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40위~3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스트라이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40위~31위

토르난테 2024. 3. 2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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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40위 게리 리네커

 


생년월일: 1960년 11월 30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레스터 시티

잉글랜드의 게르트 뮐러라고 불릴만한 선수로 화려한 플레이스타일과 강력한 피지컬을 가지진 못했지만 축구지능과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아 기막힌 위치 선정 능력을 가졌고 여기에 빠른 반응 속도를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 배후에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위치로 침투해 양발과 머리 모두를 이용해  침착하게 득점했다.

커리어 통산 리그 우승은 없었지만 잉글랜드 풋볼 리그 득점왕을 3회 수상했던 리네커는 FWA 올해의 선수에도 2회 선정되었으며 바르셀로나에서는 코파 델 레이 우승과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고 토트넘에서도 1990-91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냈다. 리네커 개인도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으며 1991년 피파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3위에 올랐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5회 선정되어 1986년 투표에서는 2위에 올랐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더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리네커는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비록 8강에서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한테 탈락했지만 6골이나 득점하며 득점왕을 수상했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4골을 득점하며 팀의 4강행에 일조했다. 월드컵에서만 10골을 집어넣은 선수로 이는 잉글랜드 국적 월드컵 최다 득점이다.

 

 

39위 데아크 페렌츠

 


생년월일: 1922년 1월 16일
국적: 헝가리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1kg
주 소속팀: 센틀뢰린치 AC

1940년대 최고의 페널티박스의 포처로 뛰어난 위치 선정과 정확한 슈팅으로 순수하게 득점에 치중하는 공격수였으며 요제프 비칸이나 게르트 뮐러, 그리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못지않았던 득점력을 자랑했다.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측정 기준 개인 통산 793골을 기록한 데아크는 센틀뢰린치에서 활약하던 1945-46 시즌에는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는데 무려 66골을 득점하며 단일 시즌 리그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고 1947년 페렌츠바로시로 이적한 뒤에도 1948-49 시즌 넴제티 버이녹샤그 우승을 이끌었고 83경기에 나서 121골을 기록하는 엽기적인 기록을 세웠고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A매치 경기수보다 A매치 득점수가 더 많았던 데아크는 중유럽컵에서는 세베슈 감독의 철학과 맞지 않아 중도에 하차했음에도 10골로 푸스카스에 이어 득점 2위를 기록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개인주의적인 성향떄문에 축구선수로서의 커리어는 물론 개인적인 부분에서도 갖은 수난을 당했는데 정부의 이적 명령에 불복했다가 반정부 인사로 낙인찍혀 체포당했으며 가족이 협박을 당함에 따라 비밀경찰팀 소속의 우이페슈티로 강제로 이적당하는 비운을 겪었는데 이런 사건에도 불구하고 106경기에 나서 108골을 기록하며 1경기당 1골 이상을 유지해던 비운의 천재였다.

 

 

38위 다비드 비야

 


생년월일: 1981년 12월 3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발렌시아 CF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우수한 판단력에서 나오는 절대 타이밍의 라인 브레이킹 능력과 양발 모두에서 날리는 정확한 슈팅으로 명성을 떨쳤고 우수한 축구지능에서 나오는 뛰어난 연계플레이를 자랑했음은 물론 최전방 공격수 외에도 처진공격수나 측면공격수 포지션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선보였다.

스포르팅 히혼에서 착실하게 성장해 레알 사라고사에서 코파 델 레이 우승에 공헌하며 이름을 알린 뒤 발렌시아와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누린 다비드 비야는 발렌시아에서는 2006-07 시즌 라리가 도움왕에 올랐고 텔모 사라 트로피를 4회 수상했고 2007-08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펩 체제의 바르셀로나에서는 2010-11 시즌 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 더블 우승에 공헌했으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라리가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도 기여했다. 그리고 말년에 머문 뉴욕 시티에서는 구단 통산 득점자에 오르기도 했다.

스페인 대표팀 통산 A매치 최다 득점자 타이틀을 보유한 다비드 비야는 UEFA 유로 2008에서는 득점왕에 오르며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무적함대의 월드컵 제패에 큰 공을 세우며 월드컵 브론즈볼과 실버슈를 수상했음은 물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탈락 속에서 득점을 이뤄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주전 출전이 유력했던 UEFA 유로 2012에서 낙마해 메이저대회 3연패를 같이 이뤄내지 못한 부분은 아쉬웠다.

 

 

37위 프레벤 엘케어

 


생년월일: 1957년 9월 11일
국적: 덴마크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엘라스 베로나


1980년대 중반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화려한 드리블과 강력한 피지컬을 겸비했으며 우수한 제공권에서 나오는 헤더는 물론 수비수 두세명 달고 뛰면서 파트너에게 골 찬스를 만들어주는 능력도 우수했다.

쾰른에서 서브 선수로 있다가 태도 문제로 방출당한 이후에 벨기에의 로케른에서 이름을 날린 엘케어는 엘라스 베로나에서 전성기를 맞아 독일 출신의 한스페터 브리겔과 함께 베로나의 기적적인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며 스타덤에 올랐는데 이는 마라도나가 나폴리를 이끌고 우승한 사례나 만치니가 삼프도리아를 이끌고 우승한 사례 이상으로 기적으로 평가받는 리그 우승이었고 이때의 퍼포먼스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다.

덴마크 대표팀에서도 우수한 모습을 보여주며 데니쉬 다이너마이트의 시대를 이끌었던 엘케어는 UEFA 유로 1984에서는 팀을 준결승에 올렸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죽음의 조라고 평가받았던 조에서 서독, 스코틀랜드, 우루과이를 모두 제압하고 조 1위로 토너먼트에 오르는데 1등 공신이었다. 특히 우루과이를 상대로 이뤄낸 해트트릭과도 같은 우수한 개인 퍼포먼스로 16강에서 탈락했음에도 대회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36위 장피에르 파팽

 


생년월일: 1963년 11월 5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올림피크 마르세유

폭격기라 불렸던 1990년대 상반기 최고의 공격수로 특히 뛰어난 유연성과 우수한 슈팅 스킬에서 나오는 대단한 바이시클 킥과 발리슛으로 활용해 그림 같은 득점을 만들어냈다.

발랑시엔에서 데뷔해 벨기에의 클뤼프 브리허로 이적해 1985-86 시즌 벨기에컵 우승을 경험했고 신흥강호로 기세를 올리던 마르세유에 입단해 활약했던 파팽은 마르세유에서 리그앙 4연패를 이끌었고 파팽 개인은 리그앙 득점왕에 5년 연속으로 올랐으며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유럽 무대에서도 1990-91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끌어내며 스타덤에 올라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나 이후 AC 밀란과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커리어는 다소 좋지 못했다.

프랑스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했던 파팽은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르는데 기여했으나 정작 자신의 전성기 때에는 저주받은 세대라 불린 세대로 팀의 부진에 맞물려 족적을 더 크게 남기지는 못했다.

 

 

35위 레이몽 브레인

 


생년월일: 1907년 4월 28일
국적: 벨기에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스파르타 프라하


1930년대 유럽 최고의 중앙공격수 중 한 명으로 뛰어난 테크닉과 치명적인 오른발 슈팅을 활용한 우수한 득점력은 물론 뛰어난 공간지각력을 바탕으로 공간활용에 능했던 공격진의 리더였음과 동시에 훈련에서의 성실함으로 다른 선수들의 귀감이 되었다.

베이르스훗에서 데뷔해 벨기에 1부 리그 4회 우승 및 득점왕 2회 수상을 이뤄내며 전 유럽의 주목을 받았던 브레인은 잉글랜드 무대 진출을 노렸으나 허가가 나지 않아 1920년대 유럽 대륙 최고의 클럽이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스파르타 프라하에 입단해 전성기를 누리며 정규리그 2회 우승 및 득점왕 2회 수상을 이뤄냈고 중유럽의 챔피언스리그격 대회인 1935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결승전 1차전에는 샤로시의 페렌츠바로시를 상대로 만회골을 득점해 졌지만 잘 싸웠고 2차전에서는 멀티골을 터트리며 페렌치바로시를 3-0으로 대파했다.

말년에는 고향팀 베이르스훗으로 돌아와 1부 리그 2회 우승을 더 추가한 브레인은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1925년에 데뷔해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3경기에 출전해 3골을 득점했다. 그러나 스파르타 프라하로 이적하며 벨기에 축구 협회에서 프로 선수의 대표팀 참가를 막아 브렌은 1930년 월드컵과 1934년 월드컵에는 소집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나 법이 바뀌어 1935년부터 재소집되었고 1938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했다. 브라인은 사후 1995년에 20세기 벨기에 최고의 선수 투표에서 7위에 올랐으며 2021년에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인 IFFHS가 선정한 벨기에 올타임 드림팀에 선정되었다.



34위 안젤로 스키아비오

 


생년월일: 1905년 10월 15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볼로냐 FC

1920년대 하반기와 193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이탈리아 출신의 스트라이커로 단단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헤딩과 절묘한 위치 선정을 겸비한 전형적인 유럽식 스트라이커였다.

선수 커리어의 전부를 볼로냐에서 보낸 원 클럽맨인 스키아비오는 볼로냐의 전성기를 이끌고 북부리그 그룹 B 우승과 세리에 A 3회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1931-32 시즌에는 스키아비오 개인도 득점욍에 올랐으며 당시 중유럽 지역의 챔피언스리그였던 미트로파 컵에서도 2회 우승했다.

볼로냐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아주리 군단에서도 핵심 공격수로 활약했는데 중유럽컵 2회 우승과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앙숙이었던 몬티와 화해하는 등 팀의 화합을 위해 노력했고 좋은 퍼포먼스도 보이며 조국의 첫 우승을 이뤄내는데 경기장 내외에서 큰 공을 세웠다.

 

 

33위 조지 웨아

 


생년월일: 1966년 10월 1일
국적: 라이베리아
신체조건: 키 185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AC 밀란


자타공인 20세기 아프리카 최고의 축구선수로 치타와 같은 스피드와 화려한 몸놀림에서 나오는 파괴적인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린 뒤 동물적인 골 감각으로 득점하는 플레이를 보여주며 팬들을 놀라게 했고 세간에서는 그를 아프리카의 호나우두라고 부르기도 했다.

파리 생제르맹과 AC 밀란에서 커리어 하이를 보낸 웨아는 파리에서는 1992-93 시즌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뤄낸 것을 시작으로 1993-94 시즌에는 리그앙 우승을 이뤄냈고 1994-95 시즌에는 쿠프 드 프랑스와 리그컵 더블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이뤄내며 맹활약했는데 그 과정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수상했기에 1995년에 비유럽인에게 문호를 연 이후 최초의 비유럽인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으며 피파 올해의 선수상도 석권했다.

AC 밀란에서도 세리에 A 2연패를 이뤄낸 웨아는 1996년 옹즈도르와 피파 올해의 선수상에서도 2위에 올랐으며 1999년에는 I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아프리카 선수로 선정되었고 은퇴한 뒤인 2021년에는 IFFHS 선정 아프리카 축구 올 타임 드림팀에 선정되었다.

 

 

32위 지미 그리브스

 


생년월일: 1940년 2월 20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4kg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토트넘을 넘어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는 선수로 동시대 서독의 우베 젤러와 마찬가지로 키는 작았지만 우수한 점프력을 활용한 헤딩을 잘했으며 교묘한 드리블과 정확한 슈팅을 통한 마무리를 겸비한 완성형 공격수였다.

첼시와 토트넘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잉글랜드 1부 리그 통산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는 그리브스는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서 득점왕을 6회 수상하며 풋볼리그 통산 최다 득점자의 자리에 올랐고 유럽 대항전에서의 활약도 대단해 1962-63 시즌 컵 위너스 컵 우승과 득점왕 동시 석권을 이루며 1963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를 기록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브리티쉬 홈 챔피언쉽 5회 우승을 이뤄낸 그리브스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조별 리그 도중 부상당해 벤치를 지킨 아쉬움이 있다. 이 대회에서 주전으로 나선 제프 허스트나 로저 헌트 모두 그리브스에 비하면 부족한 선수었기에 주전 자리는 따놓은 당상이었기 때문이었다.

 

 

31위 존 찰스

 


생년월일: 1931년 12월 27일
국적: 웨일스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9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에 맹위를 떨쳤던 스트라이커로 센터하프 시절에도 대단한 활약을 펼쳤지만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변경한 뒤에 재능이 만개했는데 우월한 피지컬을 활용해 상대 수비수를 짓누르고 머리와 발을 가리지 않고 수월하게 득점했음은 물론 기술적으로도 훌륭한 플레이를 펼쳤기에 골을 넣는 것을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 쉽게 했다.

만 17세의 어린 나이에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센터하프로 데뷔한 찰스는 두 시즌 후 일부 경기에서 센터포워드로 뛰면서 두 골을 연달아 득점하자 1952-53 시즌까지는 센터하프를 소화했는데 1955-56 시즌에는 2부 리그 준우승을 이뤄내며 리즈를 풋볼 리그 1부로 올렸고 1956-57 시즌에는 정규리그 40경기에 출전해 38골을 득점하는 괴력을 보이며 잉글랜드 풋볼 리그 득점왕을 수상했다.

리즈를 떠나 이적한 유벤투스에서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데 오마르 시보리, 보니페르티와 함께 트리오 마지코를 구성해 전성기를 누렸는데 이떄 세리에 A 3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이뤄냈음은 물론 존 찰스 개인됴 1957-58 세리에 A 득점왕 및 1958-59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을 수상했고 1959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에 랭크되며 포디움에 들었다.

웨일스 대표팀에서도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주축으로 참가했는데 헝가리와의 첫 경기에서 동점골을 득점했고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만난 헝가리를 꺾는 과정에서도 수훈갑을 세우며 조국의 8강행을 이끌었으나 이 경기에서 당한 부상으로 인해 8강 브라질 전에는 결장했고 주축을 잃은 웨일스는 펠레의 결승골에 탈락했다. 웨일스 축구협회는 2003년에 지난 50년간 웨일스 최고의 선수로 존 찰스를 선정했고 2011년에는 웨스턴메일 선정 웨일스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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