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0

국가의 영웅들/헝가리

헝가리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0

토르난테 2024. 11. 24.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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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헝가리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4년 11월 17일 기준입니다.

 


10위 일리에스 벨라

 


생년월일: 1968년 4월 27일
A매치 기록: 64경기 15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1990년대 헝가리 최고의 선수로 우수한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과 직접 골문을 노리는 정밀도 높은 슈팅력으로 이름이 높았고 특히 매혹적인 드리블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홀리는 부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을 정도로 훌륭한 드리블러였다.

솜버트헤이 헐러다시에서 데뷔해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 첫 전성기를 누리며 1992-93 시즌 혼베드의 넴제티 버이녹샤그 우승을 이끈 일리에스는 MTK 헝가리아로 이적한 뒤에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리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일리에스 개인도 혼베드에서 득점왕 1회 수상 및 MTK에서 득점왕 2회 수상을 기록했다.

헝가리 올해의 선수에 3회 선정된 일리에스는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중핵으로 활약했지만 헝가리 대표팀의 암흑기라서 메이저 대회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9위 게라 졸탄

 


생년월일: 1979년 4월 22일
A매치 기록: 97경기 26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풀럼 FC


21세기 헝가리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부드러운 가슴 트래핑과 강력한 발리 슈팅으로 명성을 떨쳤고 왕성한 활동량과 유려한 패싱력을 바탕으로 최전방에서의 파이널 패스로 많은 골 찬스를 만들어냈다.

페렌츠바로시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내 정규리그 2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2회 우승을 기록한 게라는 잉글랜드 무대에 입단해서도 웨스트 브롬위치와 풀럼에서 명성을 떨쳤는데 특히 풀럼에 머무르던 2009-10 시즌에는 팀을 UEFA 유로파리그 준우승에 올리면서 풀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말년에는 페렌츠바로시로 돌아가 2015-16 시즌 더블을 포함해 리그 1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3연패를 기록해 우승 이력을 추가했다.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2회 수상하며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오랫동안 활약한 게라는 전성기 시절에는 헝가리 축구게의 약체화로 메이저 대회에 나서지 못하다가 말년에 참가한 UEFA 유로 2016에서 헝가리의 16강 진출을 이끌었고 포르투갈을 상대로 득점한 중거리 발리골은 팬들에 의해 대회 최고의 골장면으로 선정되었다.

 


8위 바르가 졸탄

 


생년월일: 1945년 1월 1일
A매치 기록: 12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60~70년대 헝가리 무대를 풍미했던 테크니션으로 양발을 모두 잘 썼고 높은 수준의 볼 컨트롤과 교묘한 드리블, 그리고 창의적인 패스로 상대 수비를 농락했고 상대 골키퍼가 방심할 때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종종 득점했기에 세간으로부터 작은 푸스카스라고 불렸다.

페렌츠바로시에서 데뷔해 제1의 전성기를 누린 졸탄은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 및 1964-65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 컵 우승을 이뤄냈고 독일의 헤르타 BSC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는 제2의 전성기를 이뤄냈는데 특히 헤르타 시절인 1970-71 시즌에는 키커 선정 최우수 외국인 선수로 선정되었다. 다만 아약스에서는 크루이프의 대체자로 영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응에 실패했다.

헝가리 대표팀 소속으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졸탄은 1964 도쿄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거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UEFA 유로 1964와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다만 헝가리를 떠난 뒤에는 대표팀 소집이 끊겼고 1970-71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승부조작 스캔들에 휘말린 불명예스러운 이력도 가지고 있다.

 

 

7위 코츠시스 러요시

 


생년월일: 1947년 6월 18일
A매치 기록: 33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6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부다페스트 혼베드


1970년대 헝가리 무대 정상급 플레이메이커로 유달리 체구가 작아 망아지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우수한 볼 컨트롤을 바탕으로 마치 가린샤와 같은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영을 유린했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롱패스로 골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 능했음은 물론 프리킥마저 잘 찼던 천재 유형의 선수였으나 허술한 자기관리로 롱런하지는 못했다.

부다페스트 혼베드의 에이스로 활약한 코츠시스는 비록 혼베드의 암흑기에 활약했음에도 우수한 퍼포먼스로 넴제티 버이녹샤그 준우승을 3회 기록했고 헝가리 대표팀에서는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축구종목 금메달 수상 및 UEFA 유로 1972 4위 및 1972 뮌헨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거는데 큰 공을 세웠다.

 

 

6위 분자크 데죄

 


생년월일: 1928년 5월 3일
A매치 기록: 2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5cm
주 소속팀: 버셔시 SC


1950년대 후반 헝가리 축구계를 이끌었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뛰어난 드리블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창의적인 패스로 골 찬스를 만드는 찬스메이킹에도 능했고 골문을 직접 타격하는 능력도 부족하지는 않았다.

버셔시의 원 클럽맨인 분자크는 버셔시에서만 294경기에 출전해 73골을 기록했으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 및 1954-55 시즌 마자르 쿠파 우승 및 미트로파컵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57-58 시즌에는 헝가리 클럽으로는 최초로 유러피언 컵 4강에 올랐고 분자크 개인도 1956년 헝가리 인민 공화국 최고의 최고의 운동선수에 선정되었고 1959년에는 발롱도르 13위에 올랐다.

푸스카스와 코츠시슈가 스페인으로 떠나고 히데구티가 은퇴한 헝가리 대표팀 소속으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분자크는 1958 스웨덴 월드컵과 마지막 중유럽컵에서 주전으로 헝가리를 이끌었다.

 


5위 괴뢰치 야노시

 


생년월일: 1939년 5월 8일
A매치 기록: 62경기 19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우이페슈트 도사


1960년대 중유럽 무대 톱클래스 공격형 미드필더로 정교한 볼 컨트롤과 센스 넘치는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농락했고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날카로운 오른발 패스로 수많은 득점 찬스를 만들었다.

우이페슈티에서 데뷔해 15년간 헌신하며 구단의 전성기를 이끈 괴뢰치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2회 우승, 그리고 1961-62 시즌 컵 위너스컵 및 1968-69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을 이뤄냈고 괴뢰치 개인도 1961-62 시즌 컵 위너스컵 득점왕에 올랐으며 말년에는 터터바녀에서 활약하며 미트로파 컵 2회 우승을 이끌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괴뢰치는 1960 로마 올림픽 동메달 및 1962 칠레 월드컵 8강을 이뤄냈다. 은퇴한 이후에는 헝가리 공로 훈장 중십자훈장을 수여받았고 포포투 헝가리 선정 헝가리 역사상 최고의 선수 17위에 올랐다.

 


4위 데라티 러요시

 


생년월일: 1963년 4월 24일
A매치 기록: 61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부다페스트 혼베드


1980년대 헝가리 축구의 간판이자 현재까지 헝가리 축구계 최후의 월드스타로 통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유려한 숏패스와 대지를 가르는 롱패스로 단번에 골 찬스를 만들어냈고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는 현란한 바디페인팅을 섞은 드리블과 위협적인 프리킥을 무기로 이름을 날렸다.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 데뷔해 넴제티 버이녹샤그 3연패를 이뤄내며 헝가리 축구계를 다시 혼베드의 시대로 만든 데라티는 득점력도 우수해 3년 연속으로 넴제티 버이녹샤그 득점왕을 수상했으며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1986 멕시코 월드컵 지역예선을 통과해 본선에서 활약했는데 이 멕시코 월드컵이 현재까지 헝가리의 마지막 월드컵 본선 진출이었다.

헝가리 무대가 개방을 하자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해 활약한 데라티는 DFB포칼에서 보훔을 상대로 결승골을 득점하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1988년 여름에는 600만 파운드라는 당대 세계 최고 기록의 이적료로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해 활약했으나 불과 2년 만에 올림피아코스의 오너 조지 코스코타스와 관련된 재정 스캔들에 휘말려 볼로냐로 쫓기듯이 이적했고 그 뒤에는 여러 클럽을 전전하는 저니맨으로 전락했다.

 


3위 닐라시 티보르

 


생년월일: 1955년 1월 18일
A매치 기록: 70경기 32골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70년대와 80년대 헝가리를 이끈 헝가리 축구 최후의 월드클래스 선수로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과 우아한 퍼스트 터치, 그리고 날카로운 드리블과 큰 키를 활용한 탁월한 제공권은 물론 득점력도 우수했다.

페렌츠바로시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닐라시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2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4-75 시즌에는 컵 위너스 컵 결승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고 아우스트리아 빈으로 이적한 뒤에도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3연패를 이뤄냈는데 특히 1983-84 시즌에는 UEFA컵과 정규리그에서 모두 득점왕에 올랐다.

헝가리 대표팀 소속으로도 핵심으로 활약한 닐라시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개인의 위상도 높아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만 5회 선정되었는데 특히 1977년에는 무려 7위에 올랐다. 은퇴한 뒤인 2010년에는 포포투 헝가리가 선정한 헝가리 역대 최고의 선수 13위에 선정되었다.

 


2위 오르트 죄르지

 


생년월일: 1901년 4월 30일
A매치 기록: 32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1910년대 하반기와 1920년대 상반기 MTK 헝가리아 왕조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인사이드 포워드와 센터 하프에서 주로 활약했지만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소화했던 멀티플레이어였으며 우아한 볼 터치와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플레이메이킹에 능했으며 득점력도 우수했다.

유럽 최강이라 불리던 MTK 헝가리아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오르트는 MTK 헝가리아에서 정규리그 8회 연속 우승을 이뤄냈으며 그 과정에서 리그 득점왕 3회 수상 및 1918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말년에는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활약하며 프랑스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나 부상으로 롱런하지는 못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10년간 주전으로 활약한 오르트는 여러 축구 역사 전문가로부터 1920년대 상반기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고 실제로도 헝가리 축구계의 큰 발전을 이끌었는데 영국 런던의 언론사 월드 스포르트가 1956년에 선정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2위로 선정했고 포포투 헝가리는 그의 사후인 2010년에 헝가리 역대 최고의 선수 5위에 올렸다.

 


1위 샤로시 죄르지

 


생년월일: 1912년 8월 5일
A매치 기록: 62경기 42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30년대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하나로 공격적인 부분은 물론 미드필더와 수비수로서의 역량은 물론 신체 능력과 전술 이해도까지 우수한 일명 육각형 선수의 시조와도 같은 선수로 심지어는 법학 박사 학위를 딸 정도로 축구 외적으로도 다재다능했다.

클럽 커리어를 페렌츠바로시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이었던 샤로시는 1931-32 시즌 전승 우승을 포함해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과 헝가리 컵 4회 우승, 그리고 1937년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내며 페렌츠바로시를 중유럽 최고의 클럽으로 올렸기에 부정할 수 없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추앙받았으며 리그 득점왕과 미트로파컵 득점왕을 각각 3회 차지했음은 물론 미트로파컵 통산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고 2010년 포포투 헝가리가 뽑은 헝가리 축구사 최고의 선수 8위에 올랐다.

1930년대 마자르 군단이 중유럽 최고의 수준으로 올라서는데 큰 공을 세운 샤로시는 특히 1933-35 중유럽컵에서 득점왕에 올랐으며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탄 하면서 중단된 1936-38 중유럽컵에서도 10골을 넣으며 득점 선두를 달렸었다.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큰 활약을 하지는 못했지만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에이스로 5골을 득점하며 헝가리를 결승전 무대에 올려놓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미트로파컵에 이어 중유럽에서도 17골로 대회 통산 최다 득점자에 오른 진정한 중유럽의 황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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