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Top 10

포지션별 역대 TOP 100/레프트백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Top 10

토르난테 2024. 1. 2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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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10위 안토니오 카브리니

 


생년월일: 1957년 10월 8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아름다운 안토니오'

잘생긴 외모로 인해 아름다운 안토니오라 불렸던 선수로 1980년대 상반기를 빛낸 레프트백으로 윙어가 연상될 정도로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크로스, 왕성한 활동량으로 왼쪽 측면을 지배했으며 이는 트라파토니의 조나 미스타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비안코네리 군단의 세리에 A 6회 우승,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을 포함해 3대 유럽 대항전을 모두 우승한 진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카브리니는 개인으로도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3회, 구에린 스포르티보가 선정한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며 당대 수위급 레프트백으로 인정받았다.

아주리에서도 어린 시절부터 맹활약을 펼쳤는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 발롱도르 투표에서 13위에 올랐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아주리의 통산 세 번째 월드컵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9위 한스페터 브리겔

 


생년월일: 1955년 10월 11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7kg
주 소속팀: FC 카이저슬라우테른

'팔츠의 증기롤러'

신체능력과 축구지능을 겸비한 선수로 188cm의 89kg라는 거대한 체격은 물론 축구를 시작하기 전 육상에서도 큰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라 운동 능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이러한 우수한 피지컬을 앞세운 맨 마킹 능력이 뛰어났는데 공격적인 부분에서도 양발을 모두 잘 썼고 특히 중거리 슈팅이 대단했으며 축구 지능도 뛰어나 필드 내에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데뷔해 1978-79 시즌에 확고한 주전으로 도약해 1978-79 시즌부터 1981-82 시즌까지 붉은 악마 군단을 네 시즌 연속으로 분데스리가 4위 안에 들며 상위권으로 올렸고 DFB포칼 결승에도 2회 진출하는 데 큰 공을 세워 브리겔 개인도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1980-81 시즌에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다.

엘라스 베로나에서는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도 활약하며 전성기를 누렸는데 왕성한 활동량을 활용한 전진성을 앞세워 약체로 평가받던 팀을 우승시키는데 큰 공을 세워 1985 발롱도르 8위에 올랐고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말년에는 삼프도리아에서 1987-8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브리겔도 세 팀에 머물면서 개인 통산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다.

브리겔의 디 만샤프트에서도 자신의 다재다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레프트백 시절에는 UEFA 유로 1980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준우승을 이뤄냈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안드레아스 브레메에게 레프트백 자리를 내주고 스토퍼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조국을 재차 결승행에 올렸으나 마라도나를 막지 못해 우승컵을 들지는 못했다.

 


8위 주니오르

 


생년월일: 1954년 6월 29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헬멧머리의 마에스트로'

1980년대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화려하면서도 빠른 드리블 돌파와 웬만한 공격형 미드필더 수준의 볼 컨트롤 능력과 측면에서 중앙으로 침투해 플레이메이킹을 하며 킬 패스를 뿌리며 팀 공격을 주도하면서도 비슷한 유형의 후배 마르셀루와는 다르게 수비적으로 빈틈이 없었다고 평가받았다.

플라멩구와 토리노에서 활약한 주니오르는 플라멩구의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주니오르는 브라질 전국리그 4회 우승과 1981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 이어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붉은 제국 리버풀을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었는데 이 경기에서 주니오르는 유럽 정상급 라이트백 필 닐을 농락하며 경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활약을 보여줘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3위에 올랐다.

 

토리노 이적 이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해서도 세리에 A 올해의 선수를 수상할 정도로 우수한 실력을 보여줬고 브라질로 돌아간 뒤인 1992년에는 38세의 나이에도 브라질 전국 리그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며 롱런했다.

셀레상에서는 1982년에 이름을 날렸던 황금의 사중주를 보좌하며 활약했는데 세계 최고의 팀으로 수식되었으나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모두 준결승 진출에도 실패하며 부진한 성적을 낸 아쉬움이 있지만 1982 스페인 월드컵 올스타 팀과 1982년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5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7위 칼하인츠 슈넬링어

 


생년월일: 1939년 3월 31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AC 밀란

'폭스바겐'

1960년대 유럽 정상급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고 우수한 체력과 빠른 기동력을 활용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상대의 공격을 틀어막아 폭스바겐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쾰른과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냈는데 쾰른에서는 1962 독일 챔피언쉽 우승에 큰 공을 세워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에 랭크되어 포디움에 올랐으며 AC 밀란에서는 리그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3회는 물론 1967-68 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우승과 1968-69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약스의 에이스였던 요한 크루이프를 완벽하게 막아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한 슈넬링어는 1958 스웨덴 월드컵부터 1970 멕시코 월드컵까지 활약했으며 첫 번째 대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선 뛰어난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준우승,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3위라는 성적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새운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8회나 받는 등 대체로 우수한 활약을 보여줬지만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자주 심판을 속이며 비매너 플레이를 자주 벌여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 준결승전에서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동점골을 득점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가자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이탈리아로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라는 협박을 듣기도 했다.

 

 

6위 안드레아스 브레메

 


생년월일: 1960년 11월 9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초능력자'

1980년대 하반기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이자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세트피스 키커이자 양발잡이로 뛰어난 패싱력을 활용해 대표팀의 빌드업 시작점 역할을 했던 미래형 윙백이었으며 프리킥과 코너킥에 능해 팀의 공격을 지원했다.

카이저슬라우테른과 바이에른 뮌헨, 인테르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린 브레메는 바이에른과 인테르,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모두 리그 우승을 이뤄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1986-87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인테르에서는 1990-91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는 포칼 우승을 이뤄냈다.

디 만샤프트 소속으로는 각각 세 번의 월드컵과 유로에 참가한 브레메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페널티 킥 결승골을 넣고 월드컵 우승을 이루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음은 물론 소파스코어 기준 대회 평점 2위를 기록하는 등 축구를 통달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UEFA 유로 1984와 UEFA 유로 1992에서도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브레메 개인의 활약은 대단해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브레메는 개인적으로도 많은 영광을 누렸는데 분데스리가에 머문 기간에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 1988-89 시즌에는 인테르 올해의 선수와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포디움에 드는 영예를 누렸다.

 


5위 뤼트 크롤

 


생년월일: 1949년 3월 24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정예병'

1970년대 아약스와 오렌지 군단을 이끌던 레프트 백으로 세련된 수비 능력과 준수한 볼 테크닉, 강력한 슈팅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리베로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 당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통했다.

네덜란드의 아약스에서 전성기를 맞은 크롤은 '신의 아들들'의 일원으로 에레데비시에 6회 우승, KNVB 컵 4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이뤄내며 '신의 아들들'과 함께 구단의 황금기를 누렸다. 북미 무대에 다녀온 뒤 나폴리에서도 4년 동안 활약했는데 비록 우승 트로피는 들지 못했지만 1981년에 옹즈 드 옹즈에 선정되었으며 이탈리아 내에서도 세리에 A 최우수 수비수상을 수상했고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두 번의 유로 대회 본선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1974년 서독 월드컵과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모두 결승에 올랐지만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으며 크롤 개인도 1974 월드컵과 유로 1976, 그리고 1978 월드컵에서 모두 대회 올스타 팀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특히 리베로로 출전한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6위를 기록했으며 1979년에는 발롱도르 포디움에 입성했다.



4위 니우통 산투스

 


생년월일: 1925년 5월 16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축구 백과사전'

20세기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 선수였으며 축구사에서 측면 수비수의 오버래핑을 처음으로 정립한 선수로 알려졌다. 공격 기술부터 수비 기술까지 다재다능해서 백과사전으로 불렸다.

선수 생활을 오직 보타포구에서만 보냈으며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인 니우통 산투스는 영광의 팀이라 불리던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끌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4회 우승 및 1962년 6관왕과 같은 성과를 냈지만 펠레의 산투스에게 밀려 전국리그 우승은 아쉽게 달성하지 못했다.

셀레상에서도 백업 멤버로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경험한 것을 시작으로 1950 브라질 월드컵의 마라카냥의 비극을 경험하기도 했으나 새옹지마라고 주전 멤버가 아닌 덕분에 이후에도 자주 기용되었고 펠레, 가린샤 등과 함께 브라질 대표팀의 최전성기를 누리며 두 번의 월드컵에서 우승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니우통 산투스 개인도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3위 호베르투 카를루스

 


생년월일: 1973년 4월 10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UFO 슈터'

21세기를 대표하는 공격형 레프트백으로 탄환인간이라 불렸을 정도로 엄청난 지구력과 스피드를 겸비했으며 거침없는 오버래핑과 단단한 몸을 이용한 대인 수비, 그리고 악마의 왼발로 불리는 강력한 왼발 킥력도 가지고 있었다.

파우메이라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호베르투 카를루스는 파우메이라스에서는 브라질 세리 A 2연패를 이뤄냈고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라리가 4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을 이끌어냈음은 물론 카를루스 개인도 ESM 올해의 팀에 7회나 선정되었을 정도로 꾸준하게 활약했고 UEFA 올해의 수비수에도 2회 선정,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 안에 3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2002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오르기도 하는 등 높은 고점도 동시에 보여줬다.

셀레상에서도 월드컵 3회 출전, 코파 아메리카 4회, 그리고 컨페드컵 1회에 출전했으며 두 번의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으며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를 우승했다. 특히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으며 1997년 컨페드컵에서는 귀신같은 궤적의 프리킥을 날려 득점했는데 그 슈팅의 궤적이 너무나도 경이로워 UFO 슛이라 불렸다.



2위 지아친토 파케티

 


생년월일: 1942년 7월 18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진격의 거인'

인테르와 아주리의 위대한 캡틴이자 유럽 최초로 오버래핑을 시도하며 카테나치오의 매서운 역습을 상징하는 선수였는데 빠른 스피드와 탄탄한 기본기를 활용해 공격에 적극 가담하며 상대 수비진을 교란했으며 강력한 피지컬을 앞세운 대인 수비에도 능했다.

선수생활을 오직 인테르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파케티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1회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과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뤄내며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를 이뤄낸 위대한 레프트백이다.

아주리에서는 첫 메이저 대회인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소련과 북한에게 패해 조기 탈락하는 굴욕을 겪었지만 유로 1968에서는 주장이자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맡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개최국 멕시코와 난적 서독을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언급한 두 대회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파케티 개인도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5위 안에 두 번 들었으며 1965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오르며 포디움에 들었다.



1위 파올로 말디니

 

 

생년월일: 1968년 6월 26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AC 밀란

'Cuore di Drago'

AC 밀란과 아주리의 위대한 캡틴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세밀한 볼 컨트롤, 우수한 피지컬 능력과 교묘한 대인 수비를 모두 겸비한 완벽한 풀백이자 센터백이었다.

AC 밀란에서 세리에 A 7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5회 우승을 포함해 밀란에서만 스물다섯 개의 우승컵을 들었으며 특히 1993-94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센터백으로 출전해 호마리우와 스토이치코프를 가볍게 무력화시킨 그의 수비력은 관중들을 경악하게하며 1993-9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된다.

아주리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는데 유로 1988부터 2002 한일 월드컵까지 일곱 번의 메이저대회에 참가해 월드컵에서 두 번, 유로에서 세 번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우수한 활약을 펼쳤고 바레시, 베르고미와 함께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최장시간 무실점 기록을 세웠으며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도 레프트백과 센터백을 오가며 혼신의 수비를 했으며 결승전에서도 바레시와 짝을 이뤄 호마리우와 베베투를 괴롭히며 승부차기 끝에 팀이 패했음에도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에 오르는 활약을 보여줬지만 그의 대표팀 마지막은 초라했는데 이천수에게 발로 머리를 가격당한것도 모자라 심판이 그것을 못 봤으며 팀도 연장전 골든골로 패했다.

그럼에도 말디니는 팀 커리어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대단했는데 발롱도르 10위 안에 여섯 번 들었으며 1994년과 2003년에는 3위에 오르며 포디움에 들었는데 발롱도르 포디움에 두 번 든 유일한 측면 수비수이며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8회 선정, ESM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으며 1994년에는 월드 사커지가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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