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90위~8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처진 공격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90위~81위

토르난테 2024. 3. 1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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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90위 레이 카터

 


생년월일: 1913년 12월 21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67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선덜랜드

1930년대부터 50년대에 걸쳐 활약한 인사이드 포워드로 체격은 작았지만 탄탄한 기본기와 상대의 허를 찌르는 플레이에 능했으며 특유의 리더십과 큰 목소리로 공격 진영의 선수들을 아울렀는데 팀원들에게 큰 소리로 짧지만 명확한 지시를 내리며 선수들이 귀를 열고 플레이하기를 원했다.

선덜랜드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1935-36 시즌 풋볼 리그 우승과 1936-37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내며 아스날의 독주 체제에 제동을 걸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는 군대에 복무했다가 전쟁이 끝나자 더비 카운티에 입단해 활약하며 1945-46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카터는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도 매튜스, 피니, 매니언 등과 함께 삼사자 군단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89위 스탠 모텐슨

 


생년월일: 1921년 5월 26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블랙풀

제2차 세계대 전 직후에 잉글랜드 무대에서 활약한 인사이드 포워드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슈팅 기술, 그리고 효율적인 원터치 플레이 능력을 겸비했으며 2선에서 빠르게 상대 수비의 배후로 침투해 득점 찬스를 잡는데 능했다.

블랙풀에서 매튜스와 함께 공격을 이끈 모텐슨은 1950-51 시즌 풋볼 리그 득점왕에 올랐으며 FA컵에서 두 번의 준우승을 이뤄냈다가 팀의 세 번째 결승전인 1952-53 시즌에 결승전에서 볼턴 원더러스를 4-3으로 꺾고 우승하는 과정에서 모텐슨은 해트트릭을 기록해 혁혁한 공을 새웠고 사후에는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에 선정되었다.

레이 카터의 뒤를 이어 40년대 하반기와 50년대 초반까지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전 멤버로 활약했던 모텐슨은 1950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이변의 희생양이 되며 미국과 스페인에게 패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40년대 후반의 그의 우수한 퍼포먼스를 기려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88위 레나토 체사리니

 


생년월일: 1906년 4월 11일
국적: 아르헨티나 →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30년대 상반기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했던 아르헨티나 태생의 인사이드 포워드로 유려한 볼 컨트롤에서 나오는 드리블과 대지를 가르는 롱 패스로 공격 활로를 여는데 능했다.

초년에는 아르헨티나의 차카리타 주니어스에서 활약했던 체사리니는 1929년 유벤투스로 이적해 비안코네리 군단의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냈으며 미트로파 컵에서도 득점왕에 올랐다. 이후 유럽에 전운이 돌자 친정팀 차카리타 주니어스로 돌아갔다가 리버 플레이트에서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기회를 거의 받지 못했고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월드컵에 참가하진 못했지만 두 차례의 중유럽컵에 참가해서 1933-35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87위 헤닝 옌센

 


생년월일: 1949년 8월 17일
국적: 덴마크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70년대 북유럽 정상급의 처진 공격수로 우수한 테크닉과 영리한 축구 지능으로 처진 공격수 위치에서 활약하며 플레이메이커로서 공격라인을 지휘하는 능력도 대단해 펄스 나인 역할을 맡아 하인케스, 시몬센과 함께 스위칭 플레이를 하며 상대 수비진을 폭격했으며 화려한 중거리 슈팅과 우수한 헤더로 상대의 골망을 가르는 부분에도 능했다.

자국리그에서 활약하다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전성기를 누린 옌센은 분데스리가 2연패와 1972-73 시즌 포칼 우승과 1974-75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에 크게 기여한 옌센은 개인으로도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네 번 받았으며 1975-76 시즌 전반기 평가에서는 월드클래스 등급에 올랐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분데스리가 무대를 평정한 옌센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라리가 2연패를 이뤄냈고 1979-80 시즌에는 에레데비시 우승을 이뤄냈다. 비록 덴마크 대표팀으로 이뤄낸 성과는 미미하지만 옌센 개인의 활약은 높게 평가받아 덴마크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86위 클라우스 알로프스

 


생년월일: 1956년 12월 5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FC 쾰른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롱런한 다재다능한 공격 자원으로 우수한 드리블과 경이로운 슈팅 스킬을 앞세워 활약했으며 본 포지션인 처진 공격수는 물론이고 양 측면과 최전방도 효과적으로 소화할 수 있었던 다재다능한 자원이다.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포칼 2연패와 1978-79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결승 진출을 이뤄낸 알로프스는 쾰른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포칼 우승과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마르세유에서는 리그앙 우승을 이뤄냈고 말년에는 베르더 브레멘에서 활약해 1990-91 시즌 DFB 포칼 우승, 1991-92 시즌 UEFA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92-93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다.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분데스리가 득점왕 2회 수상을 이뤄냈고 1985-86 시즌에는 UEFA컵 득점왕도 수상한 알로프스는 디 만샤프트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UEFA 유로 1980 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팀의 결승행에 공헌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85위 호비뉴

 


생년월일: 1984년 1월 25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FC 산투스

2000년대 중반에 명성을 떨쳤던 악마의 재능으로 엄청난 센스와 화려한 개인기는 물론 상대 수비수 두세 명은 따돌릴 수 있는 드리블로 이름을 날렸지만 불성실하고 게을러 자기 관리에 소홀해 자신의 잠재력을 완벽하게 만개시키지 못했다.

산투스에서 어린 나이부터 두각을 나타내던 호비뉴는 브라질 세리 A 2회 우승을 이뤄냈고 2004년에는 브라질 전국리그 MVP를 수상하며 제2의 펠레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갈락티코 1기로 명성이 높았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라리가 2회 우승을 이뤄냈고 만수르 체제의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해 처음에는 군계일학의 모습을 보여줬으나 결국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며  AC 밀란으로 이적해 2010-1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끌었다가 다시 산투스로 돌아가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2회 우승을 이뤄냈다.

셀레상에서도 어린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던 호비뉴는 2003 북중미 골드컵에서 데뷔해 2005 컨페드컵 우승을 백업 멤버로 경험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도 발탁되었으나 호나우두, 아드리아누, 호나우지뉴, 카카, 주니뉴라는 쟁쟁한 선배들에 밀려 벤치를 지켰다. 그러나 2007년부터 주전으로 도약해 2007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MVP를 수상했고 주전으로 2009 컨페드컵 우승과 2010 남아공 월드컵 8강을 이끌었다. 그리고 2015 코차 아메리카에도 참가하며 A매치 100경기를 채워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는 영예를 누렸다.



84위 뮬레르

 


생년월일: 1966년 1월 31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상 파울루 FC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 상반기에 전성기를 누린 처진 공격수로 엄청난 스피드와 우수한 전진드리블 실력으로 역습 상황에서 많은 득점을 만들어냈으며 팀이 공격을 주도하는 상황에서도 동료들과의 우수한 패스워크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소화했다.

상 파울루에서 데뷔해 활약하며 1987년에는 전국 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활약을 펼쳤던 뮬레르는 유럽 무대 도전을 위해 토리노로 이적했다가 다시 텔레 산타나 체제의 상 파울루로 돌아와 활약하며 상파울루에서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4회 우승과 브라질 세리 A 2회 우승은 물론 1992년과 1993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와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뤄내는 과정에서  바르셀로나와 밀란을 각각 꺾었는데 특히 1993년에 밀란을 제압했을 때 말디니와 바레시, 코스타쿠르타를 상대로 결승골을 집어넣는 활약을 보여줬으며 크루제이루에서도 1998년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우승을 이끌었다.

셀레상에서도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데뷔해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주전으로 참가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83위 에른스트 빌리모프스키

 


생년월일: 1916년 6월 23일
국적: 폴란드 → 독일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루흐 호주프

폴란드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클래스 축구선수로 당대 최고 수준의 드리블과 볼 컨트롤 및 효율적인 원터치 플레이로 명성이 높았고 오른발 슈팅이 더 강력했지만 왼발로 더 많은 득점을 이뤄낸 독특한 이력을 가진 선수였다.

루흐 호주프에서 폴란드 리그 5회 우승 및 득점왕 3회 수상이라는 업적을 이뤄낸 빌리모프스키는 폴란드 대표팀에서도 1938 프랑스 월드컵에 인사이드 라이트 포지션으로 참가했는데 1라운드에서 레오디나스가 이끄는 브라질을 상대로 4골을 뽑아내며 분전했으나 상대도 레오디나스의 해트트릭을 포함해 총 6골을 득점했기에 6-5로 분전 끝에 아쉽게 패한 경기가 유명했다. 폴란드가 나치 독일에게 점거당한 뒤에는 1860 뮌헨 소속으로 1941-42 시즌 참메르포칼 우승 및 1942-43 시즌 가우리가 바이에른 남부 지구 우승을 이뤄냈고 특히 참메르포칼 우승 과정에서는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났으면 폴란드의 축구 영웅으로 남을 수 있었으나 하필 그가 활약하던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이었으며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병합하자 그는 독일 대표팀으로 뛰게 되었고 이때의 행적이 그의 발목을 잡아 2차 대전이 끝난 후 폴란드 공산정권에 의해 독일 부역자로 몰리며 고향을 등져야 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 당시 본선 진출에 성공한 폴란드 대표팀 숙소를 격려 차 방문하려 했지만 폴란드 선수단 관계자에게 갖은 욕을 먹는 수모를 당하고 문전박대당한 비운의 선수였다.



82위 욘 한센

 


생년월일: 1924년 6월 24일
국적: 덴마크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40년대 덴마크 축구를 이끌었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돋보이지 않았지만 기습적인 1선 침투 이후 테크니컬한 슈팅으로 득점하는데 능했고 특히 헤더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943-44 시즌 덴마크의 볼드클루벤 프렘에서 데뷔해 데비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을 이끈 욘 한센은 칼 아게 프라에스트, 칼 아게 한센과 함께 데니시 삼총사를 구성해 스웨덴의 그레노리 삼총사와 라이벌을 이뤘으며 1948 런던 올림픽에서도 8강 이탈리아전에서 포트트릭을 기록하며 5-3 대승을 이끌며 4강에 올랐고 비록 스웨덴에겐 패했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영국 연합을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하며 5-3 대승을 이끌며 욘 한센 개인은 군나르 노르달과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이후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유벤투스에서 칼 아게 프라에스트, 칼 아게 한센과 재회하며 밀란이 앞세운 그레노리 삼총사와 치열한 라이벌리를 보이며 세리에 A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51-52 시즌에는 세리에 A 우승은 물론 한센 개인도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다.

 

 

81위 파스 빌케스

 


생년월일: 1923년 10월 13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50년대 유럽 정상급 인사이드 라이트로 상대 수비를 기만하는 화려한 바디페인팅과 정밀도 높은 슈팅 능력을 겸비했으며 주 포지션인 인사이드 라이트 외에도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출전해서도 좋은 기량을 선보였다.

네덜란드 리그가 아마추어 리그였던 시절이라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전성기를 보낸 빌케스는 1949년부터 1952년까지 인테르에 머물며 팀을 상위권에 올렸고 스페인의 발렌시아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1954년 스페인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되었다.

네덜란드 대표팀의 암흑기라 큰 활약은 하지 못했지만 1959년부터 베르캄프가 경신하기 전인 1998년까지 네덜란드 대표팀 A매치 통산 최다 득점자의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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