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승점으로 9연패를 했던 초기 헝가리 축구의 절대강자

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동축아썰 칼럼

압도적인 승점으로 9연패를 했던 초기 헝가리 축구의 절대강자

토르난테 2020. 9. 9. 17:44
728x90
728x90

현실에서 FM 한다.

 

FM, 풋볼 매니저는 가장 현실성 있는 축구 매니지먼트 게임으로 감독으로서 구단을 운영하며 선수단을 구성하며 상대팀과 경기해서 이기며 우승컵에 도전하는 축구 감독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현실성이 다른 게임에 비해 뛰어났으며 실제 스카우터들을 파견해 선수들의 능력치를 조사한 빅 데이터를 활용한 축구 시뮬레이션 게임의 정점으로 평가받으며 전 세계에 수많은 FM 중독자를 양산했던 게임이다.

풋볼 매니저

하지만 게임이다 보니 현실에선 불가능한 대기록에 도전하는 유저들이 생겼으며 그들은 게임에서 기록한 압도적인 성적을 캡처해서 커뮤니티에 올리며 자신의 전략을 자랑하며 공유한다.

그래서 현실 축구에서도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준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나 유프 하인케스나 한지 플리크의 바이에른 뮌헨 같은 팀들을 보면 현실에서 FM을 한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 현실 FM에 가장 가까운 축구를 한 팀이 있었다.

경기 영상은 남아있지 않다. 왜냐 100년도 더 지난 팀이라 기록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이 너무 경이로웠으며 이 팀이 훗날 전술사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작은 변화를 먼저 보여준 팀이기도 하다.

그럼 이제 이 팀을 소개해보겠다.

 

1916~1925 MTK 헝가리아

 

성적

리그 9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으며 아래 표를 참조하면 된다.

감독

지미 호건 (1914.07.01~1921.06.30)

헤르베르트 부르게스 (1921.07.01~1922.06.30)

폰츠 안탈 (1922.07.01~1925.11.30)

오늘날의 MTK 부다페스트이기도 한 MTK 헝가리아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이 팀은 1916-17 시즌부터 1924-25 시즌까지 헝가리의 1부 리그인 넴제티 버이녹샤그 I 9연패에 성공한 절대 강자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절대 강자는 아니었으며 리그 초창기에는 페렌츠바로스가 독식했으며 MTK 헝가리아도 두 번의 우승을 했지만 1908년부터 1913년까지는 페렌츠바로스가 8번을 우승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이때 MTK 헝가리아는 잉글랜드 출신의 지미 호건을 감독으로 선임한다. 그는 잉글랜드인이었지만 잉글랜드의 전통적인 방식인 롱볼 축구보다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적인 방식인 숏 패스를 구사하는 축구를 선호했다.

다뉴브 학파의 시조 지미 호건

지미 호건이 부임해서 시즌을 준비하던 도중,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2년간 리그는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페렌츠바로시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들은 노쇠화되었으며 페렌츠바로시는 전력이 약화되며 싸이클이 내려간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분리되고 헝가리 리그가 재개한 2016년에 MTK 헝가리아는 페렌츠바로스의 에이스이자 1910년대 최고의 축구선수 쉬로서 임레를 영입했으며 전쟁 도중에 영입한 샤프 알프레드를 주축으로 막강한 화력을 구축했으며 경기당 다섯 골 이상을 득점하며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한다.

경기 수보다 득점 수가 많은 이 선수가 오고 넴제티 버이녹샤그의 판도가 바뀌었다.

그리고 1910년대 전반기의 MTK 헝가리의 에이스 아웃사이드 라이트인 콘라드 칼만이 돌아온 이후에는 화력이 더 강해져서 더욱 압도적인 성적인 21승 1무라는 성적으로 우승하며 경기당 일곱 골을 득점했다.

1916~1920 최전성기의 멤버들

이들은 다뉴브 학파의 시도를 처음 구현한 팀이다 원시적인 스위치 플레이를 구축했으며 쉬로서와 콘라드, 케르테즈, 샤퍼, 자보가 서로 원시적으로 위치를 바꿔가며 상대 수비수를 괴롭혔으며 샤퍼는 수비를 유인하는 능력에 뛰어났으며 쉬로서는 득점 능력이 훌륭했고 콘라드와 케르테즈는 서로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 수비진을 교란한다.

지미 호건은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스트리아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 시절 마이슬과 함께 다뉴브 학파를 만들어 교류하며 스위칭 플레이를 더 정석화시키기도 했다.

1세대 선수들이 은퇴한 뒤에도 이들은 줄라 만디, 오르스 죄르지, 세베스 구스타브 등 훌륭한 선수들로 배출되었으며 호건 감독이 사임한 이후에도 우승 멤버인 잉글랜드 출신의 용병이자 레프트 백으로 활약했던 부르게스가 감독을 맡아 우승했으며 이후 폰츠 안탈 시대까지 무려 9년 연속 리그 우승을 달성한다.

세베스는 선수시절 MTK 헝가리아에서 배운 스위칭 플레이를 극대화해서 감독이 되어 매직 마자르를 구성했다.


마지막으로 변방 리그에서 강호 노릇을 하는것 아니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는데 1910년대에는 용병이 뒷 세대처럼 활발하지 못했으며 대부분 자국 선수를 기용했으며 자국 리그 선수들로만 국가 대표팀을 구성했다. 이 시대의 클럽 ELO 랭킹은 남아있는 자료가 없지만 1910년대 헝가리 국가대표팀의 ELO 랭킹이 5위로 상위권을 달성한 것을 보면 당시로서는 잉글랜드만은 못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리그를 가지고 있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1910년대 국가 ELO 랭킹

그렇다고 저승사자 군단 시절 레알 마드리드나 에레라의 인테르, 미헬스의 아약스, 붉은 제국 시절의 리버풀, 사키의 밀란, 펩의 바르셀로나, 하인케스의 바이에른 뮌헨 정도로 축구사의 혁명을 주도하거나 전 세계를 호령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훗날 분더 팀의 대두에도 작게나마 영향을 줬으며 스위칭 플레이의 원시적인 시조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을만한 팀이라고 생각한다.

 

728x90