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계의 명장들' 카테고리의 글 목록 (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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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의 명장들 17

펩 과르디올라 역대 올스타 팀

주의사항 * 펩 공식 선정이 아닌 블로그 주인인 제가 선정하는 것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 폼을 제작합니다. * 해당 글 작성 기준일은 2023년 4월 25일입니다. 펩 과르디올라 소개 출생년도: 1971년 1월 18일 국적: 스페인 커리어 2007~2008 FC 바르셀로나 B 2008~2012 FC 바르셀로나 2013~2016 FC 바이에른 뮌헨 2016~현재 멘체스터 시티 2000년대 수비 축구의 유행을 부수고 공격 축구의 유행을 선도한 선구자로 요한 크루이프의 크루이프즘을 계승, 발전시키며 높은 라인에서의 짧고 빠른 패스로 점..

토르난테 선정 스페인 축구계를 빛낸 명장 16인

1. 명단 선정 및 순위 선정은 여러 데이터를 바탕으로 참조한 작성자의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2. 라리가에서 전성기를 맞은 순서로 작성했습니다. 3. 감독 커리어 목록에는 스페인 대표팀 및 스페인 클럽에서의 커리어만 기재했습니다. 4. 순위는 하단에 있습니다. 5. 선수 및 감독 건조폼 사진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작품이며 라인업 양식은 제 개인 작품입니다. 1. 엘레니오 에레라 출생년도: 1910년 4월 10일 스페인 축구계에서의 커리어 1948-1949 레알 바야돌리드 1949-1952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52 말라가 1953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53-1957 세비야 FC 1958-1960 FC 바르셀로나 1960-1962 스페인 대표팀 (인테르 밀란 감독직과 겸임) 1..

스위칭 플레이의 선조, 깨어있는 잉글랜드인 지미 호건

스위칭 플레이 오늘날에는 왼쪽에 배치된 선수가 오른쪽에서 공격하고 중앙에 있는 선수와 측면에 있는 선수가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수비진을 공략하는 플레이를 자주 볼 수 있다.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도 메시가 중앙에 있지만 페드로 로드리게스나 다비드 비야와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상대 수비를 공략했으며 펩 과르디올라 체제의 바이에른 뮌헨도 최전방에 위치한 레반도프스키가 수비를 유인하는 동안 토마스 뮐러나 아르연 로번이 1선으로 침투해 득점하는 패턴을 자주 보여줬다. 이는 상대 수비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요구하기에 조금 더 효과적인 공격 루트다. 그래서 오늘날의 많은 팀들은 이런 방식을 채용한다. 지금은 이런 복잡한 공격전략이 당연시되는 시대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효율적인 전술이 유행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

한 축구 과학자가 축구 역사에 끼친 영향력은 무엇일까?

축구와 과학 현대 축구에서는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팀을 운영하는 것이 당연한 팀 운영 방식이다. 데이터에 기반을 둔 상대 팀 분석과 선수들의 체력 관리를 위한 식단과 훈련 프로그램 개발 같은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며 선수들의 몸상태를 최상으로 만드려고 노력한다. 오늘날에는 당연한 업무지만 1970년대만 해도 축구 클럽은 이러한 업무들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 감독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감독의 이름은 소련 태생의 발레리 로바노프스키이며 '축구는 개인이 아닌 팀원 간의 유대에 기인한다.'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를 실현시키는 방식으로 단순히 1대 1 경합에서 승리하는 방식이 아닌 팀 단위의 전방위적인 압박을 생각했다. 하지만 팀원들이 전방위적인 압박을 하려면 우월한 체력은 필수였으며 이 체력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주리의 아버지 비토리오 포초

혁신 (革新) 혁신이란 무엇인가? 묵은 조직이나 제도ㆍ풍습ㆍ방식 등을 바꾸어 새롭게 하는 일이다. 축구팀을 운영하면서도 이런 혁신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클럽 팀은 물론이고 국가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신과 함께 성공을 했던 선수단을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쇤, 메노티, 베아르초트, 리피, 델 보스케, 뢰브 다 이런 면에서 큰 실패를 했다. 그러면 월드컵을 연속으로 우승한 감독은 없을까? 정답은 아니다. 단 한 명이 있다. 그리고 이 감독의 특징으로는 핵심 멤버 두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아홉 명을 모두 세대교체해서 월드컵 2연패에 성공한 감독이라는 점이다. 감독으로서 월드컵 2연패에 성공한 유일한 남자, 바로 이탈리아의 감독 비토리아 포초이다. 메토도 1929년 이탈리아의..

가는 길마다 성공을 거둔 푸스발 카이저의 도전 정신

카이저의 새로운 도전 역대 최고의 수비수라고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축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프란츠 베켄바우어라고 말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하프백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약관의 나이에 유럽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바비 찰튼과 월드컵에서 자웅을 겨루었다. 이후 리베로로 전업한 이후에는 세계 최고의 선수를 두고 요한 크루이프와 라이벌리를 형성했으며 결국 분데스리가와 챔피언스리그, 유로와 월드컵을 모두 우승하고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은퇴했다. 베켄바우어가 현역에서 완전히 물러난 1983년에는 서독 대표팀은 데어발 체제에서 유럽 챔피언과 월드컵 준우승을 이뤘다. 하지만 유프 데어발과 서독 국가대표팀의 동행은 유로 84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밀려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면서 끝이 났다..

축구 역사상 가장 브라질리언스러웠던 감독 이야기

이상주의자 모두가 현실에 순응했다면 사회의 발전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자신의 이상이 현실과 다르면 이를 거스르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그들은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나간다. 축구계에도 이런 이상주의자들이 있다. 요한 크루이프, 마르셀로 비엘사, 아르센 벵거가 대표적인 예다. "지저분한 경기나 부당한 골을 얻어 이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패배를 택할 것이다." 이 말을 남긴 브라질의 명장 텔레 산타나 역시 80년대와 90년대를 대표하는 축구계의 이상주의자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세간의 평가는 황금의 사중주를 데리고도 월드컵 2차 리그에서 탈락한 감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이런 부진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감독이다. 오늘은 브라질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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