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20위~1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라이트백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20위~11위

토르난테 2024. 1. 1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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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20위 넬리뉴

 


생년월일: 1950년 7월 26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크루제이루

공격력이 특히 빛났던 브라질의 라이트백으로 여러 공격적인 재능 중에서도 특히 킥력이 대단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우수한 수준의 크로스와 중앙으로 들어와 슈팅을 날리는 능력은 일품이었다. 특히 역대에서도 손에 꼽는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로 커브볼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미나스제라이스 주의 양대강자 크루제이루와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전성기를 누린 넬리뉴는 전자의 구단에서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4회 우승 및 1976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고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도 주립리그 4회 우승을 추가했음은 물론 넬리뉴 개인도 양 팀을 통틀어서 브라질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다.

1975년 남미 올해의 선수 4위에 오른 넬리뉴는 대표팀에서는 1975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두 번의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밀려나기도 했다. 가진 실력에 비해 대표팀 운이 좋지 않은 케이스였다.



19위 슈베르트 감베타

 


생년월일: 1920년 4월 14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40년대와 50년대에 이름을 날린 라이트 풀백 겸 라이트 하프로 우수한 대인 방어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마킹맨을 놓치지 않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신출귀몰한 움직임으로 인해 원숭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오늘날의 포백 시스템의 오른쪽 측면 수비수 역할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선수 생활 대부분을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보낸 감베타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10회 우승을 이뤄냈고 1940년과 1946년에는 아르헨티나 챔피언과의 슈퍼컵 코파 알다오에서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운 것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28회의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음은 물론 1949년에 잠시 막대한 투자로 엘도라도라 불렸던 콜롬비아 리그의 쿠쿠타 데포르티보에서 활약하며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감베타는 네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모두 4위 안에 들었으며 특히 1942년 대회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브라질의 플레이메이커 지지뉴를 묶어내는 데 성공하는 등 팀의 우승에 기여한 활약상을 인정받아 다수의 매체에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다.

 


18위 지미 암필드

 


생년월일: 1935년 9월 21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블랙풀 FC

잉글랜드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추앙받는 선수로 바위라 불릴 정도로 견고한 수비력은 물론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테크닉에 기반한 세련된 수비까지 겸비하며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 라이트백이었다.

선수 생활을 오직 블랙풀에서만 보낸 암필드는 1955-56 시즌 블랙풀의 리그 준우승이라는 기적을 이뤄내며 주목받았으며 1964년에는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오랜 시간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정작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부상 및 전술적인 이유로 인해 벤치에서 우승을 경험하는데 그쳤다.

 


17위 에릭 게레츠

 


생년월일: 1954년 5월 18일
국적: 벨기에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2020년에 벨기에 축구 협회 창립 125주년 기념으로 선정한 역대 베스트 일레븐과 2021년에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인 IFFHS가 선정한 벨기에 올타임 드림팀에 동시에 선정된 벨기에 축구사 최고의 수비수로 강력한 승부욕과 카리스마로 팀을 장악했으며 상대 수비를 끈질기게 수비해 사람들로부터 '플렌더스의 사자'라고 불렸다.

스탕다르 리에주와 PSV에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전자의 구단에서는 1980-81 시즌 벨기에 컵 우승 및 주필러리가 2연패를 이뤄냈고 AC 밀란에서는 다소 좋지 못한 시즌을 보냈지만 후자의 구단으로 이적한 뒤에는 에레데비시 4연패를 포함해 리그 6회 우승과 1987-88 시즌 트레블을 이뤄낸 주역으로 활약했음은 물론 게레츠 개인도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82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12위에 오른 게레츠는 1995년에 투표한 20세기 벨기에 최고의 선수 투표에서 8위에 올랐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붉은 악마라 불리는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는데 유로 1980 준우승을 이뤄낸 것을 시작으로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물리쳤을 때 마라도나를 잘 막아내며 돈 발롱으로부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견고한 수비력으로 조국의 준결승행을 이끌며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로부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주장을 역임하며 조국의 토너먼트 진출을 도왔다.

 


16위 파울 야네스

 


생년월일: 1912년 3월 11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유럽 대륙에서는 최초로 측면 수비수 역할을 했던 선수 중 하나로 기술적이고 우아한 태클로 유명하며 킥의 정확도가 높아 별명이 '정확도 세계 챔피언'이라고 불렸다.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전성기를 누린 야네스는 1930-31 싣즌 독일 서부 지역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가울리가 체제에서는 가울리가 니더라인 5회 우승을 이뤄내며 지역리그 6회 우승을 이뤄냈고 전국단위 대회에서도 1933년 독일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고 1936년에도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36-37 시즌 DFB포칼에서는 결승까지 파죽지세로 올랐지만 당대 독일 최강 샬케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다.

1932-33 시즌 이후로 디 만샤프트의 주축 수비수로 선정된 야네스는 1934 서독 월드컵에서 대회 수위급 라이트 하프로 맹활약하며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멀었던 독일을 3위에 올렸고 헤어베어거 체제에서는 1937년에 11번의 A매치에서 10승 1무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며 폴란드 브레슬라우에서 덴마크를 상대로 8-0 대승을 기록하는데 기여하며 브레슬라우 엘프의 전설을 쓰기도 했다. 1939년 스체판이 대표팀에서 물러나자 디 만샤프트의 주장직을 맡기도 했다.



15위 마누엘 아모로스

 


생년월일: 1962년 2월 1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AS 모나코

1980년대를 대표하는 공격형 풀백이며 날카로운 오버래핑 능력은 물론이고 반 박자 빠른 롱 패스를 활용해 팀의 오른쪽 공격을 주도했던 플레이메이커형 풀백이었으며 좌우 측면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AS 모나코에서는 리그앙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올림피크 마르세유에서는 리그앙 3연패를 이끌었으며 개인적으로도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리그앙과 유럽대항전에서 모두 뛰어난 활약을 펼쳐 리그앙을 전 유럽에 알리며 리그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레 블뢰에서도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활약으로 팀의 준결승 진출에 공헌하며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팀을 준결승에 올려놓으며 맹활약하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14위 빔 수르비어

 


생년월일: 1945년 1월 16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1970년대 아약스와 오렌지 군단을 이끌던 라이트백으로 거친 태클과 적절한 위치를 선정해 상대를 막아냈으며 강철 같은 스테미너에서 나오는 오버래핑으로 상대의 좌측면을 끊임없이 압박했으며 날카로운 쓰루패스와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했으며 윙어나 레프트백과의 스위칭 플레이를 보여주며 미헬스의 토털 풋볼 구현에 큰 도움이 되었던 선수다.

아약스 통산 출전 2위에 랭크된 수르비어는 '신의 아들들'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에레데비시에 7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이뤄냈으며 1971-72 시즌에는 트레블을 이뤄냈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그대로 이어갔는데 1974년 서독 월드컵과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모두 결승에 올랐으며 UEFA 유로 1976에서는 3위에 올랐다. 수르비어는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지만 결승전에서 아쉽게 무너졌으며 대회 올스타 팀의 영광도 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인 베르디 포그츠와의 경쟁에서 밀린 비운의 선수였다.



13위 타르치시오 부르니치

 


생년월일: 1939년 4월 25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그란데 인테르 시대에 활약했던 라이트백으로 자이르 다 코스타의 위치에 따라 라이트백과 스토퍼로 자유자재로 변했으며 당대 최고의 대인 마킹 실력을 자랑하며 에우제비우나 푸스카스 같은 훌륭한 공격수들을 마킹하며 명성을 쌓았다.

전성기를 인테르 밀란에서 보내며 그란데 인테르라 불렸던 시절의 황금기를 이끌며 카테나치오의 한 축을 담당한 부르니치는 바위처럼 상대 공격수를 짓누르며 세리에 A 4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회 우승을 이루는데 공을 세워 1964년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말년에는 나폴리에서 활약하며 리베로로 포지션을 변경하기도 했다.

부르니치의 활약은 아주리에서도 이어졌는데 아주리 군단의 주전 라이트백으로 UEFA 유로 1968 우승과 1970 멕시코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내며 아주리의 부활을 이끌었다.



12위 클라우디오 젠틸레

 


생년월일: 1953년 9월 27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시레아와 파트너를 이룬 수비수로 거친 플레이 스타일로 리비아의 독재자인 "카다피"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이런 거친 수비 방식과는 별개로 오른발로 올리는 정교한 크로스는 그가 속한 팀의 공격 루트 중 하나로 활용되기도 했다.

유벤투스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끈 수비수로 세리에 A 6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6-77 시즌에는 UEFA컵을 우승하며 팀의 첫 유럽 대항전 우승에 공헌했고 1983-84 시즌에는 컵 위너스컵 우승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1984-85 시즌에 피오렌티나로 떠나며 유러피언컵 우승은 이루지 못한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펼친 젠틸레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유로 1980에서는 준결승전에 올랐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마라도나, 지쿠, 루메니게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을 틀어막으며 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11위 주세페 베르고미

 


생년월일: 1963년 12월 22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80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라이트백이자 스토퍼로 우수한 수비 지능과 강인한 체력과 빠른 발 그리고 터프한 수비와 안정적인 볼 배급 능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두 포지션에서 모두 당대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공격력보다는 수비력이 부각되는 선수였음에도 공격 상황에서는 정교한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기도 했다.

인테르의 원 클럽 맨이자 통산 출전 2위에 랭크된 베르고미는 20년간 헌신하며 20세기 마지막 스쿠테토를 이끌었고 UEFA 컵 3회 우승에도 크게 공헌해 구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2020년에는 네라주리들의 투표로 인테르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빛나는 활약을 이어간 베르고미는 만 19세의 어린 나이로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로테이션 멤버였지만 큰 경기에서 선발로 나와 활약하며 우승을 차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에도 UEFA 유로 1988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준결승에 진출하는데 공헌했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사키와의 갈등으로 인해 대표팀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1998 프랑스 월드컵 때 로테이션 멤버로 복귀했으며 대회 도중 부상당한 네스타의 공백을 메웠으나 8강 프랑스전 승부차기에서 아쉽게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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