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60위~5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스트라이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60위~51위

토르난테 2024. 3. 2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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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60위 이시드로 랑가라

 


생년월일: 1912년 5월 25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레알 오비에도

1930년대 유럽 정상급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레슬러 같은 탄탄한 피지컬과 대단한 가속력을 바탕으로 활약을 펼쳤으며 특히 중거리 슈팅에 능했으며 랑가라가 뛰던 오비에도가 1933-34 시즌에 바르셀로나를 7-3으로 꺾은 적이 있었는데 랑가라는 50미터도 넘는 거리에서 프리킥으로 두 골을 넣었을 정도로 그의 슈팅은 대단했다.

레알 오비에도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랑가라는 라리가에서 37경기만에 50골, 82경기만에 100골을 기록하는 등 스페인 축구 역사상 가장 빠른 50골, 100골 기록을 보유했는데 이는 호날두조차 깨지 못한 기록으로 이런 괴랄한 득점력을 바탕으로 라리가 득점왕에 3회 올랐음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아르마다 군단에 승선해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해 조국의 8강 진출을 이끌어냈다. 

1936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라틴 아메리카로 떠난 랑가라는 아르헨티나의 산 로렌소에서는 1940년에 아르세니오 에리코를 제치고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에 올랐음은 물론 두 번의 리그 준우승을 이뤄냈고 레알 클루브 에스파냐에서 멕시코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두 번이나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59위 샤퍼 알프레드

 


생년월일: 1893년 2월 13일
국적: 헝가리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95kg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1910년대 하반기부터 192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렸던 거구의 센터포워드로 특유의 신체구조 때문에 지구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최전방에서 대기하다가도 자신에게 볼이 오면 대단한 폭발력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침투해 득점을 만들어내며 득점효율의 극한을 보여줘 세간에서는 '축구의 왕'으로 수식되었다.

MTK 헝가리아 왕조의 기틀을 세운 센터 포워드 샤퍼는 쉬로서 임레, 오르트 죄르지, 콘라트 칼만 등과 함께 활약하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샤퍼개인도 1917-18 시즌 42골, 1918-19 시즌 41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을 2회 수상했는데 샤퍼가 머무르는 동안 MTK 헝가리아는 리그 66경기에서 60승 4무 2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헝가리 대표팀 소속으로는 A매치 15경기를 치뤘는데 그중 14경기를 오스트리아와 경기했는데 전적은 14전 10승 2무 2패 16골을 기록했다. 말년에는 여러 나라를 떠돌며 다뉴브식 축구를 전파했는데 1920-21 시즌 남부 독일 챔피언십과 독일 챔피언십 더블을 이뤄내는데 공헌해 뉘른베르크 왕조를 열었고 1923-24 시즌에는 비너 아마추어 SV를 오스트리아 챔피언으로 올렸고 컵대회 2회 연속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25-26 시즌에는 스파르타 프라하의 정규리그 우승을 도왔다.

 

 

58위 타카시 요제프

 


생년월일: 1904년 6월 30일
국적: 헝가리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반까지 유럽 정상급 센터 포워드로 이름을 날린 인물로 키가 큰 편이 아니었음에도 엄청난 점프력을 바탕으로 기가 막힌 헤더를 선보였으며 유려한 볼 컨트롤과 대포알과 같은 오른발 슈팅으로 무수하게 많은 득점포를 기록해 명성을 날렸다.

골키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가 첫 소속팀인 버셔시에서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옮긴 타카시는 중견팀 버셔시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1925년 헝가리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되었고 페렌츠바로시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타카시 개인도 득점왕을 5회 수상했는데 특히 1931-32 시즌에는 페렌츠바로시의 정규리그 전승 우승을 이끌었고 타카시 개인도 리그에서만 42골을 득점하며 커리어 하이를 세웠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32경기에 출전해 26골을 득점한 타카시는 1927년 프랑스와의 친선전에서 혼자 6골을 득점하며 33-1 대승을 이끌었고 1929년 중유럽컵에서는 강호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멀티골을 터트리며 무승부를 이뤄냈다. 타카시 요제프는 친선과 공식전, 클럽과 대표팀 경기를 모두 합쳐 통산 528경기에 출전해 542골을 득점했다.

 

 

57위 파올로 로시

 


생년월일: 1956년 9월 23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피지컬과 스피드, 테크닉이 모두 평범했지만 완벽한 위치 선정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귀신같은 득점 감각을 통해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비첸자와 페루자에서 활약하던 시절 이미 세리에 A에서 세 시즌 연속으로 10골 이상 넣었으며 1977-78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으나 AC 밀란에 머물던 기간 동안 토토네로 스캔들에 연루되며 선수 생활의 위기를 맞이했지만 그의 능력을 눈여겨본 유벤투스 측의 제의로 유벤투스로 복귀해 세리에 A 2회 우승과 1983-84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과 1984-85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커리어 내내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 안에 세 번 들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베테가, 카우시오와 함께 이탈리아 대표팀의 공격을 이끌며 4위에 올리는 큰 공을 세운 로시는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징계로 오랜 기간 쉬었다는 우려와 다르게 준결승 진출이 걸린 브라질 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으며 준결승 폴란드 전에서는 멀티골을, 그리고 결승전인 서독전에서도 득점포를 가동하며 아주리 군단의 우승은 물론 대회 골든볼과 골든슈를 모두 석권하는 드라마를 써내며 기존의 유럽 최고라 불렸던 루메니게와 플라티니를 제치고 1982년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56위 엑토르 카스트로

 


생년월일: 1904년 11월 29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우루과이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천후 공격수로 13살 때 전기톱을 다루다 사고로 오른손을 잃어 외팔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전방에서의 뛰어난 연계 플레이와 문전 앞에서의 효율적인 원터치 플레이와 침착한 슈팅으로 이름을 날렸다.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데뷔해 활약하며 중간에 1년 동안 에스투디안테스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나시오날에서 보낸 카스트로는 초년에는 페드로 페르토네의 백업에 머물렀지만 그와 주전 경쟁을 이기며 주전을 차지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포함해 비공식전 초함 13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는 페드로 페트로네와의 치열한 주전 경쟁으로 유명했던 카스트로는 1926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데뷔해 6골을 득점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으나 1927 코파 아메리카와 금메달을 차지한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 1930년 초대 월드컵에서는 다시 주전 자리를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두 골밖에 넣지 못했음에도 절륜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인정받아 대회 올스타 팀에 올랐으며 193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우승에 기여했다.



55위 디디에 드로그바

 


생년월일: 1978년 3월 11일
국적: 코트디부아르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첼시 FC


아프리카 축구사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압도적인 피지컬을 바탕으로 파워풀한 타겟 스트라이커의 모습을 보여줬으며 동시에 다른 공격진과의 연계에도 훌륭했으며 무엇보다 큰 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올림피크 마르세유에서 2003-04 시즌 리그앙 올해의 선수에 오르며 전 유럽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드로그바는 첼시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 FA컵 우승 4회, 그리고 2011-12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동점골을 넣고 결국 승부차기까지 끌고 가서 이기는데 공헌하며 구단 역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를 수상했고 그 외에도 프리미어리그 골든슈 2회 수상 및 PFA 올해의 팀 2회 선정, 그리고 2006-07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A매치 통산 최다 득점자이기도 한 드로그바는 코끼리 군단을 이끌고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5회 출전해 2006년과 2010년 2회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2012년에는 득점왕에 올랐으며 세 번의 월드컵에 주전으로 나섰다. 특히 자국에서는 평화의 상징으로 존경받는데 그의 진심 어린 호소에 내전이 중단되었으며 결국 내전은 멈추고 코트디부아르의 평화를 찾아오기도 했으며 이에 검은 예수라는 별명이 생겼다.



54위 페르난도 토레스

 


생년월일: 1984년 3월 20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200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질풍과도 같은 순간 스피드로 상대 수비진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어냈으며 우수한 득점력과 클러치 능력도 겸비한 금발의 스트라이커였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스팀의 역작인 토레스는 2002-03 시즌부터 다섯 시즌 연속으로 라리가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해 스페인 무대 정상급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후 리버풀로 이적해서는 첫 시즌에 시즌 30골을 넘겨 세계의 축구팬들의 눈도장을 받아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를 기록했고 2007-08 시즌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PF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다.

그러나 겨울 이적시장에서 첼시로 이적한 뒤에는 내리막을 걸었던 토레스지만 내리막을 걷는 와중에도 2011-12 시즌 4강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결승 진출을 확정 짓는 골을 득점하며 클러치 능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줬으며 밀란을 거쳐 다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돌아가서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유럽 U-16 선수권 대회와 유럽 U-19 선수권 대회에서 모두 스페인을 대표해 득점왕을 차지했던 엘리트 토레스는 UEFA 유로 2008에서는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며 아르마다 군단의 유로 우승에 방점을 찍었고 이후 2010 남아공 월드컵과 유로 2012에서는 서브 멤버로 활약했음에도 2012 UEFA 유로 골든슈를 수상하며 메이저 대회 3연패에 공헌했다.



53위 다보르 슈케르

 


생년월일: 1968년 1월 1일
국적: 크로아티아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199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오시예크의 마법사라 불렸을 정도로 볼 컨트롤 능력이 뛰어났으며 강력하면서도 예리한 외발 슈팅으로 수많은 득점포를 가동했다.

유고슬라비아 무대의 NK 오시예크와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1988-89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에도 올랐으나 내전으로 인해 스페인 무대로 떠났으며 스페인 라리가의 세비야와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활약했으며 후자의 구단에서는 1996-97 시즌에 소속팀의 라리가 우승을 이끌며 ESM 올해의 팀에 들었고 1997-98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기여했다.

대표팀에서는 유고슬라비아 시절에 이미 유고슬라비아에서 활약하던 시절부터 청소년 대표팀의 핵심으로 이름을 날린 슈케르는 1987 U-20 월드컵 우승과 1990 UEFA 유로 U-21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실버슈를 수상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득점왕과 MVP를 석권하며 주가를 높였고 성인 대표팀에도 월반해 1988 서울 올림픽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크로아티아가 분리 독립한 이후에는 크로아티아 올해의 선수를 6번이나 수상한 슈케르는 UEFA 유로 1996에서 8강 진출에 공헌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팀의 주포이자 에이스로 득점왕에 오르는 등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팀의 준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고 슈케르 개인도 1998 프랑스 월드컵 실버볼과 골든슈는 물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이때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호나우두를 제치고 2위에 올랐으며 크로아티아 올해의 선수에 6회 선정되었으며 2003년에는 크로아티아 축구협회 선정 근 50년간 최고의 크로아티아 선수로 선정되었다.

 

 

52위 디에고 포를란

 


생년월일: 1979년 5월 19일
A매치 기록: 112경기 36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우루과이 축구의 부흥을 이끈 스타플레이어로 탁월한 슛 테크닉과 파괴력 넘치는 중거리 슈팅을 앞세워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주던 선수로 국가대표팀에서는 득점에 집중하던 소속팀에서와는 다르게 플레이메이킹 능력도 보여주기도 했다.

스페인의 비야레알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보낸 포를란은 두 구단에서 모두 라리가 득점왕과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했으며 전자의 구단에서는 2005-06 시즌 리켈메와 함께 비야레알 구단 역사상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견인했으며 후자의 구단에서는 2009-10 시즌 유로파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오랜 세월 동안 활약했던 포를란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표팀에 데뷔했고 이후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와 한 번의 컨페드컵, 그리고 2010 남아공 월드컵과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활약했는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우수한 공격수들도 다루기 어려워하는 자볼라니를 신기에 가깝게 다루며 자볼라니 마스터라 불렸으며 그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 디에고 포를란은 공동 최다 득점자와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대회 MVP인 골든볼을 수상했다.

 

 

51위 미로슬라프 클로제

 


생년월일: 1978년 6월 9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2000년대와 2010년대 디 만샤프트를 대표했던 스트라이커로 우수한 점핑력을 활용한 뛰어난 헤더로 많은 골을 득점했으며 깔끔한 원터치 패스를 활용해 동료 공격수와의 유려한 연계 능력으로 분데스리가에서 도움왕만 두 번을 올려놨을 정도로 기회 창출에도 능했던 완성형 공격수였다.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프로선수의 커리어를 시작해 베르더 브레멘에서 전성기를 보낸 클로제는 이 시기에는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에서 우승하지 못했지만 2005-06 시즌에는 득점왕, 도움왕, 분데스리가 MVP를 석권했으며 이 시기에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2회 선정 및 분데스리가 도움왕 2회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두 번의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으나 이후 팀에서 밀려났다. 라치오로 이적해서는 2012-13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은 물론 볼로냐를 상대로 한 경기 다섯 골을 넣는 기염을 토하며 부활에 성공했는데 클로제는 커리어를 보내면서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4회 선정되어 2006년에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7위에 랭크되었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무려 5골을 넣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클로제는 2006 독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각각 5골과 4골을 넣으며 팀이 3위에 오르는데 공헌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전에서는 자신과 타이를 이루던 호나우두가 보는 앞에서 월드컵 개인 통산 16호 골을 득점하며 대회 우승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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