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50위~4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처진 공격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50위~41위

토르난테 2024. 3. 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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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50위 에릭 칸토나

 


생년월일: 1966년 5월 24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리그 초창기에 가장 위대했던 선수 중 한 명으로 폭력적인 성격으로 다소 물의를 빚긴 했지만 천재적인 축구 센스에서 나오는 교묘한 드리블과 우수한 슈팅 스킬을 앞세워 활약했다.

리그앙의 여러 클럽에서 활동했으나 팀 동료들과의 불화 문제로 잉글랜드로 떠난 칸토나는 리즈 유나이티드를 거쳐 퍼거슨 체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프리미어리그 4회 우승, FA컵 2회 우승을 이뤄내는 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팀으로 올라서는데 공헌했으나 대표팀의 활약은 위상에 비해 아쉬웠으며 UEFA 유로 1992에 참가한 게 전부였다.
 
칸토나 개인도 1987년 리그앙 올해의 루키에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프리미어리그 도움왕에 2회 선정되었으며 1993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에 올랐음은 물론 PFA 올해의 선수와 FWA 올해의 선수를 모두 석권했으며 ESM 올해의 팀과 PFA 올해의 팀에도 각각 1회 선정되었다.

 

 

49위 로베르트 베테가

 


생년월일: 1950년 12월 27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70년대 후반을 풍미한 백발 미남의 공격수로 우수한 피지컬을 활용한 헤더와 부드러운 유연성을 활용한 발리 슈팅은 물론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와 킬 패스로 골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축구 지능도 높아 윙 포워드나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도 맡을 수 있었다.

선수 생활 대부분을 유벤투스에서 보낸 베테가는 7회의 세리에 A 우승과 1976-77 UEFA 컵 우승, 그리고 1978-79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베테가 개인도 1977년과 1978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4위에 올랐으며 1979-80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다.

아주리에서도 주전 공격수로 맹활약했는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UEFA 유로 1980에서 4위라는 호성적을 이뤘다. 다만 부상으로 1982 스페인 월드컵에 불참해서 우승 기회를 놓친 건 아쉬운 부분이다.

 

 

48위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생년월일: 1963년 7월 22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1980년대 스페인 축구를 상징하던 공격수로 부드러운 볼 터치와 상대를 기만하는 드리블, 그리고 양발을 모두 잘 썼으며 슈팅 스킬도 우수했던 완벽한 공격수였다.

1980년대 스페인 무대를 호령한 라 퀸타 델 부이트레, 즉 독수리 오형제라 불리던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 주전 선수들의 우두머리라 불렸던 부트라게뇨는 멕시코산 득점기계 우고 산체스와 호흡을 맞추며 라리가 5연패를 포함해 총 6회 우승을 이뤄냈고 코파 델 레이와 UEFA컵에서도 각각 2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부트라게뇨 개인도 1990-91 시즌 라리가 득점왕에 올랐다.

독수리의 에이스 부트라게뇨는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했는데 UEFA 유로 1984에서 백업 멤버로 준우승을 경험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서독, 우루과이,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3전 전승으로 올라온 데니쉬 다이너마이트 덴마크를 상대로 네 골을 넣으며 5-1로 대승하는데 공헌하며 대회 실버슈를 수상함과 동시에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47위 호세 산필리포

 


생년월일: 1935년 5월 4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산 로렌소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 남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우수한 테크닉과 폭발적인 순간스피드를 활용해 상대 수비를 벗겨내는 교묘한 드리블을 보여줬으며 준수한 패싱력으로 찬스를 만드는 부분은 물론 우수한 슈팅 스킬로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줬다.

산 로렌소에서 10년 가까이 머물면서 266경기 246골을 기록한 구단 최고의 레전드 산필리포는 산 로렌조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산필리포 개인도 4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보카 주니어스에서는 1963년에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산투스의 펠레와 페냐롤의 스펜서를 제치고 득점왕에 올랐으나 팀은 결승전에서 산투스에 패해 준우승에 머무르기도 했지만 산필리포는 결승 1차전과 2차전에서 모두 득점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산필리포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195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시보리와 함께 조국의 우승을 견인했으며 1959년 하반기에 에콰도르에서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대회 준우승을 이끌며 득점왕에 올랐다.

 


46위 폴 반 힘스트

 


생년월일: 1943년 10월 2일
국적: 벨기에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안더레흐트 구단과 벨기에 역대 최고의 선수이자 1960년대 유럽 정상급 포워드로 창의적인 패싱력과 동료들을 활용한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보여줬으며 유려한 드리블과 우수한 슈팅 센스까지 겸비한 완성형 공격수로 하얀 펠레라 불렸다.

안더레흐트에서 선수 생활 대부분을 보낸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폴 방 힘스트는 최고의 파트너 제프 유리온과 함께 파트비스 군단의 주필러리가 8회 우승, 벨기에 컵 4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16개의 우승 트로피를 이뤄냈음은 물론 1969-70 시즌 인터시티 페어스 컵에서는 결승 진출을 이뤄냈고 반 힘스트 개인도 벨기에 골든슈 4회, 벨기에 주필러리가 득점왕 3회 수상했으며 1966-67 시즌 유러피언 컵 득점왕과 1969-70 시즌 이너시티 페어스 컵 득점왕을 수상했다.

벨기에 대표팀 소속으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엿던 폴 반 힘스트는 크루이프가 이끄는 네덜란드를 유럽 지역예선에서 꺾고 1970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고 1972 UEFA 유로 3위를 이뤄냈다. 반 힘스트는 당시 유럽에서 변방으로 취급받은 벨기에 무대에서 활약했음에도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6회에 선정되어 1965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4위에 올랐다.



45위 군나르 그렌

 


생년월일: 1920년 10월 31일
국적: 스웨덴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AC 밀란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세계 정상급 수준을 유지하며 롱런한 인사이드 포워드로 영리한 공간 활용 능력과 동료 활용 능력은 물론 우수한 판단력으로 최적의 위치로 패스를 찔러줬으며 득점력도 훌륭했으며 특히 높은 축구 지능으로 유명해 교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36-37 시즌 가르다 BK에서 데뷔해 예테보리로 이적하며 1941-42 시즌 스웨덴 알스베스칸 우승을 이뤄낸 군나르 그렌은 1946-47 시즌에는 군나르 노르달을 제치고 정규리그 득점왕에 오른 그렌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군나르 노르달, 닐스 리드홀름과 함께 그레노리 트리오를 구축해 대한민국을 12-0으로 대파했고 덴마크와 유고슬라비아마저 연파해 1948 런던 올림픽 축구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런던 올림픽이 끝나고 세리에 A의 AC 밀란으로 노르달, 리드홀름과 함께 이적해 활약했는데 1950-51 시즌 세리에 A 우승 및 라틴컵 우승을 이뤄냈고 피오렌티나와 제노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프로선수였기에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의 규정에 의해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으나 1958 스웨덴 월드컵을 앞두고 리드홀름, 스코그룬트 등 해외파들과 함께 대표팀에 복귀해 스웨덴의 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44위 킬리안 음바페

 


생년월일: 1998년 12월 20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메시와 호날두 이후 세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선수로 평가받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최고속력이 38km/h나 될 정도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단순히 치고 달려도 수비수들을 제칠 수 있으며 우수한 골 결정력과 찬스 메이킹 능력을 겸비했다.

모나코에서 리그앙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을 이뤄내며 주목받은 음바페는 1억 8000만 유로라는 거액의 이적료로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해 리그앙 5회 우승과 쿠프 드 프랑스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음바페 개인도 리그앙 올해의 팀 6회 선정 및 리그앙 득점왕 5회 수상, 그리고 리그앙 올해의 선수에도 4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유럽 무대에서도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의 스쿼드에 4회 선정되었다.

레 블뢰에서의 활약은 더 대단했던 음바페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팀을 우승시키며 신인상을 타냈고 2020-21 UEFA 네이션스 리그에서도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결승행을 이끌었는데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기에 득점왕 및 실버볼을 수상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월드컵 통산 12골을 기록했다.

 

심지어 음바페는 아직 만 25세의 젊은 선수이기에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선수인데 더 두꺼운 누적을 쌓거나 새로운 고점을 경신하면 순위가 대폭 올라갈 수 있는 선수다.



43위 웨인 루니

 


생년월일: 1985년 10월 24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1세기를 빛낸 잉글랜드의 천재로 절구통 드리블이라 불리는 막강한 전진 드리블로 상대 수비라인을 파괴했으며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슈팅 능력과 부드러운 볼 터치는 물론 2선으로 내려와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하며 팀 공격을 주도하는 영리한 부분도 보여줬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의 대부분을 보내며 구단 최다 득점자로 등극한 루니는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5회 우승과 리그컵 3회 우승,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3번 진출해서 2007-08 시즌에는 우승을 이루는데 큰 공을 세우는 등 수많은 트로피를 수집했음은 물론 루니 개인도 PFA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고 올해의 영 플레이어에도 2회 선정되었으며 2006-07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도움왕에 올랐고 2009-10 시즌에는 PFA와 FWA, 그리고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에서 모두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한때는 A매치 통산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지만 정작 유로 2004를 제외하면 본선 무대에서는 부진한 부분은 아쉬웠으나 유로 2004에서는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 선정되었다. 국가대항전 본선에서는 다소 부진했어도 클럽에서의 위업으로 루니는 세계 정상급 선수로 평가받으며 발롱도르 유효표를 6회 받아 2011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5위에 올랐던 루니는 2022년에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2위 노르베르트 멘데스

 


생년월일: 1923년 1월 5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67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1940년대 아르헨티나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인사이드 포워드 중 하나로 평가받았으며 인사이드 포워드 위치에서 뛰었지만 당대 최전방 공격수들보다 득점력이 뛰어났다.

우라칸은 여자친구고 라싱은 아내이며 아르헨티나 국대는 자신의 열정이라고 밝혔던 멘데스는 여자친구라 칭한 우라칸에서는 여러 컵대회에서 3회 우승했으며 아내라 칭한 라싱 클루브에서는 프리메라 디비시온 3연패를 이뤄냈다.

자신의 열정이라고 밝힌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45년부터 1947년까지 코파 아메리카 세 번의 대화의 연속으로 출전해 모두 우승을 이루는 맹활약을 보여준 멘데스는 1945년 대회에서는 6골도 득점왕을, 나머지 대회에서는 각각 5골과 6골로 득점 2위를 이뤄냈을 정도로 퍼포먼스가 대단했는데 코파 아메리카에서만 17골을 기록하며 대회 역사상 통산 최다 득점자의 자리에 올라있다.

 

 

41위 리날도 마르티노

 


생년월일: 1921년 11월 6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산 로렌소

1940년대 아르헨티나를 빛낸 인사이드 포워드로 우수한 득점력은 물론 교묘하면서 테크니컬한 드리블과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 능력도 겸비한 만능 공격수이며 특히 아름다운 오른발 킥력으로 벨벳 다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산 로렌소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마르티노는 데뷔 2년차인 1942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25골을 득점해 호세 마누엘 모레노, 아르세니오 에리코와 같은 쟁쟁한 선수들을 따돌리고 리그 득점왕을 수상했고 1946년에는 리버 플레이트, 보카 주니어스와 같은 강호들을 제치고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뤄냈다. 이후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에서는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고 클루브 나시오날에서도 강력한 라이벌 페냐롤을 꺾고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마르티노는 1945년과 1946년에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 모두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웠는데 특히 1945년 대회 우루과이전에서 대회 역사상 최고로 꼽힐 만한 골을 넣었는데 세 명의 선수를 제치고 골키퍼 마스폴리까지 속여서 필드에 주저앉히고 득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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