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90위~8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스트라이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90위~81위

토르난테 2024. 3. 2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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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위 이반 사모라노

 


생년월일: 1967년 1월 18일
국적: 칠레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호나우두와의 1+8 일화로 더 유명하지만 사실 1990년대 세계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체격이 큰 편은 아니었지만 신체밸런스가 우수하고 투치가 넘쳐 수비수와 경합을 즐겼고 특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점프력과 강력하면서도 예리한 헤더로 수많은 득점을 기록했던 고공폭격기였다.

1980년대 칠레 무대에서는 의외로 대단한 활약을 펼치진 못했지만 스위스의 FC 장크트갈렌에서 리그 최고의 선수로 성장했고 라리가의 세비야를 거쳐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92-93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과 1994-95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사모라 개인도 라리가 올해의 라틴 아메리카 선수 2회 선정 및 1994-95 시즌 라리가 득점왕 및 ESM 올해의 팀에 올랐다가 인테르에서 말년을 보냈다.

칠레 대표팀 소속으로도 큰 족적을 남긴 사모라노는 1987 코파 아메리카에 처음 소집되었으나 벤치에서 준우승을 경험했고 이후 1991 코파 아메리카에서 조국을 3위에 올리며 5골을 득점해 바티스투타에 이어 가장 많은 골을 넣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살라스와 함께 투톱 조합으로 이름을 날리며 16강에 진출했으며 1999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3위에 올랐다.

말년에는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와일드카드로 참가했는데 조별리그에서 대한민국에게 패했지만 스페인, 모로코, 나이지리아를 연파하고 준결승에서 카메룬에게 패했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미국을 상대로 멀티골을 기록하며 2-0 승리를 이끌어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득점왕에 올랐다.

 

 

89위 에딘 제코

 


생년월일: 1986년 3월 17일
국적: 보스니아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VfL 볼프스부르크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분리 독립한 이후의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역대 최고의 선수로 다소 기복은 있었지만 위기의 순간에 빼어난 활약을 보여줬던 만수르 체제 초반기의 타겟 스트라이커로 압도적인 피지컬과 뛰어난 헤딩 솜씨와 골 결정력을 보여줬던 고전적인 스트라이커였다.

볼프스부르크에서 미시모비치, 그라피테와 삼각편대를 이뤄내며 볼프스부르크의 기적같은 우승을 이뤄낸 제코는 2009-10 시즌에는 팀은 부진했지만 제코 개인은 리가 득점왕에 올랐고 두 시즌 연속으로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후 2010-11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해 활약하며 2010-11 시즌 FA컵 우승과 프리미어리그 우승 2회를 이뤄냈으며 특히 2011-12 시즌 우승에는 최종전에 득점하며 역전 우승에 공헌했으며 팀이 전체적으로 부진해 위기를 맞은 2013-14 시즌에는 야야 투레와 함께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그리고 보스니아 대표팀에서을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맨체스터 시티에서 치열한 주전 경쟁에서 결국 밀려났고 AS 로마로 이적해 3개 리그 우승에 도전했고 비록 리그 우승에는 실패했고 2016-17 시즌 세리에 A 준우승과 2017-18 시즌 바르셀로나를 꺾고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 34년 만에 진출했으며 제코 개인도 2016-17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으며 2017-18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들었고 AS 로마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으며 2020-21 시즌에는 UEFA 유로파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선정되는 등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말년에는 인테르에서 생애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치르기도 했다.

 

 

88위 토미 로튼

 


생년월일: 1919년 10월 6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에버튼 FC

193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잉글랜드 무대에서 활약한 공격수로 양발로 강력한 슈팅을 날려 골망을 갈랐으며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과 인사이드 포워드들과의 패스워크를 통한 연계로도 이름을 날렸는데 특히 엄청난 점프력 덕분에 체공시간이 길었으며 이를 활용해 강력한 헤더로 득점하는 부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에버튼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38-39 시즌 1부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잠시 첼시에서 활약하다가 하부리그의 노츠 카운티, 브랜트포드를 거쳐 아스날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했으며 로튼 개인도 풋볼 리그 득점왕에 2회 올랐다. 말년에는 노츠 카운티 소속으로 풋볼 리그 3부 남부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로튼은 공식 A매치 23경기에 출전해 22골을 득점했고 전시 비공식 경기까지 포함하면 46경기 46골을 기록했는데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사후인 2003년에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87위 다르코 판체프

 


생년월일: 1965년 9월 7일
국적: 북마케도니아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2003년 UEFA와 북마케도니아 축구협회가 선정한 근 50년간 최고의 북마케도니아 축구선수로 기술적으로는 평범했지만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적절한 위치 선정과 예리한 슈팅과 깔끔한 마무리를 선보였던 게르트 뮐러 스타일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바르다르 스코페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주목받아 츠르베나 즈베즈다에 입단한 판체프는 1989-90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리그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유고슬라비아 무대를 평정하는 과정에서 세 번이나 득점왕에 올랐고 1990-91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는 5골을 득점하며 팀의 첫 유럽대항전 우승에 큰 공을 세우는 과정에서 레인저스 원정 동점골, 바이에른 뮌헨 원정 동점골 등 중요한 순간에 클러치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연말에 열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콜로콜로를 상대로 팀의 세 번째 골을 득점하며 3-0 대승의 마침표를 찍었다.

1991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던 판체프는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떠나 인테르에서 베르캄프와 엄청난 투톱을 기대했지만 둘 다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는데 특히 판체프는 최악의 부진을 보이며 루벤 소사와의 주전경쟁도 패했다. 그리고 그의 전성기 동안은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인해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이 국제무대에 나설 수 없었다.

 


86위 아틸리오 가르시아

 


생년월일: 1914년 8월 26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스트라이커

클루브 나시오날의 게르트 뮐러라고 불릴만한 스트라이커로 뛰어난 테크틱과 적절한 위치선정에 이어 높은 수준의 테크닉과 정확성을 겸비한 슈팅을 바탕으로 골 넣는 것을 주머니 속에 물건 빼듯이 쉽게 했다.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데뷔했지만 클루브 나시오날의 레전드로 유명해 구단 통산 최다 득점 및 통산 출전 6위에 랭크된 가르시아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우승과 아르헨티나 챔피언과의 슈퍼컵 코파 알다오 3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외의 크고 작은 공식 대회에서 22회의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을 무려 8회 차지하며 리그 역사상 가장 많이 득점왕을 수상한 선수로 기록되었다.

아르헨티나 귀화 선수라 대표팀 업적은 없지만 그래도 클루브 나시오날에서의 그의 입지는 확고한데 우루과이 클라시코에서도 35골을 기록하며 페냐롤과 클루브 나시오날 양 팀을 합쳐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하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에 오른 가르시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클루브 나시오날 구단은 홈구장인 에스타디오 그란 파르케 센트럴에 그의 이름을 딴 아틸리오 세페리노 가르시아 스탠드를 만들기도 했다.



85위 파트릭 클라위베르트

 


생년월일: 1976년 7월 1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90년대 중반, 한때 호나우두의 대항마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던 약관의 나이에 전성기를 누린 스트라이커로 탄탄한 피지컬과 이를 이용한 몸싸움으로 상대 수비수를 제압했으며 우수한 헤더와 유려한 발밑을 활용한 연계 플레이와 드리블에도 능했던 만능 스트라이커였다.

데뷔 시즌부터 엄청난 활약을 펼쳤던 네덜란드 역대 최고의 재능 중 한 명이었던 클라위베르트는 프로 데뷔 시즌에 36경기 21골을 폭격하며 에레데비시와 UEFA 챔피언스리그 무패 더블을 이끌었고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1995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에 올랐다. 밀란에서는 조지 웨아, 로베르토 바조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며 주춤했지만 바르셀로나에서 다시 부활해 히바우두, 피구와 함께 공격편대를 구축해 1998-99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다섯 시즌 연속으로 두 자릿수 골을 기록했으나 그 뒤에 찾아온 두 번째 슬럼프를 이번에는 극복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치열한 주전 경쟁을 이겨내며 베르캄프와 함께 투톱을 구성해 활약한 클라위베르트는 1998 프랑스 월드컵과 UEFA 유로 2000에서 조국의 준결승 진출을 이룩하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특히 UEFA 유로 2000에서는 5골을 득점하며 득점왕 및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다.



84위 로빈 반 페르시

 


생년월일: 1983년 8월 6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2010년대 초반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베르캄프를 연상시키는 섬세한 볼터치와 뛰어난 왼발 슈팅 능력은 물론 축구지능도 높아 동료를 활용하는 연계 능력에도 능했고 드리블도 우수해 일대일 돌파에도 능했던 컴플리트 포워드였으나 부상이 잦아 그 기량을 온전히 펼친 시즌이 2011-12 시즌과 2012-13 시즌 외에는 없었다.

페예노르트에서 데뷔해 뛰어난 모습을 보였으나 경기장 안팎으로 사고를 치는 악동이었던 반 페르시는 아스날로 이적한 뒤에도 첫 시즌에는 다소 시끄러웠지만 뱅거 감독과 베르캄프, 앙리와 같은 고참 선수들의 도움으로 안정을 되찾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잦은 부상으로 고생하다 2011-12 시즌에 기량이 만개해 리그 30골을 넣으며 홀로 팀을 3위에 올려놓으며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리그 득점왕과 P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이적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해서도 2012-13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잦은 부상에도 네덜란드 대표팀 통산 최다 득점자에 올랐을 정도로 대표팀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보여준 반 페ꇸ시는 오렌지 군단의 저지를 입고 월드컵 3회, 유로 2회에 출전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팀을 결승 무대에 올려놓는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2014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을 상대로 그림과 같은 돌고레 헤더로 득점하며 5-1 대승을 거두는 데 공헌했고 팀을 3위에 올려놓았다. 참고로 그 헤딩으로 인해 2014년 푸스카스 상을 수상했다.



83위 클라우스 피셔

 


생년월일: 1949년 12월 27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197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분데스리가 역대 통산 득점 3위에 랭크된 공격수로 영리한 위치선정과 페널티 박스에서의 감각적인 움직임과 정확한 슈팅을 보여주며 스트라이커로서의 기본기는 당연히 뛰어났으며 무엇보다도 피셔는 독일 축구사를 대표하는 바이시클킥 스페셜리스트로 아예 별명이 미스터 바이시클킥이었을 정도로 바이시클킥에 능했다.

분데스리가 통산 득점 3위에 랭크되었을 정도로 꾸준하게 득점력을 유지한 피셔는 샬케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71-72 시즌 포칼 우승과 두 번의 분데스리가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냈고 특히 1975-76 시즌에는 29골을 득점하며 게르트 뮐러를 제치고 득점왕에 올랐으며 1999년에 선정된 샬케의 세기의 일레븐과 명에의 주장에 선정되는 등 구단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했으며 이후 쾰른과 보훔에서도 쏠쏠하게 활약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는 게르트 뮐러 은퇴 이후에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예선에서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으나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본선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으며 이후 UEFA 유로 1980에는 소집되지 못했으나 절치부심해 1982 스페인 월드컵 2차 조별 리그에서 다시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팀의 준우승을 이끈다.



82위 아드리아누

 


생년월일: 1982년 2월 17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91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2000년대 초반 엄청난 기대를 받았던 스트라이커로 전성기 시절인 2000년대 중반에는 축구사 전체를 통틀어 봐도 매우 희귀한 완벽에 가까운 공격수였는데 강력한 피지컬과 축구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는 왼발 킥력은 물론 덩치에 맞지 않게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테크닉을 겸비했으며 인테르 시절의 동료 이반 코르도바는 그를 두고 "호나우두의 재능과 이브라히모비치의 피지컬을 겸비한 존재"라고 평가했다.

플라멩구에서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연패를 이끌어 주목받은 아드리아누는 유럽 무대의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했고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2004-05 시즌과 2005-06 시즌 코파 이탈리아 2연패를 이뤄냈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2004년 6위와 2005년 7위에 랭크되었다.

셀레상에서도 2004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압도적인 활약으로 셀레상의 우승을 이끌며 대회 득점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으며 2005 컨페드컵에서도 우승을 이뤄냈으나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으며 이후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몰락하며 인테르의 전성기를 함께 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은퇴했다가 브라질의 플라멩구로 돌아왔다.

플라멩구로 돌아와서는 정신을 차렸는지 2009 시즌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냈으며 브라질 세리 A MVP와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며 부활하는 듯했지만 다시는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으며 AS 로마로 이적한 뒤에는 다시 몰락하며 컴퓨터 게임 위닝 일레븐에서의 영광을 현실에서는 이어나가지 못했다.

 

 

81위 엘레누 지 프레이티스

 


생년월일: 1929년 2월 12일
A매치 기록: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1940년대와 50년대에 브라질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스트라이커로 초년에는 수비수로 활약했지만 다혈질적이며 거친 성격으로 잦은 반칙을 하자 보타포구의 감독은 그가 경고를 받을 가능성을 낮추고 팀이 세트피스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를 센터 포워드로 배치했는데 의외로 엘레누와 잘 맞는 포지션이라 적응을 잘했으며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테크닉과 전술안은 겸비했음은 물론 강력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헤더와 강력하면서도 정확한 슈팅으로 무수히 많은 득점을 기록했지만 상술했던 성격 문제가 발목을 잡아 커리어 내내 불화를 일으켰으며 이런 행동들 때문에 저주받은 왕자라 불렸다.

당대 리우 데 자네이루 무대 최고의 공격수였던 엘레누는 보타포구에서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42 시즌에는 득점왕을 차지했고 바스쿠 다 가마에서도 1949 시즌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대표팀에서도 1945년과 1946년 코파 아메리카에 나섰으나 황금세대의 아르헨티나를 막아내지는 못하고 준우승을 거뒀지만 엘레누는 1945년 대회에서는 득점왕에 오르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한 성격과 난폭한 행동 및 거친 언행으로 인해 셀레상의 감독 플라비우 코스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엘레누는 A매치에서 18경기에 출전해 19골을 기록했고 194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공동 득점왕에 오르는 등 대단한 득점력에도 불구하고 1950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는데 아메리카 클럽 풋볼에서는 첫 경기에서 팀 동료들을 모욕하며 25분 만에 퇴장당해 계약을 해지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무절제한 사생활로 결혼을 했음에도 외관 여자들과 놀아났음은 물론 술과 담배는 물론 마약과 도박에도 중독되며 정신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1959년에 만 39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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