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30위~2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스트라이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30위~21위

토르난테 2024. 3. 2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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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위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생년월일: 1969년 2월 1일
국적: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이자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골게터로 화려한 플레이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천둥 같은 슈팅력과 강력한 헤딩을 앞세워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줘 바티스투타라는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득점을 해낸다 하여 바티골이라 불렀다.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데뷔해 피오렌티나에서 전성기를 보낸 바티스투타는 피오렌티나에 입단한 뒤 두 시즌 후에 자신은 16골이나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이 강등되었는데도 팀에 남아서 팀을 세리에 A로 다시 올렸으며 1995-96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하지만 피오렌티나는 재정난 때문에 그를 AS 로마에 팔았고 바티스투타는 로마에서 2000-0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낸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주며 맹활약한 바티스투타는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조국의 2회 우승 및 바티스투타 개인의 득점왕 2회 수상이라는 업적을 이뤄냈고 1994 미국 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 그리고 2002 한일 월드컵, 총 세 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월드컵 통산 10골을 득점했는데 이는 아르헨티나 국적 선수 중 월드컵 최다 득점 기록이었고 특히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국가의 경제가 어렵자 자신의 사비를 보태며 월드컵에 참가할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클럽과 대표팀을 가리지 않고 통산 여섯번의 득점왕에 오른 바티스투타는 1998년에는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에는 발롱도르 4위에 올랐고 1998-99 시즌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29위 텔모 사라

 


생년월일: 1921년 1월 20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92kg
주 소속팀: 아틀레틱 빌바오

1940년대를 풍미한 폭격기로 양 발과 머리 모두로 득점하는 데 타고난 스페인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였고 그중에서도 특히 헤더는 당대 유럽 축구선수 중 최고로 평가받았는데 1950 브라질 월드컵 결승리그 스웨덴전에서 장내 아나운서가 그를 두고 "윈스턴 처칠의 뒤를 이은 유럽 최고의 헤더에게 경의를!"이라고 소개했다.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전성기의 대부분을 보낸 사라는 1942-43 시즌 라리가 우승과 코파 델 레이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라리가 득점왕에게 수여하는 피치치상을 6회나 차지했고 라리가 역대 스페인 선수 최다 득점왕 수상자, 코파 델 레이 역대 최다 득점자 및 코파 델 레이 결승전 역대 최다 득점자에 올라섰는데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마르카는 해마다 스페니쉬 최다 득점자에게 사라 상을 수상하고 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A매치 20경기에 출전해 20골을 득점한 사라는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아르마다 군단이 잉글랜드를 따돌리고 결승리그에 진출하는데 공을 세웠는데 이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 이전까지 스페인 대표팀의 월드컵 최고 성적이었다.

 

 

28위 위르겐 클린스만

 


생년월일: 1964년 7월 30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90년대를 풍미한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페널티 박스에서 우수한 슈팅 스킬과 냉정침착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엄청난 존재감을 뽐냈는데 특히 환상적인 발리 슈팅이나 바이시클킥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능력이 뛰어나 사람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새겨지기 좋은 스트라이커였다.

특이한 성격으로 팀에 잘 융화되지 못했기에 클럽을 자주 옮겨 다녔던 선수였던 클린스만은 슈투트가르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1985-86 시즌 DFB포칼 준우승과 1988-89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87-88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득점왕과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1988-89 시즌 전반기에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고 인테르 밀란에서는 생애 첫 전성기를 누리며 마테우스, 브레메와 함께 게르만 삼총사로 이름을 날리며 1990-91 시즌 UEFA컵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인테르에서 팀원들과의 불화로 아르센 뱅거 체제의 AS 모나코로 팀을 옮긴 클린스만은 그곳에서도 두 시즌 머물며 모두 두 자릿수 골을 득점했고 1994-95 시즌 토트넘 핫스퍼에서는 제2의 전성기를 누렸는데 단 한 시즌 머물렀지만 1994-95 시즌 50경기 29골을 기록했고 FWA 올해의 선수 및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괴력을 선보이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다.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서도 UEFA컵 우승과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마지막 전성기를 누렸다. 실제로도 클린스만 개인은 상술했던 1995년 발롱도르 2위를 포함해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7회 선정되어 그중 6번을 10위 안에 들었고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2회 수상했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에 7회 선정되었다.

1990년대 디 만샤프트에서는 공격진의 에이스로 군림하며 클럽에서보다도 더 대단한 활약을 펼쳤는데 UEFA 유로 1988에서 준결승에 올랐으나 네덜란드에게 아쉽게 석패했고 서울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2골 및 16강 네덜란드전 선제골을 득점해 우승에 공헌했고 UEFA 유로 1992에서도 준우승을 이뤄냈고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5골을 터트렸다. UEFA 유로 1996에서도 우승에 기여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3골을 추가하며 월드컵 통산 11골을 득점했다.

 

 

27위 휴이 겔러처

 

 

생년월일: 1903년 2월 2일
국적: 스코틀랜드
신체조건: 키 165cm / 몸무게 64kg
주 소속팀: 뉴캐슬 유나이티드


1920년대 하반기 세계 최고의 센터 포워드 중 하나로 단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바디밸런스와 높은 수준의 테크닉 및 명민한 위치선정으로 상대 수비를 따돌렸으며 높은 수준의 슈팅스킬과 양발 사용 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득점을 터트릴 수 있었음은 물론 기본기가 뛰어나 인사이드 포워드 포지션에서도 활약할 수 있었다.

퀸 오브 더 사우스에서 데뷔해 에어드리오니언스로 이적해 활약했는데 스코틀랜드 양강 중 하나인 셀틱을 제치고 리그 준우승을 3년 연속으로 차지했으며 1923-24 시즌에는 하이버니언을 꺾고 컵대회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잉글랜드의 뉴캐슬에서는 전성기 궤도에 오르며 1926-27 시즌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풋볼 리그 우승을 이뤄내는 활약을 선보이며 구단 통산 득점 4위에 올라있다.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도 앨런 모튼과 함께 핵심 공격수로 활약한 겔러처는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5회 우승을 이뤄냈다. 은퇴한 이후에는 1998년에 선정한 잉글랜드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에 선정되었고 전성기를 누렸던 에어드리오니언스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음은 물론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26위 사뮈엘 에투

 


생년월일: 1981년 3월 10일
국적: 카메룬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카메룬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흑표범이라 불렸을 정도로 빠른 순간 스피드와 반응속도,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오는 라인 브레이킹 능력으로 상대 수비진을 완벽하게 뚫어내 득점했으며 특히 큰 경기에 강했다.

레알 마드리드 유스로 시작해 마요르카에서 기량이 만개하며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고 바르셀로나에서는 2008-09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라리가 3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를 이뤄냈으며 이후 인테르로 건너가서 2009-10 시즌에 다시 한번 트레블을 이뤄내는 맹활약을 보였고 2010-11 시즌에는 팀원들 대부분이 부진하는 와중에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에투 개인도  ESM 올해의 팀 4회 선정, 2005-06 시즌 피치치와 UEFA 클럽 올해의 공격수를 수상했다.

카메룬 대표팀에서도 A매치 통산 최다 득점자에 오른 에투는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시작으로 2000년과 2002년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우승을 이뤄냈고 2006년과 2008년 대회에서는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대회 역사상 최다 득점자였다. 그러나 월드컵에서는 네 번이나 참가했음에도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인 게 아쉬운 부분이다.

21세기 아프리카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인 에투는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8회 선정되었으며 2009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5위에 랭크되었고 아프리카 축구 협회 선정 올해의 팀 6회 선정,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 4회 선정 및 2005 피파 올해의 선수상 3위에 선정되었으며 2006 UEFA 클럽 올해의 공격수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021 IFFHS 선정 아프리카 축구 올 타임 드림팀에도 선정되었다. 

 

 

25위 우고 산체스

 


생년월일: 1958년 7월 11일
국적: 멕시코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자타공인 북중미 축구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이자 1980년대 라리가 최고의 공격수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공간 침투에 능했던 침투형 공격수였고 퍼스트 터치 슈팅과 바이시클 킥에 능해 무수히 많은 득점을 만들어냈다.

멕시코의 UNAM에서 주목을 받았고 이후 라리가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해 1984-85 시즌 라리가 득점왕과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지만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아틀레티코 팬들의 원성을 샀지만 그와 반대로 우고 산체스의 기량은 물이 올라 라리가 5연패와 1985-86 시즌 UEFA컵 우승과 1988-89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레전드로 칭송받았음은 물론 우고 산체스 개인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시절을 포함해 라리가 득점왕에게 수상하는 피치치 트로피를 5회 수상했고 돈 발롱이 선정한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에 2회 선정되었다.

멕시코 대표팀의 중핵으로 명성을 떨쳤던 우고 산체스는 1977 CONCACAF 골드컵 우승을 이뤄냈고 세 번의 월드컵에 나섰는데 특히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팀을 8강으로 올려놓았고 은퇴 이후 1999년에 IFFHS 선정 20세기 북중미 최고의 축구선수로 선정되었다.



24위 딕시 딘

 


생년월일: 1907년 1월 22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에버튼 FC

잉글랜드 풋볼 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공격수 중 한 명으로 뛰어난 볼 컨트롤과 볼에 대한 집착, 그리고 정확한 위치 선정과 위협적인 헤더로 수많은 득점을 뽑아냈다.

에버튼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딕시 딘은 풋볼 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27-28 시즌에는 1부 리그에서 39경기에 출전해 60골을 득점하는 괴력을 보여줬고 1930-31 시즌에는 2부 리그 우승을 이뤄내 다시 1부 리그로 돌아왔고 1931-32 시즌에는 38경기에 출전해 45골을 득점하며 승격팀의 우승이라는 기적을 써냈으며 1932-33 시즌에는 FA컵 우승을 이뤄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16경기에 출전해 18골을 득점하는 경이로운 득점 행진을 보여주며 브리티쉬 홈 챔피언쉽 2회 우승을 이뤄낸 딕시 딘은  풋볼 리그에서 보여준 괴력으로 인해 사후인 1998년에는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에 선정되었으며 2002년에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3위 실비오 피올라

 


생년월일: 1913년 9월 29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유럽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강력한 힘과 빠른 스피드, 냉정한 침착성과 뛰어난 골 결정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특히 유연성에 능해 바이시클 킥 같은 당시의 장비로는 실전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플레이를 종종 보여줬다.

세리에 A 역대 최다 득점자 타이틀을 가지고 있음에도 세리에 A 우승과는 인연은 없었던 피올라는 그래도 1937년에는 세리에와 당대 최고 권위의 대륙 대회인 미트로파 컵에서는 동시에 우승을 도전했지만 리그에서는 볼로냐에 밀렸고 미트로파 컵 결승전에서는 사로시 죄르지가 이끄는 페렌츠바로시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래도 라치오 개인 통산 득점 2위에 올랐으며 세리에 A 득점왕을 2회 수상했다.

리그 우승이 없는 대신 아주리에서는 우승컵과 인연이 있었는데 1933-35 중유럽컵 우승은 물론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우승했는데 이때 5골을 넣으며 팀의 에이스로 우승을 이루는데 공헌했다.

 

 

22위 카레카

 


생년월일: 1960년 10월 5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SSC 나폴리

1980년대 하반기 브라질을 이끌었던 스트라이커로 현란한 볼 컨트롤 능력과 발재간은 물론 반 박자 빠른 슛 타이밍을 통해 상대 수비진과 골키퍼롤 속이며 득점했는데 양발을 모두 잘 썼으며 오프 더 볼 상황에서도 전략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정해 상대 수비수를 교란했으며 다른 공격수와의 연계 플레이도 우수했던 완성형 공격수였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팀의 에이스로서 구아리니의 브라질 전국 리그 깜짝 우승을 이뤄낸 일등 공신으로 주목받은 카레카는 상 파울루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2회 우승과 1985년 득점왕에 올랐고 1986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브라질 세리 A MVP에 올랐으며 브라질에 머무는 동안 브라질 세리 A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다. 나폴리로 건너가서는 마라도나, 카르나빌레와 함께 삼각편대를 구성해 1988-89 시즌 UEFA컵 우승과 1989-90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UEFA컵에서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4강 1,2 차전과 슈투트가르트와의 결승 1,2차전에서 모두 득점에 성공하며 우승에 큰 공을 세우며 마라도나와 함께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1983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이후부터 1986 멕시코 월드컵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해 두 대회에서 7골을 넣었으나 준결승에도 진출하지 못하며 탈락하는 불운을 겪었다.

 

 

21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생년월일: 1981년 10월 3일
국적: 스웨덴
신체조건: 키 195cm / 몸무게 95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2000년대와 2010년대 세리에와 리그앙을 정복한 스트라이커로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부드러운 드리블과 유려한 볼 컨트롤을 모두 겸비했으며 직접 득점하는 능력은 물론 창의적인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서도 능했으며 2010-11 시즌 AC 밀란 이적 이후에는 약점으로 지적받던 제공권도 극복했다.

15년 넘게 월드클래스 레벨의 선수로 평가받았던 즐라탄은 인테르와 AC 밀란, 유벤투스, 파리 생제르맹을 포함해 여러 클럽을 돌며 모두 대단한 성과를 냈는데 아약스에서 에레데비시 우승 2회, 인테르와 밀란에서 세리에 A 도합 5회 우승을 이뤄냈고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리그앙 4연패를 이뤄내며 파리 생제르맹이 리그앙의 패자로 군림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클럽에서의 개인상 이력도 훌륭한 즐라탄은 이탈리아 무대에서는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 5회 수상 및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3회 수상을 수상했으며 세리에 A 득점왕과 올해의 팀에도 2회 선정되었고 리그앙에서도 리그앙 올해의 팀 4회 선정, 리그앙 올해의 선수와 득점왕 각각 3회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유럽 무대에서도 UEFA 올해의 팀과 ESM 올해의 팀에 각각 4회 선정:되었으며 2012-13 UEFA 챔피언스리그 도움왕과 2013-14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음은 물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서도 10회 선정되어 2013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 4위에 올랐다.

스웨덴 올해의 선수 12회 수상, 발롱도르 10위 안에 여섯 번이나 선정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빅리그에서 12회나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르게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와 국가대항전에서는 다소 부진한 탓에 가진 어빌리티에 비해 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부분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40위~31위

다음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20위~1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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