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20

국가의 영웅들/헝가리

헝가리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20

토르난테 2024. 12. 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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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헝가리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4년 12월 1일 기준입니다.

 


20위 케메니 티보르

 


생년월일: 1913년 3월 5일
A매치 기록: 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30년대 중후반에 명성을 떨친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전성기는 짧았지만 전성기 시절의 퍼포먼스는 우수했는데 빠른 스피드로 상대 수비수를 돌파한 뒤에 강력하면서도 정교한 슈팅에서 나오는 득점력을 자랑했던 아웃사이드 포워드였다.

페렌츠바로시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케메니는 구단의 황금기에 일조하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2회 우승 및 1934-35 시즌 마자르 쿠파 우승을 이뤄냈고 1937년에는 샤로시 죄르지, 톨디 게저, 탄저 미할리 등과 함께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그 과정에서 퍼스트 비엔나와 아우스트리아 빈, 그리고 라치오를 연파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는 페트르 사보 가보르, 티트코시 팔, 코후트 빌모스 등과의 치열한 경쟁으로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페렌츠바로시를 떠나 감마 FC에서 활동하다가 은퇴했다.

 


19위 죄케 이스테반

 


생년월일: 1947년 2월 13일
A매치 기록: 13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60~70년대에 걸쳐 헝가리 무대에서 맹위를 떨쳤던 라이트윙으로 뛰어난 가속력을 바탕으로 측면을 돌파한 뒤에 핀포인트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오른발 크로스와 중앙으로 침투해 직접 슈팅을 날리는 부분에 모두 능했음은 물론 프리킥에도 강점을 선보였던 데드볼 스페셜리스트이기도 했다.

페렌츠바로시에서 전성기를 누린 죄케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2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2회 우승, 그리고 1967-68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준우승 및 1971-72 시즌 UEFA 유로 4강 진출에도 공헌했는데 특히 1970년대 헝가리에서 가장 잘 나갔던 우이페슈티의 골키퍼 젱트미하이 언털을 상대로 많은 골을 득점해 젱트미하이 킬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는 오랜 시간 베네 페렌츠에게 가려져있다가 UEFA 유로 1972에서 조국이 4위에 오르는데 공헌했다.

 


18위 잠보 샨도르

 


생년월일: 1944년 10월 10일
A매치 기록: 33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우이페슈트 도사


1970년대 상반기 헝가리에서 명성을 떨친 윙포워드로 당대에는 드물었던 오른발잡이 레프트윙이었는데 왼쪽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침투해 오른발 슈팅을 날리는 플레이에 능했는데 상대를 괴롭히는 날카로운 플레이로 '바늘'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우이페슈트 도사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보낸 잠보는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9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3회 우승, 그리고 1968-69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1973-74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도 4강에 오르는데 공헌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1972에 참가해 4위에 올랐다.

 

 

17위 라코시 줄러

 


생년월일: 1938년 10월 9일
A매치 기록: 41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60년대 헝가리 무대 최고의 레프트윙으로 우수한 볼 컨트롤을 활용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홀렸고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로 수많은 득점찬스를 만들었던 정통파 윙포워드였다.

클럽 커리어를 페렌츠바로시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라코시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 및 5회 준우승, 마자르 쿠파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64-65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 및 1967-68 시즌 준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라코시는 1960 로마 올림픽 동메달 및 1962 칠레 월드컵 8강, 그리고 UEFA 유로 1964 3위 및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을 이뤄냈는데 그 과정에서 디펜딩 챔피언 브라질을 조별리그 탈락으로 내몰았다.

 

 

16위 탄저 미할리

 


생년월일: 1905년 2월 7일
A매치 기록: 5경기 1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루마니아와 헝가리의 이중국적자이자 1930년대 중유럽 정상급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테크닉, 그리고 영리한 두뇌에서 나오는 판단력을 갖췄지만 피지컬이 좋지 못해 상대 수비와의 신체접촉을 두려워했다.

루마니아의 치네줄 티미쇼아라에서 만 17세에 데뷔해 곧바로 주전으로 도약한 탄저는 루마니아 리가 I 6연패를 이뤄내며 루마니아 무대를 평정했으며 루마니아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1924 파리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러나 1929년에는 헝가리 시민권이 있는 점을 이용해 페렌츠바로시로 이적해 활약하며 1931-32 시즌 전승우승을 포함해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2회 우승과 1937년 미트로파 컵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헝가리 대표팀에서는 중용받지는 못했다.

 


15위 마르코시 임레

 


생년월일: 1908년 6월 9일
A매치 기록: 20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67cm
주 소속팀: 데브레첸 VSC


1930년대 상반기 헝가리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 중 한 명으로 키는 작지만 에너지가 넘쳤는데 번개처럼 빠른 스피드와 민첩한 몸놀림, 창의적인 테크닉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손쉽게 돌파했고 정밀도 높은 패싱력과 강력하면서도 정확한 슈팅으로 득점과 찬스메이킹에 모두 능했던 완벽한 윙포워드였다.

페렌츠바로시, MTK 헝가리아, 우이페슈트 도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네임벨류가 떨어졌던 데브레첸 소속이었기에 넴제티 버이녹샤그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마르코시가 지휘하는 공격진의 수준은 높았다고 전해지며 1929-30 시즌 마자르 쿠파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는데 이때 결승전에서 5-1 대승에 큰 공을 세웠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한 마르코시는 중유럽컵 및 친선전에서는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였지만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8강전에서는 당대 최고의 분더팀을 상대로 퇴장당하며 만회골을 득점하며 추격하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며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14위 페테르 사보 가보르

 


생년월일: 1902년 10월 14일
A매치 기록: 11경기 6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우이페슈트 도사


1920년대 후반~30년대 초반 헝가리 무대를 호령한 정상급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스피드가 빨랐는데 특히 볼에 대한 반응속도가 빨라 스루패스를 완벽하게 받아내며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을 만든 뒤에 침착하게 마무리하는 플레이에 능했으며 페널티킥에서도 강점을 보였다.

우이페슈트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보낸 가보르는 1929년 미트로파컵에서 당대 유럽 정상급 클럽인 스파르타 프라하, 라피트 빈을 연파하고 결승전에서도 슬라비아 프라하를 홈과 원정에서 7-3으로 제압하고 우승했는데 그 과정에서 각각 1골씩 기록하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1930년에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대회 쿠프 드 나시옹 결승에서도 또다시 슬라비아 프라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1929-30 시즌에 이뤄낸 구단 역사상 첫 리그우승을 포함해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을 기록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1926년에 데뷔해 주축으로 활약한 서보는 대표팀에서는 코후트 빌모시, 케메니 티보르와의 주전 경쟁으로 인해 로테이션으로 활약했는데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첫 경기에 출전했다.

 


13위 보르바스 가스파

 


생년월일: 1884년 7월 26일
A매치 기록: 41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헝가리 축구 태동기에 활약했던 스타플레이어로 뛰어난 주력과 완벽한 볼 컨트롤을 바탕으로 상대에게 양질의 득점 찬스를 만들었음은 물론 본인이 직접 득점하는 부분에서도 쉬로서 임레에 비교되는 뛰어난 골잡이기도 했다.

페렌츠바로시에서 데뷔해 1903년 넴제티 버이녹샤그 우승을 이끈 가스파는 잠시 마자르 AC로 이적했다가 다시 페렌츠바로시로 돌아와 넴제티 버이녹샤그 4연패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이에 동료 골키퍼 알라요스 프리츠는 그를 두고 "그는 우리 팀의 영혼이자 우리 포워드 라인의 아웃사이드 레프트이며 이제 헝가리 최고의 축구 선수인 그의 팬이 될 이유가 있습니다."라고 칭찬했다.

1906년과 1907년에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보르바스는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 헝가리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12위 셔시 페렌츠

 


생년월일: 1915년 8월 16일
A매치 기록: 17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1930년대 후반 세계구급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전성기는 짧았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당대 최고의 윙어로 평가받았는데 체구가 작아 몸싸움에서는 약점을 보였지만 빠른 스피드와 민첩한 몸놀림, 그리고 상대의 혼을 빼놓은 볼 컨트롤을 활용한 드리블로 명성이 높았음은 물론 골키퍼와의 일대일 상황에서 침착하면서도 정확하게 마무리하는 부분에도 능했다.

MTK 헝가리아에서 데뷔한 셔시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2연패를 이뤄냈고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빠르게 주전으로 도약하며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 조국의 준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샤로시 페렌츠, 젱겔러 줄러와 함께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헝가리 왕국의 유대인 정책에 불만을 느낀 셔시는 마침 유럽에 전운이 감돌자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나 보카 주니어스에서 활약하며 1940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뤄냈고 말년에는 아르헨티노스 주니오르에서도 활약했다.

 


11위 페니베시 마테

 


생년월일: 1933년 9월 20일
A매치 기록: 76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못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1960년대 동유럽 정상급 레프트윙으로 본래 오른발잡이였지만 왼발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양발잡이였고 엄청난 스프린트를 바탕으로 많은 수비수들을 따돌렸다.

페렌츠바로시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16년간 활약한 페니베시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 및 1957-58 시즌 마자르 쿠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64-65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결승전에서 유벤투스를 상대로 득점하며 대회 우승을 이끌기도 했고 페니베시 개인도 1963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치보르의 후계자로 평가받아 1954 스위스 월드컵 이후로 소집되었던 마테는 헝가리 혁명으로 치보르가 스페인으로 망명하자 1958 스웨덴 월드컵 때부터 주전으로 도약해 1962 칠레 월드컵 8강 및 UEFA 유로 1964 3위에 올랐고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도 소속팀 후배 라코시 줄러의 백업으로 대기했다.

 

 

10위 코허트 빌모스

 


생년월일: 1906년 7월 17일
A매치 기록: 25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30년대 헝가리 대표팀의 약진을 이끌었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좌측면에서 빠르게 침투해 벼락같이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플레이에 능해 '헝가리산 대포', '번개' 등으로 불렸다. 

헝가리 무대의 페렌츠바로시에서 만 18세의 어린 나이에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코허트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3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1928년에는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내 트레블을 이뤄냈고 1932년에는 리그 전승 우승이라는 대업적을 달성했으며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주전 경쟁에서 우위에 있었다.

그 당시에는 헝가리 리그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았던 프랑스 리그의 마르세유로 떠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코허트는 마르세유에서 아즈나, 다르와 함께 공격 편대를 이끌며 1936-37 시즌 리그앙 우승을 이뤄냈고 쿠프 드 프랑스 2회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프랑스로 떠나면서 대표팀 소집이 끊겼었으나 1938 월드컵이 프랑스에서 열렸기에 대표팀에 소집될 수 있었다. 그러나 8강까지 출전했음에도 경기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티트코시에게 밀려났다.

 


9위 티트코시 팔

 


생년월일: 1908년 1월 8일
A매치 기록: 48경기 12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코허트 빌모스와 함께 1930년대 헝가리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빠른 스피드와 정밀도 높은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벗겨냈으며 완숙한 볼 컨트롤 능력을 바탕으로 원터치플레이에 강점을 보였음은 물론 주발은 왼발이었지만 오른발도 잘 사용했다. 

부다이 33에서 데뷔해 MTK 헝가리아에서 전성기를 누린 티트코시는 1932 마자르 쿠파 우승 및 넴제티 버이녹샤그 2연패를 이뤄냈고 그 과정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1937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주전 경쟁자였던 코허트가 프랑스로 떠나며 소집되지 못하자 헝가리 대표팀 주전 아웃사이드 레프트를 꿰찬 티트코시는 1938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8강까지는 코후트 빌모시에 밀려 나오지 못했으나 4강 스웨덴전에서 전반 37분에 역전골을 넣었고 결승전에서는 전반 8분에 동점골을 넣는 등 분전하며 팀은 준우승에 머물렀음에도 강력한 임팩트를 남겼다.

 


8위 니어스 이스테반

 


생년월일: 1924년 5월 25일
A매치 기록: 2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이탈리아 무대를 주름잡은 아웃사이드 레프트 겸 센터 포워드로 100m를 11초에 주파하는 빠른 스피드와 양발은 물론 헤더까지 우수했고 슈팅 스킬이 우수해 다양한 방법으로 득점을 만들어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헝가리의 자크 수보티차에서 데뷔해 우이페슈티에서 1945-46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이 시점에 대표팀에서도 활약하던 니어스는 헝가리가 공산화되자 이에 반발해 서유럽의 스타데 프랑스로 이적했다가 이탈리아 무대에 입성했다.

인테르에서는 전성기를 누린 니어스는 1948-49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1952-53 시즌과 1953-54 시즌에는 노르달과 리드홀름을 앞세운 AC 밀란을 따돌리고 세리에 A 2연패를 이뤄냈다.

 

 

7위 브라운 요제프

 


생년월일: 1901년 2월 26일
A매치 기록: 28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1920년대 세계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 중 한 명으로 체격이 좋고 유연했으며 볼 컨트롤에 능숙했음은 물론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드리블로 페널티 박스로 침투해 득점을 기록했는데 특히 측면 공격수였음에도 헤더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MTK 헝가리아의 전성기에 활약해 콘라드 칼만의 후계자로 불렸던 브라운은 황금사슬 라인이라 불리는 공격 편대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9연패 및 마자르 쿠파 2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1919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브라운 요제프는 헝가리 대표팀 소속으로도 A매치 27경기에 출전해 11골을 기록했는데 1924 파리 올림픽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선수 생활과 다르게 그의 최후는 비참했는데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하다가 우크라이나에서 사망했다.

 

 

6위 부다이 라슬로

 


생년월일: 1928년 7월 19일
A매치 기록: 39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부다페스트 혼베드


1950년대 헝가리 무대를 주름잡은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폭발적인 스피드와 센스 넘치는 드리블을 바탕으로 한 일대일 돌파만큼은 잉글랜드의 스탠리 매튜스와 브라질의 가린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페렌츠바로시에서 데뷔해 치보르, 코츠시슈 등과 함께 1949년 넴제티 버이녹샤그 우승을 이끌었고 이 활약을 바탕으로 공군팀 부다페스트 혼베드로 이적한 뒤에는 구단의 황금기를 이끈 부다이는 푸스카스, 코츠시스, 치보르 등과 발을 맞춰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1956년에 푸스카스, 코츠시슈, 치보르가 페인으로 떠난 뒤에는 보직 요제프와 함께 1959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카로이 산도르와 호척용나의 주전경쟁을 펼쳤던 부다이는 1948~1953 중유럽컵에서는 백업이어지만 1952 헬싱키 올림픽과 1954 스위스 월드텁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각각 금메달과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이후에는 산도르 카로이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도 백업으로 참가했다.

 


5위 몰나르 죄르지

 


생년월일: 1901년 2월 12일
A매치 기록: 27경기 11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1920년대 헝가리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아웃사이드 라이트 겸 인사이드 라이트로 엄청난 지구력과 우수한 기동력을 바탕으로 필드 전체를 쉴새없이 휘젓고 다녀 개미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득점력과 찬스 메이킹 마저 뛰어났다.

MTK 헝가리아의 전성기에 활약해 콘라드 칼만의 후계자로 불렸던 몰나르는 황금사슬 라인이라 불리는 공격 편대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6연패 및 마자르 쿠파 2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고 1924-25 시즌에는 21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는 동료 브라운보다도 더 성과가 우수했는데 1924년 4월 6일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음은 물론 수많은 골 찬스를 만들어내 7-1 대승을 거뒀다. 1924 파리 올림픽에도 참가했다.

 


4위 산도르 카로이

 


생년월일: 1928년 11월 26일
A매치 기록: 75경기 27골
신체조건: 키 1cm / 몸무게 1kg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1950년대 매직 마자르의 일원으로 이름을 날렸던 윙어로 빠른 방향 전환과 양발로 올리는 날카로운 크로스는 물론 우수한 득점력을 겸비했다.

히데구티와 함께 1950년대 혼베드의 강력한 대항마 MTK 헝가리아의 공격을 이끈 산도르는 MTK에서 정규리그 3회 우승 및 미트로파 컵 2회 우승을 이루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은퇴 역시 MKT 헝가리아에서 하며 구단의 원 클럽맨으로 남았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매직 마자르 시대에는 부다이 라슬로와 호척용나의 주전 경쟁을 펼쳤던 산도르는 1948-1953 중유럽 컵에 참가해 우승을 이루는데 공헌했지만 1952 헬싱키 올림픽과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라이벌 부다이에게 밀려났다. 하지만 매직 마자르 해체 이후에는 헝가리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두 번의 월드컵에 더 나섰다.

 


3위 치보르 졸탄

 


생년월일: 1929년 8월 23일
A매치 기록: 43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부다페스트 혼베드

 

1950년대를 대표하는 아웃사이드 레프트 중 한 명으로 인사이드 레프트와 효율적인 스위칭 플레이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시키며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드리블과 슈팅, 그리고 킬패스에 모두 능했음은 물로 1955년에는 정규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득점력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코마롬에서 활약하던 시절 기차 운전수와 병행하다가 프로로 데뷔한 치보르는 페렌츠바로시로 이적해서는 산도르 코츠시스와 함께 1949년 넴제티 버이녹샤그 우승을 이뤄냈고 세펠을 거쳐 헝가리 정부에 의해 이적한 공군팀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2연패를 이뤄냈다. 그러나 1956년 헝가리 혁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소련의 힘을 빌린 것에 실망해 조국을 등졌고 AS 로마를 거쳐 쿠발라의 도움을 받아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해 활약했는데 주로 유럽대항전 큰 경기에서 자주 기용되며 라리가 2연패와 유러피언 컵 결승을 이뤄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매직 마자르 시절의 주축으로 활약한 치보르는 푸스카스와 파트너를 이루며 상대 수비수들을 괴롭힌 치보르는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과 1948~1953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냈고 웸블리와 부다페스트에서는 잉글랜드 대표팀을 각각 6-3, 7-1이라는 경악적인 점수차로 침몰시켜 헝가리의 시대를 알렸다. 비록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우승후보 1순위라는 기대에 미치진 못하며 조국이 준우승에서 멈췄지만 치보르는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2위 콘라트 칼만

 


생년월일: 1896년 5월 23일
A매치 기록: 13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1910년대 하반기와 1920년대 상반기 MTK 헝가리아 왕조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아웃사이드 라이트와 인사이드 라이트에서 모두 활약할 수 있었으며 날카로운 드리블링과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볼을 배급하며 골 찬스를 만드는 능력을 보여줬음은 물론 오른발과 왼발을 가리지 않고 직접 슈팅하는 능력도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지미 호건 체제의 MTK 부다페스트에서 넴제티 버이녹샤그 4연패를 이뤄냈으며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도 우수한 활약을 보여줬으며 북미로 건너가서도 활약하며 헝가리 축구의 위엄을 널리 알렸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한 부분은 덤이다.

 


1위 베네 페렌츠

 


생년월일: 1944년 12월 17일
A매치 기록: 76경기 36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우이페슈트 도사


플로리안 알베르트와 함께 1960년대 헝가리 축구를 대표하던 전설적인 윙어로 오프 더 볼 상황에서 움직임이 뛰어나 공간 활용을 잘하며 동료들을 활용하며 파괴적인 득점력을 보여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비슷한 유형의 선수였다.

우이페슈트 도사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통산 300골 이상을 득점한 베네는 구단의 황금기를 이뤄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8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3회 우승을 이뤄냈고 베네 개인도 넴제티 버이녹샤그 득점왕 6회, 헝가리 올해의 선수 2회 수상이라는 업적을 세웠다.

헝가리 대표팀 소속으로도 만 17세의 어린 나이에 데뷔해 UEFA 유로 1964에서 조국이 3위에 오르는데 큰 공을 세워 대회 득점왕과 베스트 일레븐을 석권하며 이름을 알린 베네는 같은 해에 열린 1964 도쿄 올림픽에서는 금메달과 득점왕을 동시에 석권했고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디펜딩 챔피언 브라질을 상대로 선제골을 득점하며 팀의 8강 진출에 공헌해 소파 스코어를 포함해 4개의 매체에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UEFA 유로 1972에서도 4위를 기록하는데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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