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30위~2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공격형 미드필더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30위~21위

토르난테 2024. 2. 1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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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30위 게오르게 하지

 


생년월일: 1965년 2월 5일
국적: 루마니아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SK 갈라타사라이

발칸의 마라도나로 불렸던 1990년대 루마니아 최고의 선수이자 유럽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이고 교묘한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를 교란해서 찬스를 만드는 능력은 물론 왼발 중거리 슈팅 능력도 겸비해 세 번이나 대회 득점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득점력도 우수했다.

하지는 스포르툴 스투덴체스크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득점왕을 두 번이나 기록했고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로 이적해서는 팀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아 3년간 리그 무패 우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는 모두 실패했으며 이후 갈라타사라이로 와서는 팀의 터키 슈퍼리그 4연패와 1999-2000 시즌 UEFA컵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루마니아 대표팀에서도 1990년대 루마니아의 전성기를 이뤄냈는데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6강을 시작으로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8강행을 이끌어 발롱도르 투표에서 4위에 올랐다. 그리고 1998 프랑스 월드컵 16강으로 3회 연속 조별 리그 통과를 이뤄냈으며 UEFA 유로 2000에서도 독일, 포르투갈, 잉글랜드와 한 조가 되며 조 최하위로 탈락할 것이라는 세간의 이미지를 비웃듯이 독일과 잉글랜드를 밀어내고 8강 진출에 성공했다.



29위 카지미에슈 데이나

 


생년월일: 1947년 10월 23일
국적: 폴란드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레기아 바르샤바

폴란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선수로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킥력에서 나오는 정교한 롱패스로 골 찬스를 만드는 능력과 과감한 1선 침투에 이은 득점에 능했으며 리더십도 뛰어나 팀원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다.

레기아 바르샤바에서 활약하며 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폴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2회 수상한 데이나는 1970년대 폴란드 대표팀의 황금기의 시작을 알리며 1972 뮌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3위라는 호성적을 냈으며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도 은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라 페세나 선정 아르헨티나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특히 1974 서독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데이나는 발롱도르 10위 안에 3회 선정되었는데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반영된 1974년에는 발롱도르 3위에 올랐으며 1994년에는 폴란드 축구 협회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폴란드 축구 선수로 선정되었고 2019년에는 폴란드 축구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 폴란드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8위 안토니오 사스트레

 


생년월일: 1911년 4월 27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30년대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드리블과 패스에 능하며 이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으로 후대의 많은 아르헨티나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전해지며 하프백에서도 활약할 수 있었다.

사스트레는 자국 리그의 인데펜디엔테와 브라질 리그인 상파울루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전자의 클럽에서는 아르네시오 에리코, 비센테 데 라 마타와 함께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2연패는 물론 코파 이바라구렌, 코파 알다오에서 2연패라는 성과를 냈으며 상파울루에서는 캄파오네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던 사스트레는 라 알비셀레스테가 참가한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모두 주전으로 나와서 2회 우승과 1회 준우승을 이뤄내며 1930년대 하반기와 4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27위 소크차리스

 


생년월일: 1954년 2월 19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코린치안스

1980년대 브라질을 호령하던 축구선수이자 민주화 운동가이며 동시에 훌륭한 의사였던 소크라치스는 지쿠, 마라도나, 보치니와 함께 당대 남미를 수놓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는데 농구선수를 했어도 잘했을 거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드리블이 훌륭했으며 뒤에도 눈이 달려있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드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을 겸비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보여줬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써 뛰어난 슈팅력을 보여줬음은 물론 의사 면허를 땄을 정도로 지적이며 냉정한 성격이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코린치안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캄파오네투 파울리스타에서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0년에는 브라질 세리 A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83년에는 공식 경기 52경기에 출전해 무려 36골을 득점하며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타내는 우수한 활약을 보여줬으며 피오렌티나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지만 향수병으로 인해 브라질 무대로 복귀하며 플라멩구로 이적해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1회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으며 브라질 무대에 머무는 동안 1983년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3회 선정되었다.

셀레상에서는 1982 스페인 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 전국 리그에서는 라이벌리를 형성한 지쿠, 파우캉, 세레주와 함께 황금의 사중주를 구성하며 주장으로 이들을 이끌며 1970 브라질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정작 대회 2차 리그에서 탈락했으며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준우승에 그쳤으며 이후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승부차기 끝에 8강에서 탈락하는 등 결과적으로는 좋지 못했지만 팬들에게 우수한 퍼포먼스 자체는 인정을 받았다.

 


26위 카카

 


생년월일: 1982년 4월 22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AC 밀란

2000년대 하반기 브라질을 대표했던 트레콰르티스타이자 축구 선수로 화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창의적인 킬패스는 물론 일명 치고 달리기를 활용해 역습 상황에서 상대 수비 라인을 순식간에 붕괴시키고 1선으로 침투해 득점하는 데 굉장히 능했으며 그의 스피드가 어찌나 빨랐던지 인테르의 전설적인 수비수 왈테르 사무엘은 카카의 연속적인 방향 전환을 따라가려다가 무릎이 돌아가버려 시즌 아웃을 당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낸 카카는 상 파울루에서 영입된 이후 후이 코스타와 히바우두 같은 거물들과의 주전 경쟁을 이기고 로쏘네리의 트레콰르티스타이자 에이스로 활약하며 2003-04 시즌에는 10골을 득점하며 세리에 A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6-07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에서만 10골 3도움을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개인적으로도 득점왕과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을 석권했으며 2007-08 시즌과 2008-09 시즌에는 연속으로 리그 15골을 돌파했으며 거액의 이적료를 안겨주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부상 등으로 아쉬운 활약을 보여줬다.

특히 밀란에 머무는 동안 카카의 개인상 이력은 굉장히 화려한데 2004-05 시즌 UEFA 클럽 올해의 미드필더, 2006-07 시즌 UEFA 클럽 올해의 공격수와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UEFA 올해의 팀 3회 선정,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3회 선정과 올해의 선수 2회 선정은 물론 발롱도르 상위 11등 안에 네 번 들어 2007년에는 1위를 차지해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그 해에 피파 올해의 선수상과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선수상은 물론 옹즈도르까지 수상하며 부정할 수 없는 2007년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다.

셀레상에서는 한일 월드컵에서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한 것을 시작으로 2005 컨페드컵 우승과 2009 컨페드컵 우승을 경험했으나 2006 독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연달아 8강에서 탈락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5위 닐스 리드홀름

 


생년월일: 1922년 10월 8일
국적: 스웨덴
신체조건: 키 185cm
주 소속팀: AC 밀란

195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창의적이면서도 우수한 축구 지능과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을 겸비했으며 정교한 패싱력과 넓은 시야를 지녔으며 2년간 패스미스를 하지 않다가 2년 만에 패스미스를 하자 관중들이 박수를 쳤다는 일화도 있다.

자국 리그의 IFK 노르셰핑에서 알스베스칸 2연패를 이뤄낸 리드홀름은 바이킹 군단의 일원으로 1948 런던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으나 이후 프로리그인 세리에 A의 AC 밀란으로 이적하면서 아마추어 선수만 대표팀에 뽑는다는 스웨덴 축구 협회의 방침으로 오랫동안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다가 1958 스웨덴 월드컵을 앞두고 이 룰이 해제되자 다시 복귀해 조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조국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AC 밀란에서 활약하던 시절에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라틴 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7-58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리드홀름 개인도 1958년에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를 차지했음은 물론 본 포지션이 아닌 라이트 하프 자리에서도 1958-59 시즌 코리에레 델로 스포르트의 세리에 A 랭킹에서 라이트 하프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은퇴한 뒤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과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되었다.



24위 케빈 더 브라위너

 


생년월일: 1991년 6월 28일
국적: 벨기에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2010년대 하반기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두뇌에서 나오는 뛰어난 패싱력과 왕성한 활동량, 탄탄한 기본기와 양발 사용 능력을 겸비했으며 2021-22 시즌에는 통산 19골을 기록했을 정도로 우수한 득점력마저 장착했다.

현세대 맨체스터 시티를 대표하는 아이콘인 더 브라위너는 블루문 군단의 전성기를 이끌며 프리미어리그와 리그컵 각각 5회 우승,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2018-19 시즌에는 도메스틱 트레블을 이뤄냈고 2022-23 시즌은 리그와 FA컵 우승에 이어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더 브라위너 개인도 2022-23 시즌 프리미어리그, FA컵,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도움왕을 수상한 더 브라위너는 ESM 올해의 팀 5회 선정,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 6회 선정 및 PFA 올해의 선수와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에 각각 2회 선정되었으며 2021-22 시즌에는 발롱도르 3위 및 UEFA 올해의 선수 2위에 올랐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는 기대 이하라고 저평가받기도 하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과 유로 2016에서 8강이라는 성적표를 이뤄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소속팀에서는 뛰어본 적 없는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뛰며 기대만큼은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앞세워 팀의 준결승행에 기여했다.



23위 테오필로 쿠비야스

 


생년월일: 1949년 3월 8일
국적: 페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알리안사 리마

태양신이라 불리던 페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1970년대 세계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탄탄한 기본기는 물론 우수한 동료 활용 능력과 창의적이면서 정확한 패싱 플레이를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했으며 프로 통산 300골을 넘겼을 정도로 우수한 득점력을 가지고 있다.

알리안사 리마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쿠비야스는 알리안사 리마에서 리그 2회 우과 1972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 및 득점왕에 올랐으며 유럽으로 건너간 이후에는 포르투에서 1976-77 시즌에 타사 데 포르투갈을 우승하기도 했다.

특히 페루 대표팀에서 그의 업적은 더 빛났는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페루 대표팀의 에이스로 팀의 8강 진출을 이끌어내며 신인상을 탔으며 8강에서도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4-2로 꽤 잘 싸웠으며 득점도 했고 1975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고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팀을 2차 리그로 이끄는 활약을 보였다.



22위 발렌티노 마촐라

 

 

생년월일: 1919년 1월 26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선수로 우수한 시야와 탄탄한 기본기를 앞세워 경기를 조립하고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하는 역할을 해 팀 동료 마리오 리가몬티로부터 "마촐라는 팀의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남은 우리 10명에 의해 이루어진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경기 영향력이 컸으며 득점력도 우수했다.

1940년대 유럽 최강의 팀이라 불렸던 엘 그란데 토리노의 전성시대를 이끈 마촐라는 엘 토로의 세리에 A 5연패와 1942-43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마촐라 개인도 1942-43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과 1946-47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을 수상하며 당대 유럽 축구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으나 1949년, 벤피카와의 친선 경기 이후 리스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수페르가 비행기 참사로 인해 숨을 거뒀고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토리노의 전설적인 신화는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아주리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했지만 수페르가의 비극이라는 비행기 사고로 팀원 전원이 사망하며 이탈리아 축구는 큰 타격을 입었고 발렌티노 마촐라의 신화는 비극적으로 마감했다. 그럼에도 실력은 사후에도 회자되어 푸스카스 페렌츠가 그의 아들 산드로 마촐라와 유러피언 컵 결승을 치른 이후에 "난 네 아버지와 경기를 했었지. 너도 그 못지않구나."라고 산드로 마촐라를 칭찬함과 동시에 발렌티노 마촐라를 추억했다.



21위 알렉스 제임스

 


생년월일: 1901년 9월 14일
국적: 스코틀랜드
신체조건: 키 168cm
주 소속팀: 아스날 FC

1930년대 잉글랜드 풋볼 리그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높은 수준의 전술안과 우수한 볼 컨트롤, 그리고 비단결처럼 유려한 패스 능력을 겸비해 인사이드 포워드 위치에서 주로 활약했는데 팀의 플레이메이커이자 라커룸을 아우르던 주장이었다.

프레스턴 노스 엔드에서 리그 정상급 선수로 이름을 날렸고 아스날로 이적한 뒤에는 채프먼 체제의 아스날의 에이스로 아스날의 리그 4회 우승을 이뤄내며 잉글랜드의 강호로 군림했으며 WM 시스템에서 센터 하프를 센터백으로 내리자는 주장을 했다는 설도 전해진다.

스코틀랜드 대표팀 소속으로도 주전으로 활약한 제임스는 1927-28 시즌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에서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1928-29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에 출전해 대회 우승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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