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50위~4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스트라이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50위~41위

토르난테 2024. 3. 2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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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50위 뤼트 반 니스텔로이

 


생년월일: 1976년 7월 1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0년대 4대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았던 공격수로 빠른 순간 스피드와 강력한 피지컬을 겸비했으며 문전 앞에서 정확한 슈팅과 헤더를 활용한 뛰어난 득점력으로 호평받는 공격수였다.

PSV에서 데뷔해 커리어 초창기를 보냈던 반 니스텔로이는 1999-2000 시즌 에레데비시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 및 에레데비시 득점왕을 각각 2회 연속으로 수상하는 활약을 펼치며 주목받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2002-03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2003-04 시즌 FA컵, 그리고 2005-06 시즌 리그컵에서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시절에 반 니스텔로이 개인도  2001-02 시즌 챔피언스리그 득점왕과 도움왕 동시 수상과 ESM 올해의 팀과 PFA 올해의 팀, 그리고 P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으며 2002-03 시즌에도 프리미어리그 득점왕과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2001-02 시즌을 포함해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3회 수상했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에도 라리가 2연패 및 2006-07 시즌 라리가 득점왕에 올랐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5회 선정되어 2003년과 2007년에 6위에 올랐다.

커리어 초창기에는 같은 날에 태어난 파트릭 클루이베르트에 밀려서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던 반 니스텔로이는 클라위베르트의 폼이 떨어짐과 동시에 반 니스텔로이의 폼이 오르며 네덜란드 대표팀에 소집되어 UEFA 유로 2004 4강 진출에 공헌했고 이후 2006 독일 월드컵 16강, UEFA 유로 2008 8강과 같은 성적을 냈다.

 

 

49위 한스 크란클

 


생년월일: 1953년 2월 14일
국적: 오스트리아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라피트 빈

오스트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페널티 박스의 군주라 불려도 무방했는데 적절한 위치 선정과 원샷원킬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정확한 마무리를 바탕으로 너무나도 쉽게 득점했다.

1970-71 시즌에 라피트 빈에서 데뷔해 주목받았으나 전성기를 맞이했던 아우스트리아 빈의 아성에 밀려 리그 우승을 이뤄내진 못했던 크란클은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첫 시즌에는 1978-79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결승전에서 연장전 결승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방점을 찍었음은 물론 라리가 득점왕에게 수상하는 피치치 트로피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한 적응 실패로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왔는데 라피트 빈에서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정규리그 2회 우승, 오스트리안 컵 4회 우승 및 크란클 개인은 리그 득점왕 4회 수상 및 오스트리아 올해의 선수 5회 선정이라는 대업적을 이뤄냈다.

오스트리아 대표팀에서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본선 진출은 물론 8강 2차 조별리그에서 디펜딩 챔피언 서독을 상대로 멀티골을 터뜨리면서 조국이 독일을 상대로 47년 만에 승리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해당 시즌에는 클럽에서도 공식전 41경기에 출전해 42골을 득점하며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했을 정도로 폼이 좋았는데 월드컵에서의 출중한 퍼포먼스까지 더해져 발롱도르와 옹즈도르에서 모두 2위에 올랐다.

 

 

48위 페르난도 모레나

 


생년월일: 1952년 2월 2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70년대 우루과이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왼발을 잘 썼으며 골을 찾아 들어가는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팬들로부터 종마라고 불렸다. 특히 슈팅 스킬이 우수했고 2선으로 내려와 플레이메이킹을 하며 찬스를 만들어가는 능력도 우수한 전천후 공격수였다.

에콰도르 출신의 알베르토 스펜세르와 함께 페냐롤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라 불린 모레나는 구단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82년에는 리그 우승은 물론이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도 연달아 제패하며 트레블을 이뤄냈고 그 과정에서 리그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모두 득점왕에 오르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그 해 남미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쿠, 파우캉, 마라도나에 이어 4위에 랭크되는 맹활약을 펼쳤다.

우루과이 대표팀 소속으로는 1974 서독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조국의 조별리그 탈락을 막지는 못하는 등 부진했으나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하며 명예회복을 했다.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통산 최다 득점자였음에도 그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 국가대표팀이 암흑기에 빠진 탓에 남미 대륙 밖에서는 다소 인지도가 떨어지며 저평가를 받는 선수지만 모레나 개인의 활약은 대단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을 7회 수상했으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도 3회 수상했다. 그리고 페냐롤에 머무는 동안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상 10등 안에 8회 선정되었으며 1975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3위에 랭크되었다.

 

 

47위 이안 러시

 


생년월일: 1961년 10월 20일
국적: 웨일스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1980년대 유럽 정상급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볼을 다루는 기술과 패싱력은 평범했지만 빠른 스피드와 간결한 볼터치, 그리고 적절한 위치선정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귀신처럼 따돌리며 정교한 슈팅으로 득점하며 유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리버풀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인 붉은 제국 시절에 전성기를 누렸던 러시는 달글리시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며 풋볼 리그 5회 우승과 유러피언 2회 컵 우승을 포함해 총 18회의 우승을 이뤄냈고 러시 개인도 1982-83 시즌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에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하이커리어를 누린 1983-84 시즌에는 풋볼 리그 득점왕과 유러피언 골든슈를 모두 싹쓸이했음은 물론 PFA 올해의 선수, FWA 올해의 선수도 동시에 석권했고 유러피언 컵에서도 우승 주역으로 명성을 떨치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4위에 올랐다. 그러나 유벤투스에서는 부진한 활약을 보였다.

PFA 올해의 팀 5회 선정 및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5회 선정의 업적에 빛나는 이안 러시는 웨일스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73경기에 출전하면서 28골을 기록했지만 조국의 전력이 약해서 메이저 대회에 나서진 못했다. 그래도 은퇴 이후에 1998년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 선정, 리버풀 명예의 전당 및 잉글랜드 풋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예를 누렸다.

 


46위 루디 푈러

 


생년월일: 1960년 4월 13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1980년대 중후반 유럽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영리한 움직임과 매끄러운 볼 터치로 상대 수비를 제치고 페널티 박스에 침투했고 머리와 양 발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득점하는데도 능했음은 물론 침착하기까지 했기에 이탈리아 언론은 그를 두고 날아다니는 독일인이라고 지칭했다.

베르더 브레멘에서 월드클래스 공격수로 성장한 푈러는 브레멘에서 활약할 당시 무려 세 시즌이나 리그 20골을 넘겼으며 1982-83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했음은 물론 1983년에는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1985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11위를 기록하는 등 독일 최고의 공격수로 군림했으며 AS 로마에서는 잘로로시 군단의 에이스로 활약해 1990-9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개인적으로도 그 해 UEFA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마르세유에서는 1992-9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이후 마르세유가 승부조작 혐의로 강등당하자 레버쿠젠으로 이적해서 그곳에서 커리어를 마감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루디 푈러는 대표팀에서 각각 세 번의 월드컵과 유로에 참가했는데 UEFA 유로 1984에서 팀은 조기 탈락했지만 푈러 개인은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 교체 출전해 팀의 흐름을 바꾸며 분전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레이카르트와의 다툼으로 퇴장당하기도 헸지만 준수한 활약으로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마지막으로 1994 미국 월드컵에서도 두 골을 추가해 개인 통산 월드컵 8골을 기록했다.



45위 데니스 로

 


생년월일: 1940년 2월 24일
국적: 스코틀랜드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60년대 잉글랜드 풋볼 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곡예사를 연상시키는 환상적인 슈팅 스킬과 175cm의 작은 신장에도 우수한 점프력과 탄탄한 바디 밸런스를 앞세운 우수한 헤더 능력을 자랑했으며 수많은 아크로바틱한 골들을 넣었음은 물론 넓은 활동반경과 우수한 패싱력과 드리블을 겸비했던 컴플리프 포워드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뮌헨 비행기 참사의 비극을 극복하고 영광의 시대를 선물한 스트라이커로 풋볼 리그 우승 2회와 1967-68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특히 1963-64 시즌에는 42경기에 출전해 46골을 득점해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해 서포터들로부터 '올드 트래포트의 왕'으로 불렸다.

바비 찰튼, 조지 베스트와 함께 올드 트래포트 앞에 동상이 있는 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1968-69 시즌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올랐던 데니스 로는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도 55경기에 출전해 30골을 득점해 달글리시와 함께 스코틀랜드 대표팀 A매치 통산 최다 득점자의 타이틀을 지키고 있다.



44위 쥐스트 퐁텐

 


생년월일: 1933년 8월 18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스타드 드 랭스

1950년대 하반기 유럽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위치선정 능력을 활용한 적재적시의 라인 브레이킹을 바탕으로 상대의 배후로 침투해 양발과 헤더를 모두 활용해 침착하게 득점했기에 골키퍼와 심리전에서 우위를 점하며 엄청난 득점력을 보였다.

모로코의 US 카사블랑카에서 데뷔해 OGC 니스로 이적해 만개했는데 1953-54 시즌에는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1955-56 시즌에는 프랑스 무대를 독주했던 스타드 드 랭스를 꺾고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퐁텐은 스타드 드 랭스에서는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누리며 프랑스 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리그앙 득점왕을 2회 수상했음은 물론 유럽 무대에서도 1958-59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는 결승 진출과 득점왕이라는 성과를 냈다.

레블뢰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한 퐁텐은 1958 스웨덴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그 득점력이 절정에 달했는데 6경기에 출전해 무려 13골을 기록했으며 모든 경기에서 득점했다. 특히 파라과이를 상대로는 해트트릭을 했으며 3.4위전 서독을 상대로는 무려 4골을 집어넣는 괴력을 보여줬다. 이 대회 득점 공동 2위인 헬무트 란과 펠레가 각각 6골을 기록했는데 그 둘이 합친 득점보다 많은 득점을 기록한 것이다. 당연히 월드컵 단일 대회 최다 득점 기록이다. 이런 활약으로 1958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를 기록했다.

롱런만 길게 했으면 당대 유럽 수위급 스트라이커가 될 수 있었으나 심각한 반월판 부상으로 인해 커리어가 일찍 끝난 부분이 아쉬웠다.



43위 주제 아우타피니

 


생년월일: 1938년 7월 24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AC 밀란

1960년대 초반 세리에 A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로 다부진 상체에서 나오는 우수한 신체 밸런스와 빠른 스피드는 물론 양발과 머리를 고루 이용한 슈팅 능력은 물론이고 우수한 테크닉을 활용한 드리블은 물론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영리한 움직임으로 동료들과 연계에도 능해 밀란의 팬들은 그에게 마치 레전드 발렌티노 마촐라와 같다고 해서 마촐라라고 불렀다.

브라질 무대의 파우메이라스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대표팀에도 뽑혔지만 펠레와의 대표팀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자 세리에 A의 밀란으로 떠난 아우타피니는 AC 밀란에서는 리베라와 함께 로코의 카테나치오 체제에서 공격의 전권을 위임받아 활약해 세리에 A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60-61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에 올랐고 1961-62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을 수상했으며 1962-63 시즌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올라서며 팀이 유럽 챔피언에 오르는데 크게 기여했고 이후 나폴리와 유벤투스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유벤투스는 세리에 A 2회 우승을 추가했다.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펠레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렸으나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으며 비록 대표팀 활약은 미비하지만 그 대가로 이탈리아에 진출해 세리에 A, 코파 이탈리아, 그리고 유러피언컵에서 모두 득점왕에 오르며 부와 명예를 모두 챙기며 세리에 A의 전설적인 공격수로 추앙받았다.

 

 

42위  앨런 시어러

 


생년월일: 1970년 8월 13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뉴캐슬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초창기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강력한 신체 능력으로 상대 수비를 제압하는 공격수로 포스트 플레이도 능했으며 언제나 골 넣음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득점 감각도 탁월했으며 페널티 킥을 65번 차서 63번 성공시킨 페널티 킥의 명수이기도 했다.

사우스 햄튼에서 데뷔해 블랙번 로버스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보낸 시어러는 블랙번에서는 서튼과 함께 SAS 조합으로 이름을 날리며 블랙번을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인도했음은 물론 세 시즌 연속 30골 이상을 득점하는 괴력을 보였다. 뉴캐슬에서도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의 자리에 오르며 맹활약하며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다 득점자의 자리에 올랐다. 시어러 개인도 PFA 올해의 팀에 7회 선정되었으며 PFA 올해의 선수에 2회 선정되었고 1994-95 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포로 활약한 시어러는 조국에서 열린 유로 1996에서 팀을 준결승에 올렸고 시어러 본인도 대회 득점왕과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1996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마티아스 잠머와 호나우두에 이어 3위에 올랐다.

 

 

41위 해리 케인

 


생년월일: 1993년 7월 28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21세기 토트넘 최고의 선수로 압도적인 제공권과 강력한 몸싸움, 그리고 뛰어난 슈팅력에서 나오는 득점력 및 패스를 통해 동료에게 기회를 창출하는 능력을 모두 갖춘 완성형 스트라이커인데 양발을 모두 잘 썼다.

토트넘에서 획득한 팀 단위 트로피는 없지만 개인 활약은 대단했는데 토트넘 구단 역대 통산 득점 2위는 물론 PFA 올해의 팀에 다섯 번이나 들었고 2014-15 시즌에는 PFA 올해의 선수를 차지했으며 2017년과 2018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에 올랐다, 그리고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3회 수상했는데 특히 2020-21 시즌에는 득점왕과 도움왕을 동시에 석권했고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분데스리가 득점왕 수상이 유력하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포로 활약해 잉글랜드 대표팀 A매치 통산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한 케인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득점왕에 오르며 조국의 준결승 진출에 공헌했고 UEFA 유로 2020에서도 결승전에선 부진했지만 결승 진출까지에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팀을 8강에 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페널티킥 실축으로 인해 추격의 기회를 놓친 부분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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