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100위~9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스트라이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100위~91위

토르난테 2024. 3. 2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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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위 마리오 고메스

 


생년월일: 1985년 7월 10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9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2010년대 초반 독일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다소 투박하지만 강력한 신체능력과 우수한 위치 선정 능력과 뛰어난 골 결정력을 보여줬으며 단순히 타겟맨으로서 패스만 기다리는 게 아니라 거침없는 황소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와해시키고 직접 득점하기도 했다.

2006-07 시즌 슈투트가르트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며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해 주목받았던 고메스는 2009-10 시즌에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 첫 시즌에는 부진했으나 2010-11 시즌과 2011-12 시즌은 에이스로 활약했는데 2010-11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2011-12 시즌에는 52경기에 출전해 41골을 넣는 맹활약을 펼쳤으나 분데스리가와 챔피언스리그에서는 각각 훈텔라르와 메시에게 밀려 득점 2위를 기록했고 팀도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준우승이라는 비극을 겪었다.

 

2012-13 시즌, 자신의 부상을 틈타 주전 자리를 차지한 마리오 만주키치에 밀려났지만 만주키치가 결정할 때 기회를 잘 잡아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 바이에른 뮌헨의 트레블에 공헌하며 팬들에게 전설로 남았지만 바이에른을 떠나 피오렌티나로 이적한 이후에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2회 선정된 고메스는 디 만샤프트에서는 UEFA 유로 2008 준우승과 2010 남아공 월드컵 준결승을 벤치에서 겪었으나 유로 2012에서는 주전 공격수로 참가해 3골을 득점하며 조국의 준결승 진출을 이끌었으나 이후 대표팀과 멀어졌다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다시 뽑혔으나 명예회복을 하지 못하고 조별 리그 탈락의 쓴맛을 경험했다.

 

 

99위 올리버 비어호프

 


생년월일: 1968년 5월 1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우디네세 칼치오

199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헤딩머신으로 압도적인 피지컬을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에 강점이 있었으며 엄청난 파워의 헤더를 보여줬는데 분명 머리로 슈팅을 하는데 발로 힘껏 차는 수준의 파워가 나왔다고 전해진다.

분데스리가에서는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이어나가지 못했지만 당대 최고의 리그 세리에 A를 보유한 이탈리아에서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보낸 비어호프는 1997-98 시즌에 우디네세의 세리에 A 3위 도약을 이끌며 개인적으로도 호나우두를 제치고 득점왕에 올랐고 AC 밀란으로 이적해서도 1998-99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끌었고 이후에도 셰우첸코와 함께 투톱 조합으로 이름을 날렸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2회 받은 비어호프는 디 먄샤프트에서도 핵심선수로 활약했는데 UEFA 유로 1996 결승전에서 동점골을 득점했고 연장전에서는 축구 역사상 최초로 골든골을 득점해 조국의 유로 우승을 이끌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팀원들이 대부분 부진하는 와중에 분전하며 3골을 득점하며 분전했는데 이 활약을 인정받아 1998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98위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

 


생년월일: 1989년 6월 18일
국적: 가봉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0년대 하반기 분데스리가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번개와도 같은 스피드로 질주하며 상대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트리며 절묘하게 공간으로 침투해 무수히 많은 찬스를 득점으로 이어나갔다.

생테티엔에서 리그앙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한 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전성기를 누린 오바메양은 레반도프스키 이적 이후 포지션을 스트라이커로 변경한 뒤에 기량이 크게 만개하며 2015년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2015-16 시즌 분데스리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특히 DFB포칼 3년 연속 준우승을 거뒀으나 결국 2016-17 시즌에 바이에른과 프랑크푸르트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해당 시즌에 레반도프스키를 밀어내고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으며 월드클래스 등급에 3회 선정되었다.

프리미어리그 이적을 원해 2017-18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아스날로 이적한 오바메양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초반에는 적응기를 겪다가 2018-19 시즌과 2019-20 시즌 두 시즌 연속으로 20골 넘게 득점하는 활약을 펼쳤으며 2018-19 시즌에는 마네, 살라와 함께 프리미어리그 공동 득점왕에 올랐고 2019-20 시즌에는 PFA 올해의 팀에 들며 암흑기에 빠진 아스날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나 팀과의 불화로 겨울이적시장에서 팀을 떠났다. 가봉 대표팀에서는 대표팀 전력의 한계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에 5회 출전했다.

 


97위 알레산드로 알토벨리

 


생년월일: 1955년 11월 28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마른 체형으로 인해 바늘이라 불렸던 선수로 신출귀몰한 공간 이해도와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빈 공간으로 침투해 정교한 슈팅 정확도를 바탕으로 무수한 득점을 기록했는데 사실 바늘이란 뜻은 상대 골문을 정확히 찌른다는 중의적인 표현이기도 했다.

인테르에서 10년 넘게 활약하며 전성기를 누린 알토벨리는 1979-80 시즌에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으며 코파 이탈리아도 두 번이나 우승했는데 특히 1981-82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에 올랐으며 1978-79 시즌에는 컵 위너스컵 득점왕에 올랐으며 말년에는 유벤투스와 브레시아에도 잠시 머물렀다.

UEFA 유로 1980을 앞두고 아주리 군단 스쿼드에 처음으로 포함된 알토벨리는 그 대회에서는 벤치에 머물며 활약하지 못했지만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파울로 로시의 백업으로 나와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팀의 세 번째 골을 득점해 3-1로 서독을 꺾고 우승하는데 일조했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파울로 로시가 중국전에서 부상을 당하자 주전으로 활약하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하며 총 4골을 득점하며 아주리 군단에서 군계일학으로 활약했으며 유로 1988에서는 주장 자격으로 참가했지만 노쇠화로 인해 다시 백업 멤버로 내려갔다.

 


96위 헨리크 라르손

 


생년월일: 1971년 9월 20일
국적: 스웨덴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셀틱 FC

1990년대 하반기와 2000년대 상반기에 스웨덴 축구를 이끌었던 공격수로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예술적인 볼 컨트롤과 탄탄한 바디 밸런스, 그리고 영리하게 빈 공간으로 파고들어 냉정하게 득점했다.

페예노르트와 셀틱에서 전성기를 누린 라르손은 특히 셀틱에서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 4회 우승과 4번의 컵 대회 우승 및 2002-03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라르손 개인도 리그 득점왕을 5회 차지했고 그중 2000-01 시즌에는 유러피언 골든슈에 올랐으며 1999년과 2001년에는 SFWA 올해의 선수와 SPFA 올해의 선수를 모두 석권하며 리그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기에 FIFA로부터 작은 연못에 사는 큰 물고기라 불렀을 정도로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

 

노장의 반열에 든 뒤에 간 빅클럽에서의 활약상도 나쁘진 않았는데 FC 바르셀로나에서는 에투의 백업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으며 라리가 2연패 및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일조했으며 고국으로 복귀했다가 잠시 이적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2006-07 시즌에 세 달 동안 활약하며 중요한 순간 골을 넣어주고 경기의 흐름을 바꿔주는 움직임으로 맨유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에 적잖이 기여하며 임대의 신화를 썼다.

1998년과 2004년에 두 번의 굴드불렌을 수상한 라르손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오랜 기간 주포로 활약했는데 1994 미국 월드컵 3,4위 결정전에서 데뷔해 불가리아를 상대로 득점하며 스웨덴의 3위를 이끌었고 이후에도 두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유럽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주전으로 활약해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나이지리아 전에서 멀티골을 득점하며 죽음의 F조에서 1위로 올라서는데 공을 세웠고 유로 2004에서는 바이킹 군단을 8강에 올려놓았다. 은퇴한 이후에는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95위 주제 토히스

 


생년월일: 1938년 9월 8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1960년대 유럽 대륙에서 이름을 날린 장신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큰 키를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로 헤딩 패스로 공격을 지원한 능력은 물론 양발과 머리를 모두 잘 써서 다양한 패턴으로 득점을 기록했는데 거대한 체구와 험악한 외형과는 다르게 의외로 상냥한 성격과 우수한 팬서비스를 겸비해 팬들로부터 친절한 거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주제 아구아스의 후계자로 벤피카에서 에우제비우와 투톱 조합을 구성해 상대 골문을 맹폭하며 프리메이라 리가 9회 우승과 타사 데 포르투갈 4회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 2회 우승 및 3회 준우승을 이뤄냈고 토히스 개인도 1962-63 시즌 정규리그 득점왕, 1964-65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올랐으며 벤피카 공식전 통산 득점 4위에 랭크되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에우제비우와 함께 최선봉에 선 토히스는 벤피카의 동료들과 함께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출전해 처녀 출전한 팀을 3위에 올려놓는데 크게 공헌했다.



94위 두두 게오르게스쿠

 


생년월일: 1950년 9월 1일
국적: 루마니아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디나모 부쿠레슈티

1970년대 유럽 정상급 스트라이커이자 루마니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로 침착하면서도 기본기가 뛰어났고 신체밸런스가 좋아 오른발, 왼발, 머리를 가리지 않고 많은 득점포를 가동했는데 특히 점프력이 대단해 타점 높은 헤더로 상대 스토퍼들을 괴롭혔다.

전성기를 디나모 부쿠레슈티에서 보낸 두두 게오르게스쿠는 루마니아 디비전 A 4회 우승 및 1981-82 쿠파 루마니에이 우승을 이뤄냈고 게오르게스쿠 개인도 네 시즌 연속으로 디비전 A 득점왕을 수상했고 그중 1974-75 시즌과 1976-77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골든슈를 수상했으며 1976년에는 루마니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루마니아 대표팀의 암흑기에 활약했던 게오르게스쿠는 대표팀에서는 에이스로 활약했음에도 눈에 띄는 족적을 내진 못했지만 루마니아 디비전 A 통산 최다 득점 및 디나모 부쿠레슈티 통산 최다 득점자의 자리에 올랐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3회 선정되었는데 1977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9위에 랭크되었다.



93위 라마즈 센겔리아

 


생년월일: 1957년 1월 1일
국적: 조지아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디나모 트빌리시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소련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당대 유럽에서 가장 빠른 스피드스터로 이름을 날렸는데 빠른 스피드로 득점하기 적절한 위치를 선점한 뒤 침착하게 마무리하는 능력에서 강점을 보였고 이 덕에 측면 공격수로도 자주 활약했다.

해군팀 FC 토르페도 쿠타이시에서 데뷔해 디나모 트빌리시에서 전성기를 누린 센겔리아는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1978 소비에트 탑 리그 우승과 1979 소비에트컵 우승을 이뤄냈고 1980-81 시즌에는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다. 센겔리아 개인도 1978년과 1981년 소련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1981 소비에트 탑 리그 득점왕 및 1981-82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득점왕을 수상했다.

1981년 소련 올해의 스포츠 선수와 발롱도르 7위에 올랐던 센겔리아는 소련 대표팀 소속으로도 1980 UEFA U-21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득점왕에 올랐고 성인 대표팀으로는 1982 스페인 월드컵에 참가해 블로힌과 함께 투톱으로 조합해 활약했다.



92위 올레흐 프로타소우

 


생년월일: 1964년 2월 4일
국적: 우크라이나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FC 드니프로

1980년대 소련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강력한 피지컬과 빠른 스피드와 동물적인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수많은 득점을 기록했는데 전성기 시절에는 소련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고 냉전 이후에는 그리스와 일본 같은 축구 변방국에서도 명성을 떨쳤다.

드니프로에서 데뷔해 1983 소비에트 탑 리그에서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했고 1984년부터 주전으로 도약해 1985년과 1987년에는 득점왕에 올랐는데 특히 1985년에는 리그 35골 및 공식전 40골을 기록하는 괴력을 선보이며 발롱도르 7위에 올랐다. 로바노우스키 체제의 디나모 키이우로 이적한 뒤에도 1990년 소비에트 탑 리그와 소비에트 컵 더블을 이뤄냈고 그 과정에서 재차 리그 득점왕에 올랐으며 두 팀을 통틀어 소비에트 탑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다.

1987년 소련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프로타소우는 소련 대표팀에서도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1986 멕시코 월드컵과 UEFA 유로 1988, 그리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UEFA 유로 1988에서는 조별리그에서 아일랜드, 준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득점하며 조국의 결승행을 이끌었다. 구에린 스포르티보는 그의 활약을 인정해 UEFA 유로 1988 최고의 선수 5위에 올렸다.

 

 

91위 호어스트 흐루베쉬

 


생년월일: 1951년 4월 17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함부르크의 전성시대를 이끈 스트라이커로 헤딩에 특히 능해 헤딩 야수라 불렸으며 실제로 함부르크와 디 만샤프트에서 칼츠의 크로스와 흐루베쉬의 헤딩은 중요한 공격 루트로 자리 잡았을 정도로 당대에 유명세를 떨쳤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야수가 바나나를 먹으면 골이 터진다고 했을 정도로 강력한 콤비였다.

오랫동안 하부리그에서 활약하다가 28세의 늦은 나이로 함부르크에 입단해 활약한 대기만성형 선수였던 흐루베쉬가 함부르크에서 이룬 족적은 어마어마한데 분데스리가 우승 3회, 유리피언 컵에서도 두 번의 결승전에 진출해 1982-83 시즌에는 빅이어를 들었고, UEFA컵 결승 진출 1회를 이뤄냈으며 흐루베쉬 개인도 1979-80 시즌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1980-81 시즌 포칼 득점왕, 그리고 1981-82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이뤄냈으며 옹즈 몽디알이 선정한 유럽 베스트에 2회 선정되는 활약을 보여줬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짧지만 굵은 활약을 보여준 흐루베쉬는 UEFA 유로 1980 결승에서 벨기에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해 우승에 기여해 1980 발롱도르 투표에서 6위에 랭크되었고 구에린 스포르티보가 뽑은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그러나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선발과 백업을 오가며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이뤄냈다.

 


다음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90위~8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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