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70위~6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스트라이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70위~61위

토르난테 2024. 3. 2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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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위 마이클 오언

 


생년월일: 1979년 12월 14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1990년대 말 세계 축구계를 들썩이게 했던 원더보이로 환상적인 볼터치와 빠른 스피드와 현란한 몸놀림을 화려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하며 공간을 만들어냈으며 뛰어난 득점 감각 역시 자랑했다.

리버풀에서 짧지만 강력한 임팩트를 보였던 오언은  2000-01 시즌 FA컵, 리그컵, UEFA컵을 우승하며 미니 트레블을 이뤄냈으며 슈퍼컵에서 유럽 챔피언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팀의 세 번째 골을 득점하며 3-2 승리를 이루는데 공헌했기에 그 해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다소 논란은 있었지만 발롱도르를 타내며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올라섰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 이적 이후 그의 커리어는 급속도로 몰락했으며 나중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을 때는 이길 수 없으면 합류하라는 망언을 해서 리버풀의 팬들을 화나게 하기도 했다.

오웬은 삼사자 군단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했는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대회 신인상을 수상했고 한일 월드컵 지역예선은 독일 원정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에게 걸려 넘어지는 할리우드 액션을 보여서 페널티 킥을 유도했고 그 페널티킥을 베컴의 페널티 킥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했으나 2006 독일 월드컵 이후에는 대표팀에서 밀려났다.

 

 

69위 페르난도 페이로테우

 


생년월일: 1918년 3월 10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92kg
주 소속팀: 스포르팅 리스본

포르투갈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 중 한 명이자 1940년대 유럽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빠른 스피드와 거대한 체격을 바탕으로 최전방에서 저돌적인 몸싸움과 강력한 헤더를 활용하거나 강력한 슈팅으로 확실하게 마무리하는 스트라이커였다.

스포르팅 리스본의 원 클럽맨이자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인 페이로테우는 아우바누, 트라바수스, 코헤이아, 바스케스와 함께 다섯 개의 바이올린이라 불렸던 조합을 지휘해 구단의 황금기를 이뤄냈는데 프리메이라 리가와 타사 드 포르투갈에서 각각 5회 우승을 이뤄냈고 1944년에는 수페르타사 칸디두 드 올리베이라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페이로테우 개인은 프리메이라 리가 득점왕을 6회 수상했는데 특히 1946-47 시즌에는 정규리그에서만 19경기에 출전해 43골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장식했다.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통산 최다 득점자였더 페이로테우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시대에 활약했던 선수라 국제대회에 나서진 못했지만 친선전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는데 1938년 독일과의 친선전에서 데뷔했고 스위스와의 지역 예선전에서 첫 득점포를 기록했다.

 

 

68위 지미 맥그로리

 


생년월일: 1904년 4월 26일
국적: 스코틀랜드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셀틱 FC

1920년대와 30년대를 풍미하며 스코틀랜드 1부 리그 역대 개인 통산 최다골을 기록한 공격수로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용수철과 같은 점프력과 파괴적인 헤더로 유명해 사람들로부터 인간 어뢰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직접 슈팅으로 득점하는 부분과 위치선정 능력도 우수했다.

셀틱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라는 타이틀로도 유명한 맥그로리는 라이벌 레인저스의 강세 속에서도 셀틱 소속으로 정규리그 3회 우승, 스코티시 컵 5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16개의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으며 맥그로리 개인도 리그 득점왕을 3회 수상했고 사후에는 셀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지미 맥그로리는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도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에서 7경기에 나와 6골을 기록했고 스코틀랜드 풋볼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도 6경기에 출전해 6골을 기록했으나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67위 프란츠 빈데르

 


생년월일: 1911년 12월 1일
국적: 오스트리아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라피트 빈

1930년대 하반기부터 40년대 상반기까지 명성을 떨쳤던 거구의 고전적인 스트라이커로 큰 덩치로 인해 스피드도 느렸고 볼을 다루는 기술도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빠른 방향 전환과 공이 터질듯한 강력한 킥력과 우수한 슈팅스킬을 바탕으로 거리를 가리지 않고 중거리 슈팅을 꽂아 넣었으며 강력한 피지컬과 투지를 앞세워 공중볼 경합에서 장점을 보였다.

선수 생활 전체를 라피트 빈에서 보낸 빈데르는 422경기에 출전해서 700골을 득점했고 리저브 경기를 제외하고 1군 경기로 한정해도 378경기에서 591골을 기록한 득점기계였는데 실제로 독립국 시절에 오스트리아 1부 리그 4회 우승과 안슐루스 시절에 있었던 가울리가 오스트마르크에서 2회 우승을 차지한 것을 포함해 정규리그 6회 우승을 이뤄냈고 1938년에는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으며 1941년에는 독일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빈데르 개인도 오스트리아 1부 리그 득점왕과 가우리가 오스트마르크 득점왕을 각각 3회 수상했고 DFB포칼과 독일 축구 챔피언십에서도 각각 한 번씩 득점왕에 올랐다.

오스트리아 대표팀에서도 당시 고령이었던 진델라나 체코슬로바키아로 떠난 비찬의 후계자로 주목받으며 착실하게 활약했던 빈데르는 1938년 월드컵 본선 진출을 가리는 라트비아전에서는 빈더의 골로 2-1 역전승을 거뒀으나 안슐루스로 인해 빈더의 월드컵 데뷔는 이뤄지지 않았다. 나치 체제 독일 대표팀에서도 9경기 10골을 기록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트리아 대표팀으로 복귀한 뒤에도 대표팀 레귤러 멤버로 활약하며 오스트리아에서는 총 19경기에 출전해 16골을 기록했다.

 


66위 아바르 이스테반

 


생년월일: 1905년 5월 28일
국적: 루마니아 → 헝가리
신체조건: 키 176c
주 소속팀: 우이페슈트 도사

루마니아 출신이었으나 헝가리로 귀화해 전성기를 누린 센터포워드로 강력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엄청난 완력과 경이로운 폭발력에서 나오는 순간속도를 겨비해음은 물론 몸을 사리지 않고 수비수와 저돌적으로 경합해 "위험하게 산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초년에는 루마니아에서 활약하다가 헝가리로 귀화한 뒤에 우이페슈트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린 아바르는 1929년 즁유럽의 챔피언스리그인 미트로파컵에서 스파르타 프라하, 라피트 빈, 그리고 결승전에서 만난 슬라비아 프라하를 모두 쓰러트리며 우승을 차지했는데 특히 결승전 1차전과 2차전에 모두 골을 기록한 것을 포함해 총 10골을 득점했으며 아바르 개인은 득점왕에 올랐고 이후에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4회 우승을 이뤄냈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두 번의 중유럽컵과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한 아바르는 특히 1931-32 시즌 중유럽컵에서는 득점왕에 올랐고 1936년에 다시 루마니아의 라피트 부쿠레슈티로 이적해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하며 쿠파 로마니에이 4회 우승을 이뤄냈고 1939-40 시즌에는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65위 티치 라요스

 


생년월일: 1935년 3월 21일
국적: 헝가리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부다페스트 혼베드

푸스카스 세대 이후 헝가리 축구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국가의 폭격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공격수로 왼발, 오른발, 머리를 가리지 않고 득점할 수 있었으며 테크닉도 준수해 스스로의 힘으로 상대 수비를 뚫어내며 최적의 슈팅 각도를 만들어냈다.

선수생활 전부를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 보낸 원 클럽맨 티치는 푸스카스의 후계자로 넴제티 버이녹샤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59년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4년에는 마자르 쿠파 우승을 이뤄냈는데 티치 개인도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연속 득점왕을 수상했고 1959년 미트로파컵에서도 득점왕에 올랐다. 특히 친선 경기에서도 맹폭을 하기로 유명했는데 1959-60 시즌 공식전과 친선전을 포함해 86경기에 출전해 201골을 득점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A매치 72경기에 출전해 51골을 득점한 티치는 958 스웨덴 월드컵부터 1866 잉글랜드 월드컵까지 3회 연속 참가해 1962 칠레 월드컵과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을 이뤄냈고 UEFA 유로 1964에서는 팀의 주장으로 조국이 3위에 오르는데 공헌했다. 여담으로 라요스 티치는 친선 경기를 포함하면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골을 득점한 선수로 이름을 남겼는데 1307경기에 출전해 1917골을 득점하기도 했다.



64위 지안루커 비알리

 


생년월일: 1964년 7월 9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UC 삼프도리아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군림했던 선수로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에서 나오는 환상적인 슈팅 스킬과 황소 같은 전진 드리블은 물론 강력하면서도 정확히 꽂히는 헤더와 우수한 연계 플레이를 겸비했다.

삼프도리아에서 만치니와 전설적인 투톱 콤비를 형성하며 코파 이탈리아 3회 우승과 1988-89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준우승과 1989-90 시즌 UEFA컵 위너스 컵 우승은 무론 1990-91 시즌에는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1-92 시즌에는 삼프도리아의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끌었으며 그 과정에서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과 UEFA 컵 위너스컵 득점왕은 물론 1990-91 시즌에는 마테우스, 반 바스텐, 클린스만, 바조와의 득점왕 경쟁을 이기고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다.

삼프도리아를 떠난 이후에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비알리는 유벤투스에서도 1992-93 시즌 UEFA컵 우승을 시작으로 1994-95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1995-96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며 3대 유럽 대항전을 모두 석권했으며 첼시에서도 1996-97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감독 겸 선수로 1997-98 시즌 UEFA 컵 위너스컵과 리그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1986 멕시코 월드컵에 백업으로 데뷔해 UEFA 유로 1988에서는 만치니와 함께 투 톱 공격수로 선발 출전해 스페인전 결승골을 득점하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나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부진한 활약으로 신데렐라랄 불리는 스킬라치에게 밀려났으며 이후 대표팀과는 멀어졌다.



63위 호베르투 지나미치

 


생년월일: 1954년 4월 13일
A매치 기록: 38경기 20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바스쿠 다 가마

1970년대와 80년대 브라질 무대를 주름잡았던 공격수로 거대한 체구에서 나오는 강력한 몸싸움과 압도적인 헤더가 빛났으며 반응속도도 빨랐으며 우수한 슈팅 스킬과 발재간으로 다양한 득점 패턴을 보여줬으며 상대의 압박을 유려하게 뚫어내는 개인기로도 유명했는데 사포와 일명 '알까기'는 강력한 헤더와 함께 지나미치의 트레이드 마크로 꼽혔다.

바스쿠 다 가마에서 20 시즌 가까이 활약한 지나미치는 공식전에서만 502골을 득점한 바스쿠 다 가마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였는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5회 우승과 1974 시즌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냈고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득점왕을 3회 수상했으며 브라질 세리 A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도 3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브라질 세리 A와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역대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날렸다.

브라질 무대를 폭격하며 지쿠, 히벨리누, 피게로아 못지 않은 활약을 선보였던 지나미치지만 셀레상에서는 클럽에서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3골을 넣었으나 아르헨티나와 페루의 승부조작 논란이 있던 경기로 인해 2차 조별 리그 2위로 3.4위전에 진출해 3위에 그쳤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슐리파와의 경쟁에서 밀려 백업으로 밀려났으나 경쟁자였던 슐리파가 많은 찬스를 날렸기에 대회가 끝나고 다시 주전으로 올라서며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지나미치 개인은 득점왕에 올랐다.

 

 

62위 엘링 홀란

 


생년월일: 2000년 7월 21일
국적: 노르웨이
신체조건: 키 195cm / 몸무게 88kg
현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차세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의 자리가 유력한 스트라이커로 195cm의 거구임에도 몸싸움만 강한 것이 아니라 스피드가 매우 빠른데 최고 속력 36km/h에 달하는 스피드로 순식간에 상대 배후로 침투하는 능력과 지공 시 오프 더 볼 상황에서는 상대 수비에 균열을 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다가 동료의 파이널 패스 타이밍에 맞춰 침투하는 능력에 모두 뛰어났음은 물론 높은 골결정력을 바탕으로 한 득점력도 우수했고 패싱력도 준수했다.

자국 리그의 브뤼네와 몰데를 거쳐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2018-19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와 OFB컵 우승을 이뤄내며 만개한 홀란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해 정상급 선수로 도약하며 2020-21 분데스리가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VDV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음은 물론 2020-21 DFB포칼 결승에서는 난적 RB 라이프치히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해 4-1 대승을 이끌었음은 물론 해당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레반도프스키, 벤제마, 살라와 같은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득점왕 및 UEFA 올해의 공격수를 수상했다.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한 뒤에는 화룡점정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데 공식전 54경기에 출전해 52골을 기록하며 트레블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프리미어리그에서는 35경기에 출전해 36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올랐음은 물론 FWA 올해의 선수와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영 플레이어와 올해의 선수에 동시에 선정되며 개인상을 휩쓸었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에 공헌해 득점왕에 올랐다. 트레블이라는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낸 홀란은 2022-23 시즌 UEFA 올해의 선수, 트로페 게르트 뮐러와 옹즈도르 및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엄청난 커리어를 쌓았기에 향후 순위가 대폭 상승할 확률이 매우 높다.

 

 

61위 크리스티안 비에리

 


생년월일: 1973년 7월 12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타겟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황소라 불렸을 정도로 강력한 몸싸움과 헤더, 그리고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테크닉을 겸비해 괴물 스트라이커라고 평가받았다.

여러 구단을 돌아다닌 저니맨으로 유명했던 비에리는 리피 체제의 유벤투스에서 1996-97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내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9위에 올랐으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1997-98 시즌 라리가 득점왕에 올랐음은 물론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라치오에서는 1998-99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낸 퍼포먼스를 인정받아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과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상을 동시에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7위에 올랐다.

인테르로 이적해서도 짧은 기간동안 호나우두와 투톱을 이뤄서 활약하며 2001-02 시즌 구에린 도르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 비에리는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상과 2002-03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을 수상했음은 물론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2004-05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차기 시즌에는 아드리아누에 밀려나며 AC 밀란으로 이적했으나 그 뒤로는 전성기가 끝나며 여러 팀을 전전하다가 2008-09 시즌 아탈란타에서 커리어를 마감했다.

비에리는 아주리에서도 핵심 공격수로 활약하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5골을 득점하며 아주리 군단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UEFA 유로 2000에서는 부상으로 결장했으나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다시 핵심 선수로 참가해 4골을 득점했으나 16강에서 대한민국에게 연장 접전 끝에 골든골에 무너지며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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