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10

국가의 영웅들/독일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10

토르난테 2025. 2. 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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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준일은 2025년 2월 5일입니다.

 


10위 에베르하르트 보겔

 


생년월일: 1943년 4월 8일
A매치 기록: 74경기 24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카를 차이스 예나

동독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포워드로 평가받는 인물로 탄탄한 기본기와 유려한 볼 컨트롤로 기술적으로 높은 수준에 올라있었고 경기의 주도권을 쥐고 풀어나가는 능력도 뛰어났음은 물론 득점력도 우수해 펠레로부터 세계 최고의 레프트윙 중 한 명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칼마르크스슈타트에서 데뷔한 보겔은 데뷔 시즌부터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빠르게 주전자리를 차지했고 1966-67 시즌에는 오베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1969년에는 동독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되었다. 카를 차이스 예나에서도 전성기를 이어간 보겔은 여기서는 리그 우승을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FDGB 포칼 3회 우승 및 1980-81 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준우승도 이끌었다.

DDR 오베리가 통산 출전 1위 및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보겔은 동독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1964 도쿄 올림픽에서 조국의 동메달을 이뤄냈고 1972 뮌헨 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차지했다. 그리고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초반에는 주전으로 나섰다가 부상으로 낙마했다. 특히 1964 도쿄 올림픽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는 소련을 상대로 코너킥골을 득점하기도 했다.

 

 

9위 라인하르트 리부다

 


생년월일: 1943년 10월 10일
A매치 기록: 26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전반을 빛냈던 로얄 블루스의 윙어로 뛰어난 테크닉과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훌륭한 드리블 돌파 실력을 자랑하며 스탠리 메튜스를 보는 것 같다고 "스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샬케와 도르트문트에서 모두 맹활약해 베스트팔렌의 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분데스리가 초창기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이름을 날린 리부다는 샬케에서 활약하다 도르트문트에서 1965-66 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고 1965-66 시즌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뒤 다시 샬케로 돌아와서 1971-72 시즌 포칼 우승과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내며 1999년에 샬케의 세기의 일레븐과 명예의 주장으로 선정되었다.

측면 플레이어에게 평가를 박하게 주던 시절의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4회 선정된 리부다는 서독 대표팀에서도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발탁되었는데 팀의 측면 공격을 이끌며 1골 3도움을 기록해 조국 서독이 준결승에 오르는데 기여했다.

 

8위 베른트 횔첸바인

 


생년월일: 1946년 3월 9일
A매치 기록: 40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4kg
주 소속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70년대 독일 무대 톱클래스 레프트윙으로 인사이드 커터 유형의 선수로 측면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와 직접 슈팅을 하며 득점을 노리거나 교묘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의 반칙을 유도해 페널티킥을 유도하는 능력이 대단했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였던 횔첸바인은 그라보브스키와 함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황금 날개진을 구성하며 이름을 날렸는데 비록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DFB포칼 3회 우승과 1979-80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횔첸바인 개인도 1973-74 시즌 DFB포칼 득점왕과 1976-77 시즌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영광의 시대를 함께했던 횔첸바인은 조국에서 열린 1974 서독 월드컵에서 주전 레프트윙으로 활약했는데 결승전에서 페널티킥을 유도해 동점을 만드는데 기여하며 역전 우승에 공헌했으며 UEFA 유로 1976에도 참가해 준우승을 거뒀다.

 

7위 에른스트 레너

 


생년월일: 1912년 11월 7일
A매치 기록: 65경기 31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슈바벤 아우크스부르크

1930년대 독일 무대를 평정한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양발을 모두 잘 썼으며 이를 이용해 막강한 슈팅력으로 직접 득점에 능했으며 기술적인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하는 부분에도 능했으며 특히 코너킥의 명수로 이름을 떨쳤다.

지금은 FC 아우크스부르크로 통합된 슈바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활약한 레너는 본인의 뛰어난 퍼포먼스랑은 별개로 소속팀 멤버들의 실력이 부족해 바이에른 지역 1부 리그인 가울리가 바이에른에서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기에 더 성적이 좋은 지역 라이벌 BC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하고 싶어 했지만 소속팀에서는 당연히 이를 막았다. 1940년, 군대 문제로 베를린에 갔고 2년간 블라우바이스 90 베를린 소속으로 이적해 가울리가 베를린브란덴부르크에서 우승을 맛봤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핵심 선수였던 레너는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디 만샤프트의 준결승행에 크게 기여했고 3.4위전에서 분더팀이라 불리며 유럽 최고로 평가받았던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멀티골을 넣어 독일이 3위에 오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에는 공격의 핵심으로 활약해 1937년 헤어베르거 체제의 디 만샤프트에서 1937년 한 해 동안 10승 1무라는 성적을 이뤄냈는데 이때 브레슬라우 지역에서 덴마크를 8-0으로 대파하며 브레슬라우 엘프라 불리는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6위 마르코 로이스

 


생년월일: 1989년 5월 31일
A매치 기록: 48경기 15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0년대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현란하면서도 공간을 잘 활용하는 드리블과 교묘한 페인팅, 그리고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우수한 판단력과 동료를 활용해 찬스를 만드는 플레이메이킹 능력도 우수했던 화려함과 실속을 겸비한 윙어로 평가받았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며 분데스리가 MVP를 수상한 로이스는 이후 자신의 유스 시절을 보낸 도르트문트로 이적해 비록 리그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DFB포칼 2회 우승과 DFL슈퍼컵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2012-13 시즌에는 팀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시키면서 독일을 넘어 세계에 자신의 기량을 각인시켰으며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되었으며 2013-1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팀과 2018-19 시즌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2회 수상했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2회 선정되었다.

하지만 잦은 부상으로 꾸준히 출전할 수 없었던 점이 단점으로 평가받으며 더 불운한 건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메이저 대회는 항상 참여한 로번과는 달리 로이스는 UEFA 유로 2012에 참가해 쥰결승에 오르긴 했지만 이후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6 유로에 참가하지 못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멕시코와 대한민국에 패하며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5위 위르겐 그라보브스키

 


생년월일: 1944년 7월 7일
A매치 기록: 44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70년대 상반기 유럽 최고의 라이트 윙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지칠 줄 모르는 스테미너를 겸비했으며 상대 수비를 교란하는 드리블 돌파 능력은 물론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도 겸비해 공격형 미드필더로서도 우수한 모습을 보여주며 1977-78 시즌 전반기에는 해당 포지션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오르기도 했다.

클럽 커리어 전체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이었던 그라보브스키는 비록 리가 우승은 이루지 못했지만 DFB 포칼 2회 우승을 이뤄냈고 개인적으로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8회 선정되었고 1979-80 시즌에는 로타어 마테우스에게 살인태클이라 불릴만한 거친 태클을 당해 은퇴했으나 잔여 시즌동안 그의 몫까지 활약해준 동료들 덕분에 UEFA컵 결승전에서 묀헨글라트바흐를 이기고 우승 트로피를 들고 은퇴할 수 있었다.

서독 대표팀에서도 팀 동료이자 측면 공격 콤비 횔첸바인과 함께 뛰어난 활약을 펼친 그라보브스키는 UEFA 유로 1972와 1974 서독 월드컵을 연속으로 제패했는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해 우승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다.

 

4위 한스 셰퍼

 


생년월일: 1927년 10월 19일
A매치 기록: 39경기 15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FC 쾰른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 서독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민첩한 몸놀림과 빠른 스피드로 상대 수비수를 돌파하며 벼락같은 슈팅을 활용한 득점력을 보여주는 윙 포워드였으며 리더십도 훌륭해 소속팀 쾰른과 대표팀에서 주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FC 쾰른의 창단 멤버이자 원 클럽맨이었던 한스 셰퍼는 서부 오베리가 5회 우승과 3회 준우승, 1962-63 시즌 독일 챔피언쉽 우승과 2회 준우승, 그리고 1963-64 시즌 초대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면서 역사가 짧은 쾰른이 단시간에 명문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주장이자 핵심 선수로 이끌었고 셰퍼 개인도 1963년에는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한스 셰퍼는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란, 발터 형제, 몰록 등과 함께 매직 마자르라고 불리던 헝가리를 꺾는 베른의 기적을 이끌어내 우승을 차지했으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도 4위에 올랐고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발터의 뒤를 이어 디 만샤프트의 주장을 역임했다.

 

3위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생년월일: 1960년 4월 16일
A매치 기록: 73경기 18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FC 쾰른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화려하면서도 매끄러운 드리블과 세밀하면서도 환상적인 볼 컨트롤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킬패스와 유려한 탈압박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뛸 수 있었다.

쾰른에서 선수생활 대부분을 보냈으며 구단 통산 출전 5위와 통산 득점 6위에 랭크된 리트바르스키는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세 번이나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냈으며 DFB포칼에서도 결승에 3회 올라 1982-83 시즌에는 결승전에서  지역 라이벌 포르투나 쾰른을 상대로 결승골을 득점하며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1985-86 시즌에는 UEFA컵 결승전에 올랐으나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다.

 

1985년 독일 올해의 골의 주인공인 리트바르스키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 2회,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8회 선정되었으며 옹즈 몽디알 선정 1982년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982년 7위, 1987년 17위에 올랐는데 특히 쾰른 내에서는 세계적인 명장 리누스 미헬스와 전술적인 부분에서 갈등이 있었을 때에도 구단 보드진과 구단의 팬들은 리트바르스키의 편을 들었을 정도로 구단 내에서 엄청난 위상을 자랑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초년부터 중용된 리트바르스키는 1982년에 열린 UEFA U-21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득점왕을 달성하며 준우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도움왕과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이뤄냈고 이후 1980년대 독일의 모든 메이저대회를 주전과 서브를 오가며 참가하다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주전 멤버로 올라서며 팀의 우승에 공헌했다.

 

2위 유프 하인케스

 



생년월일: 1945년 5월 9일
A매치 기록: 39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현세대의 축구 팬들한테는 바이에른 뮌헨의 트레블을 이끈 명장으로 더 유명하지만 현역 시절에는 스트라이커와 레프트윙 두 포지션에서 모두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던 공격수였으며 당대 유럽에서 가장 빠르다고 평가받았던 엄청난 순간 스피드와 뛰어난 공간지각 능력을 활용해 상대 수비라인 뒤로 침투해 날카로운 양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전천후 공격수였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하노버에서 선수 생활을 보낸 하인케스는 특히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분데스리가 3연패를 포함해 분데스리가 4회 우승과 1972-73 DFB포칼 우승, 1974-75 UEFA컵 우승, 그리고 1976-77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분데스리가 득점왕은 물론 3대 유럽 대항전에서 모두 득점왕에 오른 이력이 있었던 하인케스는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고 특히 1974-75 시즌의 활약이 대단해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7위에 랭크되었음은 물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무려 20회 선정되며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최다 선정자로 기록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좋은 활약을 펼친 하인케스는 UEFA 유로 1972에서 게르트 뮐러와 함께 훌륭한 파트너십을 보여주며 조국의 우승에 큰 공을 세워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전술상의 이유로 베른트 횔첸바인에게 주전자리를 내줬고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다.

 

1위 헬무트 란

 



생년월일: 1929년 8월 16일
A매치 기록: 40경기 21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로트바이트 에센

1950년대 서독을 상징하는 축구선수 중 한 명으로 뛰어난 돌파력과 벼락같은 슈팅을 겸비해 상대의 골문을 위협하던 아웃사이드 라이트였으며 뛰어난 슈팅력으로 에센의 대포라 불렸다.

로트바이트 에센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추앙받는 헬무트 란은 에센에 머무는 동안 1952-53 시즌 포칼 우승과 오베리가 웨스트 2회 우승은 물론 1955 시즌에는 독일 챔피언쉽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당대 독일 최강의 팀 카이저슬라우테른과의 결승전에서는 공격수 프란츠 일잔커의 해트트릭을 도우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보여줬던 헬무트 란은 1954 스위스 월드컵 결승전에서 멀티 골을 득점해 우승에 가장 크게 기여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58 월드컵에서도 여섯 골을 기록하며 팀을 준결승에 올려놓는 활약을 보여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를 기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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