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11~20

국가의 영웅들/독일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11~20

토르난테 2025. 2. 4.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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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준일은 2025년 2월 4일입니다.


20위 마리오 바슬러

 


생년월일: 1968년 12월 18일
A매치 기록: 30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1990년대 분데스리가의 간판 윙어로 지독한 애연가였던 이유로 지구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우수한 킥력으로 데드볼 상황에 능해 코너킥 상황에서 정확한 크로스로 많은 도움을 올렸으며 직접 프리킥 상황에서는 많은 득점을 올려 경기 분위기를 뒤집는데 능했다.

한 구단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여러 구단을 떠돌았던 바슬러는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데뷔했지만 자리잡지 못해서 로트바이트 에센과 헤르타 BSC를 떠돌다가 베르더 브레멘에서 첫 전성기를 누리며 1993-94 시즌 DFB포칼 우승 및 DFL슈퍼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94-95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올랐으며 또한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브레멘에서의 뛰어난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독일 최고의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 합류한 바슬러는 3년간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2회 우승과 1997-98 시즌 DFB포칼 우승, 그리고 1998-99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해 선제골을 득점했으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백업 공격수들에게 경기 종료 직전에 연달아 실점하며 아쉽게 우승을 놓쳤고 말년에는 프로 무대에 데뷔했던 클럽인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다시 활약하며 은퇴했다.

뛰어난 킥력 덕분에 독일 대표팀에서도 준주전급으로 중용된 바슬러는 1994 미국 월드컵과 UEFA 유로 1996에 참가해 후자의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그러나 베르티 포그츠가 1998 프랑스 월드컵의 책임을 지고 감독에서 물러나자 다시는 소집되지 못했다.

 

19위 하네스 뢰어

 


생년월일: 1942년 7월 5일
A매치 기록: 20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FC 쾰른

분데스리가 역사상 가장 득점력이 뛰어났던 윙어로 측면에서 중앙으로 침투해 날카로운 왼발 슈팅과 정교한 헤더로 많은 득점을 만들어냈으며 윙어의 기본인 크로스와 드리블 돌파에도 능했다.

쾰른에서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며 구단 통산 득점 2위에 오른 뢰어는 1977-78 시즌에 이뤄낸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분데스리가 1회 우승 및 2회 준우승, DFB포칼 결승전에 6회 진출해 3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그 과정에서 DFB 포칼 득점왕을 4회 수상했으며 1967-68 시즌에는 DFB포칼과 분데스리가에서 모두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1969-70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5회 선정된 뢰어는 독일 대표팀에서는로테이션 멤버로 1970 멕시코 월드컵 3위와 UEFA 유로 1972 우승을 경험했다. 그리고 은퇴하고 지도자가 된 1988년에는 서독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서울 올림픽에 출전해 동메달을 이뤄낸 경력도 있다.

 

18위 베른하르트 클로트

 


생년월일: 1926년 10월 26일
A매치 기록: 19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1950년대 샬케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천리마 같은 스테미너와 주력을 앞세워 상대 측면을 돌파했으며 동료를 잘 활용한 우수한 연계 능력과 날카로운 크로스로 수많은 골 찬스를 만들었으며 양발로 날리는 슈팅은 물론 헤더로도 득점할 수 있었고 양쪽 아웃사이드 포워드와 인사이드 포워드를 소화할 수 있었던 만능 공격수였다.

샬케가 독일 무대 최고의 팀으로 군림하면 1940년대에 데뷔했다가 잠시 STV 호르스트엠셔로 이적했으나 다시 돌아온 클로트는 1950년대 샬케에서 왕이라 불렸을 정도로 활약하며 주장이자 에이스로서 1957-58 시즌 서부 오베리가와 독일 챔피언쉽 우승을 이뤄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샬케의 마지막 1부 리그 우승 타이틀로 남아있다. 이 덕분에 구단은 그를  팀의 역사적인 주장에게 주는 타이틀인 샬케 명예의 주장에 헌액했다.

오랜 징계가 끝나고 1950년에 서독 축구 대표팀에 대한 징계가 풀린 뒤에 서독 대표팀을 재건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클로트는 베른의 기적이라 불렸던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프리츠 발터, 막스 몰록, 헬무트 란, 한스 셰퍼라는 강력한 라인에 의해 벤치에 주로 머물며 우승을 경험했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도 헬무트 란의 백업으로 대기하며 4위를 경험했다.

 

17위 게오르크 볼케르트

 


생년월일: 1945년 11월 28일
A매치 기록: 12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30대 중반인 1970년대 하반기까지 전성기를 유지한 대기만성형 레프트윙으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적절한 타이밍에 재빠르게 침투해 위협적인 오른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인버티드 윙어였으며 간혹 볼을 끌긴 했어도 드리블 실력도 수비수 한두명은 제칠 수 있었을 정도로 대체로 우수했다.

분데스리가에서 오랜 시간 활약한 윙포워드 볼케르트는 뉘른베르크에서 1967-68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함부르크에서도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며 1975-76 시즌 DFB포칼 우승과 1976-77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 그리고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오랫동안 소집되긴 했지만 백업 멤버로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한 볼케르트는 분데스리가에서의 훌륭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대회때는 외면당하기도 했다.

 

16위 아돌프 우르반

 


생년월일: 1914년 1월 9일
A매치 기록: 21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1930년대 독일 무대를 수놓은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벼락같은 스피드로 왼쪽 측면을 가로지른 뒤 환상적인 크로스나 로켓과 같은 슈팅을 날렸으며 당대 독일 무대를 대표하는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로도 이름을 날렸으나 다소 인성에 문제가 있어 코칭스태프나 동료들과 잦은 갈등을 일으켜 오토 네르츠 체제의 대표팀에서 제외된 경험도 있었다.

1930년대 샬케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활약하며 스체판, 쿠조라 등과 함께 공격을 이끈 우르반은 가울리가 8회 연속 우승과 독일 챔피언쉽 5회 우승을 이뤄냈고 1936-37 시즌에는 DFB포칼도 제패하며 독일 무대 첫 더블 우승을 이뤄내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디 만샤프트에서도 1936 베를린 올림픽의 실패로 네르츠가 경질된 뒤 제프 헤어베어거가 감독으로 올라서자 중용받아 1937년 한 해 동안 디 만샤프트의 11전 10승 1무, 브레슬라우에서 덴마크를 상대로 8-0 대승을 거두는데 기여한 브레슬라우 엘프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샬케에 미래로 평가받으며 선수로서 탄탄대로를 걸을것으로 예상되었던 우르반은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을 맞이하며 징집되었는데 그 시대 유럽 선수들 대부분 커리어의 손해를 봤지만 우르반은 커리어를 손해 본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나치에 의해 징병되어 소련 전선으로 보내졌으며 전투 도중 소련군에게 유탄을 맞아 전사하고 말았다.

 

15위 로타어 에머리히

 


생년월일: 1941년 11월 29일
A매치 기록: 5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분데스리가 초창기를 대표하는 레프트윙으로 다부진 체구와 우수한 바디 밸런스를 활용해 상대 수비수들과의 경합 상황에서 손쉽게 우위를 점했으며 막강하면서도 정확한 슈팅력으로 무수한 득점을 이뤄내며 기관총이라 불렸으며 중앙과 왼쪽 측면의 공격수 자리를 두루 소화할 수 있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에머리히는 1962-63 시즌 독일 챔피언십 우승에 큰 공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1965-66 시즌에는 지크프리트 헬트와 함께 '끔찍한 쌍둥이'라는 공격 듀오로 활약하며 1965-66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과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에머리히는 이 시즌에 분데스리가 득점왕과 컵 위너스컵 득점왕에 올랐으며 다음 시즌인 1966-67 시즌에도 득점왕에 올랐다.

서독 대표팀에서는 짧고 굵게 활약한 에머리히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본선에서 활약하며 스페인과의 조별 리그 3차전부터 잉글랜드와의 결승까지 모든 경기에 참가해 우수한 활약을 펼치며 조국의 준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14위 세르쥬 그나브리

 


생년월일: 1995년 7월 14일
A매치 기록: 49경기 22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

최전성기 시절에는 세계구급 퍼포먼스를 보였던 측면 공격수로 판단력과 테크닉은 다소 아쉬웠지만 33.2km/h에 달하는 빠른 속도와 양발을 가리지 않는 슈팅력을 지녔는데 이를 활용해 직접 하프 스페이스를 공략하고 안으로 파고들어 우수한 슈팅력으로 득점을 노렸다. 그러나 그를 지도했던 율리안 나겔스만은 "그의 약점은 그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할 때마다 나타난다."라며 약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아스날에서 데뷔해 베르더 브레멘을 거쳐 바이에른에 입단했으나 기량이 아직 부족해 호펜하임에 임대를 다녀온 뒤, 2018-19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바이에른 선수로 활약한 그나브리는 분데스리가 5연패 및 DFB포칼 2회 우승을 이뤄냈고 2019-20 시즌에는 팀과 개인 모두 전성기를 누리며 6관왕을 달성했음은 물론 본인 역시 챔피언스리그 우승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워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의 스쿼드에 선정되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5회 선정된 그나브리는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조국의 결승 진출을 이뤄내며 은메달을 목에 걸고 득점왕에 오르는 활약을 펼쳤고 2020년대 초반에는 독일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친선전 및 예선전에서의 활약은 준수했지만 UEFA 유로 2020과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부진했고 UEFA 유로 2024에서는 아예 나서지 못했다.

 

13위 베른트 슈나이더

 


생년월일: 1973년 11월 17일
A매치 기록: 81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0년대 독일 무대의 스타로 활약했던 인물로 유려한 볼 컨트롤, 교묘한 드리블 돌파는 물론 우수한 오른발 킥을 통해 정교한 크로스와 날카로운 쓰루패스로 공격을 지원하는데 능했으며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위력을 발휘했으며 축구 지능도 높아 라이트윙 이외에도 중앙 미드필더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플레이메이커 역할도 수행할 수 있었다.

구 동독 출신으로 동독 지방의 카를 차이스 예나에서 활약하다가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1999-2000 시즌에 레버쿠제에 입단한 슈나이더는 레버쿠젠에서 10년간 활약하며 2001-02 시즌 분데스리가, DFB포칼,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준우승을 기록했던 트리플 러너업을 포함해 분데스리가 준우승 2회, DFB포칼 준우승 2회로 우승을 아쉽게 놓쳤지만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팀을 상위권으로 지탱했으며 그 과정에서 걸출한 찬스 메이킹으로 2001-02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도움왕에 오르는 활약으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슈나이더 개인도 2001-02 시즌과 2006-07 시즌에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7회 선정된 슈나이더는 어려운 시절로 평가받았던 2000년대 초중반 독일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으며 올리버 칸, 미하엘 발락,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함께 에이스 활약하며 2002 한일 월드컵 준우승과 2006 독일 월드컵 3위라는 호성적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그러나 UEFA 유로에서는 다소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2위 게르트 되어펠

 


생년월일: 1939년 9월 18일
A매치 기록: 11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1960년대 분데스리가에서 명성을 떨치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빠른 스피드와 날렵한 몸놀림은 물론 뛰어난 킥력을 앞세운 득점력을 겸비한 당대 유럽 최고의 측면 공격수 중 한 명이었다.

함부르크에서 전성기를 누린 되어펠은 우베 젤러와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며 오베리가 노르트 4회 연속 우승과 1959-60 시즌 독일 챔피언쉽 우승, 그리고 1960-61 시즌 유러피언 컵 준결승 진출 및 1961-62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고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에도 변함없이 활약하며 비록 리그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1966-67 시즌 DFB포칼 준우승과 1967-68 시즌 컵 위너스컵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적잖은 공을 세웠다.

특히 1965년에는 파코 헨토를 제치고 프랑스 풋볼지 선정 유럽 최고의 레프트 윙에 이름을 올렸으며 키커 랑리스테에서는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4회 선정되기도 했다. 여담으로 되어펠은 아버지와 삼촌, 동생이 모두 함부르크에서 활약했을 정도로 축구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단지 취미로만 즐기는 수준이었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디 만샤프트 소집을 두 번이나 거절하기도 했다.

 

11위 리로이 자네

 


생년월일: 1996년 1월 11일
A매치 기록: 67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2010년대 하반기에 분데스리가와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을 보여준 윙어로 다소 기복이 심하고 볼을 끄는 경향이 있지만 빠른 스피드와 적극적인 수비 가담, 그리고 창의적인 패싱력에서 나오는 우수한 찬스 메이킹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샬케에서 데뷔해 어린 나이부터 분데스리가 톱클래스 윙어로 이름을 날린 자네는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한 뒤에는 2018-19 시즌 도메스틱 트레블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와 리그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UEFA 슈퍼컵과 클럽월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분데스리가 2연패를 이뤄냈다. 자네 개인도 2023-24 시즌 전반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는 자네는 UEFA 유로 2016에서 데뷔헸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뽑히지 못했지만 유로 2020과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다시 주전으로 도약했지만 인상깊은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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