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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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위 야리 리트마넨

생년월일: 1971년 2월 20일
국적: 핀란드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북유럽의 지단이라 불렸던 핀란드 국적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1990년대 반 할 체제의 아약스에서 핵심 선수로 활약했으며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넓은 시야와 정확하면서도 창의적인 패싱력으로 팀의 공격을 이끌었음은 물론 골문을 직접 타격하는 데에도 능해 1993-94 시즌 에레데비시 득점왕에 올랐을 정도로 뛰어났기에 프랑크 레이카르트는 그를 두고 베르캄프와 비교하며 "베르캄프는 아약스에서 엄청난 플레이를 보여주었지만, 내가 본 아약스 최고의 10번은 야리 리트마넨이다.."라고 술회했다.
아약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리트마넨은 1994-95 시즌의 챔피언스리그와 리그 무패 더블 우승을 포함한 에레데비시 5회 우승에 주축으로 활약했으며 1993-94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1995-96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으나 아약스를 떠난 뒤로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가 아약스에서 이뤄낸 개인 커리어는 대단했는데 ESM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고 1993년에는 네덜란드 에레데비시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으며 1993-94 시즌에는 에레데비시 득점왕에 올랐음은 물론 1995-96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핀란드 대표팀이 유럽에서 약체라 국제대회에서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히피아와 함께 핀란드의 중핵으로 활약했는데 핀란드 올해의 선수상 9회 수상, 2004년 EFA 선정 핀란드 역대 최고의 선수 선정, 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출전자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자타공인 핀란드 축구 역사를 대표하는 선수로 남아있다.
39위 지오반니 페라리

생년월일: 1907년 12월 6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30년대 이탈리아 축구를 빛낸 인사이드 포워드로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중앙과 측면을 오가 메짤라라는 단어의 시조조가 되며 득점 찬스를 만드는 창조적인 패싱력과 직접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하는 능력까지 겸비했다.
유벤투스와 인테르, 볼로냐에서 모두 전성기를 누린 페라리는 유벤투스 시절에는 레나토 체사리니와 함께 2선에서 활약하며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냈고 인테르에서는 대표팀에서도 영혼의 듀오로 이름을 날린 주세페 메아차와 함께 2선에서 경기를 지배하며 세리에 A 2회 우승을 이뤄냈고 말년에 볼로냐에서도 스쿠테토를 들었다.
아주리에서도 대단한 업적을 이뤄냈는데 인사이드 포워드 자리에서 영혼의 파트너로 불렸던 주세페 메아차와 함께 두 번의 중유럽컵에 나와 우승 1회, 준우승 1회를 이뤄냈으며 파트너 메아차와 함께 1934 이탈리아 월드컵과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하며 주전으로 월드컵 2연패를 이룬 유이한 이탈리아 선수라는 대기록을 남겼는데 이 두 대회에서 페라리는 9경기 3골 5도움을 기록했다.
38위 데쿠

생년월일: 1977년 8월 27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FC 포르투
2000년대 초중반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경기장 전체를 관통하는 드넓은 시야와 기막힌 볼 컨트롤과 퍼스트 터치, 그리고 순식간에 골 찬스를 만들어내는 킬 패스로 이름을 날렸음은 물론 신체능력이 뛰어나 압박에도 잘 견뎠음은 물론 엄청난 활동량을 선보였던 현대적인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포르투와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전자의 클럽에서는 리그 우승 3회와 2002-03 시즌에는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미니 트레블을 이뤄냈고 2003-04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더블 크라운을 이뤄냈으며 바르셀로나에서는 호나우지뉴, 카를레스 푸욜 등과 함께 라리가 2연패와 2005-06 시즌 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 더블 크라운을 이뤄냈다. 데쿠 개인도 2003-04 시즌에는 UEFA 클럽 올해의 미드필더와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2004-05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2005-06 시즌에는 UEFA 클럽 올해의 미드필더에 재차 선정되었다.
브라질 출신이었으나 브라질 대표팀에서 그를 소집하지 않자 포르투갈로 귀화한 데쿠는 후이 코스타를 제치고 빠르게 팀의 핵심 플레이메이커로 자리잡았는데 포르투갈 대표팀이 UEFA 유로 2004 결승 진출과 2006 독일 월드컵 4강에 오르는데 크게 공헌했다.
37위 얀 쾰레만스

생년월일: 1957년 2월 28일
국적: 벨기에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클뤼프 브뤼허
1980년대 벨기에 축구의 최전성기를 이끈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벨기에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191cm에 거대한 체격을 앞세운 몸싸움으로 압박을 뚫어냈으며 패싱력이 창의적이진 못했지만 가공할만한 드리블로 수비라인을 돌파해 이를 상쇄시켰으며 우수한 1선 침투 능력과 헤딩 능력을 겸비해 스트라이커로도 뛸 수 있었다.
벨기에 리그가 유럽대항전에서 맹위를 떨치던 시절에 클럽 브뤼헤에서 활약한 쾰레만스는 주필러 리가 3회 우승과 벨기에 컵 2회 우승, 그리고 벨기에 슈퍼 컵 5회 우승을 이뤄냈고 쾰레만스 개인도 벨기에 리그 MVP에게 수여하는 벨기에 골든슈를 3회 수상했으며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우수한 리더쉽과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는데 UEFA 유로 1980에서는 팀을 결승에 올려놓으며 MVP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음은 물론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에 올랐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침몰시켰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준결승까지 올리는데 큰 공을 세워 대회 올스타 팀에 들어 팬들로부터 용감한 주장이라 불렸다.
36위 노르베르트 알론소

생년월일: 1953년 1월 4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70년대와 8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의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창의적인 왼발 패스와 상대 수비를 농락하는 높은 수준의 드리블은 물론 절륜한 왼발 슈팅까지 겸비했으며 오픈 플레이 상황은 물론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우수했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선수생활 대부분을 보내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7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75년과 1979년에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석권했으며 1986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연속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으며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7등 안에 세 번 들어 1975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올랐다.
하지만 대표팀 감독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와 카를로스 빌라르도는 서로 다른 축구를 추구했음에도 둘 다 알론소를 배제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교체 출전으로 3경기에 출전한 게 메이저 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전부였다.
35위 알랭 지레스

생년월일: 1952년 8월 2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63cm / 몸무게 59kg
주 소속팀: 지롱댕 보르도
미셸 플라티니와 함께 1980년대 프랑스 리그를 대표하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163cm라는 매우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지만 비단뱀과 같은 드리블과 유려한 볼 컨트롤은 물론이고 넓은 시야와 기발한 창의성을 바탕으로 찔러주는 패스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은 당대 유럽 제일이었다.
지롱댕 보르도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며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이자 최다 득점자인 지레스는 리그앙 2연패를 이뤄냈으며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5회 연속으로 선정되었음은 물론 프랑스 올해의 선수 3회 선정 및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연속 선정되었다.
지롱댕 보르도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이자 최다 득점자이며 리그앙 2연패를 이뤄낸 지레스는 레 블뢰에서도 플라티니, 장 티가나, 루이 페르낭데와 함께 마법의 사각형의 일원으로 활약했는데 1982 스페인 월드컵 4위, UEFA 유로 1984 우승, 1986 멕시코 월드컵 3위를 기록했다. 특히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두 대회 합쳐서 48개의 골 찬스를 만들어내며 플라티니 이상의 존재감을 뿜어내기도 했고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발롱도르와 옹즈도르 2위에 올랐으며 1984년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9위에 올랐다.
34위 토마스 헤슬러

생년월일: 1966년 5월 30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66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FC 쾰른
안디 묄러와 함께 1990년대 독일 축구를 대표하는 테너로 166cm의 왜소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중앙과 측면, 최전방과 후방을 오가는 왕성한 활동량과 물 찬 제비와 같은 민첩한 움직임과 우아한 볼 컨트롤 능력은 물론 뛰어난 스루패스와 크로스를 활용해 골 찬스를 만들어내며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완벽하게 극복했다.
쾰른, 유벤투스, 로마, 카를스루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 독일과 이탈리아의 여러 구단을 돌았으나 쾰른에서는 분데스리가 2회 준우승과 UEFA컵 1회 준우승을, 유벤투스에서는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준우승을, 로마에서는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와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을, 카를스루헤에서는 포칼 준우승을 이루며 개인의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클럽 단위 우승컵을 한 번도 들지 못하고 준우승에만 머무른 비운의 선수였지만 헤슬러 개인의 활약은 대단해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되었고 옹즈 몽디알에서 뽑으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다만 디 만샤프트에서는 클럽에서의 아쉬움을 완벽하게 씻어낸 헤슬러는 1988 서울 올림픽 동메달을 시작으로 성인 대표팀에서도 핵심 선수가 되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UEFA 유로 1992에서는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MVP를 수상했고 이때의 활약으로 1992 발롱도르 4위와 피파 올해의 선수상 3위에 올랐으며 1994 미국 월드컵 도움왕, UEFA 유로 1996 우승이라는 화려한 활약상을 보여줬으며 2000년에는 독일 대표팀에서 다섯 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33위 호메리투

생년월일: 1960년 8월 28일
국적: 파라과이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플루미넨시
본명은 훌리오 세사르 로메로로 한때 마라도나만큼이나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1980년대 남미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는데 창의적이면서 정교한 패스로 찬스를 만들어내는데 능했으며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을 앞세워 상대의 압박을 피했으며 득점력도 우수했다.
초년에는 뉴욕 코스모스에서 두 번의 북미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남미로 돌아와서는 플루미넨시의 주립 리그 2연패와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1985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잠깐 활약한 바르셀로나에서는 1989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냈고 파라과이로 돌아와서는 스포르티보 루케뇨에 머물며 1990 시즌 리그 득점왕을 수상했다.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197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기여하며 남미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마라도나 다음으로 2위에 올랐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조국의 28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내기도 했다.
32위 볼프강 오베라트

생년월일: 1943년 9월 29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FC 쾰른
귄터 네처와 함께 1960년대 하반기와 197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독일 최고의 테너로 뛰어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이고 왕성한 활동량과 우수한 기동력을 겸비했으며 유사시에는 수비에도 적극 가담했던 현대적인 미드필더였다.
클럽 커리어의 전부를 쾰른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인 오베라트는 1963-64 시즌에 팀을 첫 번째 분데스리가 우승팀으로 만드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에도 2회 준우승을 추가로 이뤄냈으며 DFB포칼 결승에도 5회 진출해 2회 우승하며 디 가이스버커가 독일의 명문으로 올라서는데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 오베라트 개인도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8회 선정되었고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는 월드컵에서 특히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데뷔해 준우승이라는 성적에 공헌했고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에 올랐다. 그러나 UEFA 유로 1972 당시에는 기량이 떨어져 명단에서 제외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절치부심해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다시 주전 자리를 회복하며 특유의 왕성한 활동량으로 팀의 우승을 도왔다. 3번의 월드컵에서 총 59회의 찬스 메이킹을 기록했다.
31위 귄터 네처

생년월일: 1944년 9월 14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볼프강 오베라트와 함께 1960년대 하반기와 197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독일 최고의 테너로 역사상 최고의 패스 마스터 중 하나로 손꼽혔을 정도로 패스를 잘해서 패스의 단위를 센티미터 단위로 조절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로 패싱력이 우수해 "센티미터 패서", "컴퓨터 패서"라 불렸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전성기를 보낸 네처는 키커 랑리스테 월드클래스 등급 4회와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0회를 기록했으며 리그 2연패를 이끌었으나 감독 헤네스 바이스바일러와의 불화로 팀을 떠나게 되는데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마지막 경기인 1972-73 포칼에서는 부상을 핑계로 경기에 출장하지 않으려 했으나 쾰른과 묀헨글라트바흐가 연장에 돌입하자 이제 출전하겠다며 교체 출전하며 결승골을 넣고 팀에게 마지막까지 트로피를 주고 떠났다. 분데스리가를 떠난 뒤에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그 명성을 이어갔는데 UEFA 유로 1972에서 그의 뛰어나면서도 창의적인 패스는 람바참바 풋볼에서 중요한 요소였기에 결국 대회를 압도적으로 우승한 뒤 베켄바우어 다음으로 게르트 뮐러와 함께 발롱도르 공동 2위를 수상했다. 다만 월드컵에서는 라이벌 볼프강 오베라트에게 밀려 벤치 신세를 지며 아쉬운 활약상을 보여줬다.
네처 개인은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7회 선정되었으며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 3회 선정되었다.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50위~41위
다음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30위~2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