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세리에 A 올스타

리그의 전설들/이탈리아 세리에 A

1960년대 세리에 A 올스타

토르난테 2024. 9. 1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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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1950-51 시즌부터 1959-60 시즌까지의 활약으로 베스트 일레븐 선정.

세리에 A 소속으로 활약한 국제 클럽 대항전 역시 가산점으로 포함해서 계산.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이름: 엔리코 알베르토시
출생년도: 1939년 11월 2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칼리아리

 

1960년대 이탈리아 최고의 골키퍼로 빠른 반응속도와 고무 같은 유연성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운동능력으로 압도적인 선방 능력을 보여줬으며 수비 조율 능력도 뛰어나 일부 현지 팬들은 부폰이나 조프보다도 낫다고 평하기도 했다.

조프의 라이벌로 평가받는 알베르토시는 그 평가를 괜히 받는 게 아닐 정도로 여러 업적을 새웠는데 피오렌티나에서는 1960-61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UEFA 컵 위너스컵 더블 우승과 1965-66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미트로파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고 1969-70 시즌에는 칼리아리의 세리에 A 우승이라는 기적을 이뤄냈는데 알베르토시는 그 과정에서 30경기에서 11실점만 내준 엄청난 활약으로 구단의 유일한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다.

 

 

리베로

 

 

이름: 체사레 말디니
출생년도: 1932년 2월 5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AC 밀란

 

역대 최고의 레프트백 파올로 말디니의 아버지이자 1960년대 상반기 세계 최초의 리베로 중 하나로 공격 가담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팀의 수비라인을 지휘하며 안정적인 커버플레이와 우수한 수비라인 통솔력과 효과적인 경기 템포 조절, 그리고 상대 공격수를 잡아먹는 대인 수비 능력도 뛰어났다.

AC 밀란 통산 출전 10위에 랭크된 체사레 말디니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활약했는데 50년대 첫 전성기 시절에는 센터하프로 활약했고 네레오 로코 체제의 두 번째 전성기에는 카테나치오 시스템의 리베로로 활약해 세리에 A 4회 우승과 1956년에는 라틴 컵 우승을 이뤄냈고 1962-63 시즌에는 로코의 카테나치오의 스위퍼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며 팀의 첫 유러피언 컵 우승에 크게 공헌하며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센터백

 

 

이름: 칼하인츠 슈넬링어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활약 기간: 1965~1974

주 소속팀: AC 밀란

 

1960년대 유럽 정상급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고 우수한 체력과 빠른 기동력을 활용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상대의 공격을 틀어막아 폭스바겐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주 포지션인 레프트백은 물론 높은 축구 지능과 포지션 이해도 및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센터백과 리베로,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었음은 물론 심판의 눈을 속이며 비매너 플레이로 상대 공격수의 심리를 흔드는 능력 역시 뛰어났다.

쾰른에서 독일 무대를 평정하고 만토바와 AS 로마에서 이탈리아 무대 적응을 마친 슈넬링어는 AC 밀란에서 제2의 전성기를 보냈는데 로쏘네리 군단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동안 코파 이탈리아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67-68 시즌에는 세리에 A와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에서 우승하며 더블을 이뤄냈으며 1968-69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하며 밀란의 전성기 시절 팀의 수비라인을 지휘했다.

 

 

라이트백

 

 

이름: 타르치시오 부르니치
출생년도: 1939년 4월 25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그란데 인테르 시대에 활약했던 라이트백으로 자이르 다 코스타의 위치에 따라 라이트백과 스토퍼로 자유자재로 변했으며 당대 최고의 대인 마킹 실력을 자랑하며 에우제비우나 푸스카스 같은 훌륭한 공격수들을 마킹하며 명성을 쌓았다.

그란데 인테르라 불렸던 시절의 황금기를 이끈 카테나치오의 한 축을 담당한 부르니치는 바위처럼 상대 공격수를 짓누르며 세리에 A 4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회 우승을 이루는데 공을 세워 1964년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말년에는 나폴리에서 활약하며 리베로로 포지션을 변경하기도 했다.

 

 

레프트백

 

 

이름: 지아친토 파케티
출생년도: 1942년 7월 18일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인테르와 아주리의 위대한 캡틴이자 유럽 최초로 오버래핑을 시도하며 카테나치오의 매서운 역습을 상징하는 선수였다. 빠른 스피드와 탄탄한 기본기를 활용해 공격에 적극 가담하며 상대 수비진을 교란했으며 강력한 피지컬을 앞세운 대인 수비에도 능했다.

선수생활을 오직 인테르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이며 구단 통산 출전 3위에 오른 파케티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1회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과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뤄내며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를 이뤄낸 위대한 레프트백임을 인정받아 그가 선수 시절에 달고 활약했던 등번호 3번은 영구결번 처리되었다.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된 파케티는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총 7회 선정되어 그중 1965년에는 2위, 1968년에는 5위에 올랐다. 사후 2019년에는 인테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지아코모 불가렐리
출생년도: 1940년 10월 24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볼로냐 FC

20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레지스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던 인물로 우수한 판짜기와 드넓은 시야, 그리고 정확한 롱 패스를 활용한 우수한 플레이메이킹은 물론 교묘한 탈압박 능력과 파워풀한 수비와 왕성한 활동량 또한 겸비해 파비오 카펠로에 의해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드필더로 평가받기도 했다.

볼로냐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불가렐리는 1963-64 시즌에는 유럽 최강의 팀으로 불리던 인테르 밀란과 승점 동률을 이룬 뒤 플레이오프에서 승리를 거두며 스쿠테토를 따냈고 이외에도 코파 이탈리아와 2회 우승과 1961 미트로파 컵 우승과 1970년 이탈리아-잉글랜드 리그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라이트 메짤라

 

 

이름: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
출생년도: 1935년 5월 2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60년대 상반기 유럽 무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어난 훌륭한 볼 컨트롤과 우수한 패싱력과 효율적인 공간 활용, 그리고 탁월한 전술안을 바탕으로 팀의 공격을 지휘해 일명 건축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바르셀로나에서 발롱도르를 수상한 루이스 수아레스는 은사 엘레니오 에레라를 따라 인테르로 이적한 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해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루며 그란데 인테르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루이스 수아레스 개인 역시 인테르에서 활약한 기간에만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64년 발롱로드 2위와 1965년 발롱도르 3위에 올랐다.

 

 

레프트 메짤라

 

 

이름: 지안니 리베라
출생년도: 1943년 8월 18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AC 밀란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트레콰르티스타로 신기에 가까운 볼 컨트롤을 가진 것은 물론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창의적인 패싱력과 정교한 드리블로 유명했음은 물론 1972-73 시즌 세리에 A 득점왕 및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도 2회 수상한 적도 있었을 정도로 득점력도 훌륭했다.

AC 밀란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며 구단 통산 출전 4위 및 통산 득점 3위에 랭크된 골든 보이 지안니 리베라는 AC 밀란에서 19년간 활약하며 세리에 A 3회 우승 및 코파 이탈리아 우승 4회를 이뤄내 그란데 인테르와 양립하는 이탈리아의 또 다른 왕조를 만들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62-63 시즌과 1968-69 시즌에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고 1967-68 시즌과 1972-73 시즌에는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69년에는 남미의 패자 에스투디안테스의 거친 플레이를 뚫고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냈다.

은퇴 후 AC 밀란의 부구단주가 된 리베라는 AC 밀란에서 많은 영예를 누렸는데 FUWO 선정 유럽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9회 선정되어 1963년에는 2위, 1969년에는 1위를 기록하며 발롱도르를 수상해 명실상부 유럽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그리고 은퇴한 이후에는 AC 밀란 명예의 전당 헌액 및 1999년 20세기 최고의 AC 밀란 선수로 선정되었고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및 이탈리아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라이트윙

 

 

이름: 산드로 마촐라
출생년도: 1942년 11월 8일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아버지 발렌티노 마촐라와 라이벌 지안니 리베라와 함께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손꼽히며 훌륭한 슈팅 스킬과 창의적인 패싱력, 탄탄한 볼 컨트롤과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의 필수적인 덕목은 물론 기동력도 탁월했으며 측면과 중앙을 오가는 왕성한 활동량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인테르 밀란 역대 통산 득점 4위에 올라있으며 선수 생활을 오직 인테르 밀란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산드로 마촐라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루며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를 열었는데 이 과정에서 마촐라는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줘 레알 마드리드의 푸스카스로부터 "너의 아버지 발렌티노 마촐라 못지않구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마촐라 개인도 여러 영예를 누렸는데 1963-6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올랐으며 1964-65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고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9회 선정되어 1971년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레프트윙

 

 

이름: 오마르 시보리

출생년도: 1935년 10월 2일
신체조건: 키 163cm / 몸무게 59kg
소속팀: 유벤투스 FC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기 세계 최고의 판타지스타 중 한 명으로 뛰어난 볼 컨트롤과 드리블로 수비진을 교란했으며 매서운 왼발 슈팅으로 직접 득점하기도 했으나 규율과 규칙을 싫어하고 브라질 선수들과 사이가 나빠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아르헨티나에서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끈 시보리는 우승 직후에 이탈리아로 건너가 유벤투스에 합류했는데 유벤투스에서는 존 찰스, 보니페르티와 함께 마법의 삼총사를 구성해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를 각 3회씩 우승했고 1959-60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다.

특히 1960-61 시즌에  데르비 디탈리아에서는 인테르를 상대로 혼자서 여섯 골을 퍼부으며 9-1이라는 기록적인 대승을 거두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 이때의 활약을 발판으로 1961년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스트라이커

 

 

이름: 루이지 리바
출생년도: 1929년 12월 24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을 빛낸 스트라이커로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인해 천둥번개란 별명으로 불렸다. 헤딩에도 능했으며 스피드마저 빨라 레프트윙도 소화할 수 있었다.

선수 생활 대부분을 칼리아리에서 보낸 리바는 1969-70 시즌에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칼리아리의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 리바 자신도 득점왕에 올랐는데 이 시즌을 포함해 세리에 A 득점왕을 3회 수상된 리바는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2회 선정되어 1969년 2위와 1970년 3위에 오르며 포디움에 2회 선정되었다.

 

 

감독

 

 

이름: 엘레니오 에레라

출생년도: 1910년 4월 10일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감독 시절 초반에는 라리가에서 라마키나식 스위칭 플레이에 기반한 공격적인 축구로 성공을 거뒀던 사람이지만 환경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며 수비 지향적인 시스템인 카테나치오를 기반으로 두되 레프트백의 공격 가담, 즉 플루이디피칸테와 라이트윙, 즉 토르난테의 수비 가담을 활용해 같이 빗장을 잠구는 팀들에 대한 해법을 완벽하게 찾았다. 군대를 연상케 하는 규율로 팀의 조직력마저 탄탄하게 잡아 카테나치오의 왕이라 불렸으며 언론을 이용해 상대를 기만하는 일명 프레테티카를 선보인 최초의 감독이다.

라리가에서도 리그 정상급 감독으로 유명했지만 회장 및 일부 핵심선수들과의 갈등으로 바르셀로나 감독직을 내려놓고 인테르의 지휘봉을 잡았는데 스페인과는 다르게 상대하는 팀들이 수비 일변도로 나서 초년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자신의 기본 기조와 네레오 로코식 카테나치오를 결합한 뒤에는 그란데 인테르라 불리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룩하며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회 우승과 1회 준우승,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2회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AS 로마에서도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줄리아노 타콜라 사망사건의 책임을 지고 팀에서 물러났고 말년에는 FC 바르셀로나로 돌아가서 1980-81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내며 감독경력을 마무리했다.

인테르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16년에는 UEFA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10인으로 선정된 엘레니오 에레라는 승리를 위해서는 선수를 혹사시키기도 했고 상대 감독은 물론 자신이 맡은 팀의 구단주에게까지 사기를 치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아 논란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우승을 원하는 구단은 가장 먼저 에레라를 떠올렸다.

 

 

베스트 일레븐 라인업

 

 


서브 자원들 포함 25인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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