 호나우두가 보는 앞에서 월드컵 개인 통산 16호 골을 득점하며 대회 우승에 기여했다.

 

7위 루디 푈러

 


생년월일: 1960년 4월 13일
A매치 기록: 90경기 47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1980년대 중후반 유럽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영리한 움직임과 매끄러운 볼 터치로 상대 수비를 제치고 페널티 박스에 침투했고 머리와 양 발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득점하는데도 능했음은 물론 침착하기까지 했기에 이탈리아 언론은 그를 두고 날아다니는 독일인이라고 지칭했다.

베르더 브레멘에서 데뷔해 월드클래스 공격수로 성장한 푈러는 브레멘에서 활약할 당시 무려 세 시즌이나 리그 20골을 넘겼으며 1982-83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했음은 물론 1983년에는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1985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11위를 기록하는 등 독일 최고의 공격수로 군림했다.

이후 당대 최고 레벨의 리그인 이탈리아 세리에 A의 AS 로마로 이적해서는 지안니니와 함께 에이스로 활약하며 1990-9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푈러 개인도 그 해에 UEFA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마르세유에서는 1992-9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이후 마르세유가 승부조작 혐의로 강등당하자 레버쿠젠으로 이적해서 그곳에서 커리어를 마감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루디 푈러는 대표팀에서 각각 세 번의 월드컵과 유로에 참가했는데 UEFA 유로 1984에서 팀은 조기 탈락했지만 푈러 개인은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 교체 출전해 팀의 흐름을 바꾸며 분전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레이카르트와의 다툼으로 퇴장당하기도 헸지만 준수한 활약으로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마지막으로 1994 미국 월드컵에서도 두 골을 추가해 개인 통산 월드컵 8골을 기록했다.

 

6위 에른스트 쿠조라

 


생년월일: 1905년 10월 16일
A매치 기록: 12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로얄 블루스에게 중원에 스체판이 있다면 공격에는 쿠조라가 있었다. 정교한 드리블과 정확하면서도 강력한 슈팅력을 모두 갖췄으며 공격진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였으며 레비어 더비가 독일 내에서 치열해진 이유로는 나치가 쿠조라가 도르트문트로 이적할 수 있다는 루머를 퍼트려서였다는 설도 있었을 정도였다.

1930년대 샬케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공격진의 핵심이자 주장으로 명성이 높았던 쿠조라는 가울리가 베스트팔렌 11회 우승과 6번의 독일 챔피언쉽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36-37 시즌에는 독일 챔피언쉽과 DFB포칼을 동시에 우승하며 샬케를 독일 최초의 도메스틱 더블 팀으로 올려놓았다. 쿠조라 개인도 샬케 구단 역대 최다 득점과 통산 출전 2위에 랭크되었으며 1999년에 선정된 샬케의 세기의 일레븐과 명예의 주장에 동시에 선정되었다.

다만 쿠조라는 디 만샤프트에서 큰 족적을 남기진 못했는데 감독 오토 네어츠가 자신의 성향과 샬케 선수들이 맞지 않아서 그들을 기용하지 않기도 했지만 쿠조라의 제외는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네어츠가 쿠조라에게 "너는 독일 대표팀을 위해 뛰지 않는다."라고 지적하자 쿠조라가 "내 엉덩이나 핥아라"라고 응수하자 이에 분노해 뽑지 않아 쿠조라의 대표팀 커리어는 초라했다.

 

5위 위르겐 클린스만

 


생년월일: 1964년 7월 30일
A매치 기록: 108경기 47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90년대를 풍미한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페널티 박스에서 우수한 슈팅 스킬과 냉정침착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엄청난 존재감을 뽐냈는데 특히 환상적인 발리 슈팅이나 바이시클킥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능력이 뛰어나 사람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새겨지기 좋은 스트라이커였다.

특이한 성격으로 인해 팀에 잘 융화되지 못했기에 클럽을 자주 옮겨 다녔던 선수였던 클린스만은 슈투트가르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1985-86 시즌 DFB포칼 준우승과 1988-89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87-88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득점왕과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1988-89 시즌 전반기에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고 인테르 밀란에서는 생애 첫 전성기를 누리며 마테우스, 브레메와 함께 게르만 삼총사로 이름을 날리며 1990-91 시즌 UEFA컵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인테르에서 팀원들과의 불화로 아르센 뱅거 체제의 AS 모나코로 팀을 옮긴 클린스만은 그곳에서도 두 시즌 머물며 모두 두 자릿수 골을 득점했고 1994-95 시즌 토트넘 핫스퍼에서는 제2의 전성기를 누렸는데 단 한 시즌 머물렀지만 1994-95 시즌 50경기 29골을 기록했고 FWA 올해의 선수 및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괴력을 선보이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다.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서도 UEFA컵 우승과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마지막 전성기를 누렸다. 실제로도 클린스만 개인은 상술했던 1995년 발롱도르 2위를 포함해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7회 선정되어 그중 6번을 10위 안에 들었고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2회 수상했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에 7회 선정되었다.

1990년대 디 만샤프트에서는 공격진의 에이스로 군림하며 클럽에서보다도 더 대단한 활약을 펼쳤는데 UEFA 유로 1988에서 준결승에 올랐으나 네덜란드에게 아쉽게 석패했고 서울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2골 및 16강 네덜란드전 선제골을 득점해 우승에 공헌했고 UEFA 유로 1992에서도 준우승을 이뤄냈고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5골을 터트렸다. UEFA 유로 1996에서도 우승에 기여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3골을 추가하며 월드컵 통산 11골을 득점했다.

 

4위 토마스 뮐러

 


생년월일: 1989년 9월 13일
A매치 기록: 131경기 45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2010년대 독일 축구의 아이콘으로 라움도이터라는 축구계의 신조어를 창안하게 했던 공간 활용의 달인이었으며 자신이 빈 공간으로 들어가 직접 득점을 하거나 동료들에게 좋은 공간을 제공해주며 골 찬스를 만드는 데에도 능했는데 티에리 앙리는 그를 두고 "화려한 개인기? 그런 게 축구가 아니다. 뮐러가 하는 게 바로 축구다. 내 아들에게 축구를 가르친다면 나는 메시나 호날두가 아닌 뮐러를 보고 배우라고 할 것이다."라고 호평했다.

클럽 커리어를 오직 바이에른 뮌헨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으로 바이에른에서 분데스리가 10연패를 포함해 11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포칼 우승 6회와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를 기록하며 도메스틱 더블 4회와 트레블 2회를 모두 주전으로 이뤄내 30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토마스 뮐러 개인도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 4회 선정, 분데스리가 도움왕 4회 수상은 물론 바이에른 한 클럽에서만 200골 200도움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는데 한 클럽에서 200골 200도움을 기록한 선수는 공식적으로는 리오넬 메시와 토마스 뮐러가 유이하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UEFA 유로에서는 약세를 보였지만 월드컵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여줬던 뮐러는 2010 남아공 월드컵 득점왕과 신인상, 대회 베스트 일레븐을 모조리 휩쓸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디 만샤프트의 월드컵 우승의 일등 공신으로 호평받으며 실버볼을 수상했다. 일각에서는 리오넬 메시 대신 토마스 뮐러가 골든볼을 받아야 했다는 주장도 있었을 정도로 훌륭한 퍼포먼스였으며 이때의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2014년 발롱도르 5위에 랭크되었다.

 

3위 우베 젤러

 


생년월일: 1936년 11월 5일
A매치 기록: 72경기 43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1960년대 독일 축구의 아이콘으로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아 우리들의 우베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인물로 공격수로서 결점이 없는 완벽한 공격수였는데 170cm의 단신임에도 헤딩에 매우 능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썼고 백 헤더와 백힐 패스, 바이시클 킥 등 고급적인 기술들을 실전에서 자유자재로 선보이기도 했음은 물론 천둥과도 같은 강력한 슈팅으로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줬다. 여기에 스피드도 빨랐고 강력한 리더십마저 보유했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함부르크에서 보낸 젤러는 오버리가 노르트 9회 우승과 1959-60 시즌 독일 챔피언쉽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이듬해에 1960-61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4강에 진출했으나 바르셀로나에게 아쉽게 탈락했고 1962-63 시즌 포칼 우승도 이끌어냈다. 비록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에는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1963-64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기록했으며 발롱도르 10등 안에 네 번이나 들었던 우베 젤러의 활약은 당대 최고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기에 레알 마드리드와 인터 밀란에서 영입을 타진했으나 젤러가 함부르크에 대한 충성심으로 거부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주장 계보를 이어나가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젤러는 1958 스웨덴 월드컵부터 1970 멕시코 월드컵까지 네 번에 월드컵에 참가해 모두 주전으로 활약하며 모든 대회에서 득점을 기록했으며 특히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선 주장으로 디 만샤프트를 이끌고 결승에 진출하는 활약을 보여줬다.

우리들의 우베라 불렸던 서독 축구계의 인기 스타 우베 젤러는 키커 랑리스테 월드클래스 등급에 14회 선정되는 위업을 달성했고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3회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5회 선정되어 1960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3위에 오르며 포디움에 들었다.

 

2위 칼하인츠 루메니게

 


생년월일: 1955년 9월 25일
A매치 기록: 95경기 45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8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피지컬 활용 능력과 드리블, 슈팅, 헤더 모두 우수했으며 공격수로서 결점이 없는 완벽한 공격수임과 동시에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겸비한 완성형 선수였으며 독일의 펠레라 불리며 80년대 유럽 축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1974년에 데뷔해 1970년대 황금기 막바지부터 활약했던 루메니게는 암흑기를 거치며 다시 돌아온 브라이트너와 함께 브라이트니게 시대를 이끌며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을 각각 두 번 우승했고 유러피언 컵에서도 2회 우승과 1회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1980-81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도 올랐고 이후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한 뒤에도 세리에 A 정상급 선수로 활약했다.

독일과 이탈리아 무대를 호령했던 루메니게 개인도 키커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7회 선정되었으며 옹즈 몽디알이 선정한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월드 베스트 일레븐 5회 선정 및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8회 선정 및 옹즈도르 2회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디 만샤프트에서는 1978 멕시코 월드컵에 처음 주전으로 출전했던 루메니게는 UEFA 유로 1980에서 차원이 다른 기량을 보여주며 핵심 선수로 우승해 발롱도르를 획득했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부상을 달고 뛰었음에도 5골이나 기록하며 월드컵 준우승과 브론즈 볼을 수상했음은 물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다.

 

1위 게르트 뮐러

 


생년월일: 1945년 11월 3일
A매치 기록: 62경기 68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테크닉, 좋은 신체 조건까지 어느 것도 갖추지 못했으나 완벽한 축구 지능과 훌륭한 골감각과 위치 선정, 그리고 동료를 이용하는 영리한 플레이를 펼치며 득점은 물론 도움도 많이 기록했던 완성형 공격수였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데뷔해 선수 생활 대부분을 보낸 게르트 뮐러는 압도적인 득점력을 바탕으로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각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컵 위너스컵 우승과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뤄냈고 바이에른 뮌헨 통산 최다 득점자를 비롯해 분데스리가에서 골에 관련된 기록 대부분은 게르트 뮐러의 타이틀이다. 비록 현재는 레반도프스키가 갱신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한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했음은 물론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7회 수상했으며 유러피언 컵 득점왕도 4회 수상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자신의 첫 메이저 대회인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펠레나 자이르지뉴 같은 쟁쟁한 공격수들을 제치고 10골이나 넣으며 득점왕을 수상한 게르트 뮐러는 이때의 활약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UEFA 유로 1972에서도 4골로 득점왕에 올랐으며 1974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결승전에서 미헬스와 크루이프의 네덜란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방점을 찍었다. 유로와 월드컵을 모두 석권하며 화려하게 국가대표팀을 은퇴했다.

특히 결승전에 강력한 모습을 보이며 13회의 결승전에서 전승을 기록했음은 물론 11골을 득점했으며 그중 결승골 5개를 기록한 대기록을 세운 게르트 뮐러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으며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8회 선정되었고 국가대표팀과 클럽을 포함해 13회나 득점왕을 수상했으며 1970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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