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50위~4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레프트윙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50위~41위

토르난테 2024. 3. 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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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50위 로베르 피레스

 


생년월일: 1973년 10월 29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달타냥이라 불렸던 측면 플레이메이커 롤을 발전시킨 프랑스 출신의 레프트윙으로 측면에 주로 머무는 기존의 윙어들과는 다르게 중앙으로 들어와 템포를 조절하고 날카로운 쓰루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거나 컷인 플레이 이후 직접 슈팅에도 능했던 레프트윙이었다.

메츠에서 데뷔해 1995-96 시즌 리그컵 우승을 이끌며 주목받았으며 이후 마르세유를 거쳐 아스날로 이적해 2001-02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FA컵 우승을 이뤄내며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고 이후에도 2003-04 시즌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을 이뤄냈으며 두 번의 FA컵 우승을 추가했고 2005-06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으나 골키퍼 레만의 퇴장의 악재 속에 교체 아웃되며 팀의 패배를 막지 못해 준우승에 머물렀고 이후 비야레알로 이적해 2007-08 시즌에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리그 준우승을 이뤄내는 기염을 토했다.

피레스는 아스날에 머무는 동안 PFA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으며 2001-02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도움왕과 FWA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는데 레 블뢰에서는 백업 멤버로 1998 프랑스 월드컵과 UEFA 유로 2000 우승을 경험했고 2001 컨페드컵과 2003 컨페드컵에서는 우승을 차지했으나 도메네크 감독 부임 이후 별자리가 좋지 않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들며 그를 소집하지 않았다.



49위 장 뱅상

 


생년월일: 1930년 11월 29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스타드 드 랭스

1950년대 하반기와 1960년대 상반기 유럽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 중 한 명으로 우수한 드리블 돌파와 볼 컨트롤, 그리고 우수한 득점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릴에서 1953-54 시즌 프랑스 리그 우승을 이뤄낸 장 뱅상은 당대 프랑스 최강의 팀이자 유럽 최강의 팀 중 하나였던 스타드 드 랭스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렸으며 랭스에서 레이몽 코파, 쥐스트 퐁펜, 로저 피앙토니 등과 함께 프랑스 리그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결승 2회 진출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랭스에서 함께 했던 동료들과 레 블뢰에서도 전성기를 누렸는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3위, 1960 초대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4위라는 호성적을 이루며 명성을 떨쳤다.

 

 

48위 이반 콜레프

 


생년월일: 1930년 11월 1일
국적: 불가리아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불가리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이전 불가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추앙받았던 선수로 아웃사이드 레프트와 인사이드 레프트에서 활약했으며 측면에서 중앙으로 침투해 득점을 노리는 컷인 플레이는 물론이고 측면에서 중앙으로 크로스나 패스를 지원해 스트라이커에게 득점 찬스를 만드는 역할에도 능했다고 전해진다.

소속팀에서는 CSKA 소피아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낸 콜레프는 소속팀의 불가리아 리그 11회 우승과 불가리아 컵 5회 우승을 이뤄내며 CSKA 왕조를 세웠고 콜레프 개인도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4회 선정되어 1956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9위에 올랐다.

1962년 불가리아 올해의 선수에 선정된 이반 콜레프는 불가리아 대표팀에서도 16년간 활약하며 사자군단의 1956 멜버른 동메달을 이뤄냈으며 유럽에서 약체로 분류되던 대표팀을 데리고 1962 칠레 월드컵과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본선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47위 미하엘 메스히

 


생년월일: 1937년 1월 12일
국적: 조지아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디나모 트빌리시

소련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이자 조지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왼쪽 측면에서 화려한 개인기와 스피디한 드리블을 통해 상대 수비수의 맨 마킹을 돌파해 소련의 가린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소련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UEFA 유로 1960 우승을 이끌었으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고 소속팀 디나모 트빌리시에서도 1964 시즌 소련 탑 리그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메스히 개인도 소련 탑 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되었고 1961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17위에 올랐다.

그가 세운 위대한 업적은 소련의 분리로 조지아의 독립이 이뤄졌을 때도 인정받았는데 1998년 조지아 축구협회는 메스히를 자국 역대 최고의 선수로 선정했으며 디나모 트빌리시도 2005년에 자신의 홈구장을 미하일 메스히 스타디움으로 이름을 바꾸고 경기장에 미하일 메스히 동상을 세웠다.

 


46위 로베르트 가도하

 


생년월일: 1946년 1월 10일
국적: 폴란드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레기아 바르샤바

1970년대 정상급 레프트윙으로 당대 최고의 크로서로 이름을 날렸으며 사람들은 그를 두고 십자가형, 또는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내린 인물인 본디오 빌라도라고 불렸다.

레기아 바르샤바에서 전성기를 보낸 가도하는 폴란드 리그 2연패 및 1972-73 시즌 폴란드 컵을 우승했으며 전성기가 지난 뒤 이적한 낭트에서는 1976-77 시즌에 프랑스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가도하의 진가는 대표팀에서 빛났는데 1972 뮌헨 올림픽 금메달과 1974 서독 월드컵 3위라는 호성적을 이뤄냈는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대회 도움왕 및 에스타디오와 월드 사커 선정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74년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8위에 올랐다.

 

 

45위 아구스틴 가인사

 


생년월일: 1922년 5월 28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아틀레틱 빌바오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 헨토와 함께 라이벌리를 구축하며 1950년대 라 리가를 수놓은 레프트윙으로 정교하면서도 창의적인 드리블과 대포알과 같으면서도 정확한 왼발 킥력으로 바스크의 자존심을 지켰다.

클럽 커리어의 전부를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보낸 원 클럽맨인 가인사는 최전방 공격수 텔모 사라와 함께 로스 레오네스 군단의 공격을 이끌며  라리가 2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7회 우승을 이뤄냈고 라리가 우승을 이뤄낸 1942-43 시즌과 1955-56 시즌은 모두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으며 오늘날의 수페르코파 에스파냐와 같았던 코파 에바 두아르테에서 라리가 우승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두 경기 총합 7-5로 승리하며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웠다.

라리가의 수많은 레전드들을 제치고 코파 델 레이 개인 통산 최다 우승자의 자리에 오른 가인사는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밀어내고 결승 리그 진출에 성공하며 스페인의 20세기 월드컵 최고의 성적을 냈다.



44위 코인 물레인

 


생년월일: 1937년 2월 15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페예노르트

1960년대 정상급 레프트 윙포워드로 전광석화 같은 순간 스피드와 민첩한 움직임과 교묘한 트릭을 활용해 수비수의 맨 마팅을 쉽게 벗겨내는 것은 물론 반 박자 빠르면서도 칼같이 정확하게 들어가는 왼발 크로스를 자랑해 네덜란드의 가린샤라고 불렸다.

페예노르트에서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며 에레데비시 5회 우승과 KNVB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럽 무대에서도 1969-70 시즌에 셀틱을 결승전에서 이기고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며 페예노르트를 네덜란드 최초로 빅이어를 들어낸 팀으로 만들었다.

비록 대표팀에서 성과는 좋은편이 아니지만 페예노르트 팬들 사이에서는 구단 역대 최고의 레전드로 손꼽히며 페예노르트 구단은 홈구장인 더 카워프 앞에 그의 동상을 세워놓으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43위 마크 오베르마스

 


생년월일: 1973년 3월 29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피드 스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테제베, 플라잉 더치맨으로 불렸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는 물론 양발을 모두 잘 써 크로스 플레이와 중앙으로 침투해 슛을 날리는 컷인 플레이에 모두 능해 상대 수비수들을 곤란하게 했다.

아약스에서는 에레데비시 3연패 및 1994-95 시즌 챔피언스리그와 에레데비시를 더블 무패 우승을 이뤄낸 오베르마스는 아스날에서는 1997-98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FA컵 더블을 이끌며 전성기를 누렸던 오베르마스는 4000만 달러의 이적료로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지만 부상으로 큰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주전급 멤버로 활약하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 팀의 8강행을 이끌며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오랑예 군단에서도 1998 프랑스 월드컵과 UEFA 유로 2000에서 준결승에 진출하는데 적잖은 공헌을 했다.

 

 

42위 오스카르 마스

 


생년월일: 1946년 10월 29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67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체구는 작았지만 굉장히 빠른 스피드와 기술적인 드리블을 겸비해 상대 수비수를 농락해 원숭이라고 불렸으며 오른발은 거의 쓰지 못했지만 왼발 킥력이 대단해 15시즌 연속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에서 전성기를 보낸 마스는 1975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제패했으며 개인적으로도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시비온 득점왕 2회와 1970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에 올랐으며 레알 마드리드에 잠시 머물렀을 때에는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마스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처진 공격수를 맡아 8강 진출에 공헌했으며 196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41위 존 반스

 


생년월일: 1963년 11월 7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잉글랜드 축구계를 풍미한 레프트윙으로 전광석화와 같은 드리블 돌파와 적재적소의 컷인 플레이와 우수한 슈팅 스킬을 겸비했으며 우수한 몸싸움 능력과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는 물론 전술안마저 우수해 날카로운 패싱력까지 겸비한 완성형 윙포워드이자 플레이메이커였다.

왓포드와 리버풀에서 전성기를 보낸 존 반스는 특히 리버풀에서 풋볼 리그와 FA컵을 각각 2회 우승했으며 1994-95 시즌에는 리그컵 우승을 이뤄냈다. 반스 개인도 PFA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으며 FWA 올해의 선수에 2회 선정되었고 1987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6위에 올랐다. 그리고 은퇴한 이후에는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에 선정된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중용되었던 존 반스는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서브 멤버로 활약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뛰어난 플레이로 팀의 준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우며 은퇴 이후인 2005년에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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