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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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 뤼트 굴리트

생년월일: 1962년 9월 1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AC 밀란
'육각형 선수의 정석'
오렌지 삼총사의 일원이자 EA 스포츠의 게임인 피파 시리즈 최고의 선수로 꼽혔지만 실제로도 짧은 기간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손꼽히던 시절이 있었으며 압도적인 피지컬과 100m를 10초대에 주파하는 빠른 스피드는 물론 우수한 테크닉과 축구 지능이 모두 뛰어나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볼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패싱력이 약하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그가 가진 다른 능력에 비해서지 전체적으로는 뛰어난 편이었다.
페예노르트에서 1983-84 시즌 에레데비시와 KNVB컵 더블 우승을 이끌며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며 두각을 나타낸 굴리트는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한 뒤에는 에레데비시 2연패를 이뤄냈고 1986년에도 또다시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AC 밀란으로 이적해 발롱도르를 수상한 굴리트는 사키 체제의 밀란 제너레이션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이뤄냈고 말년에는 삼프도리아에서도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이 다재다능한 팀의 에이스는 오랑예 군단의 유니폼을 입고도 두 차례의 유럽 선수권 대회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특히 1988년에 열린 유로에서는 팀의 우승에 크게 공헌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2위를 기록했다. 이후 1992년에 열린 유로에서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지만 월드컵에서는 능력을 다 펼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9위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

생년월일: 1935년 5월 2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그란데 인테르의 설계자'
1960년대 상반기 유럽 무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어난 훌륭한 볼 컨트롤과 우수한 패싱력과 효율적인 공간 활용, 그리고 탁월한 전술안을 바탕으로 팀의 공격을 지휘해 일명 건축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바르셀로나와 인테르에서 모두 전성기를 누린 수아레스는 바르셀로나에서는 저승사자 군단 레알 마드리드에 대항하여 라리가 2연패와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을 이뤄내며 1960년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인테르 밀란에서는 그란데 인테르라 불리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에 활약하며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뤄냈고 수아레스 개인도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64년 발롱로드 2위와 1965년 발롱도르 3위에 올랐다. 말년에는 삼프도리아에서도 활약했다.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두 번의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으며 UEFA 유로 1964에서는 팀의 핵심 플레이메이커로 팀을 우승시키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는데 이 대회 우승은 아르마다 군단의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었다.
8위 바비 찰튼

생년월일: 1937년 10월 11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라운드의 노동자'
1960년대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이자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공격형 미드필더의 기본적인 덕목인 드리블과 패스를 통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이고 양발 사용 능력은 축구 역사상 최고로 손꼽히며 당시에는 드물었던 플레이를 보여줬는데 공격형 미드필더가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비에 가담했고 실제로도 슬라이딩 태클과 몸싸움을 아끼지 않았던 미래지향적이며 헌신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뮌헨 비행기 참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버스비 감독을 도와 팀의 주장으로서 무너진 팀을 수습하며 풋볼 리그 3회 우승과 FA컵 1회 우승, 그리고 1967-68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을 이뤄내며 명실상부 유럽 최고의 클럽으로 올라서는데 공헌했다. 찰튼 개인도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9회 선정되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신화를 썼는데 1966년 조국 잉글랜드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UEFA 유로 1968에서는 3위라는 호성적을 이뤄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8강에서 탈락했지만 브라질, 서독과의 경기에서 클래스를 보여줬으며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1994년에 피파에서 공식적으로 선정한 FIFA 월드컵 올타임 드림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7위 지지뉴

생년월일: 1921년 9월 14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풋볼 마에스트레'
펠레 이전 브라질 축구의 아이콘이었던 선수로 인사이드 포워드에게 필요한 모든 덕목을 가지고 있던 창의적인 플레이메이커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외에도 하프백이나 전방 공격수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선수라 풋볼 마스터, 혹은 대가라는 뜻의 마에스트레라 불렸다.
플라멩구와 방구 AC에서 전성기를 누린 지지뉴는 전자의 클럽에서는 캄파오네투 카라오카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승리의 급행열차라 불리며 남미 최고의 클럽으로 군림한 바스쿠 다 가마 왕조를 잘 견제했다. 전성기 이후에 상파울루에서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뤄냈다. 지지뉴 개인도 방구에서 뛰던 1951년에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득점왕에도 오르며 아데미르와 함께 브라질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지지뉴의 위대한 활약은 셀레상에서도 이어졌는데 코파 아메리카에 여섯 번 출전해 1949년 대회 우승과 네 번의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팀은 마라카냥에서 우루과이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지지뉴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6위 프란체스코 토티

생년월일: 1976년 9월 27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AS 로마
'Mr. AS Roma'
2000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트레콰르티스타이자 펄스 나인롤 공격수로 우수한 원터치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 능력과 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피지컬과 볼 컨트롤을 겸비한 탈압박 능력은 물론 득점력까지 공격형 미드필더에 필요한 모든 덕목을 갖추었으며 2007-08 시즌에는 펄스 나인으로도 활약하기도 했던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자타공인 AS 로마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최강의 선수로 선수생활을 모두 AS 로마에서만 보냈으며 구단 역대 최다 출전과 최다 득점자를 랭크하고 있으며 2000-0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며 발롱도르 5위에 랭크되었으며 두 번의 코파 이탈리아와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이뤄냈다.
토티 개인도 수많은 영광을 누렸는데 1999년 세리에 A 영 플레이어를 시작으로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 5회 수상,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 2회 수상, ESM 올해의 팀 3회 선정,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2회 수상과 도움왕 2회 수상은 물론 2006-07 시즌에는 이브라히모비치, 카카, 아드리아누, 루카 토니 등 훌륭한 공격수들을 제치고 세리에 A 득점왕을 이뤄내기도 했으며 빅리그의 다른 득점왕에 앞서며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하기도 했다.
아주리 군단에서는 UEFA 유로 2000떄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며 팀을 결승에 올려놓으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나 이후로는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도움왕에 오르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고 화려하게 은퇴했다.
5위 지네딘 지단

생년월일: 1972년 6월 23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결승전의 사나이'
1990년대 후반기와 2000년대 상반기에 호나우두와 함께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던 선수로 드넓은 시야와 신속정확한 판단력, 그리고 우아한 볼 컨트롤 능력과 창의적인 패스로 경기장을 지배하는 마에스트로였는데 신체 능력도 우수해 탈압박에도 능했으며 특히 큰 경기에서의 클러치 능력이 빛나던 선수였다.
보르도와 유벤투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했으며 유벤투스에서는 세리에 2연패와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회라는 성적을 거뒀으며 세계 최고 이적료를 갱신하고 이적한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2001-02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의 발리 슈팅을 활용한 결승골과 2002-03 시즌 라 리가 우승에 기여한 활약으로 다소 꾸준하게 활약하지 못하고 엘 클라시코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레알 마드리드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클럽에서의 개인 커리어도 대단한 지단은 1993-94 시즌 리그앙 영 플레이어상을 시작으로 1995-96 시즌에는 리그앙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으며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3회나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5위 안에 6회 들었으며 1998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지단의 백미는 클럽 활약이 아닌 역시 레 블뢰의 최전성기를 이끈 활약상인데 UEFA 유로 1996부터 2006 독일 월드컵까지 모든 대회를 참가했으며 유로 1996과 2002 한일월드컵을 제외한 모든 대회에서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특히 1998 프랑스 월드컵과 UEFA 유로 2000은 우승을 차지했다. 1998년에는 결승전에서 멀티골을 득점하는 맹활약을 앞세워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UEFA 유로 2000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4위 샤로시 죄르지

생년월일: 1912년 8월 5일
국적: 헝가리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팔방미인'
1930년대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하나로 공격적인 부분은 물론 미드필더와 수비수로서의 역량은 물론 신체 능력과 전술 이해도까지 우수한 일명 육각형 선수의 시조와도 같은 선수로 심지어는 법학 박사 학위를 딸 정도로 축구 외적으로도 다재다능했다.
1930년대 마자르 군단이 중유럽 최고의 수준으로 올라서는데 큰 공을 세운 샤로시는 헝가리 대표팀 A매치 통산 득점 5위에 랭크되었고 1933-35 중유럽컵에서 득점왕에 올랐으며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탄 하면서 중단된 1936-38 중유럽컵에서도 10골을 넣으며 득점 선두를 달렸었다.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큰 활약을 하지는 못했지만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에이스로 5골을 득점하며 헝가리를 결승전 무대에 올려놓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그리고 중유럽컵에서는 17골로 대회 통산 최다 득점자에 올랐다.
클럽 커리어를 페렌츠바로시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이었던 샤로시는 1931-32 시즌 전승 우승을 포함해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과 헝가리 컵 4회 우승, 그리고 1937년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데 리그 득점왕과 미트로파컵 득점왕을 각각 3회 차지했음은 물론 미트로파컵 통산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던 진정한 중유럽의 황제였다.
3위 미셸 플라티니

생년월일: 1955년 6월 21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진 마에스트로'
1980년대 상반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발롱도르 3회 연속 수상을 기록해 남미의 지쿠, 디에고 마라도나에 대한 유럽의 대답이라 불렸는데 드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하는 플레이메이킹은 일품이었으며 경기가 안 풀릴 때에는 3선 지역까지 내려가서 볼을 순환시켰다. 그리고 전방에서 동료들과 연계하며 많은 득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훌륭한 킥력을 바탕으로 하는 롱패스는 당대를 넘어 역대에서도 최고라 할 만했다.
셍테티엔과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전자의 클럽에서는 프랑스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후자의 클럽에서는 두 번의 세리에 A 우승과 한 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그리고 1983-8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을 우승했음은 물론 1984-85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을 우승해 유벤투스 역사상 최초의 빅 이어 달성에 큰 공을 세우며 대회 득점왕에 올랐으며 단 5년만 활약하고도 유벤투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반드시 거론될 정도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레 블뢰에서도 역시 대단한 활약을 펼친 플라티니는 티가나, 지레스, 루이 페르난데스와 함께 마법의 사각형이라 불리는 중원 조합을 구성해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4강에 진출했으며 UEFA 유로 1984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UEFA 유로 1984에서의 활약이 일품이었는데 경기에 끼치는 영향력이 대단했음은 물론 단일대회 5경기 9골을 기록하며 2021년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경신할 때까지 유로 역대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렸었다. 호날두가 다섯 대회에서 득점을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다섯 경기에서 9골이나 득점한 플라티니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다. 이때의 활약으로 당연하게도 1984년 발롱도르를 수상한다.
플라티니는 개인적으로도 1983년과 1985년에 발롱도르와 옹즈도르를 3년 연속으로 수상했으며 1984년과 1985년에는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2위 지쿠

생년월일: 1953년 3월 3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리우 데 자네이루의 펠레'
1980년대 상반기를 수놓은 당대 최고의 선수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로 탄탄한 기본기와 교묘한 드리블, 창의적인 패싱 스킬과 양발 슈팅 스킬을 겸비했으며 스트라이커들을 초월하는 득점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프리킥에 능해 프리킥 통산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전성기의 대부분을 플라멩구에서 보낸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 지쿠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7회 우승과 브라질 전국리그인 세리 A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득점왕 5회, 브라질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고 1981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 1차전에서 멀티골을 넣어 2-1 승리했는데 1승 1패 상황 최종전에서도 멀티골을 넣으며 2-0으로 승리하는데 크게 기여해 우승은 물론 대회 MVP를 수상했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붉은 제국이라 불리는 리버풀을 3-0으로 완파하며 대회 MVP를 수상했다. 유럽 무대 도전을 위해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우디네세로 이적해 활약하며 1983-84 시즌 올해의 선수에 올랐으나 향수병으로 다시 플라멩구로 돌아갔으며 말년에는 J리그에서 새로운 도전을 했다.
셀레상에서는 개인은 훌륭했지만 팀 성적은 아쉬웠는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와 페루의 승부조작 의혹으로 2차 조별리그 2위로 밀려나 3위의 성적에 만족해야 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본인은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활약을 보이고도 이탈리아에게 역전패하며 아쉽게 탈락했다.
지쿠는 개인도 남미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1977년, 1981년, 1982년, 총 3회 수상했으며 1983년에는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은퇴 이후에는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위 디에고 마라도나

생년월일: 1960년 10월 30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6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SSC 나폴리
'魔神'
펠레, 메시와 함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추앙받는 인물로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생각하는 아르헨티나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를 넘어 스포츠 스타이며 마라도나를 숭배하는 종교도 있을 정도로 자국에서 사랑을 받았는데 이를 증명하듯 축구 역사상 최고의 볼 컨트롤러이자 드리블러로 손꼽히며 현대 축구였다면 퇴장당했을 강력한 태클도 가볍게 무시했으며 오렌지도 축구공 마냥 가지고 놀 수 있었던 기막힌 볼 컨트롤 능력과 사방에 눈이 달려있다고 평가받는 압도적인 시야와 예측을 불허하는 창의적인 패스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스테미너에 데드볼까지 능했던 완벽한 선수로 1979년, 즉 만 19세의 나이에 이미 펠레에 견줬던 화려한 선수였으며 여기에 리더십마저 겸비해 동료 선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구단 보드진과 협상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노 주니오스에서 만 19세의 어린 나이에 이미 세계 정상급 선수로 올라선 마라도나는 보카 주니오스의 1981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바르셀로나에서는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세리에 A 중하위권 나폴리에 가서는 인테르와 AC 밀란, 유벤투스 같은 북부의 전통 강호를 제치고 세리에 A 2회 우승은 물론 1986-87 시즌에는 리그에 이어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 더블을 달성했고 1988-89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전설의 반열에 올랐으며 패배에 익숙하던 나폴리 선수들에게 위닝 멘탈리티를 선물했다. 물론 마라도나 개인도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여섯번 수상했으며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득점왕을 5회 수상했으며 1984-85 시즌에는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고 1986년과 1987년에는 옹즈도르를 수상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클럽 활약을 능가하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네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 유니폼을 입었으며 특히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보여준 5골 5도움이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단일 대회 역대 최고의 활약으로 평가받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무뎌진 대표팀을 이끌고도 팀을 결승에 올려놓으며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20위~1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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