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30위~2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라이트백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30위~21위

토르난테 2024. 1. 1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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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30위 오르바르 베리마크

 


생년월일: 1930년 11월 16일
국적: 스웨덴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외레브로 SK

북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평가받으며 견고한 일대 일 수비 능력과 한 박자 빠르게 들어오는 슬라이드 태클을 앞세워 팀의 오른쪽을 철통같이 지켜냈다.

외레브로 SK에서 전성기를 누린 베리마크는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견고한 수비로 스웨덴 대표팀의 현재로선 유일한 월드컵 결승 진출을 이끌어내며 복수의 매체로부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1960년대 초반에는 월드 사커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1958년에는 상술한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스웨덴 굴드불렌에 선정되었으며 2003년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9위 루이스 에이사기레

 


생년월일: 1939년 6월 22일
국적: 칠레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측면 수비수의 오버래핑을 보편화시킨 선구자 중 한 명으로 강력한 공격력과 날카로운 크로스로 지원하는 능력으로 팀의 오른쪽 공격을 주도했다.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의 원 클럽맨인 에이사기레는 정규리그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대표팀에서도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세계 각국 언론의 예상을 뒤엎고 조국 칠레가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워 지진으로 고통받았던 국민들을 위로했다.

1969년에 엘 그라피코지에서 선정한 1960년대 남아메리카 최고의 라이트백 2위에 선정된 에이사기레는 칠레 축구 최고의 라이트백에 6회 선정, 칠레 올해의 축구 선수 2회 선정되었고 1962-63 시즌 언론이 뽑은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8위 주안 세가라

 


생년월일: 1927년 11월 15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50년대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을 상징하던 라이트백으로 레프트백과 센터백도 소화했으며 지능적인 수비와 헌신적인 수비를 겸비한 바르셀로나 수비진의 리더였다. 

세가라는 바르셀로나에서 라리가 4회 우승과 인터시티 페어스 컵 2회 우승, 라틴 컵 1회 우승, 코파 델 레이 6회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마르카 평점 기준 라리가 베스트 일레븐 2회, 1959 발롱도르 20위에 드는 등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주축 수비수로 맹활약했는데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본선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브라질과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27위 필 닐

 


생년월일: 1951년 2월 20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리버풀의 최전성기 시절인 붉은 제국 시절을 이끈 선수로 측면 수비수치고는 훌륭한 득점력과 견고한 수비력을 모두 겸했으며 다재다능하여 중앙 수비수도 소화할 수 있었다.

특히 금강불괴와 같은 체력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리버풀 입단 이후에 첫 시즌과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면 매 시즌 50경기 이상을 소화했으며 공식 경기 417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그 기간이 무려 붉은 제국이라 불리던 리버풀의 최전성기였으며 필 닐은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잉글랜드 풋볼 리그 8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4회 우승을 포함해 총 23개의 메이저 트로피를 들었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유로 1980에 주전으로 나섰으나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백업으로 나섰다.

 


26위 게리 네빌

 


생년월일: 1975년 2월 18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을 수놓은 라이트백으로 날카로운 크로스와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운 건실한 수비력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커리어 전체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헌신한 네빌은 1998-99 시즌에는 트레블을 이뤄냈으며 1998-99 트레블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8회 우승과  FA컵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2회 우승하며 유럽 정상에도 두 번이나 올랐다. 네빌 개인도 PFA 올해의 팀에 6회 선정되었으며 1997-98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며 유럽 리그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평가받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어 삼사자 군단에서도 오랜 기간 주축으로 활약한 네빌은 1996 유로에서 주전으로 조국의 준결승행을 이끌었고 이후 1998 프랑스 월드컵과 2006 독일 월드컵, 그리고 유로 2000과 유로 2004에서도 참가했다. 유로 1996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동세대의 다른 잉글랜드 선수들보다는 대표팀 커리어가 나았던 네빌은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25위 레안드루

 


생년월일: 1959년 3월 17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1980년대 상반기 정상급 라이트백으로 우리가 흔히 아는 브라질의 측면 수비수들과는 다르게 공격력보다는 수비력이 조금 더 빛났던 선수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대인 방어 능력과 깔끔한 태클이 일품이었기에 중앙 수비수로 기용되기도 했다. 물론 공격적인 재능도 없는 건 아니라 측면에서 깔끔한 크로스로 지원하는 능력도 우수했다.

선수 커리어를 오직 플라멩구 한 구단에서만 보냈으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지쿠, 주니오르와 함께 플라멩구 왕조를 세우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5회 우승과 브라질 세리 A 3회 우승, 그리고 1981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모두 우승했다. 특히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유럽에서 붉은 제국을 세운 리버풀을 3-0으로 완파하기도 했으며 개인적으로도 브라질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셀레상에서는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우승후보 1순위, 또는 역대 최강의 팀에 버금간다는 칭송을 들었으나 이탈리아에게 패하며 2차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비극을 겪는다.



24위 브란코 스탄코비치

 


생년월일: 1921년 10월 31일
국적: 보스니아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 축구 역사상 역대 최고의 측면 수비수로 평가받는 인물로 측면의 넓은 공간을 종횡무진 뛰어다녔으며 반칙을 하지 않고도 상대의 공을 빼앗는 완벽한 수비를 보여줬으며 공 탈취 이후 빌드업에도 크게 관여해 사령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프리킥에도 능했다.

BSK 베오그라드와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BSK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세르비아 리그 2회 우승을,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는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에서는 리그 4회 우승 및 컵대회 3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1956-57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는 1948년 런던 올림픽과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결승에 진출하며 은메달리스트로 활약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과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5위라는 성적을 달성했다.



23위 카일 워커

 


생년월일: 1990년 5월 28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21세기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으로 우수한 신체 밸런스와 빠른 스피드, 그리고 우수한 오른발 킥력을 활용한 빌드업에도 능했으며 수비 스킬도 뛰어나 백 3 시스템에서는 우측 스토퍼로도 활약한다.

토트넘 핫스퍼와 맨체스터 시티에서 활약한 워커는 전자의 구단에서는 2011-12 시즌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 상을 수상한 이래 2016-17 시즌 프리미어리그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후자의 구단에서는 도메스틱 트레블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 리그컵 4연패를 이뤄냈고 2020-21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구단 역사상 첫 결승 진출을 이뤄내는데 공헌했으며 두 팀에 머무는 동안 PFA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다.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라이트백으로 군림한 워커는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유로 2016을 시작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준결승에 진출했으며 유로 2020에서는 결승 진출에 공헌했으며 뛰어난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 1,2차전은 결장했지만 토너먼트에서 음바페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22위 지안루카 잠브로타

 


생년월일: 1977년 2월 19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2006년 한 해 한정으로는 세계 최고의 측면 수비수였던 선수로 빠른 스피드와 왕성한 활동량을 겸비했으며 뛰어난 오른발 킥을 활용한 날카로운 크로스로 오른쪽을 지배했으며 안정적인 수비력도 겸한 것은 물론 우수한 전술안과 양발 사용 능력을 통해 레프트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메짤라의 위치에서도 활약했다.

잠브로타는 유벤투스에서 일곱 시즌 머물며 칼치오폴리로 인해 두 번의 리그 우승이 취소되었음에도 세리에 A 우승 2회와 2002-0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칼치오폴리로 소속팀이 강등되자 바르셀로나로 갔으나 그때는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밀란으로 돌아왔으며 밀란에서도 전성기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잠브로타는 2000년대 초중반 아주리 군단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했는데 유로 2000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준결승 네덜란드전에서 34분 만에 퇴장당하며 결승전에 나서지 못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부진한 활약을 펼쳤으나 유로 2004에서는 팀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잠브로타는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 들었다. 그리고 대망의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견인하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21위 루이스 우비냐

 


생년월일: 1940년 6월 7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60년대 하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라이트백으로 뛰어난 지구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압박해 괴롭혔으며 반 박자 빠른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견제하는데 능한 수비적인 풀백이었으나 적절한 오버래핑을 통한 공격력도 겸비했으며 주장으로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자국리그의 람플라 주니오르스와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활약했던 우비냐는 우루과이 프리미어 디비시온 4회 우승을 이뤄냈고 특히 1971년에는 팀의 주장을 맡아 리그는 물론 코파 아메리카와 인터컨티넨탈컵을 모두 제패하며 트레블을 이뤄냈으며 1967년에는 로 스포르트 일루스트라토지 선정 남미 베스트 일레븐 및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 8강과 1970 멕시코 월드컵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공격진의 에이스이자 주장이었던 페드로 로차가 이탈하자 대리 주장 역할을 수행한 우비냐는 훌륭한 리더십으로 팀을 독려했으며 특히 우비냐를 비롯해 무히카, 안체타, 마토사스와 함께 철의 포백을 구성해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캐스트롤 인덱스 선정 1970 멕시코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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