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15

국가의 영웅들/헝가리

헝가리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15

토르난테 2024. 11. 17. 14:13
728x90
728x90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헝가리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4년 11월 17일 기준입니다.

 


15위 핀터 샨도르

 


생년월일: 1950년 7월 18일
A매치 기록: 39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부다페스트 혼베드


1970년대 헝가리에서 명성을 떨친 전투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볼 다루는 기술이 투박해 플레이메이킹에는 재능을 보이지 못했지만 상대 공격수를 저지하는 터프한 태클과 우수한 지구력을 바탕으로 하는 드넓은 수비 커버 능력이 강점이었기에 후대의 팬들로부터 헝가리의 가투소라고 수식되었다.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 보낸 핀터는 1977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1979=80 시즌에는 소속팀의 넴제티 버이녹샤그 우승을 이뤄냈다. 헝가리 대표팀 선수로서도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14위 죄카 페렌츠

 


생년월일: 1931년 4월 7일
A매치 기록: 28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살고타르얀 BTC


1950년대 헝가리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하프백으로 화려함은 다소 부족했지만 준수한 지구력과 정확한 패싱력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그리고 상대 공격수를 견제하는 대인수비를 겸비한 육각형 미드필더였는데 특히 중거리 슈팅으로 상대 골문을 견제하는데 능했다.

선수 생활 전부를 중소 구단인 살고타르얀 BTC에서 보낸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죄카는 1950년대 매직 마자르라 불리던 헝가리 대표팀에서 보직 요제프의 백업을 맡아 1952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과 1954 스위스 월드컵 준우승을 백업으로 경험했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다.

 


13위 코타즈 언털

 


생년월일: 1929년 9월 1일
A매치 기록: 3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5cm
주 소속팀: 부다페스트 혼베드


1950년대 중후반에 헝가리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다재다능한 레프트 하프로 높은 수준의 기술과 빠른 스피드, 그리고 기계와 같은 체계적인 대인수비를 바탕으로 공수 양면에서 모두 훌륭한 기량을 펼쳤다.

버셔스에서 데뷔했으나 중소규모 구단을 전전했던 코타즈는 1955년, 부다페스트 혼베드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중원사령관 요제프 보직을 철저하게 보좌해 1955 넴제티 버이녹샤그 우승 및 1959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냈다.

매직 마자르 시대 이후의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예뇌 부잔스키의 후계자로 활약했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웨일스전에서 선발출전했다.

 


12위 칼마르 예뇌

 


생년월일: 1908년 3월 21일
A매치 기록: 15경기 4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부다페스트 혼베드의 전성시대를 연 감독으로 더 유명하지만 선수시절에도 헝가리를 대표하는 하프백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는데 높은 수준의 볼 컨트롤을 바탕으로 원터치 플레이에 능했고 전술적으로도 우수해 적절한 수비력을 보였으며 종종 중거리 슈팅으로 상대 골문을 노려 상대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는데 이런 공격력 덕분에 가끔은 센터 포워드로 기용되기도 했다.

MTK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보내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 및 1931-32 시즌 마자르 쿠파 우승을 이뤄낸 칼마르는 1934년에는 프랑스 무대로 진출해 엑셀시오르, RC 루베 및 스타드 드 랭스를 떠돌다가 MTK 헝가리아로 돌아와 1939-40 시즌 리그 우승에 공헌하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통산 4회 우승을 기록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는 1927-30 중유럽컴과 1931-32 중유럽컵에 주전조로 참가했으나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선수 시절 사진이 적절한 사진이 없어서 감독 사진으로 대체

 


11위 케르테즈 아돌프

 


생년월일: 1892년 3월 15일
A매치 기록: 11경기 0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헝가리 축구 태동기에 활약했던 기술적인 레프트 하프백으로 숏패스와 롱패스를 가리지 않은 정확한 왼발 패스로 볼 배급을 주로 담당했음은 물론 하프백임에도 드리블로 상대를 공략하는 부분에도 능했기에 아웃사이드 레프트로도 종종 출전했다.

케르테즈 3형제 중 막내인 아돌프는 형들을 따라 MTK 헝가리아에서 데뷔해 죽을 때까지 함께했는데 제1차 세계대전으로 경력이 끊겼음에도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을 이뤄내며 호건 체제 MTK 헝가리아 왕조 재창에 큰 공을 세웠고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했다.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던 케르테즈는 불행하게도 1920년 11월 18일, 독일의 자르브뤼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향년 28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10위 너기 이스트반

 


생년월일: 1939년 4월 14일
A매치 기록: 2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1960년대 헝가리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중앙 미드필더로 체구는 작았으나 상대 수비를 완벽하게 속이는 우수한 발밑 기술과 정확한 패싱력을 바탕으로 플레이했던 기술파 미드필더였다.

MTK 헝가리아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보낸 너기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2회 우승 및 1963-64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1964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1962 칠레 월드컵과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두 차례의 8강 진출에 공헌했다.

 


9위 유하스 이스트반

 


생년월일: 1945년 7월 17일
A매치 기록: 23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60년대 후반~70년대 중반까지 헝가리를 대표하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한혈마와 같은 지구력을 바탕으로 공수 양면에서 큰 영향력을 끼쳤으며 깔끔한 원터치 패스와 적절한 커버 플레이, 그리고 중앙에서 점프력을 바탕으로 상대의 롱패스를 끊는 부분과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역할 역시 뛰어났기에 언론으로부터 '미드필드의 로봇'이라고 불렸다.

페렌츠바로시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보낸 유하스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 및 6회 준우승을 이뤄냈고 마자르 쿠파 3회 우승을 이뤄냈다. 유럽 무대에서도 1962-63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4강, 1964-65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과 1967-68 시즌 준우승을 이뤄냈고 UEFA 주관 대회에서도 1965-66 시즌 유러피언 컵 4강 및 1971-72 시즌 UEFA컵 4강을 이뤄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유하스는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금메달 및 UEFA 유로 1972 4강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8위 샤로시 벨라

 


생년월일: 1919년 5월 15일
A매치 기록: 25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30년대 헝가리 축구의 아이콘인 샤로시 죄르지의 동생이자 당대 헝가리 무대 최고의 하프백 중 한 명으로 민첩성과 스피드에 약점을 보였지만 커다란 체격과 잘 잡힌 바디밸런스를 바탕으로 상대와의 경합에 능했는데 특히 제공권 경합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발밑 역시 우수해 정확한 중정거리 핀포인트 패스로 한 번에 공격 활로를 열었으며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과 찬스를 만들 수 있는 중장거리 롱스로인을 바탕으로 경기에 변수를 두는 플레이에도 능했다.

형을 따라 페렌츠바로시에 데뷔한 벨라는 넴네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3연패라는 성적을 이뤄내며 1940년대 유럽 정상급 하프백으로 이름을 날렸고 헝가리 대표팀 소속으로도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 백업으로 준우승을 경험했고 1939년에 프랑스를 상대로 데뷔해 1945년까지 주전으로 활약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형을 따라 공산화된 조국 헝가리를 떠나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과 같은 서유럽은 물론 엘도라도를 표방하며 자국리그에 엄청난 투자를 했던 콜롬비아 리그의 후니오르 바란킬라와 미요나리오스에서도 잠시 활약했으며 지도자 생활 역시 남유럽에서 주로 했다.

 

 

7위 설러이 언털

 


생년월일: 1912년 3월 12일
A매치 기록: 29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우이페슈트 도사


1930년대 헝가리 무대에서 위명을 떨치던 하프백으로 볼을 받기 최선의 위치를 선정했고 본인 역시 정확한 패싱력을 바탕으로 팀의 볼 점유율을 높이는데 공헌했고 테크닉도 뛰어나 상대 하프백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투지 역시 강해 드넓은 범위의 수비라인을 적극적으로 커버했다.

선수 생활을 우이페슈트 도사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인 설러이는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알려진 쉬츠 죄르지를 보좌하며 넴제티 바이녹사그 4회 우승 및 4회 준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첫 전성기를 이끌었는데 특히 1939년에는 리그에 이어 미트로파 컵을 동시에 우승했는데 결승전에서는 헝가리 무대의 패권을 두고 다투던 라이벌 페렌츠바로시를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도합 6-3 대승을 이끌었다.

헝가리 대표팀 소속으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설러이는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펄로타슈 이슈트반에 밀려 벤치를 지켰지만 1935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던 시점을 기점으로 기량이 급상승하면서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주전 레프트 하프로 나서며 대회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6위 쉬츠 죄르지

 


생년월일: 1912년 3월 12일
A매치 기록: 25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우이페슈트 도사


1930년대 헝가리 무대에서 위명을 떨치던 하프백으로 우수한 제공권 경합 능력을 바탕으로 헤딩 클리어링에 능했고 양발을 모두 잘 썼기에 정확한 양발 패스로 후방에서 경기를 풀어주는 역할 역시 능숙하게 소화했기에 오늘날의 후방 플레이메이커와 같은 역할에도 능숙했다.

선수 생활을 우이페슈트 도사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인 쉬츠는 설러이 언털과 함께 견고한 중원라인을 형성하며 넴제티 바이녹사그 4회 우승 및 4회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구단의 첫 전성기를 이끌었는데 특히 1939년에는 리그에 이어 미트로파 컵을 동시에 우승했는데 결승전에서는 헝가리 무대의 패권을 두고 다투던 라이벌 페렌츠바로시를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도합 6-3 대승을 이끌었다.

헝가리 대표팀 소속으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쉬츠는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승리하는데 큰 공을 세워 센터 하프 포지션 주전으로 낙점받았으나 8강에서 분더팀이라 불리던 오스트리아를 이기지 못하고 아쉽게 탈락했고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컨디션 난조로 대회 내내 벤치를 지키다가 결승전에서만 출전했는데 결승전에서는 이탈리아의 하프백에게 밀리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5위 코바치 임레

 


생년월일: 1921년 11월 26일
A매치 기록: 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1940년대~50년대에 걸쳐 헝가리 무대 정상급 하프백으로 평가받았던 인물로 뛰어난 기본기와 드넓은 시야, 그리고 높은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판세를 완벽하게 읽는 전술안을 바탕으로 후방에서의 플레이메이킹에 강점을 보였고 지능적인 수비를 바탕으로 영리하게 공을 차지했으며 지능적인 인터셉트로 상대 경기 흐름을 끊는 부분과 심지어는 중거리 슈팅 역시 뛰어나 단점이 스피드 외엔 없었다고 평가받는 선수였다.

MTK 헝가리의 원 클럽맨이었던 코바치는 대표팀 주전을 두고 경쟁하던 후배 하프백 자카리아스 요제프와 함께 MTK의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 및 6회 준우승을 이뤄냈고 1952년 마자르 쿠파 우승도 이뤄내는 등 1950년대 헝가리 무대를 부다페스트 혼베드와 함께 양분하는데 공을 세웠고 1955년에 재개된 미트로파 컵에서도 부다페스트 혼베드와 두클라 프라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는 본인의 상위호환격 선수인 대표팀 후배 보직 요제프에게 밀려 서브로 나서며 1948-53 중유럽컵 우승 및 1952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1954 스위스 월드컵 준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4위 라자르 줄러

 


생년월일: 1911년 1월 24일
A매치 기록: 49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30년대 정상급 레프트 하프로 우수한 축구지능을 바탕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오는 커버 플레이와 적절한 위치 선정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탄탄한 기본기를 활용한 우아한 플레이를 선보였음은 물론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으로도 유명했다.

선수 생활의 전부를 페렌츠바로시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라자르는 1931-32 시즌 전승 우승을 포함해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2회 우승, 그리고 1937년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32-33 시즌 마자르 쿠파에서는 라이벌 우이페슈트를 상대로 결승전에서 11-1이라는 기념비적인 대승을 거두며 우승하는데 큰 공을 세웠기에 샤로시 죄르지, 알베르트 플로리안과 함께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다.

헝가리 대표팀의 치열한 하프백 주전 경쟁 속에서도 한 자리는 라자르의 차지였는데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세 번의 중유럽컵에 주전으로 참가했으며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8강 진출을 이뤄냈고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라자르는 1933년에는 헝가리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되었다.

 


3위 시푸스 페렌츠

 


생년월일: 1932년 12월 13일
A매치 기록: 77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1960년대 헝가리를 이끈 중원 자원으로 허파라고 불렸을 정도로 지구력이 대단했으며 하프백과 센터백, 그리고 좌우 측면 수비수를 막힘없이 소화할 수 있었음은 물론 안정적인 볼 컨트롤과 뛰어난 스피드와 침착한 성격을 바탕으로 기복 없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MTK 헝가리아와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시푸스는 MTK에서는 1957-58 시즌 넴제티 버이녹샤그 우승을 이끌며 헝가리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1963년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혼베드로 이적한 뒤에도 소속팀의 1963-64 시즌 마자르 쿠파 우승을 이뤄냈다.

1960년 이탈리아의 일 칼치오 일루스트라토가 선정한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시푸스는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1955-1960 중유럽컵에서 데뷔해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세 차례의 월드컵에 참가해 8강 토너먼트에 두 번 진출했고 UEFA 유로 1964에서는 조국을 3위에 올렸다.

 


2위 자카리아스 요제프

 


생년월일: 1924년 3월 25일
A매치 기록: 35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헝가리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선수로 우수한 지구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과 날카로운 태클 능력을 겸비했으며 순간적으로 세 명의 수비진 사이에 들어가 포백을 구성했는데 이는 현대의 포백 시스템 정립에 큰 영향을 줬다고 전해진다.

케이블 공장 노동자들로 구성된 카벨기야르 SC에서 데뷔한 자카리아스 요제프는 감마 부다페스트를 거쳐 MTK 헝가리아에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클럽 중원의 핵으로 활약하며 정규리그 2회 우승은 물론 1955년에는 푸스카스와 코츠시스를 앞세운 부다페스트 혼베드를 꺾고 미트로파 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는 레프트 하프 포지션에서 주로 활약하던 자카리아스는 1952 헬싱키 올림픽 우승, 1948~1953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냈고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아쉽게 준우승을 이뤄냈지만 결승까지의 과정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1위 보직 요제프

 


생년월일: 1925년 11월 18일
A매치 기록: 101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부다페스트 혼베드


당대는 물론이고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선수로 후방에서 정확한 패스 능력과 우수한 볼 컨트롤, 그리고 왕성한 활동량과 뛰어난 대인 수비 능력을 바탕으로 중원을 장악했으며 전술안도 우수해 그라운드에서 감독 대신 선수단을 지휘하기도 했으며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포문을 여는데에도 능했다.

부다페스트 혼베드의 황금기를 이끈 보직은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2년에는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다른 에이스들과는 다르게 헝가리 혁명 이후에도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 뛰면서 원 클럽맨으로 은퇴했기에 헝가리 공산 정권 시절에는 푸스카스, 코츠시슈보다 보직의 인기가 더 많았던 시절도 있었다.

헝가리 대표팀 최초의 센추리 클럽 가입자이자 세계에서도 빌리 라이트에 이어 두 번째 센추리 클럽 가입자였던 보직은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1953년에는 5년간 치러진 중유럽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는 등 4년간 31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기록하며 1954 스위스 월드컵까지 승승장구했으나 결승에서 서독에게 아쉽게 패했지만 보직은 우수한 활약을 인정받아 ESPN과 문도 에스포르티보가 선정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모두 선정되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