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Top 10

포지션별 역대 TOP 100/라이트백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Top 10

토르난테 2024. 1. 1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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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 마이콩

 


생년월일: 1981년 7월 26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마른쪽'

2000년대 후반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강한 지구력과 수비력은 물론 훌륭한 볼 컨트롤과 오른쪽에서 적절한 타이밍의 오버래핑 이후 날카로운 크로스를 날리며 오른쪽을 지배해 마른쪽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2008-09 시즌과 2009-10 시즌 2년 동안은 사이드백이 보여준 축구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테르에서 짧은 시간 보여줬던 마이콩의 고점은 축구 역사상 모든 라이트백 중 최고급으로 평가받는데 인테르에서 세리에 4연패를 기록하며 세리에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날렸음은 물론 2009-10 시즌에는 리그와 코파 이탈리아는 물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드로그바, 메시, 로번 등 스타플레이어들을 죄다 집어삼킨 뒤에 트레블을 이뤄냈다. 인테르에 머무는 동안 ESM 올해의 팀 2회 선정과 2009-10 시즌 UEFA 올해의 수비수 2회 선정 및 2010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17위를 차지했다.

클럽에서 화려했던 마이콩은 셀레상 유니폼을 입고도 2007 코파 아메리카와 2009 컨페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셀레상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8강에서 탈락했음에도 팬 투표인 드림팀에 들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토너먼트에서는 주전으로 기용되었으나 준결승 독일전에서 수비진들이 부진했음에도 홀로 분투했으나 1-7 대패를 막지 못하며 미네이랑의 비극이라는 안타까운 일을 경험하며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9위 하비에르 사네티

 


출생일: 1973년 8월 10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Il Capitano'

축구 역사상 최고의 주장 중 하나이자 인테르의 대표적인 주장 중 한 명으로 공격 상황에서 크로스 능력은 아쉬웠지만 견고한 수비력과 강인한 체력과 빠른 주력을 활용해 공수를 오가며 훌륭한 활약을 펼쳤으며 수비형 미드필더와 메짤라, 레프트백도 볼 수 있었을 정도로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인테르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사네티는 입단 초기부터 꾸준히 리그 상위권의 실력을 유지했는데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주전으로 활약해 세리에 A 외국인 최다 출전자 자리에 올랐고 세리에 A 5연패와 2009-10 시즌 트레블을 이루며 주장으로 빅이어를 들어내며 그의 등번호 4번을 구단의 영구결번으로 만들었다.

사네티는 대표팀에서도 센츄리 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롱런했는데 1995년에 데뷔해 다섯 번에 코파 아메리카에 나가 2004년과 2007년에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현역 은퇴 이후인 2015년에 아르헨티나 축구협회가 선정한 아르헨티나 대표팀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8위 만프레트 칼츠

 


생년월일: 1953년 1월 6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바나나 크로스'

197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측면 수비수로 역대 최고의 오른발 크로서로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크로스 실력을 보여 이를 두고 바나나 크로스라 불렸으며 실제로 함부르크와 디 만샤프트에서 칼츠의 크로스와 흐루베쉬의 헤딩은 중요한 공격 루트로 자리 잡았음은 물론 함부르크 통산 100 득점을 넘게 득점했을 정도로 득점력에서도 강점을 보였다.

함부르크 통산 최다 출전자로 이름을 남긴 칼츠는 디 로토센 군단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3회 우승, DFB포칼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에서도 컵 위너스 컵 우승과 1981-82 시즌 UEFA컵 결승 진출은 물론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과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모두 이뤄냈다. 특히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4강 2차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5-1 대승을 거두는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원정에서의 2-0 패배를 완벽하게 뒤집기도 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보여준 만프레트 칼츠는 UEFA 유로 1976에서는 포그츠의 백업으로 준우승을 경험했고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잠시 리베로로 활약했으나 1980년대에는 라이트백으로 회귀해 UEFA 유로 1980 우승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조국의 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함부르크에서 칼츠는 분데스리가 통산 출전 2위,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 6회 선정된 칼츠는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979년 4위와 1980년 10위를 기록했으며 1976년부터 선정한 옹즈 드 옹즈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도 2회 선정되는 등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군림했다.

 


7위 다니 아우베스

 


생년월일: 1983년 5월 6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우승 청부사'

앙헬 로마노, 리오넬 메시와 함께 압도적인 우승 트로피를 휩쓴 트로피 헌터로 왕성한 활동량과 날카로운 공격력을 더해 오른쪽을 지배했으며 측면에서 엄청난 커버 능력과 플레이메이킹 능력으로 중원과 연계하며 우측 공격수를 지원하는데 능했다.

세비야의 UEFA컵 2연패를 이뤄내며 2007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14위에 오르며 라모스와 함께 당대 라리가 최고의 라이트백에 오른 다니 아우베스는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라리가 6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 및 2009년 6관왕과 2014-15 시즌 트레블이라는 대업적을 달성했다.

유벤투스에서는 세리에 1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파리에서는 리그앙 2회 우승을 기록하며 화려한 클럽 커리어를 보여줬는데 다니 아우베스 개인도 개인적으로도 UEFA 올해의 팀과 ESM 올해의 팀에 각각 5회 선정되었으며 2008-09 시즌에는 라리가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공을 세웠는데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결승전에 득점을 기록했으며 201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리오넬 메시를 제치고 대회 MVP를 수상하는 활약을 펼쳤으나 월드컵 무대에서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마이콩과 로테이션으로 나섰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 때는 주전으로 나설 예정이었으나 부상으로 나서지 못했다.

 

 

6위 릴리앙 튀랑

 


출생일: 1972년 1월 1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파르마

'야수의 신체를 가진 철학자'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호나우두와 지단이 인정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수비수로 지목되었으며 철학자라는 별명과 야수라는 별명이 공존했는데 냉철한 판단력과 우수한 축구 지능은 물론 강력한 신체 능력과 빠른 발도 겸비하며 상대 공격수를 집어삼켰던 모습을 보여줬으며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센터백에서도 정상급 선수로 군림했다.

모나코에서 데뷔해 리그 정상급 선수로 성장한 튀랑은 이후 이탈리아로 건너가 파르마와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파르마에서는 1996-97 시즌 세리에 A 평점왕으로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으며 이 활약을 바탕으로 프랑스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1998-99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다.

유벤투스로 이적한 뒤에는 센터백과 라이트백을 오가며 세리에 A 2연패를 이끌었는데 파르마 시절을 포함해 이탈리아 무대를 통틀어서 ESM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을 정도로 맹활약했으나 권력형 비리인 칼치오폴리에 대한 징계로 팀이 강등되자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으나 라리가에서는 이미 노쇠화되어 별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은퇴했다

레 블뢰의 황금기를 이끈 철의 포백의 일원으로 명성을 떨친 튀랑은 1998 프랑스 월드컵과 UEFA 유로 2000 우승, 그리고 2006 독일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는데 상술한 세 개의 대회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프랑스 대표팀 최다 출전을 기록했다. 특히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4강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팀을 결승에 올려두는 공을 세워 브론즈볼을 수상한 것은 단연 백미로 꼽힌다.

 


5위 필립 람

 


생년월일: 1983년 11월 11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신뢰'

2010년대 최고의 명장 펩 과르디올라로부터 자신이 가르친 선수 중 가장 축구를 잘 이해하는 선수라 평가받은 지능적인 라이트백으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2010년대 디 만샤프트와 바이에른 뮌헨을 이끌었다. 훌륭한 축구 지능과 강철 같은 체력, 적절한 공격 가담을 겸비한 2010년대 최고의 라이트백이었다.

슈투트가르트로 임대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선수 생활을 전부 바이에른 뮌헨에서 구단의 황금기를 보낸 필립 람은 분데스리가 8회 우승과 DFB 포칼 6회 우승, 그리고 2012-13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마저 제패하며 주장으로써 빅이어를 들며 트레블을 달성했는데 개인 통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으며 ESM 올해의 팀에 2회 선정, UEFA 올해의 팀에 5회 선정되었고 은퇴 직전 시즌인 2016-17 시즌에는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필립 람은 월드컵과 유로에 각각 3번의 대회에 출전했는데 첫 대회인 유로 2004를 제외한 모든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영예를 누렸으며 이 활약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6위에 랭크되었다. 2016년에는 UEFA 유로 대회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4위 베르티 포그츠

 


생년월일: 1946년 12월 30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크루이프 잡는 사냥개'

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통하며 특히 크루이프마저 완전히 지워버린 발군의 대인 마킹 실력은 당대는 물론 역대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며 팬들로부터 마치 사냥개와 같다고 'Der Terrier'라고 불렸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클럽 커리어의 전부를 보낸 원 클럽맨 포그츠는 분데스리가 5회 우승과 UEFA컵 2회 우승, 그리고 1976-77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뤘던 중심에는 모두 그가 있었으며 1972-73 시즌에는 포칼을 우승하며 황금기를 보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으며 황금기에 기여한 포그츠는 3회의 월드컵과 2회의 유럽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는데 특히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크루이프를 완벽하게 봉쇄하며 숨은 공로자 역할을 했으며 1976 유로와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포그츠 개인도 묀헨글라트바흐와 서독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동안 많은 개인상을 수상했는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8회 선정되었으며 1971년과 1979년에는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노미네이트에 5회 선정되어 10위 안에 네 번 들었으며 1975년에는 발롱도르 4위에 오르며 라이트백 포지션에서는 발롱도르 역대 최고의 순위에 올랐다.



3위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생년월일: 1944년 7월 17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산투스 FC

'역사상 최강의 팀의 주장'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하나로 특히 현지 팬들은 그를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꼽는다. 최초의 현대적인 측면 수비수로 알려져 있으며 날카로운 오버래핑은 물론 중앙으로 치고 들어와 뛰어난 패싱력으로 골 찬스를 만들어내기도 했으며 이런 공격적인 부분에서의 강점들과는 다르게 수비수로서의 기본기도 뛰어나 중앙 수비수로 뛸 수도 있었다.

플루미넨시에서는 캄페오나투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어린 시절부터 자우마 산투스에 버금가는 브라질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평가받았던 카를루스 아우베르투는 산투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4회 우승은 물론 1968년에는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펠레의 세계구적인 인기와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한 산투스의 수뇌부와 브라질 정계에 의한 친선경기를 다른 브라질 클럽의 2배 이상을 뛰는 산투스였기에 혹사로 인해 전성기가 다소 빨리 지나갔는데 전성기가 지난 뒤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북미 챔피언십 4회 우승을 이뤄냈다.

하지만 아우베르투가 빛났던 부분은 역시 셀레상에서의 활약인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출전해 팀의 본선과 예선 전승 우승에 큰 공을 세웠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는데 특히 그의 결승전에서의 골은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있었던 산투스의 비정상적인 혹사만 아니었더라도 그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의 자리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다.



2위 카푸

 


생년월일: 1970년 6월 7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AS 로마

'셀레상의 철인'

같은 국적의 자우마 산투스, 카를루스 아우베르투와 함께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선수로 오버래핑 상황과 수비 상황에서 모두 부족함 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현대적인 측면 수비수의 교과서로 불렸다.

텔레 산타나가 이끄는 상 파울루에서 첫 전성기를 누린 카푸는 트리컬러 파울리스타에서 오른쪽의 지배자로 명성을 떨치며 1991년 브라질 세리 A와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더블 우승,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2연패,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 및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뤄냈는데 그 과정에서 아르헨티나의 신흥 강자 벨레스 사르스필드와 유럽무대 공격축구의 대표주자인 FC 바르셀로나와 수비축구의 대표주자인 AC 밀란을 모두 꺾어내는데 공헌했는데 특히 1993년에는 1992년 수페르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챔피언인 크루제이루와 레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 격돌해 승리하며 우승을 이뤄냈고 역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클럽끼리 열리는 왕중왕전인 수페르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그 과정에서 카푸 개인도 브라질 세리 A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고 남미 올해의 팀에 4년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1994년에는 엘 파이스 선정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레알 사라고사로 건너갔다가 적응에 실패해 파우메이라스로 돌아와 1996년 브라질 세리A 우승을 이끈 카푸는 이탈리아 무대에서 유럽에 재도전했는데 AS 로마에서는 세리에 A 역사상 가장 치열하다는 2000-01 시즌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말년에는 AC 밀란에 합류해 2003-04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2006-07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웠으며 UEF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세 번의 월드컵 결승전에 출전해 1994년에는 교체 출전으로, 2002년에는 주장으로 선발 출전해 우승을 차지해 발롱도르 투표에서 15위에 올랐으며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도 경험했다. 다만 월드컵 올스타 팀에 한 번도 뽑히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1위 자우마 산투스

 

 

생년월일: 1929년 2월 27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파우메리아스

'신성한 모아이'

아우베르투와 함께 브라질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손꼽히며 실제로 브라질 대표팀 활약은 카푸나 아우베르투, 다니 아우베스보다도 확실히 우위에 있다고 평가받는 선수로 바위 또는 벽이라 불렸을 정도로 견고한 대인 수비 능력과 깔끔한 패싱력으로 앞선 공격수를 지원하는 훌륭한 빌드업을 겸비했다.

포르투게자에서 월드클래스 라이트백의 반열에 오른 자우마 산투스는 파우메이라스에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줄리뉴와 함께 오른쪽에서 황금라인을 구축하며 이름을 날렸는데 라이벌이었던 펠레의 산투스와 치열하게 경합하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을 포함해 1965년 토르네오 리우상파울루 우승을 이뤄냈고 1967년에는 브라질 전국리그인 토르네오 호베르투 고메스와 타사 브라질 더블을 이뤄냈으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2회 준우승을 이뤄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더욱 빛났는데 네 번의 월드컵에 출전해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팀이 8강에 탈락했음에도 베스트 일레븐을 선정한 세 개의 매체 중 두 개의 매체에서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컨디션 난조로 주전 자리를 니우통 데 소르디에게 내줬지만 결승전에서는 선발 출전해 뛰어난 활약을 펼쳐 스웨덴의 레프트윙 스코그룬트를 지워버려 7개의 매체 중 4개의 매체에서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1962 칠레 월드컵에서도 ESPN 데포르테스가 선정한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커리어는 카푸가 가장 뛰어났고 고점에서의 기량은 아우베르투가 가장 좋았지만 자우마 산투스의 고점에서의 기량도 이들 못지 않았음은 물론 15년 가까이 정상급 선수로 활약하며 가장 기복없는 활약을 보였고 국제대회에서도 꾸준하게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기에 자우마 산투스를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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