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80위~7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스트라이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80위~71위

토르난테 2024. 3. 2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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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80위 오베 킨드발

 


생년월일: 1943년 5월 16일
국적: 스웨덴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스웨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체격은 작았지만 민첩한 몸놀림과 따라잡기 어려운 순간스피드를 바탕으로 신속하게 빈 공간으로 침투해 예측을 불허하는 오른발 슈팅으로 유명했고 유려한 볼 컨트롤과 패스센스를 바탕으로 공격형 미드필더나 처진 공격수에서도 훌륭한 역량을 발휘했다.

IFK 노르셰핑에서 데뷔해 알스베스칸 2연패를 이뤄낸 킨드발은 페예노르트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였던 킨드발은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끌며 에레데비시 2회 우승 및 1968-69 시즌에는 KNVB컵까지 우승해 더블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인터토토컵 2회 우승을 시작으로 1969-70 시즌에는 하펠 체제에서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끌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킨드발 개인도 1966년 알스베스칸 득점왕 미 굴드불렌을 수상했고 에레데비시 득점왕 3회 수상 및 1969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요한 크루이프와 함께 공동 4위에 올랐다. 그러나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다소 아쉬웠다.

 

 

79위 오스카르 미구에스

 


생년월일: 1927년 12월 5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의 우승을 이끈 스트라이커로 슈팅 능력이 특히 뛰어났는데 강력한 중장거리 슈팅과 정밀도 높은 피니시는 물론 종종 아크로바틱한 슈팅으로도 득점했을 정도로 슈팅 스킬이 뛰어났음은 물론 연계 플레이에도 능했다.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보낸 미구에스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을 포함해 국내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18회의 우승을 이뤄냈으며 1949 시즌에는 리그에서 16승 2무의 성적으로 무패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리그에서만 20골을 득점하며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에 올랐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주전 스트라이커호 활약한 미구에스는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5골을 득점하며 우승에 기여했으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3골을 득점하며 조국을 4강에 올렸음은 물론 1956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이끌며 대회 MVP를 수상했다.

 

 

78위 브워지미에시 루반스키

 


생년월일: 1947년 2월 28일
국적: 폴란드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구르니크 자브제

레반도프스키가 전성기에 오르기 이전에 폴란드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우수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제쳐냈으며 정밀도 높은 슈팅을 통해 엄청난 득점력을 선보였다.

구르나크 자브제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공격형 미드필더 촐티시크와 함께 막강한 공격듀오를 구성한 루반스키는 폴란드 리그 7회 우승과 폴란드 컵 6회 우승을 이뤄냈고 1969-70 시즌에는 UEFA 컵 위너스컵 준우승을 이루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벨기에의 로케른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했던 루반스키 개인도 폴란드 리그 득점왕 4회 수상 및 월드 사커 선정 월드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다.

폴란드 대표팀에서도 만 17세의 어린 나이에 성인 대표팀에 선발되어 오랜 기간 활약했는데 1972 뮌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루반스키는 1973-74 시즌을 부상으로 통으로 날리면서 1974 서독 월드컵에는 나서지 못한 비극을 겪었으나 큰 시련을 이겨낸 뒤 다시 부활해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다시 주전자리를 잡아 활약했다. 은퇴한 뒤인 2003년에는 지난 50년간 폴란드 역대 최고의 선수로 뽑혀 주르빌 어워드를 수상했고 2019년에는 폴란드 축구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 폴란드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77위 주제 아구아스

 


생년월일: 1930년 11월 9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81cm
주 소속팀: SL 벤피카

에우제비우 등장 이전 벤피카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어느 방향에서나 온 몸으로 득점하는 선수였는데 신채밸런스가 우수했고 탁월한 양발 사용 능력과 힘과 기술을 겸비한 슈팅을 바탕으로 원거리와 근거리, 오른쪽과 왼쪽을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슈팅을 날려대며 득점했으며 특히 황금의 머리라 불렸을 정도로 헤더에 능했다. 이 뿐만 아니라 팀을 아우르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벤피카 구단 역대 최고의 주장으로 평가받는다.

벤피카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아구아스는 벤피카에 머무는 동안 프리메이라 리가 5회 우승과 타사 데 포르투갈 7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럽 무대에서도 주장으로서 두 번의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 선발 출장해 우승을 이뤄냈고 아구아스 개인도 프리메이라 리가 득점왕에 5회, 타사 데 포르투갈 득점왕에 4회 올랐으며 1960-61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에 이어 유러피언 컵에서도 득점왕을 차지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1960-61 시즌에 그가 유러피언 컵에서 보여준 활약은 발군이었는데 9경기에 출전해 11골을 득점한 아구아스는 예선 하츠전 선제골을 시작으로 토너먼트 1라운드 우이페슈트 도사와의 홈경기에서 멀티골, 8강 덴마크의 AGF와의 2경기, 4강 라피트 빈과의 2경기, 그리고 결승전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모두 득점하며 5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는데 특히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득점한 골은 동점골이었으며 이 골을 기점으로 라마예츠의 자책골과 골루냐의 골이 더해지며 3-2 신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공식 MVP가 없지만 사실상 대회 최고의 선수급 퍼포먼스를 보이며 1961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에 랭크되었다.

 


76위 바바

 


생년월일: 1934년 11월 12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바스쿠 다 가마

1950년대 하반기와 196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스트라이커로 드리블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탄탄한 기본기와 우수한 위치선정, 그리고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하는데 능했으며 지구력이 좋아 왕성한 활동량으로 중원으로 내려가 볼 순환에도 돕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며 팬들로부터 강철 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바스쿠 다 가마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그리고 파우메이라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바바는 첫 전성기를 누린 바스쿠 다 가마에서는 구단 최고의 레전드 아데미르의 후계자라 불리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회 우승을 포함해 11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유럽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코파 델 레이 2연패를 이뤄냈으며 월드컵에 나가기 위해 브라질의 파우메이라스로 돌아왔는데 1963 시즌에는 무적이라 불리던 펠레의 산투스를 제치고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에 기여했다.

바바는 셀레상에서도 펠레의 파트너로 맹활약하며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주전 공격수로 우승했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5골을 득점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4골을 득점하며 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했으며 대회 공동 득점왕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으며 월드컵 통산 9골을 기록했기에 은퇴 이후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75위 레네 폰토니

 


생년월일: 1920년 5월 18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산 로렌소

194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체구가 작아 상대 수비와 직접 경합하기보다는 상대 수비를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공간 지각력으로 따돌리며 배후로 침투해 득점하는 포처 유형에 가까웠으며 연계 능력이 좋아 팀원과의 유기적인 팀플레이에 능한 선수였는데 최전성기인 1940년대 중반에는 잠시나마 40년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 호세 마누엘 모레노와 비견되었다.

뉴웰스 올드 보이스와 산 로렌소에서 활약한 폰토니는 뉴웰스에서는 1942년 토르네오 쿼드랭귤러 로사이로 우승 및 1943년 토르네오 인터내셔널 녹투르노 우승을 이뤄냈고 산 로렌소에서는 1946년 리날도 마르티노와 함께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이라는 기적이라는 서사를 썼다.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로 급여를 안정적으로 받지 못하자 엘 도라도라 불리던 콜롬비아 리그에 속한 인디펜디엔테 산타페로 이적해 1950-51 시즌 코파 콜롬비아 준우승을 이뤄냈다가 1954년에 산 로렌소로 돌아와 은퇴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소속으로도 1945년부터 1947년까지 코파 아메리카 3연패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우며 아르헨티나의 독주 체제에 크게 일조했고 특히 1945년과 1947년 대회에서는 무려 4골을 기록했다.



74위 세르히오 아구에로

 


생년월일: 1988년 6월 2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2010년대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공격수로 공격수로 감각적인 움직임과 빠른 순간 스피드와 탄탄한 신체 밸런스를 앞세워 상대 수비 라인을 붕괴시켜 득점을 노렸던 호마리우와 비슷한 유형의 공격수였다.

초년에는 인디펜디엔테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명성을 떨친 아구에로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다비드 실바, 뱅상 콤파니와 함께 만수르 체제 블루문 군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는데 구단의 첫 번째 프리미어 리그 우승에 특히 큰 공을 세웠는데 QPR과의 최종전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결승골을 득점해 팀의 역전 우승에 공헌했고 이후에도 도메스틱 트레블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5회 우승과 리그 컵 6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이 공로로 콤파니, 다비드 실바에 이어 동상이 건립되었음은 물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5회 선정된 아구에로는 2015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13위에 올랐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연령별 대표 시절에는 2007 U-20 월드컵 우승과 득점왕, MVP를 모두 석권했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아구에로였으나 성인 대표팀에서는 세 번의 월드컵과 다섯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2014 브라질 월드컵을 포함해 총 세 번이나 준우승에 그쳤지만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다. 다만 예선전에서는 출중한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메이저 대회 본선에서는 팀 성적과는 별개로 부진한 활약을 펼쳤다.



73위 에딘손 카바니

 


생년월일: 1987년 2월 14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2010년대 정상급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저돌적인 돌파력으로 수비라인을 뚫어내며 호쾌한 슈팅력으로 득점했으며 뛰어난 피지컬과 우수한 헤더, 그리고 성실한 멘탈은 물론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수비와 전방압박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컴플리트 포워드였다.

나폴리와 파리 생제르맹에서 전성기를 누린 카바니는 나폴리에서는 함식, 라베찌와 함께 삼각편대를 이뤄 2010-1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세리에 A 3위를 이뤄냈음은 물론 카바니 개인도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고 2011-12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과 2012-13 시즌 세리에 A 득점왕과 평점왕에게 주는 구에린 도르를 동시에 수상하며 2010년대 초반 세리에 A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군림했다.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초년에는 즐라탄에게 밀려나 주 포지션에서 뛰지 못한 기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에 오른 카바니는 팀의 리그앙 6회 우승을 포함해 21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개인적으로도 리그앙 득점왕 2회를 포함해 프랑스의 각종 대회에서 여섯 번의 득점왕을 차지했는데 특히 2016-17 시즌에는 리그앙과 리그컵에서 모두 득점왕에 오르며 리그앙 올해의 선수상과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리그앙 올해의 팀에도 총 3회 선정되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네 번의 월드컵과 다섯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한 카바니는 2010 남아공 월드컵 4강, 2011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에이스로 활약하며 조국의 8강 진출을 이뤄냈다.



72위 냇 로프트하우스

 


생년월일: 1925년 8월 27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볼턴 원더러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잉글랜드 리그 최고의 센터 포워드 중 한 명으로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다부진 체구와 용수철 같은 점프력을 활용해 뛰어난 헤딩 능력을 지녔으며 우수한 바디 밸런스와 강인한 정신력을 겸비해 수비수와의 경합을 피하지 않고 이겨내며 항상 최적의 자세로 슈팅을 날렸다.

볼턴에서 태어나 커리어의 전부를 볼턴에서 보냈으며 볼턴에서 사망한 볼턴의 사나이였던 로프트하우스는 볼턴 원더러스에서만 공식전 503경기에 출전해 285골을 기록했고 1952-53 시즌에는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1957-58 시즌에는 FA컵 우승도 이뤄냈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홀로 멀티골을 기록하며 2-0 승리를 이뤄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던 로프트하우스는 1952년 5월, 오스트리아 빈 원정에서 훌륭한 퍼포먼스로 빈의 사자라는 별명을 얻었고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8강 진출을 이뤄냈다.

 

 

71위 에르난 크레스포

 


생년월일: 1975년 7월 5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파르마

1990년대 하반기와 2000년대 초중반에 이름을 날렸던 스트라이커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라인 브레이킹 능력과 뛰어난 양발 슈팅력, 그리고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점프력을 바탕으로 하는 훌륭한 헤딩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추가로 강력한 몸싸움과 폭넓은 활동량을 활용해 파트너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역할에도 능한데다가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며 자신에게로 수비수를 유인한 뒤 뛰어난 패스 센스로 파트너에게 찬스 메이킹을 했으며 동료를 이용한 연계 플레이에도 능했던 시대를 앞서나간 완성형 공격수였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데뷔해 전기리그 2회 우승과 1996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끌며 뉴 라 마키나의 핵심으로 이름을 날린 크레스포는 당대 최고 수준의 무대인 세리에 A의 파르마로 이적해 1998-99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더블 우승을 이끌었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득점왕에 올랐고 후자의 대회에서는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에 올랐으며 라치오로 이적한 뒤에는 2000-01 시즌에 토티, 셰브첸코, 바티스투타 등을 제치고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라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이후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부진했지만 인테르 밀란에서는 세리에 A 3연패에 한 팔 힘을 보탰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득점왕에 오르며 은메달 획득에 공을 세웠던 크레스포는 성인 대표팀에서는 바티스투타라는 큰 벽 때문에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으나 바티스투타가 은퇴하고 2006 독일 월드컵과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전자의 대회에서는 실버슈를 수상하며 올스타 팀에 들었고 후자의 대회에서는 조국의 결승행을 이끌었다.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90위~81위

다음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70위~6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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