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공격수 Top 20

국가의 영웅들/포르투갈

포르투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공격수 Top 20

토르난테 2024. 10. 29.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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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포르투갈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4년 10월 27일 기준입니다.

 


20위 엘데르 포스티가

 


생년월일: 1982년 8월 2일
A매치 기록: 71경기 27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레알 사라고사

2000년대와 10년대에 걸쳐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주로 이름을 날렸던 스트라이카로 득점력은 라이벌인 우구 알메이다나 리에드손보다 확실히 부족했지만 준수한 포스트 플레이와 드리블, 그리고 패스를 활용한 연계 플레이를 바탕으로 2선 공격수의 공격력을 살려주는 역할에는 더 능숙했다.

초년에 무리뉴 체제의 FC 포르투에서 데뷔해 바로 두각을 나타내며 첫 시즌인 2001-02 시즌부터 13골을 득점했고 2002-03 시즌에는 주전으로 프리메이라 리가, 타사 데 포르투갈, 그리고 UEFA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워 잉글랜드의 토트넘에 입단했다. 그러나 부진해서 다시 포르투로 돌아온 뒤에는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다가 2006-07 시즌에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스포르팅을 거쳐 레알 사라고사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나 사라고사를 떠난 뒤에는 다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는 소속팀에서보다 퍼포먼스가 더 좋았던 포스티가는 UEFA 유로 2004와 2006 독일 월드텁에서는 백업으로 각각 준우승 및 4위를 기록했고 UEFA 유로 2008에서도 누누 고메스와 로테이션으로 나섰으며 UEFA 유로 2012에서는 우구 알메이다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도약해 호날두와 루이스 나니를 보좌해 조국의 4강행에 큰 공을 세웠다.

 

19위 우구 알메이다

 


생년월일: 1984년 5월 23일
A매치 기록: 57경기 19골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에 유럽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장신의 스트라이커로 큰 키와 우수한 바디밸런스를 활용한 강력한 헤더와 파워풀한 왼발 슈팅으로 많은 득점을 기록했으며 포스트플레이에도 능했다.

포르투갈 무대에서는 크게 자리잡지 못했으나 베르더 브레멘에서 클로제의 대체자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아 전성기를 누린 알메이다는 2008-09 시즌 DFB포칼 우승 및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팀을 분데스리가 상위권에 올렸으며 베식타스에서는 2010-11 시즌, 수페르리가 득점왕 및 튀르키에 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는 소속팀에서보다 퍼포먼스가 더 좋았던 우구 알메이다는 연령별 대표팀 시절에는 2004 아테네 올림픽에 소집되었고 성인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2008에 소집된 이후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고 UEFA 유로 2012에서는 라이벌 엘데르 포스티가에게 주전자리를 내줬지만 백업으로 4강 진출을 경험했다.

 

18위 아르투르 조르즈

 


생년월일: 1946년 2월 13일
A매치 기록: 16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9cm
주 소속팀: SL 벤피카

 

팬들로부터 아서왕이라 불렸던 1970년대 포르투갈 무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골잡이 중 한 명으로 테크닉은 평범했지만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적절한 위치선정과 우수한 결정력을 선보였던 필리포 인자기 스타일의 스트라이커였다.

포르투에서 데뷔했으나 자리잡지 못하고 아카데미아를 거쳐 벤피카에서 전성기를 누린 아르투르 조르즈는 아카데미카와 벤피카에서는 경기당 1골에 가까운 득점행진을 펼쳤는데 특히 벤피카에서는 1971-72 시즌 무패우승을 포함해 프리메이라 리가 4회 연속 우승을 이뤄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는 소속팀만큼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조르즈는 훗날 감독으로는 자신의 데뷔 클럽이자 전성기를 보낸 벤피카의 라이벌 포르투에서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고 파리 생제르맹 구단 역사상 첫 전성기를 이끌기도 했다.

 

17위 리에드송

 


생년월일: 1977년 12월 17일
A매치 기록: 15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스포르팅 리스본

 

브라질 출신이지만 포르투갈 시민권을 얻어 포르투갈 국적으로 귀화한 스트라이커로 마른 체구 때문에 레베지뉴, 즉 말라깽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로 몸싸움에서는 한계를 드러냈지만 빠른 스피드와 민첩한 몸놀림, 그리고 적절한 페널티박스 침투와 원샷 원킬의 마무리를 앞세웠던 페널티 에어리어의 여우였다.

초년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며 22세까지 축구와 슈머파켓 점원 일을 병행했던 리에드송은 20대 중반의 나이에 브라질의 플라멩구와 코린치안스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2003-04 시즌부터 스포르팅 리스본에 합류해 전성기를 보내며 여덟 시즌을 머무는 동안 여덟 시즌 모두 두 자릿수 이상의 득점을 기록했음은 물론 타사 데 포르투갈 2회 우승 및 2004-05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리에르송 개인도 2004-05 시즌과 2006-07 시즌에는 프리메이라 리가 득점왕에 올랐다.

2009년, 포르투갈 시민권을 획득해 대표팀에 합류한 리에드송은 포르투갈 대표팀 소속으로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코트디부아르전에 선발출전했고 북한전에는 교체투입되어 득점을 기록했으나 16강에서는 우구 아우메이다에게 주전자리를 내주며 16강 진출에 만족해야 했고 2011년에는 브라질로 돌아갔다.

 

16위 주앙 펠릭스

 


생년월일: 1999년 11월 10일
A매치 기록: 43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한때 1999년 최고의 유망주로 평가받았던 포워드로 특유의 우수한 볼 컨트롤을 바탕으로 온 더 볼 상황에서의 우수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부드러운 볼 터치와 날렵한 몸놀림을 바탕으로 상대를 간결하게 돌파해 내거나 벗겨내는 부분에서 강점을 보였지만 부족한 신체능력과 좁은 시야로 대성하지 못했던 유망주다.

벤피카 유스팀을 거쳐 벤피카에서 데뷔한 펠릭스는 데뷔 시즌에 2018-19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을 이뤄낸 주역으로 프리메이라 리가 올해의 팀과 신인상을 수상했고 UEFA 유로파 리그에서도 준수하게 활약하며 대회 시즌의 스쿼드에 선정되었는데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2019년 골든 보이를 수상했다. 그리고 그리즈만의 대체자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에도 2020-21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2021-22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올해의 선수 및 라리가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상술했던 단점들이 크게 부각되었고 팀과 사이가 나빠진 뒤로는 임대를 떠돌면서 재능을 찾지 못하다가 2024-25 시즌을 앞두고 첼시로 이적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는 우수한 공격 자원이 많아 주전으로 출전하지 못하고 있는데 로테이션으로 활약하며 2018-19 UEFA 네이션스 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행을 이끌었으나 UEFA 유로 2024에서는 부진한 활약 및 승부차기 실축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15위 도밍구스 파시엔시아

 


생년월일: 1969년 1월 2일
A매치 기록: 34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FC 포르투


1990년대 포르투갈 무대를 빛낸 공격수로 테크니컬한 드리블과 스트라이커치고는 우수한 패싱력을 겸비했으며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으로 다각도에서 슈팅을 날리는데 능했으며 처진 공격수로도 활약했다.

선수 생활 대부분을 포르투에서 보낸 파시엔시아는 포르투의 약진을 이끌며 프리메이라 리가 7회 우승과 타사 데 포르투갈 5회 우승을 포함해 총 16회의 우승을 이뤄냈고 1990년에 포르투갈 골든볼과 프리메이라 리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1995-96 시즌에는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득점왕에 올랐다.

벤피카의 후이 아구아스와 라이벌 기믹이 있엇던 파시엔시아는 전성기 시절에는 포르투갈이 국제무대에 나서지 못했지만 말년에 황금세대와 함께 UEFA 유로 1996에 참가했는데 히카르두 사 핀투의 백업으로 대기하며 8강 진출을 경험했다.

 

14위 후이 아구아스

 


생년월일: 1960년 4월 28일
A매치 기록: 31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벤피카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이자 캡틴인 주제 아구아스의 아들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했는데 양발과 머리를 모두 활용해 득점하는 능력이 뛰어나 안정적인 득점력을 선보였다.

포르티모넨스에서 1부 리그 생활을 시작한 후이 아구아스는 벤피카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세 시즌동안 1986-87 시즌 프리메이라 리가 및 타사 데 포르투갈 우승을 이뤄냈으나 라이벌 포르투로 이적해 팬들의 원성을 샀음에도 1989-90 시즌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을 이뤄냈다가 다시 벤피카로 돌아와 정규리그 2회 우승을 더 추가했다.

벤피카 소속으로 1987-88 시즌 유러피언 컵 득점왕 및 1990-91 시즌 프리메이라 리가 득점왕에 오른 아구아스는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포르투의 페르난도 고메스의 백업으로 활약하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 주전으로 출전했다.

 

13위 마누에우 페르난데스

 


생년월일: 1951년 6월 5일
A매치 기록: 31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2cm
주 소속팀: 스포르팅 리스본

 

1970~80년대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에 큰 족적을 남긴 스트라이커로 마치 페르난도 토레스나 마이클 오언을 연상시키는 빠른 스피드와 상대 수비라인 배후 공간으로 침투하는 능력을 앞세워 수많은 득점을 세웠던 포처 스타일의 공격수였다.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전성기를 보낸 마누에우 페르난데스는 프리메이라 리가 2회 우승 및 타사 드 포르투갈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85-86 시즌에는 프리메이라 리가 득점왕에 올랐음은 물론 페르난도 페이로테우에 이어 스포르팅 리스본 구단 역사상 통산 득점 2위에 오르기도 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페르난도 고메스, 후이 주르당, 후이 아구아스와 와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마누에우 페르난데스는 1986 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 주전으로 출격이 예상되었으나 주제 토히스는 득점왕에 올랐음에도 그를 신뢰하지 않았고 대표팀에서 펼쳐진 살티요 스캔들로 인해 월드컵 스쿼드에서 제외되었고 클럽의 후원으로 멕시코 여행을 즐기다가 왔다.

 

12위 누누 고메스

 


생년월일: 1976년 7월 5일
A매치 기록: 79경기 29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FC 포르투의 전설 페르난두 고메스를 존경해 예명인 누누 고메스로 활동했던 인물로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날카로운 골 감각과 괜찮은 패스센스로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에도 능했으며 특히 그의 주특기인 발리 슈팅은 이 분야의 전설 중의 전설 장피에르 파팽 못지않았다.

보아비스타에서 데뷔해 데뷔 3년 차인 1996-97 시즌 타사 데 포르투갈 우승을 이뤄낸 누누 고메스는 벤피카로 이적해 활약했는데 본인은 프리메이라 리가 올해의 선수 2회 수상을 이뤄냈지만 팀은 포르투의 강세에 밀려 무관으로 시즌을 마쳤다. 이에 바티스투타의 대체자로 피오렌티나에 입단해 2000-0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기여했지만 다음 시즌에는 본인의 부진과 재정난으로 팀이 무너지며 벤피카로 돌아갔고 벤피카에서는 프리메이라 리가 2회 우승 및 2003-04 시즌 타사 드 포르투갈 우승을 이뤄내며 리그무관의 한을 풀어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연령별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누누 고메스는 1994년 UEFA U-18 챔피언십 우승 및 1996 애틀랜타 올림픽 4위라는 성적을 이뤄냈고 이를 바탕으로 성인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자리 잡아 UEFA 유로 2000에서 잉글랜드전 결승골 및 터키전 멀티골을 득점하며 팀의 준결승행에 공헌했으나 8개월 출장 정지를 받으면서 주전 자리를 파울레타에게 내주면서 그의 은퇴 전까지 그의 백업으로 나섰는데 백업으로 나섰을 때에도 UEFA 유로 2004 스페인전 결승골을 득점하는 등 쏠쏠하게 활약을 했다.

 

11위 주앙 핀투

 


생년월일: 1971년 8월 19일
A매치 기록: 81경기 23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64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대한민국의 팬들은 그를 2002 한일 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박지성을 상대로 거친 백태클로 레드카드를 받은 뒤 주심을 폭행한 장면으로 많이 기억하는 선수로 실제로도 다혈질적이고 폭력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되는 선수였지만 그래도 볼을 다루는 스킬과 빠른 스피드는 물론 공격 진영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던 전천후 공격수였다.

벤피카에서 전성기를 누린 주앙 핀투는 암흑기에 빠진 벤피카를 데리고 분전하며 1993-94 시즌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과 타사 데 포르투갈 2회 우승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지만 핀투 개인의 활약상은 인정받아 프리메이라 리가 올해의 선수 3회, 포르투갈 골든볼을 2회 수상하며 리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명성을 떨쳤고 스포르팅 리스본으로 이적해서도 2001-20 시즌 프리메이라 리가와 타사 데 포르투갈 더블을 이뤄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는 1989년과 1991년 FIFA U-20 월드컵에서 2연패를 기록하던 황금세대의 일원이었던 핀투는 UEFA 유로 1996과 UEFA 유로 2000에 출전해 각각 8강 및 4강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부진한 퍼포먼스와 대한민국전 백태클 퇴장 등으로 우승후보로 평가받았던 조국의 조별리그 탈락의 원흉이 되었다.

 

10위 후이 주르당

 


생년월일: 1952년 8월 9일
A매치 기록: 43경기 15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스포르팅 리스본

어린 시절부터 제2의 에우제비우로 주목받았던 스트라이커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신체밸런스를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제치고 강력하면서도 정교한 슈팅력을 바탕으로 골문을 맹폭했다.

앙골라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벤피카 유스팀에 입단한 뒤에 벤피카에서 데뷔한 후이 주르당은 프리메이라 리가 4회 우승을 이뤄냈고 라리가의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했지만 본인은 준수했음에도 수비진에서의 부진으로 강등을 당하자 북미무대를 거쳐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와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81-82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프리메이라 리가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주르당 개인도 벤피카 소속이었던 1975-76 시즌과 스포르팅 소속이었던 1979-80 시즌에 프리메이라 리가 득점왕을 수상했다.

1980년 스포르팅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포르투갈 올해의 선수를 수상한 후이 주르당은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주포로 활약했는데 UEFA 유로 1984 예선에서 소련과의 3라운드에서 0-5로 패한 여파로 최종전에서 소련을 상대로 무조건 승리해야 올라가는 상황에서 페널티킥골을 성공시키며 포르투갈 축구 역사상 첫 유로 본선 진출을 이뤄냈고 본선에서도 우승후보 프랑스를 상대로 동점골과 연장전 역전골을 득점했으나 플라티니의 활약으로 재역전당해 아쉽게 4강에 머물렀다. 그래도 이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주르당은 1984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14위에 올랐다.

 

9위 파울레타

 


생년월일: 1973년 4월 28일
A매치 기록: 88경기 47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2000년대 포르투갈의 황금기를 이끈 스트라이커로 우수한 양발 슈팅에서 나오는 마무리와 강력한 몸싸움 능력을 겸비했던 정통파 스트라이커였다.

포르투갈 국적이지만 포르투갈 프로무대에서는 활약상이 거의 없는데 스페인의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를 거쳐 프랑스 무대에서 전성기를 누린 파울레타는 지롱댕 보르도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세 시즌 연속으로 20골 이상 득점했으며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쿠프 드 프랑스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보르도와 파리 생제르맹을 합해서 리그앙 득점왕 3회 수상 및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황금세대와 함께하며 주포로 활약하며 특히 예선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던 파울레타는 UEFA 유로 2000에 첫 출전해 조국의 4강행을 이끌어고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폴란드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그리고 UEFA 유로 2004에서는 주전으로 기용되었으나 한 골도 득점하지 못했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유럽 지역예선 득점왕에 올랐지만 본선에서는 첫 경기 앙골라전 외에는 득점을 하지 못했다.

 

8위 핑가

 


생년월일: 1909년 7월 30일
A매치 기록: 21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FC 포르투

 

페르난도 페이로테우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이전 포르투갈 무대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인사이드 라이트로 활약하며 우수한 볼 테크닉과 유려한 드리블, 그리고 막강한 슈팅력으로 포르투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첫 시즌에 마리티무에서 뛴 것을 제외하면 FC 포르투에서만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던 핑가는 포르투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프리메이라 리가 3회 우승과 타사 데 포르투갈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35-36 시즌에는 리그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14경기 21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1930년대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한 핑가는 1935년 5월 5일에 리스본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친선 경기에서 0-3으로 지는 상황에서 두 골을 넣으며 3-3 무승부를 기록했는데 A매치에 기록한 9골 중 4골을 스페인을 상대로 득점했을 정도로 스페인에게 강했다.

 

7위 마누에우 바스케스

 


생년월일: 1926년 7월 29일
A매치 기록: 26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89cm
주 소속팀: 스포르팅 리스본

 

1940년대 포르투갈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인사이드 포워드로 그레이하운드, 말로아로 불렸는데 우수한 발재간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라인을 교란한 뒤에 우수한 위치 선정과 강력한 킥을 활용해 통산 230골 이상의 득점을 기록했다.

선수 커리어 대부분을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보낸 바스케스는 페이로테우, 아우바누, 트라바수스, 코헤이아와 함께 다섯 개의 바이올린이라 불렸던 공격 편대와 함께 포르투갈 무대를 맹폭하며 프리메이라 리가 8회 우승 및 타사 데 포르투갈 2회 우승을 이끌었고 라틴컵에서도 준우승을 이뤄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중용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시대에 활약했던 선수라 국제대회에 나서진 못했지만 친선전에 주로 나섰다.

 

6위 페르난두 고메스

 


생년월일: 1956년 11월 22일
A매치 기록: 47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FC 포르투

 

1980년대 유럽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빠른 스피드와 날랜 몸놀림을 이용해 상대 수비라인 의의 빈틈을 향해 돌파했으며 기본적인 득점력도 좋았지만 발리 슈팅이나 바이시클 킥으로 아크로바틱한 골장면을 만들어내는 선수로 유명했다.

포르투 통산 출전 4위에 랭크된 페르난두 고메스는 프리메이라 리가 5회 우승과 타사 데 포르투갈 3회 우승을 포함해 자국 무대에서 11회의 우승을 차지했으며 1986-87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 5골을 득점하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웠으며 UEFA 슈퍼컵과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연달아 우승하며 1987년을 포르투를 위한 한 해로 만들었다.

포르투 통산 최다 득점자인 페르난두 고메스는 "골을 넣는 것이란 마치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과 같다."는 명언을 남겼으며 실제로 프리메이라 리가  득점왕을 여섯 번이나 수상했으며 유러피언 골든슈 2회, 타사 데 포르투갈 득점왕 2회를 수상하는 기염을 통했으며 1983년에는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올해의 선수상을 받기도 했으며 그 해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11위에 올랐다.

 

5위 마타테우

 


생년월일: 1927년 7월 26일
A매치 기록: 27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CF 벨레넨스스

 

오리지널 에우제비우라고 평가받았던 모잠비크 출신의 스트라이커로 흑표범과 같은 운동능력과 막강한 킥력으로 상대의 골문을 맹폭하자 언론으로부터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벨레넨스스에서 전성기의 대부분을 보낸 마타테우는 친동생 비센치 루카스가 수비를 이끌고 본인이 공격을 이끄는 체제로 1959-60 시즌 타사 드 포르투갈 우승을 이뤄냈으며 리그에서도 1952-53 시즌과 1953-54 시즌에 각각 29골로 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주제 아구아스, 마누에우 바스케스 등과 라이벌리를 구성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마타테우는 비록 포르투갈의 암흑기라 국제대회에는 나서지 못했지만 소속팀에서의 우수한 활약으로 2015년에 포르투갈 축구협회 창립 100 주년 기념행사에서 구시대 베스트 일레븐에 에우제비우, 페이로테우와 함께 선정되기도 했다.

 

 

4위 주제 토히스

 


생년월일: 1938년 9월 8일
A매치 기록: 33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1960년대 유럽 대륙에서 이름을 날린 장신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큰 키를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로 헤딩 패스로 공격을 지원한 능력은 물론 양발과 머리를 모두 잘 써서 다양한 패턴으로 득점을 기록했는데 거대한 체구와 험악한 외형과는 다르게 의외로 상냥한 성격과 우수한 팬서비스를 겸비해 팬들로부터 친절한 거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주제 아구아스의 후계자로 벤피카에서 에우제비우와 투톱 조합을 구성해 상대 골문을 맹폭했던 장신 공격수 토히스는 프리메이라 리가 9회 우승과 타사 데 포르투갈 4회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 2회 우승 및 3회 준우승을 이뤄냈고 토히스 개인도 1962-63 시즌 정규리그 득점왕, 1964-65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올랐으며 벤피카 공식전 통산 득점 4위에 랭크되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에우제비우와 함께 최선봉에 선 토히스는 벤피카의 동료들과 함께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출전해 처녀 출전한 팀을 3위에 올려놓는데 크게 공헌했다.

 

3위 주제 아구아스

 


생년월일: 1930년 11월 9일
A매치 기록: 25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에우제비우 등장 이전 벤피카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어느 방향에서나 온 몸으로 득점하는 선수였는데 신채밸런스가 우수했고 탁월한 양발 사용 능력과 힘과 기술을 겸비한 슈팅을 바탕으로 원거리와 근거리, 오른쪽과 왼쪽을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슈팅을 날려대며 득점했으며 특히 황금의 머리라 불렸을 정도로 헤더에 능했다. 이 뿐만 아니라 팀을 아우르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벤피카 구단 역대 최고의 주장으로 평가받는다.

벤피카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아구아스는 벤피카에 머무는 동안 프리메이라 리가 5회 우승과 타사 데 포르투갈 7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럽 무대에서도 주장으로서 두 번의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 선발 출장해 우승을 이뤄냈고 아구아스 개인도 프리메이라 리가 득점왕에 5회, 타사 데 포르투갈 득점왕에 4회 올랐으며 1960-61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에 이어 유러피언 컵에서도 득점왕을 차지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1960-61 시즌에 그가 유러피언 컵에서 보여준 활약은 발군이었는데 9경기에 출전해 11골을 득점한 아구아스는 예선 하츠전 선제골을 시작으로 토너먼트 1라운드 우이페슈트 도사와의 홈경기에서 멀티골, 8강 덴마크의 AGF와의 2경기, 4강 라피트 빈과의 2경기, 그리고 결승전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모두 득점하며 5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는데 특히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득점한 골은 동점골이었으며 이 골을 기점으로 라마예츠의 자책골과 골루냐의 골이 더해지며 3-2 신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공식 MVP가 없지만 사실상 대회 최고의 선수급 퍼포먼스를 보이며 1961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에 랭크되었다.

 

 

2위 페르난도 페이로테우

 


생년월일: 1918년 3월 10일
A매치 기록: 20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92kg
주 소속팀: 스포르팅 리스본

 

포르투갈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 중 한 명이자 1940년대 유럽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빠른 스피드와 거대한 체격을 바탕으로 최전방에서 저돌적인 몸싸움과 강력한 헤더를 활용하거나 강력한 슈팅으로 확실하게 마무리하는 스트라이커였다.

스포르팅 리스본의 원 클럽맨이자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인 페이로테우는 아우바누, 트라바수스, 코헤이아, 바스케스와 함께 다섯 개의 바이올린이라 불렸던 조합을 지휘해 구단의 황금기를 이뤄냈는데 프리메이라 리가와 타사 드 포르투갈에서 각각 5회 우승을 이뤄냈고 1944년에는 수페르타사 칸디두 드 올리베이라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페이로테우 개인은 프리메이라 리가 득점왕을 6회 수상했는데 특히 1946-47 시즌에는 정규리그에서만 19경기에 출전해 43골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장식했다.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통산 최다 득점자였더 페이로테우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시대에 활약했던 선수라 국제대회에 나서진 못했지만 친선전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는데 1938년 독일과의 친선전에서 데뷔했고 스위스와의 지역 예선전에서 첫 득점포를 기록했다.

 

1위 에우제비우

 


생년월일: 1942년 1월 25일
A매치 기록: 64경기 41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1960년대 남미의 펠레에 대한 유럽의 대답으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공격수에게 필요한 능력은 모두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슈팅 능력만큼은 당대 최고의 선수 펠레를 능가했으며 찬스 메이킹 능력과 드리블 돌파 능력도 당대 유럽 최고의 수준이었다.

벤피카 통산 최다 득점자 에우제비우는 프리메이라 리가 11회 우승과 타사 데 포르투갈 5회 우승 및 유러피언 컵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72-73 시즌에는 코엘류, 토니, 시몽에스 등과 함께 무패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에우제비우 개인도 리그 득점왕 7회 수상, 유러피언 컵 득점왕 3회 수상 등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했음은 물론 1965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커리어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불세출의 활약을 펼친 에우제비우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디펜딩 챔피언 브라질과 전통의 강호 헝가리를 밀어내고 조 1위로 8강에 진출해 북한을 상대로 4골을 넣으며 0-3 패배를 5-3으로 뒤집으며 준결승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우며 득점왕까지 차지했음은 물론 실질적인 대회 MVP로 평가받기도 했다.

 


선정 인원 외 추가할 수 있는 명단

 

 

주앙 마르틴스

 


생년월일: 1927년 9월 3일
A매치 기록: 11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1kg
주 소속팀: 스포르팅 리스본

 

조르제 카데테

 


생년월일: 1968년 8월 27일
A매치 기록: 33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스포르팅 리스본

 

 

히카르두 사 핀투

 


생년월일: 1972년 10월 10일
A매치 기록: 45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스포르팅 리스본

 

에데르

 


생년월일: 1987년 12월 22일
A매치 기록: 35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SC 브라가

 

곤살루 하무스

 


생년월일: 2001년 6월 20일
A매치 기록: 14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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