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공격수 Top 21~30

국가의 영웅들/독일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공격수 Top 21~30

토르난테 2025. 2. 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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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준일은 2025년 2월 7일입니다.

 


30위 프레디 보비치

 


생년월일: 1971년 10월 30일
A매치 기록: 37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VfB 슈투트가르트

1990년대 후반에 이름을 날린 스트라이커로 큰 키를 이용한 헤더와 양발 모두를 사용한 정확한 슈팅을 바탕으로 온몸을 활용해 득점할 수 있었던 타겟 스트라이커였다.

1990년대 슈투트가르트의 간판스타로 활약하며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에우베르와 함께 매직 트라이앵글이라는 공격 트리오를 형성해 슈바벤의 분데스리가 4위에 2회 올렸고 1996-97 시즌 DFB포칼 우승과 1997-98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이 과정에서 1994-95 시즌부터 1997-98 시즌까지 네 시즌 연속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1995-96 시즌에는 17골로 득점왕을 수상했고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보비치는 독일 대표팀에서도 주로 백업으로 소집되었는데 백업 멤버로 UEFA 유로 1996 우승을 경험했다.

 

29위 카이 하베르츠

 


생년월일: 1999년 6월 11일
A매치 기록: 55경기 20골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바이어 레버쿠젠

2010년대 후반 분데스리가를 강타한 초신성으로 빠른 스피드와 높은 공간 지각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1선 침투를 이뤄내며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과 왼발로 마무리 짓는 부분에 모두 능숙했으며 왕성한 지구력을 바탕으로 전방압박에도 성실하게 가담했다.

레버쿠젠에서 데뷔해 초년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레버쿠젠 유스팀이 만들어낸 최고의 역작이라 평가받았던 하베르츠는  2018-19 시즌 팀의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이뤄내며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2019-20 시즌에는 UEFA 유로파 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첼시로 이적해서는 2020-2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며 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기여했음은 물론 UCL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슈퍼컵과 클럽 월드컵에서도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현재는 아스날에서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는 중이다.

2016년 프리츠 발터 메달 U-17 은메달 및 2018년 프리츠 발터 메달 U-19 금메달을 목에 걸며 주목받은 하베르츠는 독일 대표팀에서도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는데 UEFA 유로 2020에서는 조국의 토너먼트 진출애 큰 공을 세웠고 2022 카타르 월드컵 예선에서는 양호한 모습을 보였지만 본선에서는 코스타리카전에서 팀의 승리를 이끈 것을 제외하면 부진한 활약을 펼쳤다. 그래도 UEFA 유로 2024에서도 주전으로 중용되었다.

 

28위 페터 두케

 


생년월일: 1941년 10월 14일
A매치 기록: 63경기 15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카를 차이스 예나

Schwarzer Peter, 즉 검은 페터라 불리며 동독 국민들의 인기스타로 두각을 나타낸 동독 축구사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많은 슈팅 기회를 포착했으며 동료 공격수들과의 연계플레이도 우수했다.

선수 생활의 전부를 카를 차이스 예나에서 보낸 원 클럽맨 두케는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DDR 오베리가와 FDGB 포칼에서 각각 3회 우승을 이뤄냈고 두케 개인도 1963년 동독 오베리가 최고 득점자로 군림했으며 1965년에는 동독 올해의 스포츠맨을, 1971년에는 동독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되었다.

DDR 오베리가 통산 득점 3위에 오른 두케는 '소스 카로이의 시대'라 불린 1960년대 동독 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했고 소스 카로이 감독이 물러난 이후에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1972 뮌헨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거는데 공헌했고 1974 서독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27위 루카스 포돌스키

 


생년월일: 1985년 6월 4일
A매치 기록: 130경기 49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FC 쾰른

2000년대 중후반 독일 축구계 정상급 공격수로 다른 부분에서는 특출나지 못했지만 우수한 왼발 킥력만큼은 당대를 통틀어서 적수가 드물었는데 왼발 각도에 걸리면 무조건 유효 슈팅은 만들어낼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전성기 시절에는 스피드도 빨랐으며 크로스와 페널티킥에도 능했다.

FC 쾰른에서 데뷔해 활약한 포돌스키는  그래도 FC 쾰른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2004-05 시즌 2.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팀의 승격을 이뤄냈고 그 과정에서 득점왕에 올랐으며 2009-10 시즌을 제외하며 모두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음은 물론 2010-11 시즌에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지만 바이에른 뮌헨과 인테르 밀란에서는 처참하게 실패했고 아스날에서도 기복이 심하며 빅클럽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다만 독일 대표팀에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부럽지 않았을 정도로 엄청난 강세를 보여 클럽에서의 약세를 극복한 포돌스키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클로제와 함께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주며 조국을 3위에 올렸고 본인은 신인상을 수상했다. UEFA 유로 2008에서는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에 선정되었고 2010 남아공 월드컵 3위, 2014 독일 월드컵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우는데 크게 공헌했다. 그리고 2017년 국가대표팀 은퇴 경기에서 만난 잉글랜드를 상대로 그림 같은 왼발 슈팅으로 득점하며 2017 독일 올해의 골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26위 슈테판 쿤츠

 


생년월일: 1962년 10월 30일
A매치 기록: 25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FC 카이저슬라우테른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 독일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전천후 공격 자원으로 빠른 스피드로 정확한 위치에 침투하며 한 박자 빠른 타이밍의 슈팅을 보여줬으며 준족이라는 점을 살려 좌우 측면 공격수도 소화할 수 있었다.

분데스리가 통산 득점 순위 8위에 랭크된 쿤츠는 보훔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냈고 바이어 위어딩겐을 거쳐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해 전성기를 맞이해 1989-90 시즌 DFB포칼 우승에 이어 1990-91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다. 쿤츠 개인도 1991년 우승 주역으로 독일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되었고 분데스리가 득점왕과 DFB포칼 득점왕에 각각 2회 선정되었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푈러와 클린스만에 밀려 오랫동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쿤츠는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서브로 나섰고 UEFA 유로 1996에서는 개최국 잉글랜드를 상대로 동점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펼치며 유로 우승컵 앙리 들로네를 거머쥐는데 큰 공을 세웠다.

 

25위 칼하인츠 리들레

 


생년월일: 1965년 9월 16일
A매치 기록: 42경기 16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한 스트라이커로 에어라 불렸을 정도로 용수철과 같은 점프력과 정확한 헤더, 그리고 단단한 체격과 뛰어난 밸런스로 절대 넘어지지 않고 완벽한 헤더를 보여줬으며 발로 때리는 슈팅도 우수했다.

당시 하부리그에 있던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데뷔해 베르더 브레멘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리들레는 레하겔 체제 브레멘의 전성기를 이끌었는데 1987-88 시즌에 18골을 득점하며 팀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카커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등 AS 로마로 떠난 푈러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워냈고 1989-90 시즌에도 UEFA컵 득점왕에 올랐다. 라치오에서도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오르는 등 준수한 퍼포먼스를 이뤄냈고 도르트문트에서도 기복은 이었지만 분데스리가 2연패에 공헌했으며 1996-97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유벤투스를 상대로 멀티골을 터트리며 도르트문트를 유럽 챔피언으로 올렸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클린스만과 푈러의 그림자가 커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리들레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교체 자원으로 우승을 경험했으며 UEFA 유로 1992에서는 3골을 넣으며 팀의 준우승에 기여했고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그러나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좋지 못했고 대표팀에서 멀어졌다.

 

24위 오토 하르더

 


생년월일: 1892년 11월 25일
A매치 기록: 15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7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독일 축구 태동기의 스트라이커로 압도적인 체격에서 나오는 파괴적인 몸싸움과 압도적인 제공권 경합을 바탕으로 엄청난 헤더와 포스트플레이를 보여줬으며 보통의 장신 타겟 스트라이커와는 다르게 발밑도 준수해 좁은 공간에서도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렸으며 장기인 헤더는 물론 오른발과 왼발을 가리지 않고 정밀도 높은 슈팅을 날려대며 온 몸이 무기임을 보여줬다.

함부르크에서 20년 가까이 활약하며 경기당 1골 이상을 득점하며 후배 젤러에 이어 구단 통산 최다 득점 2위에 랭크된 하르더는 북부 독일 챔피언십 7회 우승을 이뤄냈고 뉘른베르크와 함께 공동 우승을 차지한 1921-22 시즌을 포함한 독일 챔피언십 3회 우승을 이뤄내며 당대 독일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군림했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경기당 1골에 육박하는 득점력을 선보였다.

 

23위 오트마어 발터

 


생년월일: 1924년 3월 6일
A매치 기록: 20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FC 카이저슬라우테른

우베 젤러와 게르트 뮐러 이전에 독일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이어나가던 선수로 피지컬이 우수한 것은 아니었지만 빠른 순간 스피드와 높은 공간 이해도, 그리고 정확한 위치선정을 바탕으로 득점하기 유리한 상황을 잘 만들었으며 양발과 머리를 가리지 않고 득점할 수 있었으며 프리킥 상황에서 득점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카이저슬라우테른 통산 최다 득점자의 자리에 오른 오트마 발터는 형 프리츠 발터와 함께 구단의 공격을 이끌며 오베리가 주트베스트 9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전국단위 대회인 독일 챔피언십에도 결승에 5회 진출해 2회 우승을 이뤄내는 등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붉은 악마를 당대 독일을 대표하는 클럽으로 올렸고 오트마어 발터 개인도 1947-48 시즌 독일 챔피언십에서는 팀 동료 베르너 바슬러와 함께 대회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1950년에 재건된 서독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오트마 발터는 카이저슬라우테른의 동료들 및 헬무트 란, 한스 셰퍼, 막스 모를로크 등과 함께 호흡을 맞춰 '베른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1954 스위스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크릭스마리네, 즉 전쟁해군에서 복무하다가 무릎 부상을 입었으며 그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선수 생활 동안 지속적인 방해를 받았고 이 부상이 심해지자 은퇴했다.

 

22위 디터 뮐러

 


생년월일: 1954년 4월 1일
A매치 기록: 12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FC 쾰른

바이에른의 게르트 뮐러에 대한 쾰른의 대답으로 빠른 반응속도와 정확한 오른발 슈팅, 그리고 우수한 위치 선정 능력을 바탕으로 엄청난 득점력을 자랑했다.

쾰른에서 짧지만 굵은 전성기를 누리며 구단 통산 득점 3위에 오른 디터 뮐러는 1976-77 시즌에 34경기 34골로 득점왕에 올랐고 DFB포칼 결승전 첫 경기와 재경기에서 모두 득점하며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7-78 시즌에는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더블 우승에 공헌했는데 그 과정에서 베르더 브레멘을 상대로 6골을 득점하며 분데스리가 역대 개인 통산 한 경기 최다골 기록을 수립했다. 쾰른을 떠난 이후에는 프랑스 리그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1976-77 시즌과 1977-78 시즌 모두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득점왕에 오르며 절정의 골감각을 자랑했던 디터 뮐러는 게르트 뮐러가 은퇴한 독일 대표팀에서 잠시 주전자리를 차지했는데 UEFA 유로 1976 준결승전에서 유고슬라비아를 상대로 1-2로 뒤진 와중에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4-2 역전승에 공을 세워 결승 진출에 공헌했고 결승전에서도 팀은 패했지만 디터 뮐러는 득점에 성공해 대회 득점왕과 베스트 일레븐을 석권했다.

 

21위 울프 키르스텐

 


생년월일: 1965년 12월 4일
A매치 기록: 100경기 34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바이어 04 레버쿠젠

1990년대 독일 무대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키는 작았지만 다부진 체구를 앞세워 큰 신장의 상대 수비수들과의 볼 경합에서도 우위를 차지했으며 적절한 위치 선정과 날카로운 슈팅을 겸비했는데 경기장에 보이지 않다가도 갑자기 유령처럼 나타나 득점했다.

동독의 디나모 드레스덴에서 데뷔해 처음 두각을 나타내며 DDR 오베리가 2연패 및 FDGB포칼 2회 우승을 이뤄내며 1989-90 시즌, 마지막 동독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된 키르스텐은  독일 통일을 앞둔 1990-91 시즌에 레버쿠젠으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1992-93 시즌 DFB포칼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우승을 이뤄내는 데 큰 공을 세웠고 분데스리가에서도 비록 우승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4회 준우승을 이뤄냈고 2001-02 시즌에는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우승에 도전했으나 막판에 미끄러지며 트리플 러너업이라는 대단하면서도 아쉬운 성과를 냈다.

레버쿠젠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이자 통산 출전 2위에 오른 키르스텐은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세 번이나 올랐고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9회 받았으며 유럽 무대에서도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포함해 1993-94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득점왕과 1994-95 시즌 UEFA컵 준결승 진출 및 득점왕에 올랐다.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동독 대표팀에서 49경기 14골을 기록하며 활약했던 키르스텐은 통일 독일에서도 51경기에 출전해 20골을 기록하며 도합 100경기 34골을 기록했는데 클린스만과 비어호프에 밀려나 백업 멤버로 1994 미국 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 그리고 UEFA 유로 2000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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