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세리에 A 올스타

리그의 전설들/이탈리아 세리에 A

1980년대 세리에 A 올스타

토르난테 2024. 9. 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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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1980-81 시즌부터 1989-90 시즌까지의 활약으로 베스트 일레븐 선정.

세리에 A 소속으로 활약한 국제 클럽 대항전 역시 가산점으로 포함해서 계산.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이름: 발테르 젱가
출생년도: 1960년 4월 28일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월드컵 역대 최장기간 무실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골키퍼로 행글라이더, 거미인간 등의 별칭으로 불렸을 정도로 뛰어난 유연성과 재빠른 반사신경, 그리고 가공할만한 점프력을 선보였다.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누린 젱가는 사키와 오렌지 삼총사가 버티는 AC 밀란을 제치고 1988-89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으며 UEFA 컵 2회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8년에 팬투표로 진행된 인터 밀란 명예의 전당 초대 헌액자로 이름을 남긴 젱가는 인테르에서 IFFHS 월드 베스트 골키퍼 3회 선정되었으며 1987년에는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고 1990년 UEFA 올해의 골키퍼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센터백

 

 

이름: 가에타노 시레아

출생년도: 1953년 5월 25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유벤투스의 황금기를 이끈 리베로로 뛰어난 통솔력과 정확한 커버 플레이는 물론 롱패스와 중거리 슈팅 같은 공격적인 재능에도 능했으며 냉정한 성격으로 돌발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팀을 잘 수습했기에 후배 카브리니도 "베켄바워를 제외하면 우리 팀 리베로들이 최고였다. 원래 리베로들은 극도로 수비 지향적이지만, 그들은 모두 진화하기 시작했고 결국 경기를 조절하는 선수들이 되었다. 가에타노 시레아가 그 첫 번째 진화를 거친 선수였는데, 그는 항상 공이 있는 곳에서 경기했다."라고 호평했다.

선수 생활 대부분을 유벤투스에서 보내며 유벤투스 구단 통산 출전 4위에 랭크된 시레아는 트라파토니 체제에서 유벤투스의 리베로를 맡아 구단의 세리에 A 7회 우승과 각 한 차례의 UEFA컵,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유러피언컵을 모두 우승해 3대 유럽 대항전을 모두 석권하는 등 구단 역사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선수가 되었다. 이런 업적을 바탕으로 2011년에 유벤투스 명예의 거리 및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시레아와 유벤투스의 대약진을 이끌었던 조프는 그를 두고 "가에타노는 확실한 스타일과 함께 모든 면에서 예외적인 사람이었다."라고 평가했고 라이벌 프랑코 바레시는 그에게 "상대가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공을 걷어내던 우아함"이라고 감탄했음은 물론 80년대 세계 최고의 선수 디에고 마라도나조차 그를 세계 최고로 평가하며 "모든 수비수들은 시레아의 '그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라고 호평했다.

 

 

센터백

 

 

이름: 프랑코 바레시
출생년도: 1960년 5월 8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AC 밀란

 

AC 밀란과 아주리의 위대한 캡틴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수비수 중 한 명으로 뛰어난 수비라인 통솔 능력과 빠른 스피드, 정확한 롱패스, 몸을 사리지 않는 태클을 모두 겸비한 완벽한 수비수이자 로쏘네리의 심장이었다.

AC 밀란의 원 클럽맨이자 통산 출전 2위에 랭크된 프랑코 바레시는 암흑기 시절 세리에 B 우승을 두 번 이뤄내며 팀을 승격시키며 암흑기의 기둥으로 활약했고 이후 베를루스코니에게 인수된 이후 사키의 밀란 제너레이션 기간에는 무패 우승을 포함해 세리에 A 6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AC 밀란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친 바레시는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음은 물론 그의 등번호 6번은 밀란의 영구결번으로 남았다.

수비수임에도 1989-90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3년 연속 선정되었던 바레시는 이렇듯 클럽과 대표팀을 가리지 않고 최정상의 실력을 뽐낸 바레시는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일곱 번 선정되어 1989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를 차지하며 포디움에 들었다.

 

 

라이트백

 

 

이름: 주세페 베르고미
출생년도: 1963년 12월 22일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시레아와 파트너를 이룬 수비수로 거친 플레이 스타일로 리비아의 독재자인 "카다피"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이런 거친 수비 방식과는 별개로 오른발로 올리는 정교한 크로스는 그가 속한 팀의 공격 루트 중 하나로 활용되기도 했다.

유벤투스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끈 젠틸레는 비안코네리의 유니폼을 입고 세리에 A 6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6-77 시즌에는 UEFA컵을 우승하며 팀의 첫 유럽 대항전 우승에 공헌했고 1983-84 시즌에는 컵 위너스컵 우승에도 기여했다. 

 

 

레프트백

 

 

이름: 안토니오 카브리니
출생년도: 1957년 10월 8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잘생긴 외모로 인해 아름다운 안토니오라 불렸던 선수로 1980년대 상반기를 빛낸 레프트백으로 윙어가 연상될 정도로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크로스, 왕성한 활동량으로 왼쪽 측면을 지배했으며 이는 트라파토니의 조나 미스타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명 스카우터였던 루치아노 모지로부터 잠재력을 인정받아 아탈란타에서 유벤투스로 합류해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신인상을 수상한 카브리니는 유벤투스에서 지아친토 파케티의 역할을 우수하게 수행하며 세리에 A 6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6-77 시즌 UEFA컵 우승, 1983-84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 및 슈퍼컵 우승, 그리고 1984-85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며 3대 유럽대항전을 석권했고 아르헨티노스 주니오스와의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우승에 기여했다.

당대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카브리니는 개인으로도 옹즈 드 옹즈에 3회 선정되었고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두 번 선정되었으며 1978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13위를 기록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로타어 마테우스
출생년도: 1961년 3월 21일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마라도나가 인정한 유일한 라이벌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로 철인이라 불리는 신체 능력과 왕성한 활동량을 물론 대인 수비에서도 당대 수비형 미드필더들보다 한 차원 위에 있었으며 우수한 테크닉과 결정적인 순간에 한건하는 클러치 능력과 반 바스텐, 비알리, 클린스만, 카레카 같은 세리에 A 정상급 스트라이커들과 득점왕 경쟁을 했을 정도로 뛰어난 득점력까지 겸비하며 넓은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게임도 끝낼 수 있는 완벽한 선수였으며 다양한 포지션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과장 좀 해서 마테우스 이전에 언급한 미드필더들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완벽한 미드필더였다.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데뷔해 바이에른 뮌헨에서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로 성장한 마테우스는 1988-89 시즌을 앞두고 브레메와 함께 인테르로 이적한 뒤, 수렁에 빠진 인테르를 부활시켰으며 1988-89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1990-91 UEFA컵 우승을 이뤄내는 등 구단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으나 바이에른 뮌헨으로 다시 이적했다. 마테우스가 가장 오랜 기간을 보낸 구단은 바이에른 뮌헨이지만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라 불리던 본인의 최전성기는 인테르에서 누렸다.

축구사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마테우스는 인테르 시절 옹즈 드 옹즈에 4회 선정되었으며 4년간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모두 선정되어 1988년 6위, 1989년 4위, 1991년 2위를 넘어 1990년에는 투표에서 1위를 달성하며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1991년에는 초대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했으며 2018년에 팬투표로 진행된 인터 밀란 명예의 전당 초대 헌액자로 이름을 남겼다. 비록 유러피언 컵을 선물하지도 못했고 왕조를 세우지도 못했지만 마테우스가 인테르에서 보여준 개인의 역량은 마라도나에 못지않았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파우캉
출생년도: 1953년 10월 16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AS 로마

 

브라질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광활한 시야와 창의적인 두뇌에서 나오는 패스로 경기를 지배했으며 뛰어난 지구력과 볼 컨트롤 능력과 수비 스킬, 그리고 다양한 포지션을 무난하게 소화하는 축구 지능까지 겸비한 완벽한 미드필더로 1980년대 상반기를 호령했다.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AS 로마로 이적해 유럽 무대에 도전한 파우캉은 잘로로시 군단의 전성기에 활약하며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과 1982-83 시즌에는 팀의 중원의 핵으로 40년 만에 세리에 A를 우승했으며 1983-8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올려놓았는데 이 시절의 파우캉의 활약이 대단해서 로마 팬들은 그를 두고 로마의 여덟 번째 왕이라 불렀다.

1982-83 시즌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리에 A 외국인 선수 랭킹 1위와 옹즈도르 3위에 오른 파우캉은 무릎 수술을 받고자 했으나 로마 팀 닥터들은 수술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며 수술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파우캉은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뉴욕으로 가서 무릎 수술을 받았고 이에 로마는 그와 맺었던 계약을 해지하며 짧은 동행을 끝냈으나 이때의 인상 깊은 활약은 구단과 팬 모두가 공감했기에 2012년에 그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라이트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뤼트 굴리트
출생년도: 1962년 9월 1일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AC 밀란

 

오렌지 삼총사의 일원이자 EA 스포츠의 게임인 피파 시리즈 최고의 선수로 꼽혔지만 실제로도 짧은 기간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손꼽히던 시절이 있었으며 압도적인 피지컬과 100m를 10초대에 주파하는 빠른 스피드는 물론 우수한 테크닉과 축구 지능이 모두 뛰어나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볼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패싱력이 약하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그가 가진 다른 능력에 비해서지 전체적으로는 뛰어난 편이었다.

페예노르트와 PSV 에인트호번에서 네덜란드 무대를 평정하며 세계구급 선수의 반열에 오른 굴리트는 AC 밀란으로 이적해 발롱도르를 수상한 굴리트는 사키 체제의 밀란 제너레이션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이뤄냈는데 그 덕분에 사키 시대의 밀란 제너레이션 1기는 클럽 축구 사상 최강의 팀 중 하나로 평가받는 팀으로 평가받았다.

로쏘네리의 유니폼을 입는 동안 여러 영예를 누린 만능맨 굴리트는 옹즈 드 옹즈 3회 선정은 물론 1987년에는 발롱도르와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를 수상했고 1988년에는 발롱도르 2위를 수상했고 1989년에는 다시 한번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에 선정되었다.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미셸 플라티니
출생년도: 1955년 6월 21일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80년대 중반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남미의 지쿠, 마라도나에 대한 유럽의 대답이라 불렸는데 드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하는 플레이메이킹은 일품이었으며 경기가 안 풀릴 때에는 3선 지역까지 내려가서 볼을 순환시켰다. 그리고 전방에서 동료들과 연계하며 많은 득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훌륭한 킥력을 바탕으로 하는 롱패스는 당대를 넘어 역대에서도 최고라 할 만했다.

생테티엔에서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면 유벤투스 시절에는 본격적으로 세계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는데 입단 첫 시즌에 1982-83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및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이후에는 세리에 A 2회 우승 및 1983-84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과 1984-85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다. 당연하게도 1984 유러피언 슈퍼컵과 1985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유벤투스에 머무는 동안 발롱도르 3회 연속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황금기를 누린 플라티니는 1983-84 시즌 구에린 도르 수상과 세리에 A 득점왕 3회 수상 및 1984-85 시즌에는 세리에 A와 유러피언 컵에서 동시에 득점왕을 수상했다. 유벤투스 입단 이후로 한정해도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 5회 선정 및 월드 사커 올해의 팀 4회 선정, 그리고 구에린 스포르티보 올해의 선수에도 2회 선정되었다. 당연하게도 유벤투스 명예의 거리와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레프트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디에고 마라도나
출생년도: 1960년 10월 30일
신체조건: 키 165cm / 몸무게 70kg
소속팀: SSC 나폴리

 

펠레, 메시와 함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으며 축구 역사상 최고의 볼 컨트롤러이자 드리블러로 손꼽히며 현대 축구였다면 퇴장당했을 강력한 태클도 가볍게 무시했으며 오렌지도 축구공 마냥 가지고 놀 수 있었던 기막힌 볼 컨트롤 능력과 사방에 눈이 달려있다고 평가받는 압도적인 시야와 예측을 불허하는 창의적인 패스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스테미너에 데드볼까지 능했던 완벽한 선수로 1979년, 즉 만 19세의 나이에 이미 펠레에 견줬던 화려한 선수였으며 여기에 리더십마저 겸비해 동료 선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구단 보드진과 협상하기도 했다.

나폴리는 바르셀로나에서 좋지 못한 시간을 보내던 마라도나에 전 예산을 투입했으며 마라도나는 이에 보답해 나폴리의 유니폼을 입고 인테르와 AC 밀란, 유벤투스 같은 북부의 전통 강호를 제치고 세리에 A 2회 우승은 물론 1986-87 시즌에는 리그에 이어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 더블을 달성했으며 1988-89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전설의 반열에 올랐으며 패배에 익숙하던 나폴리 선수들에게 위닝 멘탈리티를 선물했으며 엄청난 스타성으로 자신의 유니폼을 판매해 번 돈으로 자신의 이적료를 채워내는 위엄을 달성했다.

나폴리 통산 득점 4위에 랭크된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1985 세리에 평점왕에게 주는 상인 구에린 도르를 탔으며 1987-88 시즌 세리에 A 득점왕과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을 석권했으며 나폴리의 3대 명물로 선정되었음은 물론 그의 등번호 10번은 구단에서 영구결번으로 처리했고 그가 사망하자 나폴리는 마라도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경기장 이름을 산 파울로에서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로 바꿨다.

 

 

스트라이커

 

 

이름: 마르코 반 바스텐
출생년도: 1964년 10월 31일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AC 밀란

 

198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유연한 발리슛과 타점 높은 헤더에서 나오는 득점력과 마치 백조와 같이 우아한 볼 컨트롤 능력에서 나오는 퍼스트 터치는 가히 일품이었으며 팀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에도 능했던 스트라이커의 교과서라 불렸다.

아약스에서 활약하다가 크루이프와의 불화로 AC 밀란으로 떠난 반 바스텐은 AC 밀란으로 이적한 뒤에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클럽팀 중 하나라는 밀란 제너레이션 1기의 에이스로 활약했는데 그 시대의 슈퍼리그라 불렸던 세리에 A 3회 우승 및 유러피언컵 3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아올렸고 이때 감독이었던 파비오 카펠로로부터  "반 바스텐은 내가 훈련시킨 선수 중 최고의 센터포워드였다. 그는 백조였다. 호나우두는 절대적으로 월드클래스이지만, 그 역할에서 마르코가 가장 위대했다."라고 평가받았다.

부상으로 고생해 생각보다 많은 스탯을 양산하지는 못했지만 출전한 경기에서의 압도적인 모습으로 밀란 최고의 공격수 반열에 오른 반 바스텐은 세리에 A 득점왕 2회 수상, 1988-89 시즌 유러피언 컵 득점왕 수상, 발롱도르 3회 수상 및 옹즈도르 2회 수상이라는 화려한 커리어를 이뤄냈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부상으로 고생하며 결국 31세의 이른 나이로 은퇴했다. 그럼에도 전성기 시절의 임팩트가 대단해 은퇴한 뒤에는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과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감독

 

 

이름: 아리고 사키

생년월일: 1946년 4월 1일
주 소속팀: AC 밀란

 

1980년대 토털 풋볼을 재해석한 명장 중 한 명으로 기존의 미헬스가 창안한 압박 시스템에 간격이라는 요소를 만들었으며 지역과 상황에 따라 적절한 간격을 유지한 채로 상대를 체계적으로 압박하는 존 프레싱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으며 사키의 콤팩트 풋볼은 여러 상황에서의 존 프레싱을 기반으로 완성되었다.

하부리그에 있던 파르마에서부터 이 시스템을 이식한 아리고 사키는 특히 AC 밀란에서도 이 철학을 바탕으로 1987-88 시즌 세리에 A 우승 및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뤄내며 추후 카펠로 시대의 성공까지 영향을 미쳤다. 사키 개인은 1989년에 각종 감독상을 휩쓸었고 1989-90 시즌에도 유럽 축구 시즌의 감독에 선정되었다. 밀란 시절에 언론이 사키의 일천한 선수 경력을 비판했을 때 "기수가 되기 위해서 말이 될 필요는 없다"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비록 사키의 전성기는 짧았지만 그 영향력은 대단했는데 그가 고안한 존 프레싱을 기반에 둔 사키이즘은 크루이프즘을 제치고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많은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며 시대를 호령했고 크루이프즘의 적통인 펩 역시 사키의 축구의 일부를 삼켰고 위르겐 클롭, 디에고 시메오네와 같은 감독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사키이즘을 재해석했다.

 

 

베스트 일레븐 라인업

 

 


서브 자원들 포함 25인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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