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축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백 Top 10

국가의 영웅들/헝가리

헝가리 축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백 Top 10

토르난테 2024. 11. 10.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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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헝가리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4년 11월 10일 기준입니다.

 


10위 카르파티 벨라

 


생년월일: 1929년 9월 30일
A매치 기록: 1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버셔시 SC


1950년대 헝가리 무대 정상급 라이트 풀백으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로 견고한 대인 수비와 적절한 커버 플레이가 일품이었으며 제공권 경합 능력 역시 준수했다.

헝가리 무대의 중견팀 죄르 ETO에서 데뷔해 활약한 벨라는 비록 팀 전력의 한계로 우승컵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개인의 기량은 준수해 헝가리 대표팀 백업으로 활약했고 버셔시로 이적한 뒤에는 구단의 전성기에 기여하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 및 미트로파컵 2회 우승과 1957-58 시즌 유러피언 컵 4강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1956년 헝가리 인민 공화국 최고의 운동선수에 선정된 벨라는 헝가리 대표팀에서는 부잔스키 예뇌의 백업을 맡아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경험했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마트라이 산드로의 백업으로 대회에 참여했다.

 


9위 바르히디 팔

 


생년월일: 1931년 11월 6일
A매치 기록: 1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우이페슈트 도사


1950년대 헝가리 무대에서 란토스 미할리의 라이벌로 평가받았던 레프트 풀백으로 제공권 경합과 맨 마킹, 그리고 빈 공간을 커버하는 플레이 등 수비적으로도 우수했지만 기본적으로 공격력에 강점이 있었는데 저돌적인 드리블로 상대를 돌파한 뒤에 정교한 크로스로 공격을 지원하는데 능했는데 상대방은 그가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을 때 두려움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선수 생활을 우이페슈트 도사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인 바르하디는 비록 MTK 헝가리아와 부다페스트 혼베드의 강세로 트로피를 들지는 못했지만 리그에서만 265경기에 출전해 32골을 기록했고 1961-62 시즌 컵 위너스컵 4강에 진출하는데 공헌했으며 헝가리 대표팀에서는 1954 스위스 월드컵에 백업으로 참가해 준우승을 경험했고 1960 로마 올림픽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동메달 결정전에서 개최국 이탈리아를 꺾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8위 노박 데죄

 


생년월일: 1939년 2월 3일
A매치 기록: 9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60년대 헝가리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라이트백으로 수비적인 기술이 섬세하진 않았지만 우수한 지구력과 강력한 투지를 바탕으로 상대를 괴롭혔으며 강력하면서도 정밀도 높은 킥력을 바탕으로 페널티킥과 세트피스 상황에서 강점을 보임은 물론 오픈플레이 상황에서도 종종 중거리 슈팅으로 골문을 두드렸다.

페렌츠바로시에서 전성기를 보낸 노박은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 및  1972년 마자르 쿠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64-65 시즈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 및 1967-68 시즌 준우승을 이뤄냈고 1971-72 시즌 UEFA컵에서도 4강에 올랐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노박은 1960 로마 올림픽 동메달을 이뤄냈고 1964 도쿄 올림픽과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2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UEFA 유로 1964에서도 덴마크와의 3위 결정전에서 멀티골을 득점하며 우승 및 득점왕을 수상했다. 상술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에는 헝가리 공화국 공로훈장을 수훈받기도 했다.

 

 

7위 유하스 페테르

 


생년월일: 1948년 8월 3일
A매치 기록: 24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우이페슈티 도사


1970년대 상반기에 헝가리에서 명성을 날린 레프트백으로 강력한 투지를 바탕으로 한 수비를 선보이면서도 더러운 반칙을 좀처럼 저지르지 않아 그라운드 위의 신사라 불렸으며 기습적인 오버래핑으로 상대 우측면을 혼란에 빠트리는 능력 역시 뛰어났음은 물론 골키퍼와 라이트백을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뛸 수 있었을 정도로 축구지능이 우수했다.

우이페슈티 도사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유하스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7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3회 우승을 이뤄내며 헝가리 무대에서 우이페슈티의 시대를 재창하는데 큰 공을 새웠고 유럽 무대에서도 1968-69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준우승 및 1973-74 시즌 유러피언 컵 4강에 올랐는데 이때의 활약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열렬한 구애를 받았지만 헝가리 정부가 이적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결국 마드리드가 그 대신 영입한 선수가 파울 브라이트너였다.

1970년대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유하스는 UEFA 유로 1972에서 4위에 올랐고 1972 뮌헨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거는데 큰 공을 세우며 1972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6위 샤로시 라슬로

 


생년월일: 1932년 2월 27일
A매치 기록: 4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버셔시 SC


매직 마자르 시대가 종결된 이후에 란토스 미할리의 후계자로 이름을 날렸던 레프트 풀백으로 WM 시스템의 레프트 풀백과 4백 시스템의 레프트백에서 모두 능숙한 활약을 선보였는데 왕성한 활동량과 적절한 양발 사용 능력으로 유명했으며 원래 아웃사이드 레프트 출신이었기에 우수한 테크닉과 날카로운 공격력도 겸비했다.

선수 생활 17년 전부를 버셔시에서만 보낸 샤로시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순간을 함께하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과 미트로파컵 4회 우승을 이뤄냈고 1955년 마자르 쿠파 우승에도 큰 공을 세우며 버셔시를 1950년대 후반~60년대 초중반 중유럽의 강자로 올려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1956년에 헝가리 최고의 스포츠맨으로 선정되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란토스 미할리의 후계자로 활약하며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후자의 대회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조국의 8강 토너먼트 진출을 이끌었으며 UEFA 유로 1964에서도 조국을 3위에 올렸다.

 


5위 폴가르 줄러

 


생년월일: 1912년 2월 8일
A매치 기록: 26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헝가리 무대 정상급 레프트 풀백 겸 레프트 하프백으로 활약했던 수비자원으로 우수한 커버 플레이와 양질의 패스를 바탕으로 상대로부터 볼을 빼앗은 뒤에 팀의 빌드업을 주도했고 강력한 슈팅력을 바탕으로 프리킥을 도맡았음은 물론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뛸 수 있었다.

MTK 헝가리아에서 데뷔했으나 주전경쟁에서 밀렸고 2년간의 부더이 11 생활을 거쳐 페렌츠바로시에 입단해 전성기를 맞은 폴가르는 페렌츠바로시에서 넴제티 버이녹샤그와 마자르 쿠파를 각각 4회 우승했고 1937년에는 샤로시 죄르지 등과 함께 미르토파컵 우승을 이뤄냈고 이외에도 미트로파컵에서 3회 준우승을 추가로 기록했다가 1945년에는 재창단한 MTK 헝가리아로 돌아가 히데구티 난도르 등과 함께 활약하기도 했다.

1934년에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여러 포지션에서 중용받은 폴가르는 1932년 9월,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데뷔골을 득점했는데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벤치에 앉앗지만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4위 카포스터 베뇌

 

 

생년월일: 1942년 6월 7일
A매치 기록: 1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우이페슈티 도사

 

1960년대 중후반 유럽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오른쪽 측면에서 거침없는 오버래핑과 날카로운 슈팅력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정확한 패스를 통한 찬스메이킹에도 일가견이 있었음은 물론 수비적인 부분에서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수를 마킹했고 점프력도 준수해 헤딩 클리어링에도 장기를 보였다.

선수 생활 전부를 우이페슈티 도사에서 헌신한 베뇌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7회 우승 및 4회 준우승을 이뤄냈고 마자르 쿠파에서도 2회 우승을 이뤄냈다. 유럽 무대에서도 1961-62 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에서 4강에 올랐고 1968-69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에서는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 베뇌 개인도 1967년 동독의 FUWO가 선정한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베뇌는 1960년 UEFA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1964 도쿄 올림픽 금메달 및 1966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진출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3위 부잔스키 예뇌

 


생년월일: 1925년 5월 4일
A매치 기록: 4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도로기 FC


1950년대 상반기 유럽 정상급 라이트 풀백 중 한 명이자 도로기 FC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집요하고도 견고한 대인 마킹 실력을 자랑하는 수비수로 상대의 에이스를 봉쇄하는 능력에 특히 능했다.

매직 마자르의 라이트백으로 활약한 부잔스키는 상술한 능력을 앞세워 1952 헬싱키 올림픽 우승, 1948~1953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상대의 에이스인 지지와 후안 스키아피노를 완벽하게 봉쇄하며 결승행에 공헌했다.

당시 헝가리 대표팀의 선수들의 소속팀은 공산주의 독재정권의 명령으로 인해 공군팀인 부다페스트 혼베드와 내무부 산하의 MTK 헝가리아에 몰려있었으나 부잔스키는 도로기 FC라는 중하위권 소속팀 출신임에도 중용받았다. 도로기 FC는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경기장 이름을 부잔스키 스타디움으로 지었다.

 


2위 마트라이 샨도르

 


생년월일: 1932년 11월 20일
A매치 기록: 81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60년대 헝가리를 이끈 리베로로 어린 시절에는 헝가리 육상대표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을 정도로 스피드가 빨라 100m를 10.9초에 주파할 수 있었으며 6.99m의 멀리뛰기 기록과 1.83m의 높이뛰기 기록을 보유했을 정도로 운동능력이 대단했음은 물론 축구 지능도 우수하며 적절한 커버링과 냉철한 상황 판단 능력을 앞세워 수비라인을 지휘했고 수비라인의 다양한 포지션에서 다양한 역할을 막힘없이 소화했다.

페렌츠바로시에서 데뷔해 전성기룰 누린 마트라이는 초년에는 스트라이커로 데뷔했으나 수비수로 활약했을 때 더 재능을 보이며 센터백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고 수비라인의 핵으로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 및 1958년 마자르 쿠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1962-63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 준결승 진출 및 1964-65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 컵에서는 주장으로 우승을 이뤄냈고 1967-68 시즌에는 준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마트라이 개인도 1965년에는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마트라이는 1955-1960 중유럽컵에서 데뷔해 준우승을 이뤄낸 것을 시작으로 세 차례의 월드컵에 참가해 1962년 칠레 월드컵과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조국을 8강에 올려놨으며 1964 유러피언 네이션스 컵에서는 3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1965년에는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은퇴한 뒤인 2001년에는 헝가리 축구 협회 100주년 기념 메달을 수여받았다.

 


1위 란토스 미할리

 


생년월일: 1928년 9월 29일
A매치 기록: 52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축구 역사상 최초로 전략적인 오버래핑을 시도했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기습적인 전방 침투에 이은 왼발 크로스는 매직 마자르의 또 하나의 공격 루트였으며 정확하면서도 강력한 킥력을 통해 중장거리 패스로 팀의 빌드업을 이끌기도 했으며 뛰어난 점프력을 활용한 공중볼 경합 능력도 우수했다.

초년에는 부다페스트의 여러 군소 팀을 떠돌다가 MTK 헝가리아에서 전성기를 누린 란토스 미할리는 히데구티 난도르, 샨도르 카로이와 함께 활약하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55년 미트로파 컵에서는 결승전에서 라이벌 부다페스트 혼베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소위 매직 마자르라 불렸던 세베슈 구스타브 체제에서 중용받은 란토스는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으며 1948년부터 1953년까지 치러진 중유럽컵에서도 우승하는 등 4년간 31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기록했으나 1954 스위스 월드컵 결승에서 아쉽게 패하며 월드컵 우승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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